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이걸 4만 원 넘게 주고 샀다니...

리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62개 |




"좋은 영화는 멋진 장면 3개에 나쁜 장면만 없으면 됩니다"

미국 영화계의 거장 하워드 혹스(Howard Hawks) 감독이 말한 '명작의 기준'입니다. 굳이 영화 쪽 아닌 다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도 충분히 대입해볼 만 한 문구죠. 게임도 비슷합니다. 별다른 단점 없고, 끝내주는 거 몇 개만 있어도 충분히 남들에게 추천할 만하거든요.

왜 이런 얘기 하냐고요. 제가 엊그제 산 '시리어스 샘4'를 설명하는 데 이만한 문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딱 맞진 않고, 반 정도만 맞아요. 장점이 한 3개 정도 있긴 한데... 그거 빼고 다 단점입니다. 장점 다 씹어먹을 만큼.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모처럼 풀 프라이스로 게임 사서 해보는데 생각보다 너무 구려서 화가 나 쓰는 글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광활한 전장, 끝없이 몰려오는 몬스터, 개성 강한 무기들과 넉넉한 탄약까지. 남성 호르몬을 뿜어내기에 이만한 게임 또 없거든요. 특히, 자체 엔진을 기반으로 한 적들의 폭포 같은 물량은 가히 독보적인 수준으로, 바로 이 덕분에 시리어스 샘은 클래식 FPS의 제왕인 '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시리어스 샘4'을 바라보는 팬들의 기대도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요.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찬 사나이의 총싸움,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더! 더!! 더!!! 화끈한 총싸움.

일단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시리어스 샘만의 불문율은 무사히 지켜냈거든요. '아, 몬스터 많이 나오겠네' 싶은 곳은 여지없는 물량을 보여주며, 원작의 향수를 자극하는 거대 보스들도 제법 쏴 줄 맛 나게 생겼습니다.

각 총기의 타격감은 물론, 전투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BGM도 나무랄 데 없습니다. 안 그래도 배경 음악 좋기로 유명한 시리즈였는데, 이번 작품은 가히 그 정점에 있다고 봐도 됩니다. 사운드 트랙만 떼어다 별도의 앨범으로 내놔도 괜찮은 수준이에요.

그런데...

슬프게도 '시리어스 샘4'의 매력은 여기서 끝입니다.






총 쏘는 게임이 타격감 좋고, 박력 넘치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제게 물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동의합니다. 총 쏘는 게임이 그 정도면 충분하죠. 한데, 지금 언급한 장점들 모두가 전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후속작이라면... 특히 그 후속작이 정식 넘버링 시리즈라면 전작을 상회하는 무언가를 반드시 보여줘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닌텐도나 락스타 게임즈처럼 남들이 생각도 안 해본 참신한 시스템을 기대한 게 아니에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하는 기술과 변화하는 트렌드를 '시리어스 샘'이란 프랜차이즈가 어떻게 흡수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시리어스 샘4'은 말 그대로 전작과 똑같아요. 전작의 장점은 그대로이긴 하나, 그 이상의 감동을 보여주는 요소는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래픽은 전작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나 현세대 기준으로 결코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적화 덜 되어 뜬금없는 프레임 드랍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죠. 외형에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하위권이에요. 시리어스 샘: 퍼스트 인카운터나 세컨드 인카운터가 당시 기준으로도 뛰어난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준 걸 기억하는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게임 플레이는 전작들에서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세컨드 인카운터만 봐도 챕터 당 인상적인 디자인의 전장이 최소한 한 곳은 꼭 등장했던 반면, '시리어스 샘4'의 전장은 화려한 연출과 정교한 레벨 디자인에 길들여진 현세대 게이머들을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쓸데없이 꼬인 동선은 아무 의미 없는 이동으로 헛시간을 잡아먹게 만들고, 덕분에 기껏 신나게 싸워가며 쌓아 올린 흥분감이 그보다 더 긴 현자타임 속에서 연소되는 악재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현실적인 그래픽을 채용하며 예상치 못한 문제도 터졌어요. 몬스터와 배경 구분이 잘 안 됩니다. 3편도 이랬는데, 4편은 더 심각합니다. 몬스터마다 특유의 소리를 내니 망정이지 이마저 없었다면, 내가 한 대 맞기 전까지는 적이 어디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을 겁니다.

시리어스 샘 시리즈 팬들은 보통 1편의 퍼스트 인카운터와 세컨드 인카운터를 최고로 꼽습니다. 2편은 되도 않는 개그 분위기로 떡칠 되어 흑역사 취급을 받았고 3편은 전작보단 낫지만 퍼스트, 세컨드 인카운터보단 아래로 평가받고 있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폐허가 주 배경인 초반부가 매우 지루하고, 총기와 탄약이 어느 정도 확보된 중반 이후부터 할 만하다는 점이 주요 문제점으로 꼽혔습니다.

화끈한 물량전이 특징인 게임이니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문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절대 풀 수 없는 숙제인 건 아니죠. 총기 종류가 적더라도 탄약을 넉넉하게 제공하고, 그에 맞는 리듬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적재적소에 배치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만... 아쉽게도 3편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이 문제가 4편에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이탈리아 배경의 극 초반부는 탄약이 너무 부족해 한발 한발 세어가며 쏴야 합니다. 결국 탄약 무제한인 기본무기 권총으로 깨작깨작 몬스터를 잡는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시리어스 샘4'를 산 유저들이 설마 이런 꼴을 기대했을까요. 다행히 게임 중반부인 프랑스 무대부터는 큰 문제 없습니다만, 전작에서 지목된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되었다는 것은 개발사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거나 둘 중 하나가 원인입니다.

3편부터 대화나 컷 신이 큰 폭으로 늘어나긴 했습니다만, 이번 작품의 네러티브나 연출도 구색 맞추기 그 이상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은근히 배경 설정이 잘 짜인 작품이긴 하나, 그래봤자 설정일 뿐... 시리어스 샘의 근본은 대화가 뭐 어떻게 흘러가든 다 쏘고 다 죽이는 샘의 모습 그 자체에 있습니다.

여기에 현세대 싱글플레이 FPS 게임의 트렌드를 입히려는 의지는 보입니다만, 이게 플러스알파 요인이 되려면 최소한의 몰입도는 갖춰야만 합니다. 어설픈 인물 모델링, 말장난에 가까운 대사, 동료가 죽었으니 나는 화가 나고 너한테 복수한다, 이런 1차원적인 시나리오는 오히려 '나 구식 게임이요'라고 광고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샘이 단세포니까 이거 조작하는 플레이어도 단순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에요.






자본력과 기술력 차이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클래식 FPS 기반에 현세대 유저들을 공략했다는 점에서 '둠'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둠은 시리어스 샘 시리즈처럼 폭발적인 물량을 보여주는 게임은 아닙니다만, 특유의 묵직한 분위기와 박력 있는 액션으로 FPS 마니아들에게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입니다. 원작의 분위기와 속도감을 유지한 채 박력 넘치는 근접 연출을 가미한 '둠 리부트', 다채로운 배경과 정교한 전투 시스템을 끼얹은 '둠 이터널'은 현세대 게이머들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네러티브적 연출이 아닌, 오직 전투와 관련된 연출로 캐릭터에게 일관된 생명력을 불어넣은 점도 칭찬할 요소였고요.

'시리어스 샘4'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발사인 크로팀부터 원작에 대한 리스펙트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 아무런 고민 없이 무대포 정신으로 물량전만 강조한 FPS 하나가 등장했습니다.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 백종원 대표 프로그램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그가 골목을 돌면서 점주들에게 항상 말하는 게 '정성'과 '의지'예요. 지금 자신의 요리에 뭐가 문제인지, 좀 더 맛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기 위해 어떤 걸 바꿔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죠. 이게 요식업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죠.

3편에서 뺐던 탈것들 다시 좀 넣고, 그래픽도 좀 더 사실적으로 만들고... 어, 요즘 FPS 게임들 보니 스토리도 잘 만드네? 우리도 컷 신 좀 넣자.

과연 이 정도의 고민으로 9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온 팬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 영상의 마지막 10초입니다. 이때만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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