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브 온라인과 행복의 공식, CCP '힐마 페터슨' CEO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43개 |




온라인 게임은 많다. 아마 당장 생각나는 온라인 게임만 손에 꼽아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게임들이 모두 다르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테마가 다르며, 이색적인 경험을 게이머에게 선사한다. 비슷한 컨셉과 비슷한 시스템으로는 도태되기 마련이니 온라인 게임들도 저마다 생존의 길을 찾은 것일 테다.

하지만 트렌드는 있다. 더 쉬운 게임, 더 편한 게임. 수년간 온라인 게임 시장을 관통한 트렌드다. 많은 게이머가 찾아야만 살아남는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편의성의 강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늘날 새로이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시키는대로만 잘 해도 중간은 가며 때로는 컴퓨터가 알아서 게임을 플레이해주는 경우도 있을 지경이다.

반면, 최초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골수 게이머들의 힘으로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는 게임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임이 바로 아이슬란드의 개발사 CCP가 개발한 '이브 온라인'이다. 레벨이 없고, 내 캐릭터보다 각종 지표를 보는 시간이 더 길며, 뭔가를 만들거나 성장시키려면 며칠씩이나 시간이 걸린다. 서버는 전 세계가 하나의 서버를 사용하며, 공간적 배경인 맵은 수천개의 성계로 이루어진 광활한 우주다.

CCP는 서비스 초기부터 지금까지 트렌드보다는 자신들의 개발 철학을 고수해왔고, 이브 온라인은 지금도 수많은 게이머들을 유지한 채 성공적인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다. 그 덕일까? CCP의 CEO인 '힐마 페터슨(Hilmar Veigar Pétursson)'은 2018년, 서울국제경제자문단인 'SIBAC'의 자문위원으로 선정되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2019년. SIBAC 2019 총회를 맞이해 한국을 방문한 힐마 페터슨 CEO를 직접 만나 보았다.



▲ CCP '힐마 페터슨(Hilmar Veigar Pétursson)' CEO


Q. 만나서 반갑다. 한국에는 언제 도착한 건가?

화요일에 입국했다. 바로 전날까지 중국에 있다가 입국했다.


Q. 꽤 피곤한 일정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처음 온 것인가?

나는 이브 온라인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걸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피곤해도 상관없다.(웃음) 한국에는 2015년에 처음 왔었고, 작년에 한 번 더 왔었다. 올해로 세번째 방문이다.


Q. 작년에 '사이백(SIBAC)' 포럼에 자문 의원으로 선정되어 서울시 도시개발에 대해 자문했다. 사이백 활동은 어떤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포럼 자체도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서울시와 서울시장도 세계의 전문가들의 견해를 여러가지 관점에서 흥미롭게 해석한다. 또한, 나도 사이백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새로 배워가고 있다.


Q. 게임 개발자가 도시 개발 자문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이색적이다. 게임 개발과 도시 개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방법론적 측면이 아닌, 다소 개념적인 면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다. 도시와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공통점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다. 게임 내 세계를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과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까?

우리는 이브 온라인을 개발할 때 '행복의 공식'을 고려했다. 사람이 언제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공식인데, 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사랑할 수 있는 것', '현재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마지막으로 '앞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늘 게임을 업데이트할 때 이 점을 고려한다.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영역을 만들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며, 이들이 그렇게 함으로서 미래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

실존하는 도시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그 도시에서의 삶이 개개인의 인생에 많은 선택지를 열어줄 수 있어야 한다.



▲ 온라인 게임의 생태와 실존 도시는 유사점이 많다.

사이백에서 내가 발표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인간 사이의 교류'다. 이브 온라인이 16년이란 세월 동안 서비스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브 온라인의 세계를 탐험하는 게이머 하나하나가 파편화되어있지 않고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녹아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브 온라인의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때로는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브 온라인이 인간 관계를 도탑게 하고, 모르던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되어주는 점을 인지한 후, 이를 더욱 원활히 이뤄지게 하게끔 노력했다.

초점을 다시 실존하는 도시로 돌려보자. 오늘날 많은 국가의 인프라가 도시 위주로 만들어지면서, 도시의 인구 밀집도도 덩달아 증가했다. 하지만 리서치에 따르면 도시의 인구는 더욱 늘어났을지언정, 친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은 늘어났지만, 행복 지수는 내려간 셈이다. 나는 여기서 이브 온라인의 구조가 실제 도시 구성원들의 행복을 높여주는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수요일에는 국회에 초대되어 게임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입장에서 한국 게임 산업은 너무나 큰 산업이고, 성공적인 산업이다. 자국인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CCP가 위치한 아이슬란드와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힘들 정도로 거대하다. 아이슬란드는 게임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브 온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고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꽤 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이라는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회 전반에 미치는 게임의 파급력이 굉장히 커졌기 때문이다. 게임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딱히 부정적인 분위기도 생기지 않는다. 해당 행사에서는 '게임'이 사회 전반에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 9월 18일, 국회 초청 당시의 힐마 페터슨 CEO


Q. 아이슬란드의 게임 산업이 매우 작은 규모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브 온라인과 같은 게임을 만들 생각을 했는가?

97년도에 CCP를 만들어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 때,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있었다. 세계적 인기를 누린 온라인 게임들과 SF 영화, 그리고 옛 텍스트 게임들에서 영감을 얻었고,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다. 다만, 만드는 과정은 말대로 쉽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산업 규모가 작아 레퍼런스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이브 온라인의 기획 자체가 기존에는 없었던 다양한 실험적 시도가 더해진 작품이다. 특히 '하나의 큰 서버'를 만드는게 쉽지 않았다.


Q. 작년 9월, '펄어비스'와의 협업 기사를 보고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이후 개발 방향이나 사내 기조 등의 변화는 없는가?

내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다. 펄어비스와 CCP의 협업은 지식 공유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개발 기조나 파이프라인 등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Q. 혹시 금년도 지스타에 부스를 꾸려 출전할 계획인가?

개인적으로는 지스타에 방문할 계획이다.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부스를 꾸려서 출전할지는 아직 논의중인 사안이라 아직 말씀드릴 수가 없다.


Q. 과거 '더스트 514'이나 VR 게임 '이브 발키리', 그리고 FPS인 '프로젝트 아틀라스' 등 CCP는 이브 온라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스핀오프 작품들을 시도해왔다. CCP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브 온라인'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궁극적인 SF 게임 세계관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이브 온라인의 IP를 이용해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는 것도 모두 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며, 쉽지 않지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게임사가 자사의 대표 게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큰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제 게임 시장에서 매우 일반적인 일이며, 많은 게임사가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이렇게 게임 세계관 확장을 꿈꾼 것은 우리가 최초다.(웃음)



▲ 이브 세계관 기반의 슈터 게임이었던 '더스트 514'


Q. 연내로 이브 온라인의 한국어화가 예정되어 있다. 서비스가 시작되면 굉장히 많은 새로운 한국 게이머가 이브 온라인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한국 게이머가 '이브 온라인'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는가?

게임 산업에서 한국의 게이머들은 워낙 전설적인 존재라 사실 조금은 부끄럽다.(웃음) 나도 젊은 시절에 스타크래프트를 꽤 플레이했고, 한국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굉장히 인상깊게 봤었다. 한국어화는 펄어비스의 도움을 받아 원활히 진행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한국 게이머들이 이브 온라인에서 굉장히 독특한 구성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이브 온라인은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게임인 만큼, 한국인들의 모임이 어떤 플레이 양상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Q. 많은 한국 게이머들이 과거에도 이브 온라인 플레이를 시도했지만 소수만 남아 있는 이유는 이브 온라인 특유의 진입 장벽 때문이다. 이를 낮춰 신규 플레이어의 유입을 촉진할 계획은 따로 없는가?

이브 온라인의 초반 난이도는 세계적으로 매우 악명이 높고 우리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는 '어려운 게임'이라는 이 타이틀에 대해 일종의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이브 온라인은 기형적으로 초반이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그 때부터는 게임 진행이 꽤 쉬워지는 편이다.

우리 또한 이런 구조가 썩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밸런스 조절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초반 난이도의 완화이며, 다른 하나는 최종 난이도의 상승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지만, 궤도에 오르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게임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 이브 온라인의 난이도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Q. 한국어화가 이뤄지면 많은 한국 게이머들이 합류하겠지만, 그 전에도 영어로 꾸준히 이브 온라인을 플레이해온 한국 게이머들이 있다. 오랜 기간 이브 온라인을 플레이해준 이들을 위해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너무나 감사하다. 진짜로. 정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나도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입장에서, 외국어로 된 게임을 열정적으로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플레이해준 것에 감사드리고, 이분들 덕분에 앞으로 진입할 한국 게이머분들이 더욱 쉽게 이브 온라인의 세계에 적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언제나 감사드리며, 한국어화가 이뤄지고 나서는 지금보다 조금 더 편하게 이브 온라인을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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