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0년 전 중단된 드라마 필름에 담긴 진실, '루트필름'

리뷰 | 양영석 기자 | 댓글: 7개 |


⊙개발사: 카도카와 게임즈 ⊙장르: 텍스트 어드벤처 ⊙플랫폼: PS4, NS ⊙출시:8월 6일(PS4)


미스터리한 추리물은 근대부터 현대까지 아주 인기 있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므로 주인공이 흑막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착각이 있는 추리물은 소설부터 만화와 드라마, 영화에 게임까지 수많은 미디어로 등장했으며 높은 인기와 탄탄한 팬층을 가진 장르다.

이러한 추리물은 대부분 살인사건을 다루게 된다. 그만큼 소재가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강한 자극을 받는 건 처음은 신선하지만 점차 신선함이 줄고 지루해진다. 결국 작품은 독자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큰 변화와 새로운 자극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억지 플롯과 트릭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지지부진 늘어진 추리 시리즈는 결국 끝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추리'나 '미스터리'가 포함된 소재는, 소설이나 게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일단 한 편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고, 후일담이 있을지언정 결말이 확실하니까. '루트필름'도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플레이를 한 편이다. 깔끔하게 끝나는 단 하나의 엔딩만 있다는 사실은 여러번 플레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을 주었고, 컨셉 자체도 마음에 들었다.

'루트필름'은 10년 전 촬영이 중단된 드라마가 부활하면서, 주인공이자 영화감독인 MAX '야구모 린타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야구모가 이를 해결해나가고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그린다. 게임의 이름처럼 주인공이 영화 감독이고, 이를 컨셉으로 한 여러 가지 조작이나 인터페이스를 보여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스토리 중심,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은 당연히 스토리의 완성도와 함께 플레이어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 연출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루트필름은 아주 좋은 작품이다. 옴니버스식으로, 매 챕터로 구성된 스토리는 마치 드라마의 1화, 2화를 보는 형태로 나뉘어있다. 재미있는 건,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엔딩 스탭롤이 나온다는 점이랄까. 그래서 부담 없이, 한 화의 드라마를 보는 같은 연출이 되어있다.

매 화 스토리의 소재는 미스터리와 추리물의 정석과도 같다. 주인공이 가는 곳에는 항상 사건이 따르고, 이러한 사건을 주인공인 야구모와 리호가 풀어간다. 물론 형사가 옆에 있는데도 당당하게 추리를 밝히고 범인을 추궁하는 과정 자체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게임이고 픽션이니 허용해 주자. 옆에서 침 한방 쏴서 형사를 잠들게 하고 형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이다. 이래저래 사건 현장을 다시 보게 되는 것도, 주인공의 직업과 관계가 있느니 그나마 납득할만하다.

아무튼 계속해서 많은 인물을 만나고, 이 과정이 계속 영상으로 담기는 설정 속에서 조금씩 실마리를 잡아나가는 과정은 즐겁다. 주인공 가족이 갖고 있는 특수한 능력인 '공감각'이 발동하여 '키워드'를 수집하게 되고, 이렇게 조금씩 용의자와 범인을 추려나가면서 마지막에는 MAX 모드를 지나 진실이 드러난다.

상대방을 추궁하고 진실을 밝히는 MAX 모드는 꽤 재미있고, 생각이 필요하다. 공감각을 통해 수집한 키워드는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힘을 발휘한다. 때로는 공감각 키워드를 잘못 제시해서, 역으로 주인공이 궁지에 몰린다. 물론 바로 실패하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기회가 있다. 제대로 된 키워드를 제공해서 범인이 반박하는 추리와 상황을 논리적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형식. 물론 제대로 밀어붙이지 못하고 실패해도 오토 세이브를 통해 바로 다시 추궁할 수 있으니 부담은 없다. 트로피를 모으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화와 관찰, 촬영 영상을 통해 '공감각 워드'를 수집해나가게 된다.



수집한 공감각 워드를 바탕으로 상대를 추궁하는 MAX 모드.

루트필름은 이러한 과정으로 야구모와 리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촬영지의 로케이션 헌팅부터 린타로 일행은 살인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다른 시점의 여배우 '리호'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지면서 보는이를 매료시킨다. 심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가벼운 환기와 개그요소들도 적당히 첨가하여 완급 조절이 잘 되어있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스토리는 점차 자신의 주변에 발생한 살인 사건과 10년 전 프로젝트로 야구모를 이끈다. 또 다른 주인공인 '리호'는 매니저 마나베 쇼코와 함께 미스터리한 사건을 겪게 되고, 이를 해결하는 여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연결되는 과정과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매력적이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어째서 이렇게 스토리에 자신감이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감탄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법'이다.

당연히 이러한 미스터리 추리물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보는 이는 스스로 범인을 추리하게 되고 점점 앞을 예상하며 감상한다. 정확히는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양상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트릭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참을 수 없는 따분함이 몰려오는 장르이기도 하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어설픈 연애 요소들이 추가되는 순간 극도의 혐오감을 참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루트필름은 프로모션 단계부터 일부러, 플레이어들을 '의도적'으로 혼란시킨 치밀함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프로모션에서도 미리 스토리를 짐작하게 하고, 인물들을 조명하고 대화와 관찰을 통해서 플레이어를 의도적으로 의심하게 만들고, 반대로 의심을 풀기도 하며 등장 인물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게 만든다. 때때로 주목하게 될 인물과 사건이 달라지고, 의도적으로 인물을 숨기는 장치와 사건도 있다.

계속해서 혼란시키고, 혼동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혼란과 혼동은 사건이 정리되기까지 느끼기 힘들고,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서 조금씩 풀려나간다. 프로모션 단계부터, 기획과 연출로 치밀하게 짜여진 플롯이다. 어설픈 연애 요소따위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될 기미조차 없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오로지 잘 짜여진 스토리로, 묵직한 직구를 던지는 게임이다.

그래서 결국 최종장에 이르러서야 진상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내 이럴 줄 알았다"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시점이, 엔딩과 상당히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흥미롭게 풀어냈고, 성우들의 열연과 미려한 아트가 이를 보조한다. 물론 이런 미스터리에 이골이 난 게이머들은 더 빠르게 눈치챌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따분하다'라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와 내러티브, 그리고 기승전결이 잘 짜인 스토리는 확실히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게임을 즐기는 이유와 목적을 선별하고자 할 때, 잘 짜인 스토리는 텍스트 어드벤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루트필름'은 플레이어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수작'으로 꼽기 아쉽지 않다. 그러니 플레이를 계획중인 유저라면, 실황 영상과 스포일러를 조심하기 바란다. 특히나 추리물의 경우는 해답을 알고 있는 순간 플레이하고 스스로 진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크게 반감된다.



간간히 등장하는 CG는 시나리오를 보조하는 좋은 연출이긴 했다.

게임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져 '더 좋은 경험'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몇 가지 보인다. 게임의 스토리를 해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살짝 거슬리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우선 첫 번째는 아트다. 물론 루트필름의 아트는 훌륭하다. 비록 아트가 Live 2D 등의 기술을 동원한 생동감은 없지만, 최소한의 연출을 통해서 박진감과 생동감을 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속에서도 대부분의 인물들의 표정의 변화가 풍부하고 다채롭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MAX 모드에서도, 인물에 따라서 밝혀내야 할 진실과 추궁하는 입장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법한 상황도 있는데, 이러한 질문과 성우의 멋진 연기가 다소 아트와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기도 한다. 차라리 조금 더 인물들의 표정 변화를 신경썼다면, 훨씬 더 멋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훌륭한 연기력을 보인 성우들의 '풀 더빙'은 확실한 강점이자 매력이다. 일본어를 몰라서 텍스트에 의존하더라도, 성우들의 연기가 확실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하지만 느긋하게 플레이를 한다 해도, 15시간 내외면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읽는 속도가 빠르고, 풀 더빙을 다 듣지 않고 핵심에서 끊는 형태로 플레이한다면 8시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다. 모든 트로피를 따기 위해서는 2회차 플레이가 있어야 하지만, 분량 자체는 가격에 비해서 아쉽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고 본다. 확실히 짧기는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밌게 느껴지는 만큼 분량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보일 수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건 조작계 인터페이스와 약간의 진행 방식이다. 루트필름은 기본적으로 장소를 이동할 때, 버튼은 힘주어 눌러서 유지하도록 조작계를 설정했다. 이게 좀 불편하다. 그리고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긴박감이 커질 때 조차도 플레이어가 직접 동선을 정해야 한다. 게임 특성상 장소 이동이 매우 잦으므로, 번거로움이 꽤 느껴지는 편이라고 할까.

게다가 이동 과정에서 전혀 사건에 영향력이 없는 장소에 방문할 수도 있는데 결국 같은 대화가 반복되는 구간이 있거나 전혀 스토리와 상관없는 '트로피'의 요소들이 마련됐다. 간혹 이런 부분이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어느 정도 주인공 일행의 동선이 확고해졌을 때에는 확실하게 이동 장소를 간소화하거나 별 다른 조작 없이 직접 이동시켜버리는 게 더 몰입에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의 표정이 풍부하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엔딩 이후 회상도 '필름 느낌'의 인터페이스로 구현됐다. 컨셉에 충실하다.

15시간 정도의 분량이라면, TV 드라마로 치면 거의 드라마 시즌 하나의 분량에 가깝다. 1화마다 플레이해야 하는 시간이 꽤 긴 편이고, 각 화마다 기승전결의 구조가 이뤄져 있는 데다가 각 화의 엔딩도 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이름과 게임 컨셉에 맞춰서, 마치 게임을 통해서 하나의 미스테리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매 화 엔딩이 있고 한 화에도 챕터가 나뉘어 있으므로, 스스로 플레이에 완급 조절을 할 수 있도록 해둔 점이 참 좋았다.

오토 플레이로 성우들의 스스로 완급을 조절해 느긋하게 음료와 다과를 곁들이면서도 플레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중간중간 조작을 해줘야 하겠지만, 확실히 대화가 길어지는 구간에서는 오토 플레이를 통해서 천천히 성우들의 연기를 음미할 수 있고, 놓친 대사도 바로바로 다시 찾아서 이해할 수 있다..

루트필름은 꽤 기분 좋게 몰입해서 플레이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쉬운 부분도 "좀 더 이 부분을 신경 써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느낌에 가깝다. 텍스트 어드벤처는 스토리가 핵심이고 루트필름의 스토리는 별로 불만이 없고 엔딩도 참 깔끔했다. 게임속에서 만들어진 여러가지 의문점은 엔딩을 보는 시점에서 대부분, 특히나 중요한 부분들은 대부분 해결된다.

미려한 아트와 훌륭한 연기가 뒷받침하는 좋은 스토리의 게임. 가격은 좀 아쉽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드라마를 한 편 본 기분이다. 구매가 망설여진다면 체험판의 분량도 꽤 되는 편이니, 한 번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참 좋을 것 같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