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데스 스트랜딩, 누구나 즐거울 '오락'은 아니다

리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65개 |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게임 업계의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메탈 기어 시리즈를 통해 잠입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고 여기에 영화 같은 연출과 스토리를 접목해 게이머들이 게임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물론 누구나 좋아한 개발자는 아닙니다. 사실 모두가 좋아하는 게임, 개발자가 있겠느냐마는 특히나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평가가 극명한 편입니다. 너무나도 영화 같은 연출과 스토리를 사랑하기에 일각에선 그의 게임에 대해 게임을 하는 건지 게임 같은 영화를 보는 건지 헷갈린다는 불만도 늘 따라다녔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부의 불만에도 그가 만든 게임은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유일하게 평가가 박한 '메탈 기어 솔리드5 그라운드 제로즈'도 분량이 프롤로그 수준이었다는 게 문제였지 연출이나 스토리, 시스템 등은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가 코나미를 떠나 회사를 설립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걱정보다 어떤 게임을 개발할지 기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몇몇 유명 개발자가 회사를 떠나 만든 신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가 적긴 했지만, 코지마 프로덕션은 과거 코나미에서 한 팀으로 일하던 개발자 상당수가 이직했기에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있으리란 여긴 거였죠.




그렇게 코나미를 떠난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신작으로 '데스 스트랜딩'을 들고 왔습니다. 솔직히 처음 공개한 트레일러는 난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노먼 리더스가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밝혀진 내용이 전무했죠. 이후 공개되는 정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픈월드 액션 게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도무지 어떤 게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러던 중 마침내 '데스 스트랜딩'을 해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궁금했고 정말 기대했던 게임이었기에 요 며칠 간 쉬지 않고 했습니다. 다른 게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이죠. 그렇게 약 30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아마, 이쯤 되면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겁니다. 도대체 어떤 게임인지 말이죠.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신작 '데스 스트랜딩'
누구에게나 '최고의 게임'은 아니다

누군가가 제게 '데스 스트랜딩'의 평을 묻는다면 전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게임'은 아니라고 할 것 같습니다.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 이런 기준을 내리기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호라이즌 제로던'으로 입증한 데시마 엔진의 성능을 한껏 끌어 올린 게임으로 퀄리티는 여느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게임적 허용이 아닌, 정말 사실적인 퀄리티를 보여주죠. 연출과 스토리 역시 훌륭합니다. 이미 이 방면에는 정평이 난 코지마 히데오 감독다워요.

그런데 게임을 직접 하면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과거 공개된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농담삼아서 주인공 샘에 대해 쿠팡맨이라고 부르고 택배 배송 게임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때는 웃어넘긴 것도 사실입니다. 정말 저렇겠어? 싶었죠. 근데 정말 저래요.



▲ 설마 배달이 메인이겠어? 했는데 메인입니다

'데스 스트랜딩'의 전체 플레이 타임은 약 30시간 정도 됩니다. 근데 20시간 이상은 물품을 배달하는데 투자합니다. A에서 B로, B에서 C로 간 후 다시 C에서 A로 오는 식이죠.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하염없이 걸어야 합니다. 20분이나 걸려서 설산을 넘은 적도 있을 정도죠.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어요. 이동이 박진감 넘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근데 문제는 전투마저도 비슷하단 겁니다. 사실 이동이 지루해도 전투는 뭔가 다를 줄 알았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여러모로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유종의 미를 거둔 '메탈 기어 솔리드5 팬텀 페인'과 느낌이 유사했거든요. 임무(미션)를 선택하고 오픈필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목적지까지 간다는 방법이 말이죠. 그래서 전투가 진행되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근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투 역시 단조롭습니다. 상당히 정적이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게임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죠. '데스 스트랜딩'의 전투는 부차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마음만 먹으면 이벤트를 제외하면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엔딩을 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스타 개발자들이 퇴사 후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거장도 어쩔 수 없던 걸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었죠. 코지마 프로덕션은 과거 코나미에서 코지마 히데오 감독과 손발을 맞춘 개발자들이 상당수 이직했기에 개발력이 부족하다곤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냉정히 생각해보니 이조차도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노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긴 여정을 그린 게임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과정이 즐겁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게임의 주제는 희석되고 전투가 주목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전투를 매력적이지 않게 자제했습니다. 재미있게 못 만든 게 아닌 안 만든 거죠.



▲ 오락으로서의 재미를 배제함으로써 게임은 게이머에게 고독감을 선사합니다

제가 '데스 스트랜딩'이 누구에게나 최고의 게임이 아닐 거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체 게임의 재미를 100이라고 했을 때, 가장 좋은 건 역시 그래픽, 연출과 스토리, 액션이 균등하게 나뉜 게임일 겁니다. 이렇게 하면 대중적으로 누구에게나 먹힐 게임이 될 테니까요. 실제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상당수의 게임들을 보면 대부분 딱히 모난 데 없다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데스 스트랜딩'은 이 비율을 극단적으로 나눴습니다. 그래픽, 연출과 스토리에 각각 45씩 투자한 반면, 전투를 비롯한 액션에는 10밖에 투자하지 않은 셈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액션 게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터렉티브 드라마에 가까운 모습이죠.



▲ 연출과 스토리를 보노라면 게이머를 어떻게 주물러야 하는지 도가 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묘한 느낌이 든 때가 이쯤입니다. 이런 스토리텔링 방식은 게이머들에게도 익숙합니다. 퀀틱 드림의 게임들처럼 인터렉티브 드라마 장르에 한 획을 그은 게임들도 있으니까요. 다만, '데스 스트랜딩'은 액션 게임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액션 게임인 이상 게이머들이 원하는 목표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의 액션은 보여줘야 한다고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볼 때 다소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연출과 스토리는 뛰어난데 여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액션이라는 요소를 등한시한 것 같았거든요. 큰 울림을 줄 게임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으나 누구나 좋아할 게임은 아니라고 한 이유입니다.


개발자, 그리고 감독 코지마 히데오
그에게 게임은 오락이 아닌 미디어다




그렇다면 '데스 스트랜딩'은 왜 이렇게까지 이런 형태의 게임이 됐을까요? 단순히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개발 역량의 차이는 아닐거라고 봅니다. 여전히 그의 행보에 업계가 관심을 기울일 정도고 코지마 프로덕션은 코나미에서 손발을 맞춘 개발자 상당수가 이직했으니까요. 즉, 이조차도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의도한 결과물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일부러 액션을 최대한 배제하는 지금의 모습이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형태가 된 데는 게임이라는 소재를 오락이 아닌 영상 미디어의 하나로 활용하고자 하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노림수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게임은 오락의 성격을 띱니다. 울림 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하는 그 순간에 즐거움을 주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런 오락의 성격을 띤 게임들 대부분은 연출이나 스토리보다 그래픽, 액션에 집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게임, 오락을 즐기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죠.



▲ 게임의 대부분은 화물을 납품하고



▲ 수고했다고 덕담 한마디 듣고 다음 장소로 가라고 하는 것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인터렉티브 드라마 장르처럼 미디어의 형태를 띠는 게임들은 다릅니다. 액션이라고 하는 게이머가 직접 개입하고 조작하는 요소가 아닌 연출과 스토리에 집중하는 면이 큽니다. 그리고 이는 '데스 스트랜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연출과 스토리에 집중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 플레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샘이 물건을 배달하고 끊겼던 사람 간의 관계를 잇는 과정조차도 이런 스토리를 설명하기 위한 요소에 불과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놓고 보면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의도한 바를 대략적으로나마 유출할 수 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을 오락이 아닌 미디어로 활용한 거죠. 게임 같은 영화를 만든 겁니다.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놀랄 것도 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예전부터 영화광으로 유명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데스 스트랜딩'은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가진 완벽주의, 비타협의 결과물이랄 수 있습니다. 과거 여러 매체를 통해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완벽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개발자들도 질려 할 정도였죠. 좀 더 액션이 화려한 게임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건을 배달하고 사람 간의 관계를 잇는 여정에 나서면서도 말이죠. 하지만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샘의 여정은 고되고 담백할 뿐입니다. 액션이 화려했다면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해줄 수 없기 때문이죠.



▲ 게임은 철저하게 혼자여서 어렵고 삭막하게 느껴지도록 디자인됐습니다

그는 '데스 스트랜딩'을 통해 게이머들에게 단절과 연결이 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혼자가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아마 대부분은 고독을 느낄 겁니다. 고독은 삭막하죠. 목소리를 내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액션을 최소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만약 오락으로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단절된 세상을 표현한 '데스 스트랜딩'의 세계가 전혀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겁니다. 어찌 보면 전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이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닐 겁니다.

이처럼 '데스 스트랜딩'은 철저히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의도대로 디자인된 게임입니다. 액션을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게이머에게 단절이 주는 삭막함을 안겨주고 이후 연출과 스토리에 그가 가진 영화광,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총동원한 거죠.


황량한 세상,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데스 스트랜딩'이 말하고자 하는 연결이란?




앞서 저는 '데스 스트랜딩'에 대해 오락으로서의 성격보다 미디어의 성격이 강한 게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터렉티브 드라마에 가깝다고 말이죠. 하지만 역시라고 해야 할까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게임으로서의 요소도 결코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미디어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그건 바로 개입할 수 있는가입니다. 만화나 소설, 영상 콘텐츠에는 독자와 시청자가 개입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보의 일방통행만이 가능하죠. 하지만 게임은 다릅니다. 게이머의 개입을 최소화한 인터렉티브 드라마조차도 게이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데스 스트랜딩'은 이러한 개입을 통해 단절과 연결의 의미를 게이머에게 전달합니다. 그것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말이죠. 사실 게임에서 연결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대표적으론 멀티플레이를 들 수 있죠. 많은 게이머들이 멀티플레이를 통해 함께 게임을 즐깁니다.

하지만 이건 코지마 히데오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연결과는 다릅니다. 이건 연결이 아닌 교류이기 때문이죠. '데스 스트랜딩'에서의 연결은 아슬아슬합니다. 온라인에 접속해도 다른 게이머와 만나는 건 불가능하죠.



▲ 맵에서 녹색 아이콘은 전부 다른 게이머가 설치한 장비 및 시설입니다

대신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이 연결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게임 내에서 각 지역을 연결하면 단순히 연결됐다고 뜨고 끝나는 게 아닌 다른 게이머가 설치한 각종 장비와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말이죠. 게임 내의 연결이 곧 게이머들 간의 연결을 나타낸 셈입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어차피 이래 봤자 혼자서 한다는 건 변함없는 거 아닌가 싶었죠. 근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연결이란 게 느껴집니다. 산을 타고 계곡을 넘는 와중 다른 게이머가 설치한 장비와 시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습니다. 미디어의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게임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게이머에게 '데스 스트랜딩'의 핵심인 연결을 가장 그럴듯하게 전달한 거죠.



▲ 34,478개의 좋아요를 받은 다리. 모두 좋아요 한 번씩 해줍시다


완벽주의, 비타협, 그리고 도전
게이머들의 선택은?

자, 이제 복잡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결론을 내릴 시간입니다. 그래서 살만한 게임인가 아닌가 말이죠. 전 이미 서두에서 '데스 스트랜딩'이 누구에게나 최고의 게임은 아닐 거라고 한 바 있습니다. 오락으로서의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라면 안 맞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액션, 스릴, 쾌감을 게임에서 느끼길 원하는 이들에게 코지마는 사이다나 김치 없이 먹는 고구마만큼이나 답답함을 선사합니다. 끈기와 인내 속에 어떤 의미를 깨닫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코지마 히데오 감독 특유의 테이스트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궁금증을 계속 유발하면서 게이머를 마음을 손에 쥐고 흔드는 코지마의 실력은 여전합니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말이죠.

완벽주의, 비타협, 그리고 도전.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개발자 인생, 그리고 감독 인생 제2막을 알린 '데스 스트랜딩'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또 없을 겁니다. 게임을 해보면 모든 것들이 그가 의도한 데로 설계됐다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이게 무조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취향이 맞는 게이머에게는 최고의 게임이 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게이머에게는 거장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그저 그런 게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데스 스트랜딩'은 오는 8일 정식으로 출시됩니다. 과연 그의 도전은 어떤 결과를 보여줄까요? 적어도 한 편의 영화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올해 최고의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