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라그나로크 오리진, 미워도 다다다다다시 한번

리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88개 |



라그나로크 IP의 34번째 작품, '라그나로크 오리진'이 지난 7월 7일 출시됐다. 지난 2019년 11월 지스타 당시에 처음 공개한 이후 근 8개월 만에 유저들 앞에 정식으로 모습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라비티가 "백년만에 한 번 나올 IP"라고 말해 회자가 됐지만 실제로 라그나로크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은 출시될 때마다 꾸준히 호응을 받아왔다. 18년이면 강산도 한 번 변하고 다음 변화를 준비하는 시기인데, 이를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진 IP들이 얼마나 많던가. 후속작 한 번도 내지 못하고 묻혀버린 작품이 많다는 걸 보면, 이번이 34번째 작품이라는 라그나로크 IP의 저력이 새삼 느껴질 정도다.

반면 그만큼이나 이를 활용한 작품이 많이 나온 탓에 '그만 우려내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것이 라그나로크 IP 기반 신작들의 숙명이었다. 그 와중에 라그나로크M 등 일부 작품은 예전의 감성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나, 그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 숟가락 떠먹은 라그나로크 오리진의 첫 인상은, 오랫동안 막혀있던 그 흐름을 한 번 뚫어보기엔 충분한 느낌이었다. 라그나로크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하게 올라오는 불안감도 느낄 수 있었는데 하나씩 설명해 보기로 한다.


그때 그 감성은 살렸다
3D로 재해석했음에도 놀라울 정도의 싱크로를 보여주는 그래픽, 원작에 충실한 시스템


원작 라그나로크 온라인은 아기자기한 2D 캐릭터들과 2D풍의 3D맵이 결합된 특유의 감성 있는 그래픽으로 호평을 받았고, 그 특유의 감성은 지금까지 유저들이 플레이를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를 반대로 말하자면, 라그나로크 IP라고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감성을 잘 살려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이 부분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다. 원작과 달리 풀3D로 구현했지만, 스프라이트로 구현된 원작 캐릭터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린 카툰렌더링 모델링을 선보였다. 라그나로크의 아기자기함은 인게임 캐릭터뿐만 아니라 UI나 곳곳에 나오는 일러스트에서도 드러나야 하는데, 그 부분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완벽히 원작 그대로는 아니지만, 둥글둥글하면서도 최대한 심플한 화풍, 그러면서 밝은 톤으로 그려낸 일러스트들은 그 아기자기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UI와 아이콘 등도 새롭게 개편됐지만, 아기자기함을 살리는 방향으로 구현하는데 주력한 모습이 엿보였다.

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커스터마이징 단계에서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노비스에서 시작해 추후에 직업을 고르는 등 원작 고유의 요소에도 충실했다. 베이스 레벨, 잡 레벨로 구분된 레벨 체계와 그에 맞춘 스탯 배분 및 스킬 포인트 배분 등도 고스란히 구현했다. 원작이 18년 동안 서비스하면서 구현한 다양한 전직들이 모두 도입된 건 아니지만, 1, 2차에 거쳐서 각 단계별로 퀘스트를 이행하고 전직하는 기본기도 그대로 담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카드 슬롯과 카드 시스템 등, 원작의 여러 핵심 요소를 살려내면서 타 모바일 MMORPG와 차별화를 꾀했다. 카드 슬롯이 달린 장비는 상점에서 팔지 않는다는 것도 원작에 충실했다. 이를 얻는 방식도 모바일 MMORPG에서 흔히 보는 확률형 아이템이 아닌, 몹을 사냥해서 재료를 모으거나 도감을 수집하는 형태로 구현했다.

사냥하면서 채팅하는 그 옛날의 재미는 다소 다른 식으로 풀어냈다. 모바일에 맞춰서 자동이 도입됐지만 피로도 시스템의 도입으로 무한정 사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길드 내 콘텐츠, 파티 플레이 던전과 도전 등의 요소를 비교적 초반부터 공개하면서 서로 채팅하고 소통하며 플레이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도록 유도했다.

아울러 원작 그대로의 간단한 조작감은 살리면서, 파티 간 협력으로 극복해나가는 다양한 패턴 등으로 파티 플레이의 재미를 추가했다. 이런 수동조작을 요구하는 콘텐츠들이나 파티플레이를 요구하는 콘텐츠들의 완성도는 썩 나쁘진 않았다. 간단한 조작이지만, 나름대로 패턴을 보고서 맞춰야 하는 기본기는 충실했기 때문이다.








피로도를 다 쓰고 나면 뭐하지?
유저들이 계속 붙잡게 할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을 만끽하면서 추억을 즐기는 것도 순간의 이야기다. 라그나로크는 원작이 아직도 서비스하고 있는 만큼, '라그나로크 오리진'이 온전히 원작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IP를 기반으로 하는 신작의 포지션에서 유저들이 접하게 되고, 원작의 추억은 어느 정도 평가에 반영이 되지만 점차 그 영향력이 낮아진다.



▲ 피로도 시스템이 있어 하루에 순수 전투시간 120분까지만 경험치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그 감성을 걷어내고 본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아쉬운 구석이 있다. 적어도 모바일 MMORPG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2시간의 자동사냥이 끝난 뒤, 의뢰 등을 끝내고 난 다음에 특별히 할 것이 없다는 점이 우선 눈에 밟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하던가 줄곧 유저들이 게임을 붙잡게 하는 것도 좋진 않지만, 반대로 할 것이 없는 것도 유저들에겐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런 유저들을 위해서 시간대별로 여러 이벤트를 마련해두기도 하고, 경험치 등 다양한 보상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2시간 자동사냥이 끝난 뒤 마땅히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길드 파티나 여러 이벤트를 자연히 참가하게 되지만, 유저들이 재미있게 참가할 무언가를 마련했다고 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길드 파티에서는 오버쿡드를 연상시키는 듯한 요리 콘텐츠 등을 선보이기도 하고, 서프라이즈 이벤트 등도 마련이 됐지만 보상은 체감이 되지 않았다. 특히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해당 이벤트에 당첨된 누군가를 제외하고는 일어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무언가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잘 드러나질 않았다.

여느 MMORPG나 후반에는 파티플레이나 길드, 공격대 관련 콘텐츠가 최종 콘텐츠로 자리잡지만 그 단계로 가기 전에는 혼자 즐기는 요소들이 여럿 있다. 그렇지만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이 부문에서는 다소 심심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같이 즐기는 콘텐츠에서 유저가 참여하게끔 하는 색다른 재미나, 어떤 자극이 필요하다. 아직 서비스 초반이라고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이 부분은 상당히 취약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라비티가 이 피로도 시스템을 과금과 연결시키지 않고 코어유저와 일반유저의 간극을 좁히는데 활용했다는 측면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다.


CBT에 더 확실하게 점검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
천천히 운영이슈에 대응하고 있지만 덕분에 디펜스 입장이 되어버린 운영 여력

그 옛날 느낌을 현세대의 기기에 맞추면서도 그 느낌 그대로 살려냈다는 것만으로도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IP 게임으로서의 기본기를 충실히 이행한 작품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뮤니티의 평가나 반응은 썩 좋지만은 않다.

이유를 살펴보면 첫날 불거진 서버 이슈부터 시작해서 확률 표기, 환불 계정 이슈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중 서버 이슈는 8일부터 비교적 안정화가 됐고, 확률 표기 및 환불 계정 이슈는 9일에 조치하고 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러나 첫날부터 불거진 이슈였음에도 언급이 늦었다는 반응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10일)도 중복 터치 현상이 발생하는 등, 서버 이슈가 완벽히 해결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첫날 발생한 이슈가 3일 만에 재발생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CBT에서 공지했던 오류들이 출시 때 일부 남아있다거나, 플레이 도중에 튕기거나 던전에서 나가지 못하는 현상 등이 커뮤니티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의 CBT를 거쳤음에도 오픈 초부터 이런 현상이 발발하면서 유저들은 불쾌함을 느꼈고, 자연히 게임을 평가할 때도 이런 시선을 반영하게 됐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유저들이 그간 쌓아왔던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다시금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그간 그라비티에서 라그나로크 IP 기반의 신작을 출시할 때마다 기존 작품의 관리는 점차적으로 허술해졌다. 그로 인해 유저들이 회사의 게임 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부터 숱한 오류를 수반해서 출시한 만큼, 유저들이 불안감을 느끼기엔 충분할 것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고, 운영은 온라인 기반 게임의 뒷마무리이자 디테일이다. 패키지 게임과 달리, 한 번 출시하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일구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이 부분에서 처음부터 구멍을 보였고, 그 구멍을 통해서 불신이 스며든 상황이다. 이를 걷어내려면 앞으로 더 큰 노력을 기울이면서 섬세한 운영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칫하면 라그나로크 오리진 이전 작품들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약 18년치의 불만까지 얽히게 될 테니 말이다.


감성은 OK, 앞으로 운영은 그라비티가 증명해야
어찌보면 IP 자체의 한계, 이를 넘을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관리해나가야




아직 초반부에 불과하지만, 라그나로크 오리진의 첫 맛은 확실히 원작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그 감성을 닮아있다. 겉모습만 그럴싸하게 갖춘 것뿐만이 아니라, 예전 그 원작의 느낌을 분석하고 모바일이라는 환경에 맞춰서 구현한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 감성을 살린 건 좋지만, 18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갖춘 것에 집중한 만큼 그 다음 행보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패키지 게임 형태로 나온 후속작이었다면, 일부 버그 패치 정도만 이루어져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캐릭터들이 계속 성장해나가고, 그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콘텐츠가 쌓이는 것이 MMORPG다. 자연히 첫 인상인 초반부보다는 후반부에 더욱 포커스가 맞춰진다. 피로도 시스템 등의 한계로 이 부분의 검증은 추후에 진행될 것이고, 이 평가는 바뀔 여지가 있다. MMORPG의 후반부는 큰 업데이트 때마다 계속 갱신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후반까지 유저를 이끌어갈 수 있냐는 점이고, 그 원동력은 초반부를 거쳐 중반까지, 각 단계별로 갖춰져야만 한다. 어느 정도 궤도 위에 오르기 전까지 단계별 추진을 거치는 우주비행선처럼 말이다.

그 관점에서 보면 라그나로크 오리진엔 아직 증명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서비스 초에 불거졌던 서버 이슈나, 환불 관련 이슈는 차차 정리해나가고 있는 상황이고, 게임 초반부에는 추억을 되살릴 만한 요소들을 다양하게 보여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추억의 여운이라는 것은 길게 남지 않는 만큼, 그 여운이 가셨을 때 다시금 유저들이 붙잡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실 이는 라그나로크 오리진의 한계라기보다는, 라그나로크 IP 특유의 감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라그나로크는 콘텐츠 자체보다는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 그리고 이를 즐겨왔던 오랜 추억을 주무기로 삼아온 IP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첫 등장부터 살펴보면 강자들을 가리거나 패권을 다투는 형태, 혹은 다소 심각할 수 있는 거대 담론부터 시작하는 기존의 온라인 MMORPG와 달리 아기자기하게 모험을 즐기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가지면서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반복사냥도 재미있게 하던, 혹은 업데이트로 무언가가 바뀌면 그에 대해서 게임 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해보던 그 추억들이 서려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담은 아기자기한 그래픽의 MMORPG 경쟁작이 적었고, 이 분야를 선점하면서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것이 라그나로크 온라인, 그리고 그 IP의 힘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그간 라그나로크 IP로 나온 후속작들의 한계였다. 오죽하면 라그나로크하면 떠오르는 게 포링 등으로 대변되는 귀여움 정도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까.

그래도 라그나로크 오리진은 현재 바뀐 장르의 문법에 일부 끼워맞추되, 그 IP의 특징과 주요 포인트를 잘 짚으면서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까지는 건드리지 않았다. 특유의 귀여운 캐릭터와 그래픽을 풀3D로 재해석하면서도 그 느낌을 온전히 살려냈고, 주요 시스템도 잘 살렸다. 무한사냥을 제한하는 피로도 시스템이나 파티플레이를 강조하는 콘텐츠 배치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이를 돈으로 해결하게 유도하는 행태로 연결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슬슬 추억 버프가 사라질 시점의 기존 유저들이나, 혹은 처음부터 원작을 접하지 않은 채 모바일 MMORPG의 일종으로 접근한 유저에게 어떤 것을 내세울까 생각해보면 다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 이것은 라그나로크 IP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통으로 가져야 할 두 번째 숙제일 것이다.

그때 그 감성을 무기로 삼았지만 그것을 제외했을 때 과연 무엇이 남을까, 아니면 그 추억을 어떻게 온전히 갖고가게 할까하는 그 고민 말이다. 첫 번째 과제를 해결한 '라그나로크 오리진'이 두 번째 과제까지 잘 해결해나갈지 지켜볼 필요는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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