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의 도시는 안녕하십니까? '어바노이즈 공화국'

인터뷰 | 원동현 기자 | 댓글: 2개 |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이 더 좋아요."
"그러나 우린 그렇지 않다네. 우린 편한 것이 좋지."
"하지만 저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이 싫어요. 저는 신과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원합니다."
"그럼 사실상 자네는 불행할 권리를 원하는 셈이군."
"그래도 좋습니다. 그래요, 전 불행한 권리를 원하는 셈이죠."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中

'나'는 누구일까? 내 이름이 '나'일까, 혹은 주민등록번호가 '나'인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은행 잔고가 그리고 내가 쌓아온 학벌이 '나'를 증명해주는 걸까? '나'라는 아이덴티티는 어디서 비롯되며, 누구로부터 인정받는 걸까?

끝도 없는 의심암귀, 개인이 필연적으로 겪는 사회에 대한 의구심이다. 본능적으로 모든 개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자각하지만, 학습된 사회성이 이를 방해한다. 다양한 숫자와 시스템으로 개인을 특정짓고 분류한다. 사회라는 시스템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선 이런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누가 누구인지, 그 사람의 사회적 점수는 어떨지 객관적인 지표를 구성해야만 한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연극에서 말하는 관객과 배우 사이의 제4의 벽처럼, 사회와 개인 사이에는 불분명한 장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장막은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의외로 단단하다. 이를 깨달은다 한들 쉽게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어렵고, 굳이 나가야 할 필요성과 이유를 찾는 것도 어렵다. 현대에서 사회를 벗어난다는 건 하나의 인간이길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어바노이즈 공화국은 그 보이지 않는 벽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품이다. 사회 초년생의 달콤씁쓸한 직장 체험기도 아니고, 학생들의 청춘을 다루는 드라마도 아니다. 사회와 도시의 껍질을 한 꺼풀 벗겨 하나의 시스템으로 마주 보는 디스토피아 활극이다.







▲ (좌) 김다립 아트 디렉터 (우) 정재영 플랜 디렉터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정재영 플랜 디렉터(이하 정재영) : 어바노이즈 프로젝트에서 플랜 디렉터를 맡고 있는 정재영이다. 과거 창업 투자 관련해 일을 했었고, 지금은 개인적인 사업과 어바노이즈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김다립 아트 디렉터(이하 김다립) : 아트 디렉터 김다립이다.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었고, 프랑스 미대로 유학을 간 뒤 벨기에에서 그래픽 디자인 석사까지 마쳤다. 석사 과정 중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어바노이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Q. 둘은 어떻게 만났나?

김다립 : 우리 둘 만남이 참 특이하다. 나랑 이 친구(정재영)는 공군에서 만났다. 훈련소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다. 당시 난 미술을 하고 있었고, 재영이는 기타를 치던 친구라 뭔가 코드가 통하는 게 있었다. 이후 배치된 자대는 달랐지만, 휴가 나와서도 계속 만나며 친분을 이어갔다.


Q. 훈련소 시절 동기가 이렇게 인연이 이어져 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거 같다. 그 인연이 이어져 어바노이즈 프로젝트까지 온 걸까?

정재영 :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웃음). 다립이가 몇 년 전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학교로 유학을 갔고, 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중 다립이가 어바노이즈 프로젝트란 걸 진행하고 있다며 내게 관련 굿즈를 나눠줬다.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제가 한국에서 진행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넌지시 제안해봤다. 그게 계기가 되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파리에서의 전시, 프로젝트는 서서히 성장해갔다


Q.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시작했는가?

김다립 : 벨기에에 앤트워프란 도시가 있는데 패션으로 굉장히 유명한 도시다. 도시 내에 3대 패션 스쿨도 있을 정도로 패션에 관한 문화가 융성해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갔는데 골목 곳곳에 인디 브랜드가 많았다. 개인 디자이너 매장을 보면서 나 역시 하나의 콘텐츠를 가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어바노이즈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교수에게 보여줬다. 당시엔 지금보다 조금 더 아기자기하면서도 컬러풀한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그 프로토타입을 본 교수가 "너무 이쁘고, 다 좋은데 무엇을 말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디자인 속에 메세지가 없었다.

이후 모든 걸 때려쳤다. 어떤 메세지를 담아야 할지부터 다시 고민했다. 그때 생각난 게 '도시'였다. 개인적으로 도시라는 곳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베이징,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때 느낀 건 도시에서 살려면 무언가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이 도시에 살기 합당하다는 걸 증명해야만 그 거대한 시스템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집을 구해야 하고, 집을 구한 뒤 은행 계좌를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이후로도 다양한 도시 시민으로서의 절차가 남아있다.

문득 '우리는 우리가 도시의 주인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정작 이 시스템 속에서 우리의 의미는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디어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해보고자 시작한 것이 어바노이즈 프로젝트다.


Q. 그렇다면 둘이 같이 내딘 프로젝트의 첫발은 무엇이었을까?

김다립 : 첫발은 스티커였다. 나 혼자 시범 제작할 때는 그냥 일반 프린터기에 인쇄해서 가위로 손수 잘라 만들었는데, 재영이가 합류하고 보다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정재영 : 2016년도 8월로 기억한다. 충무로에 있는 모든 인쇄소에 전화를 걸고 우리 상품을 받아줄 곳을 찾았다. 하루종일 발품을 팔았던 기억이 난다. 이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김다립 : 이후 나는 브뤼셀로 돌아가서 학업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디자인을 하고, 재영이가 전반적인 경영을 맡았다. 그런데, 갑자기 디노마드와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우리 프로젝트가 당선됐다고 연락이 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문제는 준비된 게 정말 없었다. 전시까지 2달이 남아있는데, 있는 거라곤 일러스트 6장뿐이었다. 그 남은 2달이란 시간 동안 에코백, 클러치백, 스티커, 노트, 후드티 등 밤을 새가며 제품을 만들었다. 잠을 제대로 잔 기억이 거의 없다.


Q. 굉장히 바빴을 거 같은데, 학업은 어떻게 해결했나?

김다립 : 나는 이걸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하겠다고 교수랑 합의를 본 상태였다. 석사 과정은 아무래도 단순히 강의를 듣는다기보다는 개인이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학교의 학풍 자체가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자유롭기도 했다.



▲ 고된 작업 끝에 탄생한 어바노이즈 상품들


Q. 소재가 소재다 보니 세계관에 살을 붙여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다립 :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이 끝나고 브뤼셀로 돌아갔을 때 약간 금의환향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판매가 되는 제품을 만들어 실적을 냈으니, 교수들한테 자랑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들이 내 말을 듣고는 "그러면 다음 스텝은 뭐니?"라고 물어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때 반성이 들었던 건, 제품 디자인에 급급해 아직 세계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걸 정돈해서 새로운 미디어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가 게임이다.

사실 많은 미디어를 고려했다. 만화로도 만들어볼까 생각했고, 소설 역시 고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바랐던 건 사람들이 어바노이즈를 직접 체험해보는 방식이었다. 게임 특유의 강력한 상호작용성이 어바노이즈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정재영 :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디자인 전시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관객이 와서 물품을 구경하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게 끝이다. 이 이상의 소통은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김다립 : 우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전시로는 어바노이즈라는 브랜드와 이 세계관이 휘발될 것이란 불안감이 있었다. 게임은 그런 점을 보완하기에 최적화된 미디어라 생각했다.



▲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Q. 어바노이즈의 시작은 디자인 프로젝트인 만큼, 게임 개발이 굉장히 생소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없었나?

김다립 : 우리는 게임 개발에 문외한인 만큼, 개발자 친구를 별도로 영입했다. 문제가 있다면,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내가 게임 개발에 참여해본 적이 없는 탓에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다. 개발자 친구는 그 친구대로 답답했을 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게임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했다. 작년 IGC 네트워킹 파티에도 찾아가서 다양한 개발자분들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Q. 김다립 디렉터의 경우, 베이징과 파리 그리고 브뤼셀에서 장기간 유학한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게임에서 프랑스의 향취가 느껴졌다. 게임 내에서 '존'을 옮겨 다니는 게 파리의 방리외(banlieue)와 비슷했는데, 본인 경험에서 착안했나?

김다립 : 파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도시가 가지는 공통적인 구조라고 본다. 베이징도 고속도로를 통해 1환, 2환, 3환 등으로 나눠지고, 파리 역시 1존, 2존, 3존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역 사이에는 암묵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위와 같은 부분도 조명하고 싶었지만, '개인이 자신을 증명해내갈 수록 도시에서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더욱 강조하고 싶었다.

사실 낯선 도시에 딱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들이라 쉽게 느끼기 힘들지만, 외국에 이민이나 유학을 가면 한 번쯤은 도시의 벽을 느끼게 된다. 집을 구해야하고, 은행계좌를 만들어야하고, 핸드폰을 개통해야하고, 이게 막상 처음부터 이룰려면 엄청난 것들이다.



▲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다


Q. 게임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독특하다. 특히 캐릭터는 TV로 보이는데,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

김다립 : 개인적으로 TV는 아날로그 미디어의 대표격 아이콘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 사이에 위치해있다고 본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게임 내 공화국 시민들은 완전한 디지털 미디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반면, 주인공과 같은 TV의 모습을 한 인물들은 디지털로의 진화를 꿈꾸는 아날로그 인생이다. 그런 차이가 있다.


Q. 아날로그라 하면 TV 외에도 많은 게 있을텐데?

김다립 : TV는 우리가 흔히 본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TV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 TV는 가장 많은 시선을 받는 미디어다.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선이 꽂혀있을 거라 생각한다.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TV를 주인공의 얼굴로 설정했다.

게임 내용과 결부해서 설명을 해보자면, 챕터1 주제가 '미디어'다. 이건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 많이 착안했다.



▲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TV는 언제나 '보여짐'을 당한다


Q. 미디어는 마사지다?

김다립 : 맞다. 티비는 얼굴의 확장이고, 바퀴는 발의 확장, 컴퓨터는 손의 확장이라는 이야기가 인상깊게 와닿았다. 우리 인간은 미디어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심지어 내가 끼고 있는 안경도 미디어다. 여기 탁자에 놓인 스마트폰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다. 우리 몸이 기계는 아닐지라도, 우린 이미 일종의 사이보그 같은 삶을 시작했다.

챕터1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이 생활하기 위해서 미디어를 만들고, 그걸 입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의 우리도 수많은 미디어를 입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그런 차이를 신경 썼다. 눈치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TV 캐릭터의 입모양은 물결 무늬인 반면, 디지털화된 캐릭터의 입모양은 직각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의 차이를 표현했다.


Q. 게임 내 그래픽이 미니멀리즘으로 표현됐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김다립 : 개인적으로 어바노이즈 공화국의 아트 스타일을 초현실 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단순한 이미지 하나일지라도, 탁월한 공간성과 메세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게임 내 음악도 마찬가지로 어바노이즈 세계관을 확장시켜줄 공간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 미스터 로봇이라는 드라마를 알지 모르겠다.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에 프레디 머큐리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은 라미 말렉이 출연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라미 말렉이 환각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라미 말렉은 빈집과 늘어서 있는 전봇대만 반복되는 풍경을 바라보다 거기서 ERROR 404라는 메모를 발견한다. 정말 단순한 메모 한장일뿐이지만, 그 공간감과 초현실적인 미학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이런 미학을 어바노이즈 공화국에도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어바노이즈 공화국의 내러티브는 사실 꽤나 복잡한 편이다. 그런데 아트 스타일 마저 복잡하게 구성해버리면, 보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할 거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의미있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 직접 촬영한 이미지들, 게임 내 아트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Q. 색깔도 굉장히 절제한 거 같다. 민트를 키컬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다립: 가장 이유가 없는 게 아마 색깔인거 같다(웃음). 정말 별 뜻은 없었고, 가장 좋아하는 색깔일뿐이었다.

정재영: 사실 약간 억울한 건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6년 당시에 우리가 쓴 민트색이 그렇게 대중적인 색깔은 아니었다. 그래서 참 독특하면서도 예쁜 색깔이라 자부했는데, 어느샌가 굉장히 유행하는 색깔로 자리잡았다.

김다립: 그래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빨간색도 써보고, 노란색도 써봤지만 다 조금씩 안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민트는 너무 차갑지도 않고, 촌스럽지도 않으면서 디지털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Q.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김다립 : 스쳐지나가는 대화 하나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간 직업병 탓인지, 무의미한 대사를 용납할 수 없었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하고, 맥락이 이어져야 하고, 이러한 욕심을 오롯이 담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뼈가 있다


Q. 사실 본인의 성정체성, 재능, 입맛 등 태생적인 아이덴티티 역시 존재한다. 어바노이즈의 세계에선 이런 것마저 디지털화되는 것일까? 혹은 도시적 아이덴티티가 태생적인 아이덴티티를 억누른다고 봐도 될까?

김다립 : 음, 공각기동대의 대사 중 '나를 나로 기억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라는 문장이 있다. 순간적으로 많은 게 떠오른다. 외모, 기억, 지인 등 다양한 게 나를 나로 기억하게 할 수단일 거 같다. 하지만, 외모는 성형으로 바꿀 수 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왜곡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수단이 불확실하다.

그렇다면 뭐가 남을까? 결과적으로 남는 건 서류화된 정보들이다. 낯선 도시에서 여권으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만 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 탓이다. 우리의 많은 '정보'는 믿을 수 없다.

현대 사회의 증명 수단은 디지털 데이터다. 숫자와 전산 상의 텍스트, 지금 우리의 존재는 이러한 것들로 증명된다. 우리는 그저 컴퓨터 안에 없을 뿐, 데이터 그 자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어바노이즈 공화국이 그려낸 아이덴티티가 '도시적'이라기 보다는 '데이터적'이라고 생각한다.


Q. 전체를 관통하는 메세지가 있다면?

김다립 : 우리가 정답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우리의 제품과 게임을 접하고, 아날로그적인 삶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을테고, 혹자는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을 되새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슬로건 역시 'Identify Your Urban Life'다. 당신의 도시 속 삶을 규정하라는 뜻이다.

정재영 : 게임을 출시하고 참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사회를 왜 부정적으로만 보냐는 분도 있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분도 있었다. 어바노이즈 공화국은 답이 없는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 IDENTIFY YOUR URBAN LIFE


Q. 어바노이즈 프로젝트의 다음 스텝은 뭘까?

정재영 : 아직 생각은 안 해봤다.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지만, 게임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기억될지가 중요하다. 아마 다음 프로젝트도 기존의 기성 미디어를 십분 활용해 색다른 가치를 전달하는 시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김다립 : 저희끼리 이야기하는 건 많다.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전시라던지, 이 외에도 게임을 이용해 독특한 실험을 해보고 싶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배경들, 건축물들을 아카이브로 모아서 전시를 해볼 생각도 있다.


Q. 이 외에 준비중인 콘텐츠도 있을까?

김다립 : 사실 준비중인 게 있다. 현재 어바노이즈 공화국 게임 내 사건 사고 소식을 뉴스 형태로 따로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실종된 공장직원이 발견됐다는 뉴스라던가, 검찰의 브리핑 등 도시의 이모저모를 다루는 콘텐츠를 시리즈 형태로 공개중이다. 여기 올라온 정보를 토대로 과거 '미궁'이란 게임처럼, 온라인 주소 입력을 이용한 방탈출 게임을 만들 계획이다. 게임 내 정보를 토대로 퀴즈를 맞춰가며 웹 사이트 상에서 '탈출'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Q. 앞으로 어바노이즈 프로젝트를 어떻게 성장시켜 나가고 싶은가?

정재영 : 우리가 예전부터 하던 말이 있다. 우리만의 철학을 근간으로 해서 어바노이즈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것. 영상, 콘텐츠, 제품, 게임 등 어바노이즈의 세계관이 다채로운 미디어로 펼쳐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 심지어 50년이 지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되면서 그 영향력을 잃지 않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다.

김다립 : 두가지 목표가 있다. 우선 어바노이즈를 이용한 문화복합적인 실험을 이어가고 싶다. 어바니즘에 기반한 도시적 메세지를 많은 미디어들과 결합해 도시의 다양한 의미를 표현해내고자 한다. 이런저런 실험을 진행하며 어바노이즈만의 소통 체계를 만드는 게 첫 목표다.

두번째 목표는 개인적인 욕심에 가깝다. 유럽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느낀 건, 관객들이 예술을 읽어내는 자세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유럽에서는 보통 예술에 정답을 두지 않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의미를 발현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과정을 다소 어려워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교수님이 어바노이즈 캐릭터를 보고 말했던 것처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가 중요하다. 물론 우리가 계몽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그저 관객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건네며 궁금증을 안기고 싶다. 그 소소한 궁금증에서 다양한 물음이 파생되고, 여기서 의미있는 토론이 생겨나며 개인적으로 참 기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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