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어느 날 내가 괴물로 보였다, '씨 오브 솔리튜드'

리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3개 |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경악하며 빠르게 게임 시작을 눌러 메뉴 창을 넘겨버렸다. 깃털이 달린 새카만 얼굴과 빨간 눈까지, 화면을 가득 메운 주인공 '케이'의 얼굴이 너무나도 무서워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보니, 케이의 섬뜩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이는 얼굴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혐오해본 적이 있나요?

7월 5일 출시된 EA 오리지널 신작 '씨 오브 솔리튜드(Sea of Solitude)'는 제목 그대로 외로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다루는 3인칭 어드벤처 게임이다. 외로움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주인공 케이가 되어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바다에 잠긴 도시를 탐험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씨 오브 솔리튜드'는 어렵지 않은 게임이다. 게임 방식부터 간단하다. 작은 배를 타거나 뛰어다니면서 곳곳에 숨겨진 어둠을 정화하고, 괴물들을 피하고 마주하며 진행하면 된다. 공중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플레어를 통해서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

스토리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선형적인 구조에, 함축된 의미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캐릭터의 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다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읽힌다. 다만, 성우 연기는 연극적인 톤이라 감정이입을 조금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개발자들이 직접 녹음한 목소리라고 한다.


여기에 '씨 오브 솔리튜드'의 직관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연출은 게임을 더더욱 이해하기 쉬운 게임으로 만들어준다. 빛과 색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평화롭고 따뜻한 바다와 어둡고 위험한 바다를 표현하고 있으며, 감정에 따라 날씨가 변하거나 바다의 수면이 오르락 내리락해서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기 쉽다. 비가 내리고 폭풍우가 치는 바다는 당연히 위험하고, 따뜻한 색감과 햇빛이 가득한 바다는 안전하다고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 다루는 소재는 쉽지 않다. 외로움과 우울증, 자기혐오까지. 다루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까지 어려운 소재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씨 오브 솔리튜드'가 제시하는 방향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만큼 게임 시작에서도 해당 게임이 전문적인 조언이나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전달한다. 외로움과 우울증이란 이런 것이라고.

'씨 오브 솔리튜드'가 개발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게임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씨 오브 솔리튜드'는 외로움에 대한 개인적인 프로젝트로, 나와 다른 이들의 실제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케이의 이야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삶의 즐거움과 괴로움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룬다. - 코넬리아 게페르트(Cornelia Geppert)





우리는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외로움의 정도나 이유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외로움은 주변에 친구가 많다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바다로 잠긴 도시에서 케이는 그녀처럼 새카맣게 물든 괴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를 잡아먹으려는 괴물도 있고, 길을 막는 괴물도 있으며,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괴물도 있다. '씨 오브 솔리튜드'에서 괴물은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남동생, 부모님, 남자친구, 그리고 자기 자신. 케이와 가까운 인물들로, 케이는 그들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듣고 인도해야 한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새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남동생 '써니(Sunny)'의 이야기였다. 왕따의 문제를 다룬 파트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점차 어둠으로 치닫는 써니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 "친구니까, 그냥 장난이 조금 과한 걸 거야"라는 생각에서 도움을 청하기까지, 그리고 그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어쩌면 나는 이런 일을 당할만한 사람인 것이 아닐까"하고 삶에 대한 의욕을 놓기까지.

특히 친구들을 피해 학교를 벗어나야 하는 부분은 정말 섬뜩하다. 계속해서 "널 찾아서, 죽여버릴 거야"라고 소곤대는 목소리, 빨간 눈을 빛내며 구타하는 가해자들. 플레어를 통해 가해자들을 사라지도록 할 수 있는데,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지 후련하다.




그외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다투는 부모님과 자기혐오가 심한 남자친구까지, 케이는 그녀가 간과했던 일들, 몰랐던 일들, 놓아줘야만 하는 일들을 다시 마주하며 배워나간다. '씨 오브 솔리튜드'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배우고,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두 번째 기회를 다룬다. 각 파트는 케이가 아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케이가 후회하는 일이자, 그녀가 스스로를 괴물로 바라보게 된 이유기도 하다.

케이의 생각과 후회는 그녀를 계속해서 비난하는 괴물들의 말을 통해 전달된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 거야"라고 외치는 케이에게 "그래,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라고 비난하는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그녀를 어둠으로 끌어내리기도 하고 저항할 의지를 북돋아 주기도 하면서 진행된다. 물론, 잘못 발을 내딛으면 가차 없이 잡아먹어 버리기도 하면서. 괴물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케이를 비난하면서도,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너의 행동과 노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해?

게임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케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행동하고 주변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인물로 변화한다. 그리고 게임은 이러한 케이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조명한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그 사람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걸까, 내가 도움이 될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어려운 문제다.

도움을 청하는 써니에게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케이의 노력이 정답일 수 있지만, 도움을 거부하는 상대라면 어떨까. 이러한 부분을 다루듯, '씨 오브 솔리튜드'에서도 모든 문제가 해피엔딩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적인 모습을 담았음에도, 지극히 이상적이고 교훈적인 연출과 메시지는 감동보다는 의문이 들게 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씨 오브 솔리튜드'는 지극히 케이 개인의 이야기이자, 스스로가 치유받는 스토리다. 남동생도, 부모님도, 남자친구에게도, 케이의 행동이 정확히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케이 스스로는 후회했던 일을 되잡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놓아주면서 성장해나간다. 치유 받는 대상은 케이 본인이고, 만들어 가는 것 또한 본인 기준에서의 '좋은 결과'다. 이러한 메시지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니까.

주변 사람들의 외로움을 들여다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에서 시작했던 케이는 점점 변화해나간다. '씨 오브 솔리튜드'는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모든 책임을 개인의 의지에 전가하지는 않는다. 케이를 도와주는 인물들, 바다를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는 작은 배까지, 많은 도움이 있었던 과정을 다룬다.




외로움과 우울함은 자주 바다에 비유된다. 끝없는 바다에 혼자 남겨졌다거나 깊은 바닷속으로 계속 가라앉는다거나. 바다는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장소지만, '씨 오브 솔리튜드'는 바다를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한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은 배와 길을 안내해주는 빛을 통해서. 절망적이고 공포심을 주는 장소지만, 게임에서는 아름다운 면모도 조명하고 있다.

옳고 그름과 현실성을 떠나서, '씨 오브 솔리튜드'는 무력감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때로는 스스로 일어서면서, 그리고 놓아줘야 할 때는 받아들이면서. 조금 더 몰입감 있는 대사와 연기, 다양한 기믹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들지만, 바다가 파도치듯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삶에서 중심을 잡을 힘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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