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근본 있는 SRPG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

리뷰 | 정필권 기자 | 댓글: 27개 |

지난 7월 26일 한국어화를 통해 국내 정식 출시된 '파이어 엠블렘 풍화설월(이하 풍화설월)'은 국내 닌텐도 스위치 보유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부 매장에서는 한때 타이틀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올 정도로 말이다. 시리즈의 인지도가 국내에서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7월에 신작들이 부재했다고는 하나, 이미 황금기가 지나간 SRPG라는 장르, 국내에서의 낮은 인지도를 고려하고도 준수한 판매량과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게임의 완성도가 준수했다. 스위치로 출시되는 시리즈 첫 타이틀이었기에 그래픽은 물론 시스템적인 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

2012년 '파이어 엠블렘 각성' 이후 시리즈마다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시리즈는 이번 풍화설월에 이르러 그래픽 면에서도 시스템 면에서도 한 단계 성장했다. 성능 면에서 상승된 스펙을 십분 활용하는 것은 물론, 풀 보이스 더빙 등 시스템 외적인 완성도도 한층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시리즈의 '근본'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악명 높던 난이도가 점차 낮아지는 와중에도. 한 수 한 수의 신중함이 조금씩 옅어지는 과정에서도 잃지 않았던 것. 캐릭터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말이다.




파엠 시리즈의 근본 = '애정'
매운 맛 대신, 선택과 결과로 시선을 바꿨다

'각성' 이후 많은 변화를 보여줬던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는 이번 '풍화설월'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각성 이전 시리즈를 플레이했던 팬들이라면 어색하다는 느낌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지금의 파엠 시리즈는 난이도도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었고. 시대의 발전으로 더 좋은 모델링, 수려한 일러스트를 내세우는 게임이 됐다. 과거의 추억이 매운맛으로 기억되었다면, 지금은 여러모로 달달한 맛에 가깝다.

하지만 이를 두고 '파엠 답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는 시리즈 원작자라고 볼 수 있는 개발자 '카가 쇼죠'의 의도가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육성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어렵고 빠듯하게 디자인을 했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는 캐릭터 사망과 삭제, 무작위 능력치, 한 수 한 수 신중한 플레이는 지금에서는 조금 희석됐다. 대신, 플레이어가 캐릭터에 '애정'을 투영할 수 있게 할 수 있도록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즉, 지금의 파엠 시리즈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해되지 않는 약간의 불편함을 강제가 아닌 선택지로 둔다. '풍화설월' 또한 각성 이후 시리즈 기조를 충실하게 반영한 타이틀이다. 난이도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요소가 됐다. 캐릭터가 삭제되지 않는 캐주얼 모드, 턴을 되돌릴 수 있는 시스템 등 게임의 난이도는 더 간편해지고 쉬워진 상태다.



▲ 연출은 세련되게 변했어도



▲ 랜덤 성장은 난이도 상관없이 건재.

이전보다 전략 플레이가 덜 빠듯해진 대신, 캐릭터 자체와 교류하는 시간을 마련해두면서 '애정'을 담아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1부는 물론, 2부까지 시스템이 이어지는 '사관학교'를 통해서 말이다. 그간 시리즈에서 등장하지 못했던 개념이자, '페르소나'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학교생활' 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1부의 전체. 게임 내부 시간으로 12달을 차지하는 '사관학교'의 완성도는 제작진이 많은 공을 들였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질적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반대로 플레이어가 자연스레 시간을 들여야만 원하는 바를 얻을 있도록 의도적으로 구성했다. 횟수라는 물리적인 제한.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적 제한이 어우러진 결과다.



▲ 하루 그리고 1개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행동은 제한된다.

게임을 시작하고 30분이 지나지 않아, '풍화설월'은 플레이어에게 첫 번째 선택을 강요한다. '어떤 반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플레이어가 맞이하는 첫 번째 선택이다. 그리고 첫 선택 이후 게임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캐릭터가 달라질뿐더러, 병과가 한 쪽에 치중되어 있어 전투에서의 전략도 변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1부 사관 학교 편은 의도적으로 행동력이라는 개념을 넣어둠으로써 고민하고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분실물을 찾아주거나 퀘스트를 해결하는 행위는 행동력이 소모되지 않지만, 캐릭터와 유대를 쌓을 수 있는 행위들은 행동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 각 반은 시나리오도 병과 구성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즉,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육성, 다른 반 캐릭터의 영입, 식사와 티타임 등 유대를 쌓는 과정 전부가 선택의 영역이 된다. 게임 내에서 행동할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고 횟수가 늘어나더라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의 기회만이 주어진다. 제한된 기회 속에서 어떤 것을 가져올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캐릭터와 행동을 포기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노멀 난이도에서는 반복 플레이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하드 난이도에서 그마저도 제한된다. 선택이 갖는 가치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개발사인 인텔리전트는 이렇듯 선택 과정에서 고민하고 제한을 둠으로써 캐릭터에게 애착을 둘 수 있도록 의도해뒀다.

전투 난이도가 이전 시리즈보다 낮은 편이므로, 시간을 들여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애정'이라는 시리즈의 근본을 재해석한 느낌에 가깝다. 상실의 두려움이 아니라, 마주하는 즐거움으로 시리즈의 근본을 바라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 캐릭터에 대한 '애정' 그것이 파엠의 근본이 아닐까?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아쉬움은 2부에서 비극이 된다.

반복 플레이를 하지 않고 진행한다는 가정하에, 1회차에 모든 캐릭터를 영입하는 것은 어렵게 구성되어 있다. 행동력은 제한되어 있고 반드시 선택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1부가 12달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두었기에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기에 십상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면, 아쉬움은 곧 시나리오 상에서 극적인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파엠 시리즈의 전통인 '영구적 사망'이 가져오는 상실감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다. 1부에서 얹지 못한 캐릭터들. 혹은 얻을 수 없도록 설계된 캐릭터들은 2부 전쟁 편에서 비극의 요소로 자리한다.



▲ 2부 전쟁편은 피비린내가 자욱한 시나리오.

시간이 모자라, 행동력이 모자라 플레이어 진영에 오지 못한 캐릭터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적들로 변한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플레이어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 개발진의 악독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과거 학생이었던 캐릭터들은 5년 만의 재회를 반가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싸운다는 인상으로 적이 된다.

결국, 전투의 끝에서 이들은 여지없는 사망을 맞이한다. 동시에 플레이어가 가지 못한 선택지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남게 된다. 아쉬움이 남았다면. 스카우트하기 위해서 작업을 하다가 시간이 모자라 2부로 돌입했다면, 이 모든 것들은 큰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풍화설월의 2부는 작은 비극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조성한다. 시나리오가 진행될 때마다 익숙했던 얼굴이 자리하고 하나하나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죽여나가는 비극들이 오묘한 감정을 유발한다.



▲ 얻지 못한 애정 캐릭터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비극.



▲ 적에서 아군으로 넘어오는 상황도 마련해뒀다.


자유로운 육성. 대신 반복은 아쉽다
전작보다 쉬워진 편. 관계를 즐겨라

캐릭터의 육성은 시리즈 중에서도 자유로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리즈 전통의 무기 상성이 사라지고 이를 스킬 (전투 기술)로 교체했다. 게다가 무기까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해뒀으므로 상성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셈. 플레이어 스스로 방향성을 잡고 육성하고 전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드 클래식이 아니라면 큰 난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없기에 느긋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각성에서 선보였던 턴을 무를 수 있는 시스템도 넣어둬, 실수 한 번으로 전투를 리셋하는 사례를 막았다. 전반적으로 편리해졌고 유저 친화적으로 개선됐다.

시리즈 전통적인 상성을 없앴다는 점에서 기존 팬이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스위치 첫 타이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입문작으로서는 충분한 구성이다.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란 어떤 것이며,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를 전하는 데 무리는 없다.



▲ 턴을 돌릴 수 있으니 한층 더 쉬워진 편.

다만, 전반적인 시스템 구성을 이해하는 데는 몇 가지 연구가 필요하다. 최상위 직업 대부분이 탑승 기술 요구하는 상태라 게임 중후반부에 부랴부랴 탑승 기술을 육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딱히 최상위 직업으로 옮겨가지 않아도 무리는 없지만, 목표를 갑작스레 수정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

1부 내내 선생님의 포지션을 유지하므로 오히려 제자인 캐릭터들보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육성 방향이 고정되는 모습도 보인다. 능력치 상승폭이 좋아 성능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스토리 상 강제 전직까지 진행되어 '이렇게 키워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캐릭터들의 방향을 자유로이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비교되는 부분이다.



▲ 심지어 학생들은 알아서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시스템 상으로는 플레이어의 캐릭터도 스킬을 육성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하지만 행동력이 발목을 잡는다. 1부의 흐름이 캐릭터와 관계를 맺는 데 중점을 두기에 캐릭터와의 관계를 쌓는 과정에 투자하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인텔리전트는 관계가 한 번 맺어진 상태인 2부부터 변화를 가한다. 학생들이 선생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스템을 마련해두는 것으로 1부에서 육성하지 못한 플레이어 캐릭터를 강화시키는 선택을 거쳤다.

1부의 플레이 타임 대부분을 차지했던 산책 등의 콘텐츠가 2부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점은 아쉬우나, 1부의 마지막에 어느 정도 플레이어의 선택이 결과를 만들어 내기에 할 일은 줄어드는 편이다. 1부가 캐릭터들을 영입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2부는 영입한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무게감이 실려있다.

전작보다 확실히 쉬워졌고 편해졌으니, 느긋하게 관계를 쌓으며 즐기라는 의도로 파악된다. 난이도가 그나마 높은 편인 하드만 아니면(하드도 전작보다 쉬운 편이다) 흐름에 맡기는 플레이를 해도 무방한 수준에서 육성과 전투가 마감된다.



▲ 2부도 1부랑 같은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최소 3회차 플레이 필수
떡밥은 많은데 하나로 회수가 안 된다.

'세 개의 나라, 세 개의 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풍화설월의 시나리오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문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출시 이전부터 시나리오가 세 개로 나뉘어 있음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덕분에 풍화설월은 긴 시간을 들인 플레이가 강제된다.

플레이어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강조하는 방침은 시나리오에도 적용됐다. 1부 초반 어떤 반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2부의 이야기가 크게 변화한다. 2부의 시나리오는 군상극 전반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반의 시선으로만 진행된다. 주요 인물들인 에델가르트, 드미트리, 클로드 3인의 시선으로 전쟁을 해석하고 바라본다.

따라서 2부는 어떤 반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흘러간다. 같은 시간대에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각 루트가 다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때로는 갈등이 빚어지는 근거가 달라지기도 하며, 아예 갈등에서 완전히 벗어난 루트까지 마련해 뒀다.



▲ 흑수리반 2개 루트, 금사슴과 청사자가 루트 1개씩 총 4개 루트다.

서로 다른 이야기로 진행되는 총 4개의 시나리오를 전부 플레이해야만 전반적인 갈등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더불어 캐릭터 호감도(지원 회화)로 개방되는 외전까지 마쳐야 '왜 이게 이렇게 됐지?'라는 의문에 답을 내릴 수 있을 정도다. 던져진 떡밥을 해결하고 싶다면, 모든 루트를 플레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풍화설월의 시나리오 루트는 흑수리반을 포함해 총 4개. 그나마 조금 짧은 흑수리반을 기준으로 느긋하게 마무리하는 데 40시간 정도가 걸렸으니, 최소한 100시간 이상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는 셈이다. 게다가 모든 루트를 플레이해도 해결되지 않는 떡밥도 있어, 연말에 제공될 DLC를 기대하게 만든다.



▲ 흑수리 반 제국 루트는 DLC를 예고한 수준.


요즘 옷을 입은 근본 있는 SRPG
파엠 붐은 왔다...!

타일에서 전투를 진행하는 SRPG 장르의 시초격 시리즈, '파이어 엠블렘'은 이번 풍화설월에 이르러 국내에서도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그간 국내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았던 아쉬움은 if 부터 진행된 한국어화, 스위치라는 새 기기를 맞이하여 완전히 개화했다.

장르 측면에서도 준수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다, 더빙과 사운드 변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르의 황금기가 한참 전에 지나간 상황에서 개발진이 어떤 것을 변화시키고 유지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좋고. 파고들 거리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시리즈는 각성 이후 매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으며 변화하고 발전을 거듭했다. 닌텐도 스위치라는 기기로 처음 출시되는 시리즈의 최신작 '풍화설월'은 각성이 그러했듯이 새로운 방향성을 받아들이고 다음 변화의 기준을 제시할 타이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RPG 장르의 팬이라면. 닌텐도 스위치가 있다면. 파이어 엠블렘이라는 시리즈에 입문하고 싶다면. 이번 풍화설월이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풍화설월이 담아낸 매력적인 캐릭터들, 시스템적 완성도는 당신을 타임머신으로 인도할 것이 분명하다.



▲ 파엠 붐은 온...다! 아니,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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