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미지에 대한 공포, 'Observation'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4개 |


⊙개발사: No Code ⊙장르: SF 스릴러 ⊙플랫폼: PC(스팀) ⊙발매일: 2020년 5월 22일(스팀)

인류는 언제나 우주를 동경했다. 아마, 미지에 대한 탐구욕 때문일거다. 인류는 언제나 자신 앞에 놓인 미지를 파헤치고자 했고, 문명을 쌓아올리며 이를 하나씩 없애왔다. 심해의 악마로 여겨지던 두족류는 초밥의 재료가 되었고, 신들이 거닐거라 여겨졌던 구름 위는 비행기가 돌아다니는 교통로가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인류에게 남은 미지는 셋 정도다. 언젠가 정복될 심해,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사후 세계, 그리고 앞서 말한 '우주'다.

인디 게임 개발사 '노 코드(No Code)' 스튜디오의 '옵저베이션(Observation)'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다. 에픽 스토어를 통해 작년에 먼저 선을 보였고, 1년이 지나 스팀에 입성한 이 게임 속의 우주는 은하계를 누비는 '매스 이펙트'나 외계인들과 뒤섞여 우주의 패권을 다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가 아니다. 옵저베이션의 우주는 현실의 우주와 맞닿아 있다.




지상 400km. 우주 정거장 '옵저베이션'은 지금도 초속 7.5km로 지구를 돌고 있는 국제 우주정거장 ISS와 같은 높이에 떠 있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구축한 세 개의 모듈형 지구와 이를 하나로 묶는 허브가 되는 공동 구역. 그리고 거대한 태양광 반사판까지. 우주 정거장 '옵저베이션'은 모습만 다를 뿐, 실존하는 우주 정거장 ISS와 유사한 구조의 범국가적 공간이다.

어느 날, 사고가 일어났다. 승무원들 간의 통신은 끊어졌고, 지구에 위치한 휴스턴과도 교신이 닿지 않는다. 모듈 몇 개는 파손된 것이 분명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엠마 피셔' 박사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엠마 피셔 박사는 곧 우주 정거장의 메인 OS이자 AI(인공지능)인 'SAM'을 호출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게이머는 엠마 피셔 박사가 아닌, 'SAM'의 입장이 된다.




※ 본 리뷰는 결말을 제외한 초반부 스포일러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관측(Obervation)하는가

게이머는 우주 정거장의 메인 OS이자, 인공지능이 되어 주인공 엠마 피셔 박사를 도와 우주 정거장에 일어난 사고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주된 방식은 퍼즐. 온갖 항공우주 관련 전문용어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결코 간단하지 않다. 설정 상, 사고로 인해 OS의 데이터베이스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고, 때문에 게이머는 정거장 곳곳을 살펴보며 문서와 데이터를 스캔해야 한다. 힌트를 모으고, 퍼즐을 풀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기본적으로 '옵저베이션'의 게임 진행은 현실의 '방탈출' 게임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을 사람이 아닌 인공 지능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수행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SAM'은 인공지능일 뿐,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때문에 게임 진행도 대부분 정거장 곳곳에 위치한 CCTV와 SAM의 자체 OS를 통해 이뤄지며,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스피어'라는 구형 기기를 이용해야 한다. 이 스피어의 기능은 별거 없다. 그냥 날아다니는 카메라다.



▲ 게이머는 카메라를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는 주인공이 아닌 'SAM'이라는 OS에 이입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와중 사건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 중심의 게임에서 주인공은 비범한 능력을 갖췄을지언정 매우 일반적이고 평범한 성격을 갖는다. GTA5의 진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프랭클린이 약간은 소시민적 마인드를 갖춘 인물인 것도, 마블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능력과 별개로 일반인들과 비슷한 감정적 사고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야 감정 이입이 쉬우니까.

하지만, 옵저베이션의 조작 주체인 'SAM'은 감정이 없다.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므로 잘못을 하지도 않으며, 실수를 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주인공인 엠마 피셔 박사가 SAM의 실수를 탓하는 일도 없다. 기계일 뿐이니까. 하지만, SAM의 입장에서 정거장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게이머는 이 기계에 이입한다.



▲ 투박해 보이는 시스템 인터페이스

게임의 무대가 되는 우주 정거장 '옵저베이션'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옵저베이션(관측)'이다. 게이머는 게임 내내 육안이 아닌, 지직거리는 저화질 카메라를 통해 정거장을 바라본다. 불타고 부서져 폐허가 된 모듈, 선원들의 흔적이 자잘하게 남아 있는 정거장 내부, 그리고 엠마 피셔 박사의 심리 변화와 간혹 찾아오는 미지의 무언가까지, 두 눈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 지켜본다.

이는 굉장히 실험적이면서도, 독특한 접근 방식이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지닌 게이머가, 감정이 없는 기계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일종의 실험으로 비춰질 정도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이 시도는 꽤나 잘 먹혀들었다.



▲ 엠마 피셔 박사의 심리 변화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게 된다.

기자는 공포 게임을 꺼리는 편이고, 심리적 섬뜩함에 민감한 편이지만, 이 작품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이로 인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만약 게임 속 엠마 피셔 박사의 입장으로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게임을 중간에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내내 '나는 사람이 아닌 AI다'라는 사실 하나를 상기함으로서, 다가오는 미지를 공포가 아닌 의구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떠한 무서운 광경을 바라봄에 있어 직접 보는 것과 TV를 통해 보는 정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의 테마: '미지'에 대한 공포

지상 위 400키로미터는 생각처럼 먼 거리가 아니다. 미약하긴 하지만 대기권에 속해 있는 영역. 실존하는 우주 정거장 ISS도 축구장 크기 정도일 뿐이지만 밤이면 어렵지 않게 맨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정거장의 창문에는 거대한 지구가 비치며, 지구와의 교신도 원활하다. 고립되어 있는 공간이지만, 심리적 고립감이 그리 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이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엠마 피셔 박사는 창문을 내다보고 깜짝 놀란다. 늘 보던 익숙한 지구가 아닌,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게임의 테마가 드러난다. 이 게임의 시스템이 앞서 말한 'AI로의 감정 이입'에 초점을 맞췄다면, 게임의 중심 주제이자 재미의 포인트는 미지의 공간 속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고의 원인을 찾아가는 스릴이다.




옵저베이션 이전에 이와 같은 테마를 가진 미디어는 꽤 있었다. 산드라 불록이 열연했던 2013년작 영화 '그래비티', 그리고 맷 데이먼이 감자농사를 망치는 영화 '마션'이 우주 속의 고독을 소재로 했다. 하지만, 고독에 대한 표현의 방법은 모두 달랐다. '그래비티'는 완전히 적대적인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생환하는 주인공을 그렸고, '마션'은 아예 고독을 즐기기까지 하는 낙천적인 주인공을 보여주었다.

'옵저베이션'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적어도 생환은 꿈꿀 수 있었던 두 영화와 달리, '옵저베이션'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황인데다 미지의 무언가까지 개입되어 있다. 영화 중에서 비슷한 감정선의 작품이라면, 작년 개봉한 '애드 아스트라'가 그나마 비슷하다.

이는 게임 초반부부터 잘 드러난다. 튜토리얼 부분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SAM'의 화면에 노이즈가 강하게 끼고,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출력되는 등 섬뜩한 접근이 시작되고, 게임 중반부에 이르면 검은색 육각형의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다. 이 와중 들려오는 기괴한 소음은 소리만으로 사람을 소름돋게 만들기에 충분할 정도다.



▲ 모니터 망가진 것 아니다. 실제 게임 내 화면

게임의 배경 뿐만 아니라, 연출과 묘사를 표함한 많은 부분이 게이머에게 '미지에 대한 공포와 스릴'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을 주게끔 설계되어 있다. 'SAM'의 주 시점이 되는 CCTV는 마치 80년대의 TV처럼 화질이 굉장히 거친데다가 쉴 새 없이 노이즈가 낀다. 고전 공포영화를 보면 분명 아무 것도 없었는데,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니 어느새 귀신이 나타나 눈앞까지 다가와 있는 묘사가 있다. 옵저베이션은 게임 내내 이런 기분과 맞서야 한다.

정거장 곳곳에 쓰여진 알 수 없는 내용의 메시지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게 찢어진 노트로 구성된 퍼즐 힌트, 그리고 게임 내내 스산하게 들려오는 요상한 기계음은 덤. 옵저베이션의 모든 부분은 하나의 큰 스릴러를 만들기 위한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반에는 도무지 감조차 잡지 못할 시나리오가 이걸 하나로 묶어 하나의 스릴러 게임으로 만들어냈다.




게임을 하는 내내 난 상반된 감정 속에서 머물렀다. 미지에 대한 의구심과 꺼리낌. 답답함과 동시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 자칫 다른 게임이라면 껐을지도 모를 정도로 극단적인 감정의 골 안에서 진행하는 게임이었지만, 의외로 부담은 적었다. 아마 조작 주체가 기계라는 특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까.

말로만 설명하면 그게 뭔가 싶겠지만, 게임을 해 보면 안다. 사람이 아닌, 기계를 조작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정의 농도는 꽤 옅어진다. 기분이 좋다 할 수는 없지만, 묘한 긴장의 선은 유지된다. 게임을 계속 하고 싶은 딱 그 정도의 감정선이 만들어진다.



▲ 의도된 듯한 레트로 느낌의 인터페이스도 분위기에 한 몫 한다.


결론, 26,000원이 아깝지 않다.

옵저베이션은 '대작'으로 분류되는 게임은 아니다. 이미 1년 전에 한국어화되어 발매되었음에도 국내에서는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다. 공상 과학 스릴러라는 비교적 대중적이지 못한 장르의 탓도 있겠지만, 국내에서 마케팅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아마 주된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짧은 볼륨의 인디 게임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국내 게이머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옵저베이션'의 가격은 정가로 26,000원. 분량은 개인차가 있지만, 대략 4~6시간 정도다.

둘이서 방탈출 게임을 하게 될 경우 한 시간 이용 요금이 보통 인당 2만원 선에서 만들어진다. 옵저베이션은 그보다 약간 비싸지만, 훨씬 오랫동안 더 잘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 가성비는 썩 나쁘지 않은 셈. 스릴러로서의 감정선 유지는 걱정하지 말자. 위에 두 파트에 걸쳐 이 부분만 칭찬해 두었으니까. 26,000원의 가격이면 뜨끈한 국밥이 다섯 그릇이지만 사람이 국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여러 게임에 숙달된 게이머가 아니라면 퍼즐이 꽤 난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요령을 알고 나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온갖 전문용어가 난무해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지라 요령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간 제한은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묘하게 긴장감은 유지된다.



▲ 처음 보면 멍해지는 퍼즐


결론적으로, '옵저베이션'은 실험적 시도가 가해졌지만 이를 핑계로 결과물의 부실함을 변명하지는 않는, 꽤 알찬 구성의 웰 메이드 SF 스릴러 게임이다. 챗바퀴처럼 매일매일 반복되는 '같은 게임'에 질린 게이머라면, 짧은 휴가처럼 하루 이틀 정도 즐기기엔 결코 모자람이 없는 게임이다.

별개로 한마디 더 붙이자면, 오늘날 '대중 게임'의 위치를 차지하는 온라인 기반의 게임을 넘어 코어 게이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옵저베이션은 꽤 추천할 만한 게임이다. 이보다 더 멋지고 오랜 기간 여운을 주는 좋은 게임들도 많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게임 내내 이 정도로 감정선을 유지하는 게임은 결코 흔하지 않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