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G식백과, 개발자, 게이머, 그리고 '김성회'

인터뷰 | 이두현,김수진 기자 | 댓글: 292개 |



'김성회'라는 이름은 이제 게임업계 안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김성회 크리에이터는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디아블로 이모탈', '로스트아크' 이슈를 속 시원하게 풀어주며 이름을 알렸고, '빚투' 영상을 통해 게임업계의 뒷면을 들춰냈다. 최근 게임이용장애 이슈에서도 그만의 목소리로 게이머들을 마음을 속시원하게 풀어냈다. 최근까지도 쉼 없이 달려온 김성회 크리에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글: 이두현 기자
사진: 김수진 기자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화 이슈가 불거진 이후로 게임업계의 메인탱커로 활약했다.

= 딴에는 ‘딜탱’이 다 될 줄 알고 탱커를 자처했다. 그런데 막상 활동해보니 그렇지 않더라. 진짜 탱커는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과 같이 권력을 가진 친게임 정치인들이다. 나 같은 유튜버는 '딜러'라고 봐야 한다. 앞선 사람들이 든든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면, 딜러들이 불합리하게 게이머를 핍박하는 이들에게 그나마 안심하고 반격할 수 있다.

그러면 게이머분들은 무엇이냐? 게이머는 '힐러'더라. 딜러들은 작은 위협에도 정신이 갈려 나간다. 나만 해도 무엇을 얻자고 이렇게까지 위험한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나 허무함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보복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질 때도 많다. 처자식도 있으니 공포감은 배가 된다. 니체가 그러지 않았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고. 디아블로와 싸우다 디아블로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는 우리 ‘블빠’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나도 괴물, 디아블로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악몽도 자주 꾸고 탈모도 심해졌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응원해주는 게이머가 있어서다. 빈말이 아니다. 난 시청자에게 후원이나 오프라인 시위 같은 부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G식백과에 와서 '좋댓구'로 응원만 해주셔도 ‘나 혼자 아무도 안 알아주는 뻘짓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라고 안도감을 느낀다. 아, 좋댓구는 좋아요 댓글 구독알림의 줄임말이다. 앞으로도 좋댓구 응원을 부탁드린다. 유튜버들에게 비빌 언덕은 오로지 게이머들뿐이다.




탈모가 심해지다니... 개인적으로 G식백과 영상 중, 셧다운제 발의를 후회한다는 김세연 의원의 양심고백이 인상적이었다. 김세연 의원이 다른 간담회 자리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영상으로 인증한 건 의미가 남다르다.

= 이전까지 난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철저히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한번 뱉은 말은 자기 권위와 엮인 이권 때문에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어쩌면 나도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국회의원의 피상적인 단면만 생각했을 수 있다. 뻔뻔한 사람들이라고.

그런데 김세연 의원의 양심고백을 듣고서 '그들(국회의원)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번복하고 후회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애당초 셧다운제를 지지했다는 거 자체가 게이머들에게 중죄를 지은 거라 낙인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양심고백을 '고작 말뿐인 사과 한마디'라고 폄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 정치인이 많다. 끝까지 인지부조화에 빠져 셧다운제는 옳은 결정이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사람들. 그들과 비교하면 김세연 의원은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고 본다. 그를 통해 셧다운제가 철회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나 같이 게임악법에 저항하는 유튜버들이 있고, 그 유튜버 뒤에는 수많은 게이머가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도 알아야 한다. 유튜버와 게이머도 국민이다. 셧다운제 같은 악법을 함부로 밀어붙였다간 정치인생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느끼게끔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셧다운제 공동발의 의원 중 처음으로 양심고백을 한 김세연 의원에게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세연 의원이 입장을 재번복할 때, 그때 다시 비판해도 늦지 않다.

게이머들은 좌파/우파 이념 논리에 빠지지 말고, 게이머에게 무엇이 이득인지를 봐야 한다. 게임이론 중에 '팃포탯'이라는 게 있다. 배반자는 철저히 응징하고, 반성하면 다시 손을 잡는 ‘팃포탯’ 방식은 항상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 입증되어 있다. 정치인이 게이머를 지지하면 손잡고, 그들이 배반하면 우리도 응징하면 된다. 모든 국민이 그렇듯, 게이머의 삶도 결코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덧붙여 300인의 국회의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G식백과는 당신들에게 언제든 열려 있다. 언제든 게이머들을 지지할 의향이 있다면, 핍박받는 게임문화를 도와줄 의사가 있다면, 연락을 달라. 신념이건 비즈니스 건 관계없다. 진심만 확인된다면 당신들은 G식백과를 통해 게이머분들과 손잡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지역구와 비례대표, 초선과 중진, 누구든 좋다.


김성회의 게임 인생이 궁금하다.

= 첫 기억은 다섯 살 때 문방구 앞에서 오락하던 거다. 재믹스부터 슈퍼패미콤까지 각종 콘솔 기기를 가지고 놀았다. 그때부터 게임 그 자체를 사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대부분 집안 분위기가 그렇듯이 나도 집에서는 게임을 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세운상가에서 5인치짜리 흑백티비를 사서 부모님이 주무시면 방 안에서 몰래 밤을 새워서 게임 했다. 슈퍼패미콤으로 파이널판타지, 드래곤퀘스트 등 RPG를 많이 했는데 인터넷은커녕 공략본도 없던 시절이라 손전등으로 일어 사전 찾아가며 했다. 그때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그러다 아예 일어일문학과를 갔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게임판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건 단연 일본 게임이었고 제대로 게임을 공부하기 위해선 일본어가 필수라고 여겨지던 때였으니까. 휴학하고 게임 월간지였던 '게임챔프(게임파워)' 객원 기자를 했었다. 마감이 가까이 올 때마다 밤을 새워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몸이 엄청 힘들었을 시절인데 게임에 대한 즐거움 하나로 글을 썼다. 요즘에는 기자와 댓글이나 이메일로 소통할 수 있지 않나? 그때는 엽서였다. 내가 쓴 글에 대한 의견을 한 달 뒤에 엽서로 받을 때였다. 아련한 추억이다.

그 시절 생각나는 기획기사로는 '자음으로 웃지 말고 모음으로 울지 말자'가 있다. ㅋㅋㅋ하며 웃지 말고 ㅠㅠ하며 울지 말자는 기획기사다. 그때는 그게 한글 파괴라고 여겼다. 나름 기자랍시고 한글 파괴를 막아야 한다 생각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가 어린 꼰대라고 느껴져서 아직도 이불킥을 한다. 지금의 나는, 언어는 엄숙한 법률이 아니라 즐거운 소통 도구라 생각한다.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으며 그런 언어유희가 언어를 더욱 유용하고 재밌는 도구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게임잡지 기자 시절을 더 생각하면... 끔찍하게 불편했다. 그 당시에 아케이드 게임 공략 기사를 쓰려면, 세운상가에 가서 기판을 대여해 와서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고, 그 테이프를 MAC과 연결해서 한 프레임씩 조그셔틀 다이얼로 넘기면서 스크린샷을 저장했다. 한번은 녹화 버튼이 안 눌러졌다는 것도 모른 채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한 적이 있다. 당연히 세이브 기능도 없는지라 기사 펑크 내고 군대 가버릴 생각까지 하고 그랬다.




= 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를 하던 중 '아스트로 레인저'라는 게임의 채보 제작 알바가 들어왔다. 조PD의 'HOLD THE LINE'이라는 곡이었는데, 음원 담당자가 너무 만족했다. 채보 담당 기획자로 아예 입사하게 됐고 게임개발자의 삶이 시작됐다. 아스트로 레인저의 채보 제작은 재밌었지만 임금 체불을 당하기도 하는 등 사회의 쓴맛도 봤다. 다음 회사에서도 월급 + 5년 치 퇴직금도 못 받아 사회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사회 비판적인 지금의 시각은 그 당시의 고통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스마일게이트에서 '파이팅스타'라는 난투형 대전게임을 만들었다. 가장 재밌게 게임을 만들던 시기다. 개인적으로 '스트리트 파이터'나 '버추어 파이터'와 같은 대전격투 게임 매니아이기도 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BM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기획자는 일단 재미만 생각하며 게임개발에 몰두해도 되던 시기였다. 아쉽게도 CBT 이후 프로젝트가 접히긴 했지만. 그 시절 이후 점점 게임판에서 상업성이 노골화되어 가며 게임개발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거 같다. 처음으로 출퇴근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게임이 일로 느껴졌다.


미련 없이 방송으로 직종을 변경했고, 결과적으론 대성공이었다. 지금이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고, 가장 행복하다. 일도 일이지만 훨씬 더 중요한 건 가족이다. 게임개발자 시절엔 주말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던 딸과 이제는 매일 같이 놀아주며 집에서 일한다. 당연히 와이프도 훨씬 더 행복해졌다.


어떻게 전업 방송인의 길로 가게 됐는지 궁금한데.

= 게임개발자로서 4~5년 차 즈음이었다. 당시 온게임넷에 '게임정보상황실GP'라는 게임정보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출연자 중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급히 불참하게 되면서, 몇 다리를 건너 내게 연락이 왔다. 대타에 대타로 거의 준비도 없이 방송국으로 불려갔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방송이 끝나자 PD가 "다음 주에 또 같이하시죠"라더라. 그렇게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한 달 뒤 아예 ‘더 테스터’라는 독립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고정 출연자가 됐다. 기고만장해서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다. 방송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몰랐던 철부지였다. 시청자들은 내가 속 시원하게 말한다고, 개발자가 저런 매운 발언도 한다고 좋아해 줬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였다.

정제되지 않은 개인 생각을 게임의 진리인 양 신나서 이야기해댔다. 당시 어리석은 내 비판의 당사자가 된 게임의 개발자분들에게 깊은 송구함을 느끼고 있다. 시간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크게 후회하고 있다. ‘더닝 크루거’ 그래프처럼,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를 정도로 부족했기에 함부로 타인의 결과물을 쉽게 재단하고 평가해 댔다. 그 반성과 후회가 지금 G식백과에서도 게임리뷰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 방송 커리어도 없던 나를 오랜 기간 출연시켜주신 온게임넷(OGN)에게는 아직도 깊이 감사 드리고 있다. OGN은 아직도 방송인으로서의 내게 '마음의 고향'이다.


항상 느끼는 건데, 발음이 참 좋다.

= 딱히 발음 연습은 안 한다. 다만, 내 말을 누군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걸 싫어한다. 오해 없이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또박또박 말하고, 대본의 어휘 선택도 곱씹으면서 신중하게 한다. 중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게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져 설명충이란 이야기도 듣는다.


유튜버로서의 김성회가 궁금하다. 이미 레드오션이라 여겼을 때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 유튜브에 올인할 때, 3년 이내에 구독자 15만 명을 달성하자는 게 첫 목표였다. 그런데 마침 시기가 좋았다. '디아블로 이모탈'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될 때에 내 영상도 터졌다. 그 영상 하나로 구독자 5만 명을 넘겼다. 이어서 '로스트아크' 이야기를 다룬 것도 반응이 좋았다. 결과적으로 블리자드 영상 2개와 로스트아크 영상 1개로 3달 만에 구독자 15만 명을 넘겼다.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신규 유튜버를 위한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가 이미 레드오션이란 이야기는 유명하다. 틈새를 찾더라도 선발주자와 터줏대감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틈새를 찾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 신규 유튜버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껍질을 깨야 한다. '꾸준히'라는 말은 유튜브에서 의미가 없다. 영상 업로드가 더디더라도, 갈고 닦아서 한 번에 터트리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 역시 한 번에 터트리는 것으로 유튜버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방법은 그랬다. 그러던 중 주전자닷컴 사태와 게임이용장애 질병화 사태가 터졌고 난 국회로 돌진했다.




국회 돌진은 추진력이 대단했다.

= 합당한 이유 없이 그저 편견에 매몰되어 샌드백 치듯 게임을 때려 대는 자들이 싫었다. '누군가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면, 싫어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 줘라'라는 대사를 참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게임’을 이유 없이 싫어하는 자들이 가장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하고 싶었다. 그게 국회 돌진이었다.

내 힘으론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니, 권력자들을 설득해 ‘진짜 저항’을 하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실질적인 방법으로, 게임을 싫어하는 인간들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고 싶었다. 유튜버에겐 스피커 역할이 본분인 건 맞지만, 뻔뻔한 그들은 그저 귀를 막아버리고 스피커들의 절규를 무시해 버린다.

귀를 막은 손을 ‘힘으로’ 떼내기 위해 정치인이라는 힘을 빌려야 했다. 나는 대단히 게으른 성격이지만, 그때만큼은 스스로 놀랄 만큼 부지런했다. 나의 중2병이 도리어 에너지가 됐다. 나의 이런 철 없음에 장모님과 와이프는 눈물짓는다. 가족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고, 30개월 된 딸에게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청자들에게 힘을 얻는다.


계속해 게임이용장애 이슈로만 영상을 만들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비수기에 접어들었는데, 앞으로 무엇을 할 건가?

=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업계와 시장을 바라봤다. 당분간은 칭찬과 발굴 위주로 콘텐츠의 비중을 조금씩 높여볼 예정이다. 아직도 게임 본연의 재미를 위해 어렵지만 즐겁게 개발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을 찾아내 양지로 올려 드리고 싶다. 게이머가 아직 알아보지 못한 보석을 진흙 속에서 꺼내어 보여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렇다고 순한 맛으로 노선 변경하는 건 절대 아니다. 안티 게임세력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매울 것이다.

▲ "게이머가 아직 알아보지 못한 보석을 진흙 속에서 꺼내어 보여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유튜브 수입이 궁금한데.

= 한때 유튜버 수익 공개가 유행이었는데 부작용이 드러나서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개발자 시절보다는 여유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여러 명의 편집자, 취재원 등 고정비용이 많이 나가고, 가끔 ‘노란 딱지’라 불리는 영상 수익 창출 불가판정이 뜨기라도 하면 휘청휘청 거린다. 구독자 숫자로 얼추 수입을 추산하는 방법도 돌던데, 현실과 아주 다르다. 구독자가 같아도 수입은 천차만별이고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G식백과는 평균 조회 수는 구독자 수보다 조금 더 나오는 편이지만 영상 업로드 주기가 워낙 더디기 때문에 ‘기대보다는’ 그리 높지 않다.

때문에 간혹 매출 위주의 게임과 관련된 행사나 광고를 받을 때도 있다. ‘가장의 무게’라고 되뇌어 보지만 그래도 ‘상업적 순결성’을 원하는 분들의 시선이 의식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한 가지 원칙만은 철저히 지키고 있다. “돈을 받았으면 돈 받은 티를 내자”. 홍보성 행사 멘트나 영상이, ‘개발자 출신 게임 유튜버’의 전문적인 견해로 오해되는 상황은 결코 만들지 않으려 한다. 광고는 항상 ‘자본주의적 상황’임을 시청자나 관객분들께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게임사를 벗어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면?

= 게임회사에서 일할 땐,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도, 그래도 다 ‘게임인’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묶여 있다. 그런데 그 테두리 밖으로 한 걸음만 나와도 많이 다르더라. 한 정부 기관의 민간지원 사업 선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중에 장애인과 노년층을 위한 기능성 게임 제작 지원 사업이었다. 심사위원 중에서는 내가 가장 어렸다. 그런데, 유명 대학의 교수를 비롯해 나름 각 분야에서 방귀 좀 뀌던 사람들이 위원으로 있었는데 심사 대상이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이런 말들을 서로 하더라.

"요즘 세상 좋아졌네. 고작 전자오락 따위로 정부 지원금씩이나 타 먹으려 들고…"

"고작 전자오락 따위" 개인 생각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저급한 비아냥을 공적인 자리에서 서로 웃으며 농담처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게이머로서 크게 불쾌했다. 세상은 점점 빨리 발전해 가지만, 유독 게임에 대한 ‘편견의 시계’만큼은 더디게 움직인다. 가끔은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말은 아마 틀림없겠지만, 그래도 이 편견과 핍박의 불쾌함에 적응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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