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37] 개발자 소미가 '리갈던전'으로 던지는 질문

인터뷰 | 이두현 기자 | 댓글: 4개 |
소미가 개발 중인 ‘리갈던전(LEGAL DUNGEON)’의 주인공은 경찰입니다. 그래서 살인범이나 강도를 추적하는 역동적인 플레이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리갈던전’은 직접 범죄자를 잡으러 다니는 게임이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경찰대학을 갓 졸업한 경위로, 이미 완료된 사건 서류를 검토하고 검찰 송치 전 의견서를 작성하는 정적인 역할입니다.

‘리갈던전’을 하는 동안, 플레이어는 서류 작업을 하며 피의자의 범죄사실과 관련 법령의 구성요건, 판례, 이전 사건과의 비교를 통해 기소 여부를 판단합니다. 게임에서 절도범은 2점, 살인범은 15점으로 몬스터 쓰러트리듯 경험치(실적)을 줍니다. 실적은 고성과자에게는 승진의 기회를, 저성과자에게는 감찰조사와 직위해제를 가져다줍니다. 마치, 현실의 실적평가처럼 말이죠.

의도된 지루하고 반복적인 서류 작업을 하다 보면 플레이어는 점차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사건의 아귀가 들어맞는 것은 아니고, 윤리적 문제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건의 시작과 끝, 모든 이야기를 문서에 담을 수 없기에 플레이어는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과를 높일 수 있는 문장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서류에 담을 수 없지만, 서류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되는 아이러니. 이를 게임으로 담아낸 ‘리갈던전’의 개발자 소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 '리갈던전' 개발자 소미

먼저, BIC 출품작으로 선정된 데에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많은 게임 중 부족한 제 게임이 공식 선정작으로 전시될 수 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BIC와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게임을 만드는 과정 중 가장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입니다. 화가나 사진작가가 미술관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때 느끼는 감정이 제가 게임 전시를 통해 느끼는 기쁨과 가장 닮은 경험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다만, 올해는 두려움도 큽니다. BIC를 통해 매년 새로운 작품을 보여드리고 있는데, 레츠놈이나 레플리카의 경우 거의 완성된 상태로 공개했던 것에 반해 이번 리갈던전의 경우 초기 알파 버전을 선보이는 상황이라서 혹여 실망을 드리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리갈던전을 잘 모를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해 게임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려요.

리갈던전은 경찰이 수사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을 게임의 형태로 옮긴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이 없으므로 모든 수사서류는 검찰청으로 보내집니다. 이 과정을 송치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에서 경찰은 1차 수사의 결과와 경찰의 의견을 담은 서류를 만들죠. 이를 의견서라고 칭합니다. 의견서에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의자를 재판에 회부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견을 적는데, 이 기소 또는 불기소에 관한 의견을 선택하는 것이 리갈던전의 주된 내용입니다.


소개하실 때, 본격 경찰 성과주의라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리갈던전’의 아이디어, 처음 개발 계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전(前) 경찰공무원이고 현(現) 경찰인권센터장인 장신중 씨가 출간한 ‘경찰의 민낯’이라는 책을 읽게 된 것이 가장 큰 계기였습니다. 법과 현실, 경찰의 시각과 일반적으로 사건을 접할 때 느끼는 감정 간의 괴리를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분이 줄기차게 주창하는 ‘성과주의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일련의 기사들과 사건들을 찾아보면서 리갈던전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경찰 조직 문화와 관행을 파헤친 책 '경찰의 민낯'(출판사: 좋은땅, 저자: 장신중)

리갈던전은 요즘 흔한 ‘때려잡는 게임’은 아닙니다. 서류 업무 게임으로 컨셉을 잡으신 이유가 있나요?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직접 수사를 해서 단서를 찾아내거나 사건의 반전을 경험하는 등 흥미로운 범죄 스릴러 형식의 진행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미 수사가 마무리된 사건의 수사서류만을 읽고 관련되는 법조항과 판례 등을 분석해서 의견서를 작성하게 되죠. 이 과정은 지루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처리하는 대부분 일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저는 플레이어가 사건을 볼 때 ‘지루하고 일상적인 일’로 접근하기를 바랐습니다.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에 공감하지 않고 행정 목적과 효율을 위해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사건 서류를 보고 판단하는 일이 게임 내내 반복됩니다

게임 곳곳에서 경찰의 디테일이 느껴집니다. 개발을 위한 자료 수집은 어떻게 진행됐었나요?

일단 제가 법학 공부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형사사건 처리의 절차나 수사 서류의 형식 등에 관해서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국내에서 화제 또는 논란이 되었던 판례와 관련된 기사를 많이 참고했고, 특히 경찰청에서 교육용으로 제작, 공개적으로 발간한 판례교육용 책자 등을 수집하여 공부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골자를 만들고 살을 덧붙이는 형태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리갈던전을 만들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리갈던전은 형사사법 절차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게임입니다. 이로 인해 게임에 나오는 문장은 건조하고 대부분 단어가 법률 전문용어라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운 단어가 있으면 게임의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연스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작 레플리카에서도 느꼈지만 만드는 게임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한 거 같습니다. 소미는 게임으로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건가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것을 게임으로 표현해보려고 합니다. 플레이어가 작자의 의도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장르로서, 게임은 작가의 이야기와 의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기보다는 게임 제작 당시 저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를 뱉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BIC에서는 한국어화 된 '리갈던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봄, 스팀에서 출시 예정인데 현재 잘 개발되고 있나요?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만들고 있습니다. 회사 업무와 개발을 병행하다 보니 여유시간이 일정치 않아서 개발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레츠놈이 제작에 1년 3개월, 레플리카가 3개월 정도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 리갈던전은 포함된 이야기 분량이 많은 관계로 아직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꾸준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전체 플레이 타임은 얼마나 될까요?

기본 플롯에 맞는 게임 분량이 모두 제작되고 난 다음에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미 같은 개발자 지망생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이 그림의 형식이든, 글의 형식이든 게임의 형식이든 직접 만들기 시작하세요. 방법론은 서점과 인터넷에 넘치니까요.


BIC에 참가하면서, 눈여겨보는 게임이 있나요? 또, BIC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멋진 게임들이 정말 많더군요. 여러 나라의 게임 개발자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크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중 말레이시아 ‘7th Beat Games’ 팀에서 제작한 ‘리듬닥터(Rhythm Doctor)’ 라는 게임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올해 TGDF(타이페이 게임 개발자 포럼)에서 강연할 때 만났던 작품인데 음악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게임이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한 번 플레이 해보시면 다들 좋아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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