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가가 영광스러운 과거를 대하는 자세, '소닉 매니아'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33개 |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거의 행적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혹은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노력하거나. 몇 가지 선택지 속에서 최적의 결과를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남아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아쉬움과 회한에서 나오는 것은 '마땅히 그래야 했을 것'이라는 어디인가 비어있는 결과물이 대부분일 테다. 결국에 이와 같은 부정적 감정에서 과거의 영광을 찾기 시작한 결과물은 아쉬움만을 남긴다. 스스로 가지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자부심은 지금의 팬들과 온도 차가 발생하게 되고, 시리즈 오랜 팬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기기 마련이다.

소닉 탄생 25주년을 맞이하여 거창하게 공개한 '소닉 매니아'는 과거의 팬들과 자신의 영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쉬움일까? 아니면 마땅히 그렇게 됐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리고 25주년 기념작 '소닉 매니아'는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까.



■ ACT #1. - 소닉의 과거에 '경의'를 표해라

세가는 한 때 닌텐도, 소니와 시장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회사였다. 메가드라이브, 새가 새턴, 드림캐스트와 같은 콘솔 기기를 내세우며 게임계를 선도하던 과거가 있다. 물론, 시장에서의 결과야 별개의 문제였지만, 적어도 세가 만의 정체성은 확실히 피력했다. 그리고 그 시기, 그 시절의 세가는 1위는 못했을지언정 의미 있는 타이틀과 결과를 만들어낸 회사였다고 할 수 있다.

타이틀과 기기 모든 측면에서 시장을 견인했던 세가. 그리고 메가드라이브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아이콘 '소닉'은 세가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리오와 더불어 게임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세↗가→"라는 인트로 음성과 함께 소니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 세↗가→

하지만 과거의 영광만으로는 소닉을 지금 시대에 맞게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소닉 시리즈를 개발하는 '소닉 팀'은 최신작 '소닉 포시즈'를 개발하고 있었고 세가 스스로도 과거의 느낌과 디자인을 보여주기에는 여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견인했던 캐릭터였기에 복각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가를 대표한 캐릭터를 허투루 다루는 것은 과거마저 빛을 잃게 할 것이 자명한 상황.

세가는 그렇게 '크리스천 화이트헤드'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크리스천 화이트헤드'는 모바일로 소닉1, 2 포팅을 주도한 인물이다. 자체 엔진을 개발하여 과거 소닉 시리즈를 모바일로 고스란히 옮긴 바 있으며, 세가 측에서는 크리스천 화이트헤드를 통해 '소닉 매니아'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2013년 당시 함께 개발했던 '사이먼 톰리', 클래식 소닉 시리즈의 BGM을 리메이크했던 '파고다웨스트'까지 합류하면서 소닉 시리즈에 애정을 가진 개발진이 완성됐다.



▲ '소닉 매니아'라는 타이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개발진이 아니었을까.

그야말로 타이틀 명처럼 '소닉 매니아'들에게 개발을 맡긴 셈. 이렇게 완성된 '소닉 매니아' 개발진은 과거의 복각이 아닌 '새로운 무엇'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가진 과거의 추억과 감정을 현시대 게이머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고 과거에 대한 경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 ACT #2. - 리메이크가 아닌 과거에 기반한 '창조'

소닉 팀의 헤드이자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인 이이즈카 타카시는 출시 전 인터뷰를 통해 '소닉 매니아'를 리메이크가 아닌 신규 타이틀로 제작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미 시장에 이식작이 등장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리메이크나 이식으로는 25주년 기념작이라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리하여 소닉 매니아의 구성은 '과거의 스테이지 + 신규 스테이지'형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레트로 엔진을 활용하여 게임의 그래픽과 도트를 개선하면서도 기존의 스테이지에 신규 스테이지, 신규 시스템을 섞었다. 다양한 플랫폼으로 옮겨간 유저들을 위해서 PS와 Xbox, PC, 닌텐도 스위치까지 현존하는 거의 모든 플랫폼으로 출시하는 전략도 가져왔다. "세가가 자랑스럽게 선보입니다"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 그야말로 "세가가 자랑스럽게 선보입니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소닉 시리즈의 빠른 속도감과 BGM을 비롯한 사운드는 훌륭한 수준으로 마감됐다. 과거 소닉 시리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속도감은 여전히 건재하며, 새로이 제작한 BGM은 플레이에 새로운 즐거움을 부여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캐릭터가 화면 중앙을 벗어나 진행 방향으로 이동하는 연출. 빠른 속도에서 오브젝트가 파괴되는 쾌감과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배경까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소닉 시리즈의 정체성으로 이어져 오던 플레이는 소닉 매니아에서도 건재하다.






▲ 그래, 이런 속도감이 있어야 소닉이라 할 수 있지!

여기에 스테이지 진행 방향이 일방적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호평할 만한 부분이다. '소닉', '테일즈', '너클즈' 세 캐릭터를 제공하는 만큼, 캐릭터마다 이용할 수 있는 루트를 추가해뒀다. 같은 스테이지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고, 친구와의 협업 또는 다른 캐릭터로 공략 시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빠르게 달리다가도 중간마다 멈춰서 탐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스테이지 디자인은 훌륭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스테이지 구성은 과거의 스테이지 리메이크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 하지만 신규 스테이지에 기존 시리즈 스테이지의 기믹과 분위기를 넣으면서 '옛날에 대한 향수'만은 확실하게 전달하려 했다. 난이도도 적당하게 설정되어 있어, 좋은 도전거리가 되기도 한다.

스테이지 구성이 어렵다면 보스전을 쉽게 배치했고, 스테이지 구성이 쉽다면 보스전을 어렵게 설정하여 밸런스를 맞추고자 했다. 분명히 어려운 스테이지들이 있기는 하지만, 스테이지 마지막 보스전에서 깜짝 놀랄 만한 구조를 선보이기도 한다. 스테이지 디자인과 구조 전반에 걸쳐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 나름 난이도 조절은 했지만 어려운 구간은 꽤 많다.



■ ACT #3. - 우리의 기억을 자극하는 '오마주'

'매니아'라는 이름이 그렇듯, 이번 타이틀은 팬들을 위한 서비스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전작을 오랜 시간 플레이한 사람이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스테이지 곳곳에서는 전작의 오마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작에서 나왔던 보스전이 반대의 입장에서 진행된다거나, 난데없이 뿌요뿌요 대결로 보스전이 진행된다거나. 아니면 오브젝트에 세가의 로고가 적혀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오마주들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소닉 마니아'는 리마스터가 아니라, 그 시절의 감성을 지금의 기술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져왔다는 느낌보다는 새로 만들었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개발진들이 골수 소닉팬임을 증명하듯, 전작 요소들을 어떻게 활용해야만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한 과정을 느낄 수 있다. 게임기어의 변형, 동료로 너클즈가 합류하는 '&너클즈' 모드까지 구현한 것을 보면 웬만한 애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 난데없이 뿌요뿌요가 나온다거나.



▲ 메뉴에서 &너클즈 옵션을 키면? 쨔잔 '너클즈&너클즈'!



■ ACT #4. - 기존 팬. 그리고 신규 팬을 위한 시작점

25주년 기념작으로 태어난 '소닉 매니아'는 소닉 매니아인 개발진이, 지금까지 함께한 팬들에게 바치는 찬사로 마무리됐다. 여기에 소닉을 흐릿하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소닉이라는 게임의 정체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리즈의 특징인 스피디한 진행을 살리며 높은 완성도로 마감됐다.

물론, 게임 플레이 도중 마주하게되는 버그들과 불완전한 포팅(닌텐도 스위치의 경우 OS를 느려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은 지적할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경의에 기반하여, 시리즈 팬의 시선에서 세가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충실하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 is dead"가 검색어로 자동 완성되는 시리즈라는 조롱도 있지만, 소닉 시리즈의 존재감을 다시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마무리됐다. 25주년을 기념하여 빛나던 과거로 회귀한 '소닉 매니아'는 2D든 3D든 소닉 시리즈의 속도감과 가치가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한 셈이다.

기념비적인 과거를 추억하며, 팬의 손에서 만들어진 '소닉 매니아'는 게임의 엔딩에서 최신작 '소닉 포시즈'로의 연결고리까지 마련하면서 자신들의 찬란한 과거가 있었음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세가의 겸허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속도감을 재현한 '소닉 매니아'는 과거의 팬을 위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신규 팬들을 위한 좋은 시작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 이름에 걸맞는 작품으로 마감된 '소닉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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