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눈이 아닌 마음을 믿어라, 리듬 닥터의 처방전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4개 |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깊이를 담아낸 리듬 게임


"어떻게 오셨습니까?"

음치, 박치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 음표들이 점차 콩나물대가리처럼 보이기 시작한 그는 병원을 찾았다. 코로나로 우울한 시기, 울적함을 달래보려 옛날에 잠깐 손댔다가 그만 둔 피아노를 쳐보려고 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쉬운대로 한창 때 잠깐씩 깔짝거리던 리듬 게임으로 속을 달래보려 하지만, 쏟아지는 채보에 움찔거리는 손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한탄하면서 그는 이렇게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치료 과정을 받거나 지켜보고 있었다-

리듬 게임은 모르면 맞아야지라는 문구로 대변되는 격투 게임과 더불어 유저 간 편차도 크고,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다. 언감생심 시도조차 못하는 유저도 많고, 고인물의 플레이에 감탄만 하다가 결국 기억 속에서 흐지부지되는 일이 많다. 가끔 그 장벽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찾아온 사람이나, 잠시 떠났다 추억을 찾아서 돌아온 연어 정도가 눈에 띈다. 혹은 다른 무언가가 있을 때 소나기처럼 쏟아지다가 서서히 제 수위를 찾아간다. 그마저도 전통적인 명가에서 그렇고, 새로 개원한 곳에 찾아오고 소문이 나는 일은 최근 들어선 드물었다.

그랬어야 할 것 같지만, 리듬 닥터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단순히 리듬 게임을 즐기며 감을 찾기 위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편차는 있겠지만 약 6시간 정도만에 거진 끝나는 이 치료 과정은, 무언가를 남기기엔 충분했다.



게임명: 리듬닥터(Rhythm Doctor)
장르: 리듬 액션
출시일 : 2021. 2. 26.
개발 : 7th Beat Games
배급 : 인디노바
플랫폼: PC



약냄새가 아닌, 따뜻한 커피향 나는 테라피


악기, 음악을 배우는 과정은 때론 병원의 차가운 느낌이 든다. 특히나 박자, 이놈은 도저히 좋아지지 않는다. 메트로놈의 똑딱똑딱 차가운 소리는 듣기만 해도 가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초보 때는 누구나 다 빠른 곡을 치다보면 플로우와 흥에 휩쓸려서 후다다닥 빨리 치는 일이 많지 않던가. 그때마다 어김없이 걸려오는 브레이크 같은 존재다.

이 박자란 놈은 음악을 따로 배우지 않은 사람도, 학창시절에 딱히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는 놈이다. 4분의 4박자 똑-딱-똑-딱, 4분의 3박자 딱-딱-딱, 거기에 세기까지 더해보면 강약 중강약 강약약. 덩기덕 쿵더러러 쿵기덕 쿵더러러처럼 선생님들이 문제로 내기엔 딱 심플하고 좋은 소재들이다. 더 나아가서 장3 완4 이런 것까지 나아가자니 대부분이 피를 토하거나 부모님을 소환한다. 점점 가면 갈수록 '음악'이란 놈은 뭔가 거창한 것처럼 느껴져서 가까이 가자니 뭔가 낯설고 어색하다.



▲ ...그래서인지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노래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볍게 불러보지 않던가. 노래방에서 부르던가, 혹은 콧노래로 흥얼거리고는 한다. 가사는 몰라도 흥흥흥, 흐응흥흥, 이런 식으로 음과 공백을 완성해나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추억이 간혹 소환되고는 한다. 마치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그때 그 장면을 불러오는 것이랄까.

그래서일까, 리듬 닥터는 굉장히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소재들을 더했는데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막 인턴이 된 유저가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상의 소소한 느낌이 담겨있었다. 흔히들 심장이 빨라지거나 불규칙하게 뛰는 걸 상사병의 징조라고 하지 않던가. 질병이나 그런 비유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불안하다거나, 신날 때도 박동은 변한다.









▲ 실제로 커피를 막 던져대진 않겠지만, 바쁜 일상과 그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를 눈에 들어오게 담았다

이런 흐름을 리듬 닥터는 감성적으로 잘 캐치했다. 2D 픽셀, 레트로 그래픽으로 정갈하게 담아낸 화면과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처럼 맞아떨어지는 박자계까지. 흥얼거리면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느낌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커피 한 잔으로 일을 시작하고 중간중간 섭취해줘야 일이 되지 않던가. 그 사이사이 바쁘게 움직이며 한숨 돌리는 일과, 그런 노고도 모르고 투덜거리거나 압박을 주는 윗선부터 나를 의지하는 누군가까지.

백그라운드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등등으로 이런 스토리들을 풀어낸 리듬 게임은 적지 않다. 다만 다수가 채보와 노트에 가려져서, 그저 이건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따로 영상을 보고 나서야 "이런 의미가 있구나"하고 음미하게 된다. 하지만 리듬 닥터는 채보를 최소화하는 한편, 이를 이야기의 한 요소로 녹여내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래서 음에 익숙해지면서 그 이야기를 음미하고, 안에 숨어있는 따스함을 음미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작중에서 리듬 치료는 이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작중 리듬 치료는 제세동법에 가깝다. 심실상 빈맥이라던가 그런 낯선 의학 용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제세동하는 것을 음악과 박자를 맞춰가는 과정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렇지만 리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스쳐지나가기 쉬운 것들을 맥락에 맞춰서 재배치하면서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음악은 몰라도 그저 흥얼거리면서, 일상의 순간을 떠올리거나 혹은 그 무언가를 감상하는 그런 느낌.



▲ 심장 질환을 리듬 처치로 치료한다, 박자를 심장박동으로 표현한다는 아이디어에 일상을 녹였다



눈이 아닌, 느낌을 믿어라


이쯤되면 아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화면이 이지러지고, 현란하게 왔다갔다하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 모습을 보다보면 리듬 게임이란 역시 고인물 게임인가, 포기하게 만들 것만 같다.

사실 이런 구성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치료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되고 나면 기초만으론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냥 흥얼거리기만 하는 일은 처음에 몇 번으로 충분하고, 점차 고난도의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 게이머의 심정 아니던가. 쇠질을 몇 번 하다보면 빨리 고중량 치고 싶은 것처럼. 혹은 이야기보다는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이다.

리듬 닥터의 치료는 그 밸런스를 잘 잡아갔다.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잔잔히 풀어가는 곡 리스트 사이사이에 고난도 비트를 담아낸 곡들도 있고, 때로는 화면 구성을 마구잡이로 바꿔가면서 유저의 감각을 혼란시키는 식으로 도전과제를 심어뒀다. 그런 와중에도 박자의 중심이 되는 음들은 꼬박꼬박 잘 넣었다. 그 음을 캐치하고 따라가다보면 좋은 성적까지는 몰라도 클리어는 가능했다.



▲ ※ 당신의 컴퓨터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으니 안심하십시오



▲ 이 그림을 보고 채보를 유추 가능할까?



▲ 이젠 4의 벽도 넘나드는 환자들의 증상, 제세동과 리듬 치료는 참 힘든 일이다

이는 기본 곡들이 마치 치료프로그램처럼, 7박자 혹은 2박자, 4박자의 규칙 안에서만 움직이게끔 설계되었기 때문일지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예 곡이 안 들리도록 바이러스들이 이리저리 비틀어버리거나, 자기가 흥에 겨운 나머지 박자를 빠르게 짚어버리는 일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부터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보이는 것처럼 아예 손도 못 댈 정도로 난해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현혹되지 마소" 음은 들리는 것이지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눈으로 채보를 찾고자 하는 것보다, 귀로 들려오는 음에서 규칙성을 찾고자 이리저리 휘적거리고 그러면서 즐기는, 그런 게임이 리듬 닥터였다.








개발사의 전작이 얼음과 불의 춤이기도 한데다가, 화면이 마구잡이로 어지럽혀지는 가운데 박자를 어떻게든 캐치하며 클리어하는 모습들이 주로 영상으로 올라오지 않던가. 그런 기행 중간중간에 숨은 일상의 따스한 모습을 보고 흥미를 가지긴 하지만, 음악에 영 소질이 없어 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고 한두 번쯤은 흥얼거려본 적이 있다면, 그래도 더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리듬 닥터였다. 흥얼거림 그리고 심장박동이라는 우리 체내의 원초적인 음악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직 얼리액세스 단계이기 때문에 완벽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무엇보다도 재활치료를 넘어서 고강도 운동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란, 좀 애매한 구성이다. 리듬 게임 고수들은 단순히 채보가 어려운 곡만 명곡, 도전곡으로 꼽지 않는다. 그 채보와 곡이 맞아떨어져야 명곡으로 인정받고 화자가 된다. 많은 창작자들이 그 문턱을 못 넘었고, 심지어 리듬 게임 개발자들 일부도 초창기에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 않았던가.

7th Beat Games가 내놓은 음악들은 딱 자신들이 만들어둔 틀에 완벽히 맞지만, 그 틀에 맞춰서 유저가 폭을 넓혀가기엔 다소 경직된 구성이었다. 화면이 현란하게 어지럽혀지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니 마치 메트로놈처럼 기준이 되는 음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참고했다던 리듬 세상 시리즈는 박치더라도 화면에 힌트가 될만한 움직임들이 중간중간 있는데, 리듬 닥터는 나중엔 그런 힌트들을 없애고 기준이 될만한 비트를 곳곳에 넣는 식으로 변주했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곡들은 다르다. 즉 이를 활용해 유저들이 만들어가는 채보는 기존과 플레이하는 감각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 곡 퀄리티는 좋지만 전체적인 볼륨이 적은 편이고,



▲ 유저들이 올린 곡은 시스템과 다소 엇나가는 경우가 꽤 있는 편이다

즉 그 간극을 메워갈 요소를 더하거나, 혹은 이 엇갈림까지도 이용할 테크닉을 갖춘 유저 창작자가 나오지 않고서는 확장성이 조금 떨어진다. 물론 리듬 게임의 세계는 깊어서, 이렇게 기묘하고 어려운 도전을 오히려 반기는 유저도 있을 테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겠다.

16,500원이라는 가격으로 박치가 치료되진 않는다. 당장에 딥한 도전욕구를 충족시켜줄 무언가도 충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여운은 짙게 남는다. 치료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카운셀링에 가까운 느낌이다. 커피 한 잔하면서 차분히 풀어가는 그런 느낌. 일상을 풀어가는 사이사이에 감정의 격변이나, 어그러짐이 끼어들고, 때로는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맺어가는 것처럼.

맨 처음, 콩나물대가리로 보이기 시작했던 음표는 아직도 콩나물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그게 대수일까. 리듬을 흥얼거리면서 두드리는 그 원초적이고 쉬운 동작만으로, 감미로운 음을 즐기기엔 충분하다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아직 분량이 짧긴 하고 정식 단계도 아니지만, 음악과 함께 퍼지는 여운을 즐기는 리듬 닥터의 치료는 한 번쯤은 받아볼 만하다.



▲ 관심없이 방치해서 의자까지 사라져버린 피아노를 다시 한 번은 쳐다보게 만들었다


장점


+ 스토리와 음악의 조화
+ 잘짜인 비트로 플로우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구성
+ 기발한 설정과 그에 맞는 그래픽, UI로 뽑아낸 몰입감


단점


- 화면이 어지럽게 변하기 때문에 멀미 유발 가능성 있음
- 보고 패턴을 암기하는 플레이는 불가, 그래서 개인차가 큼
- 아직은 적은 볼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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