[체험기] 형보다 나은 아우 있다,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3개 |



가깝지만 험했다. E3 2017을 앞두고 EA가 진행한 식전 행사인 EA PLAY. 아침 일찍 나섰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이 우리보다 앞서 줄을 서 있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줄을 서 EA PLAY에 입장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EA의 CEO인 '앤드루 윌슨'을 볼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관객들 때문에 회장이 어지러웠다. EA의 주요 라인업인 스포츠 게임들이 지나가고, 바이오웨어의 신작도 공개되었다. 하지만 흥분은 그대로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라는 걸.

2015년, 처음 '스타워즈: 배틀프론트(이하 배틀프론트)'의 영상을 보았을 때, 난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시절 미국에 살던 이모가 내가 갖고 싶다던 '스타크래프트'와 착각해 '스타워즈' 영화를 선물로 줬을 때부터 난 그 장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배틀프론트를 구매했고, 요즘도 종종 플레이하곤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지라 매칭이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어 유료 VPN까지 결제해버렸다. 오직 이 게임 하나 때문에.

물론 아쉬운 점도 있는 게임이었지만, 그만큼 강렬한 게임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을 극한까지 끌어낸 듯한 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호스와 타투인에 이르는 스타워즈 속 사가들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미디어 브리핑이 끝난 후, 바로 동료 기자와 함께 체험을 위해 줄을 섰다. 이번에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시연대에 섰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드러나지 않지만, 확실한 진보
단점은 없애고, 장점만 남기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병과' 시스템이었다. 전작은 딱히 병과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공평하게 스톰트루퍼나 반란군 병사로 싸웠다. 때문에 총기(게임 내에서는 '블래스터'로 칭한다)와 '스타 카드(일종의 추가 장비)'정도로 각 플레이어 간의 성향이 갈렸는데, 사실 큰 영향은 없었다. 어차피 다들 쓰는 총기와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부터는 병과가 네 가지로 세분되고, 병과에 따라 사용 가능한 스타 카드가 나뉘면서 더욱 전략적인 움직임이 가능하게 되었다. 병과 구성은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어느 FPS에서나 메인이 되는 '돌격병', 보호막을 이용한 탱킹과 고정 화력 투사가 가능한 '중화기병', 아군에게 버프를 주고 전략적으로 터렛을 설치할 수 있는 '장교', 마지막으로 함정을 설치하고 저격 화기를 다루는 특수병. 딱 봐도 누가 뭘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이 병과에 따라 체력 수치도 변동되었고,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다.



▲ 병과 시스템의 추가는 꽤 좋은 뉴스다.

더 이상 전장에 깔리는 파워업 카드나 탈것 카드도 없다. 전작에서는 지상, 공중 탈것과 영웅 카드가 무작위로 스폰되었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원하는 플레이어는 시작과 동시에 죽어라 뛸 수밖에 없었다. 초보 플레이어들은 여기서 딜레마가 생기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무조건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전략 병기들과 영웅의 존재는 전황을 뒤바꾸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하고, 숙련된 플레이어가 잡으면 그대로 전장의 도살자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게임에 능숙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은 눈앞에 카드가 있어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영웅을 골랐다가 순식간에 두들겨 맞고 죽는 것만큼 원통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런 필드 카드시스템은 본작에 이르러 '배틀 포인트'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매번 사망할 때마다 각 플레이어는 생존 시의 전과에 따라 배틀 포인트를 받는데, 이 포인트를 이용해 다음 스폰에서 원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500포인트를 쓰면 전투기를 몰 수 있고, 2,000포인트를 쓰면 중장갑 전투 드로이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5천 포인트를 사용하면 다스 몰이나 보바 펫을 꺼낼 수 있다.



▲ AT-RT는 1,000 포인트 정도 했던 것 같다.

이런 변화는 전작인 '배틀프론트'에 꼭 필요한 개선 사항이었다. 초보들도 부담 없이 본인의 포인트를 사용해 영웅이나 탈것을 쓸 수 있고, 포인트 지급도 꽤 후한 편이기 때문에 게임이 끝날 때까지 영웅 한 번 못 뽑을 일도 없다. 더불어 영웅 자체도 상당히 약화되었기 때문에 전처럼 루크 스카이워커 하나에 세 번씩 죽어나갈 일이 드물다. 다스 몰도 집중 포화를 받으면 5초를 채 버티지 못한다. 능숙한 플레이어들이 영웅을 붙잡고 게임을 지배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반면, 전작의 좋았던 점들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그 수준 그대로 좋다. 딱히 더 나아지지 않아서 실망하는 것은 아니다. 배틀프론트의 그래픽은 전작부터 최고급이었으니까. 블래스터의 발사음이나 발사 감각, 그리고 잔잔히 깔리는 배경음도 전작의 느낌 그대로다. EA DICE는 영악한 개발사다. 배틀프론트2를 플레이하면서, 난 불완전했던 전작이 드디어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기존에 좋았던 점은 거의 건들지 않고, 모자랐던 부분만 꼭꼭 채워넣었다.



▲ 적으로 만나면 진짜 무서운 형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 전장
단순했던 전투에 깊이가 더해지다


그게 끝이 아니다. 전작인 '배틀프론트'는 사실 겉보기가 그럴싸할뿐, 게임 디자인 면에서는 매우 단순한 게임이었다. 제국군은 AT-AT를 보호하고, 반란군은 신호기를 가동해 Y-Wing으로 AT-AT를 파괴하면 끝이다. AT-AT가 정해진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리스폰 포인트가 바뀌고, AT-AT가 끝까지 가게 되면 제국군이 승리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 단순했던 게임 디자인에도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시연장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던 전장은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서 등장한 '나부 행성' 전투(아미달라 여왕이 나오고 꼬마 아나킨이 처음 하늘을 날았던 그 전장)였다. 뜬금없이 클론 트루퍼들이 등장하는건 좀 이상했지만 하여튼 나부 행성을 지키는 공화국 소속 클론 트루퍼들과 무역연합의 전트 드로이드들이 등장한다. 말같이 생긴 머리에 시무룩한 눈을 하고 있는 그 드로이드가 맞다.



▲ 게임에서도 아름답게 나왔다. 다만 건간족은 없었다.

무역연합측은 MTT를 나부 왕궁까지 보호해야 하고, 공화국 측은 MTT의 진격을 막아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AT-RT가 뛰어다니는가 하면,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다스 몰도 날아다닌다. 여기까지 보면 전작과 별로 다를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MTT가 왕궁 앞에 도달하면, 그 때부터는 전투가 2막으로 들어선다. 전장은 완전히 왕궁 내부로 바뀌게 되고, 대규모 장비전에 가깝던 1차전과는 다른 양상의 실내 보병전이 주가 된다. 당연히 전투기는 사용 불가로 바뀌고, 전차 등도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 MTT가 도착하면 이런 연출과 함께 전장이 바뀐다

교리가 완전히 바뀐다. 외부에서 큰 힘을 발휘하던 특수병들은 저격 병기가 봉인되면서 비중이 낮아지고, 높은 체력과 화력을 보유한 중화기병이 전선의 중심이 된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집중 포화를 받고 바닥을 구르던 근접 영웅들도 이때부턴 죽음 그 자체가 된다. 골목을 돌자 마자 다스 몰이 광선검을 풍차처럼 돌리면서 날아오는걸 보면 간담이 서늘하다.

그렇게 배틀프론트2의 한 판이 완성된다. 단순히 호위와 방어로 나뉘던 전투가 보다 다채로워졌다. 나부 사태라는 전투 배경 자체도 좋았다. 전작의 경우 대부분 구 3부작(에피소드 4,5,6)의 전장을 무대로 했는데, 이때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성기였던 건 맞지만, 사실 지금 게임을 소비하는 주 세대인 20대 초반에게 구 3부작은 전설 속 이야기에 가깝다. 오히려 신 3부작(에피소드 1,2,3)과 최근 등장한 작품들이 더 익숙할 거다. 나 또한 나부 사태가 호스 전투보다는 더 익숙하다. 내 첫 스타워즈에서 자자 빙크스가 나온 건 안타깝지만 말이다.



▲ 걱정하지 마라. 이 녀석 안 나온다


남은 것은 기다림 뿐...
형보다 나은 아우가 여기 있다


한국 속담에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시대에 디지털 미디어에 그런 이야기가 해당이나 될까 싶지만, 의외로 게임업계에서는 전작의 아성을 넘지 못하는 후속작이 자주 보인다. EA도 딱히 비껴가진 못했다. 가까운 사례로 '매스 이펙트: 안드로메다'도 있으니 말이다.



▲ '배틀프론트'만의 매력은 여전하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한 가지 의견을 붙이자면, 배틀필드 시리즈와 차별화된 노선을 꾀하려던 EA의 의도는 이어지지 않았다. 병과 시스템과 변화하는 전장까지, '배틀프론트2'에서는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받은 영향이 고스란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감칠맛을 더했다. 2년 전, 독일 쾰른에서 진행된 게임스컴 2015에서 '배틀프론트'를 체험하고 나서, 난 리뷰의 제목으로 "배틀필드의 스타워즈 스킨 버전이 아니다"라고 적었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배틀프론트2'는 전작보다 훨씬 접근하기 쉽고, 뛰어난 팀플레이 게임이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좋은 게임의 후속작이 전작의 그늘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건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배틀프론트2는 좋은 전작이었던 배틀프론트에서 탈피해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 가끔은 아우가 형보다 나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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