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원한 레전드, 그리고 '연습생'... T1 임요환이 전하는 안부

인터뷰 | 석준규 기자 | 댓글: 82개 |





'페이커가 있기 전, 임요환이 있었다'

종목을 넘나들며 십수 년째 이스포츠에서 높은 성적을 거둬 온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신주영, '쌈장' 이기석, 김태형, 봉준구 등 태동기를 알린 1세대에 이어, 밀레니엄 시대의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한국에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을 다져놓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던 이스포츠 스타들은 금세 미디어를 장악하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돌풍이 됐다. 덕분에 한국의 PC방 사업은 붐을 일으켰고, 스타크래프트는 민속 놀이가 되었고, 비로소 프로 게이머는 많은 청춘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거듭났다.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이자 현 포커 플레이어 및 방송인 임요환은 수많은 초창기 프로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무척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팬들이 그에게 부여한 의미는 단순히 커리어 뿐만이 아닌, 현대 이스포츠의 '길을 깔아 놓았다'는 것에 있다. 오랜 기간 각종 방송과 문화 행사에 출연하고 공군 게임단 창단의 중심이 되며 생소했던 이스포츠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홍보해냈음은 물론, 2004년에는 SK 텔레콤과 함께 T1을 창단해 탄탄한 기업 게임단의 기틀을 제시했다. 이스포츠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이 모든 기여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란 직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볍고, 세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소수 문화의 산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준수한 성적의 프로 포커 플레이어이자 T1의 방송인, 그리고 두 딸의 아버지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임요환. 비시즌을 맞아 다양한 인물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인벤 글로벌에서는, 재미있는 방송과 몸조리에 힘쓰고 있는 임요환과 간단한 텍스트 인터뷰를 나눌 수 있었다. 잘 지내고 계셨나요, 레전드?







▲ 낮은 곳에 강림하신 레전드
(사진 출처: 아내 김가연 인스타그램)


안녕하세요! 간만에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로 포커 플레이어 겸 방송인 임요환입니다. 반갑습니다!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요새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시나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10주 간 집에서 수감 생활을 하듯 박혀 있었어요. 10주 간 할 것이 없어서 리그오브레전드를 시작했죠. 5월부터 일주일 간 청담에 차려놓은 펍에 출근했는데, 지금은 다시 재수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즐거워하는 막내 따님분께 깔려 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가장의 무게도 많이 느끼시는 중인가요?

오직 가장만이 알 수 있는 무게지요...행복의 무게.




▲ 삶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
(사진 출처: 임요환 페이스북, 사생활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습니다.)


최근 T1 스트리머로서 방송을 열심히 하시는데요, 연습생이라고 적힌 옷을 입어 화제였죠. 많은 팬들이 좋아했는데, 어떻게 입으시게 된 건가요?

나이가 있어서인지, 어떤 게임을 하든 가볍게 시작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목표가 있어야 저도 열심히 할 것 같아서, 어떤 목표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T1 시절 선수단으로서 해보지 못했었던 ‘연습생’으로 컨셉을 잡아 봤습니다.


‘연습생’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요?

가까운 목표는 골드 티어를 찍는 것이죠. 목표를 크게 잡는다면 챌린져 티어까지 가보는 것입니다.


LoL이 취향에 맞으신가요?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요?

이미 11년이 된 게임이라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지금 처음 하시는 분들이 느낄 벽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팀 게임이니까 정신 건강이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부분 정도가 어려운 점이겠네요.


T1의 선수들을 비롯한 프로들과 경기를 치르셨던 소감은 어떠셨나요?

‘똥을 치우는 쪽보다 싸는 쪽이 더 빠르면 프로도 어쩔 수 없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 '접대롤'을 즐기는 임요환


한참 열심히 활동하고 연습하는 후배 게이머들을 보면 기분이 좀 어떠신가요?

옛 추억도 떠오르고요, 한편으로는 '내가 좀 더 늦게 태어났다면 그들과 붙어 봤을텐데' 싶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흐뭇합니다!


본인을 비롯해 울프 등 SKT를 빛냈던 레전드들이 지금의 T1을 위해 크리에이터로서 복귀하고 있어요. 본인은 어떤 마음으로 소속 팀에 크리에이터 복귀를 결정했으며, 이러한 현상에 대해 어떤 감상이 드시나요?

T1이 단순히 하나의 팀을 넘어 점차 브랜드화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스포츠가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T1이었던 사람 중에 한 명으로서, 이러한 도약에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페이커’ 이상혁과의 만남 역시 화제였죠. ‘창조주와 구단주의 만남’이라고 팬들이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어요. 임요환이 본 페이커는 어땠나요?

아직까지도 때 묻지 않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밖에 모르고, 지면 화가 나고... 그 위치까지 올라가서도 그런 마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와 게임 안 하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페이커는 여러 의미로 이스포츠의 전설을 현재 진행형으로 써내려가고 있기도 해요. 이런 후배를 보면 특별한 감정이 들 법도 한데요.

그 위치에서 가지고 있을 사명감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많은 팬들한테 사랑을 받아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죠. 저 역시 팬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아마 페이커는 그 이상이지 않을까요?


세월도 많이 흘렀죠. 본인이 선수로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 비해, 지금의 이스포츠 씬은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나요?

저는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인지라 이스포츠 씬을 많이 둘러 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전 세계에서 많은 이스포츠 팀이 생겨나며, 그 규모도 어마어마 해졌죠. 선수들 연봉까지 크게 뛰었고요. 그리고 이제는 아시안 게임의 정식 종목으로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이 시장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어떤가요? 그 당시와 지금의 자신 사이에 달라진 점이나, 여전히 같은 점이 있다면요?

여전히 같은 점은 선수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죠. 다른 점은 ‘피지컬(프로게이머)’보다 ‘뇌지컬(프로 포커 플레이어)’을 주로 쓰고 있다는 점이겠네요.




▲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본인과 함께 시작한 SKT T1이 이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스포츠 게임단이 되었어요.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제가 전성기에 쏟아 부은 노력이 이렇게 상한가가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네요, 와우! 물론 지분은 없지만요. 후배들과 T1이 앞으로도 잘 해준다면 저는 계속 기억되겠죠?(웃음)


스타크래프트 선수와 포커 선수 활동과 더불어, 각종 강연이나 시상식, 광고, 방송 출연, 청와대 행사 참석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오래 해왔죠. 본인의 이스포츠 삶에서 미련이 남아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느덧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제가 골든 마우스가 있었던가요?




▲ 임요환은 2004년 SKT를 창단, 프로리그 활성화와 이스포츠 시장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다.


자신의 이스포츠 역사에 있어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스포츠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면 그 때로 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어요. 계획 중인 활동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개인 방송을 하면서 포커 관련 활동도 열심히 해, 포커를 제 2의 이스포츠로 만들고 싶습니다.


레전드로 일컬어지는 본인과 페이커처럼, 앞으로도 수많은 어린 선수들 중에서 레전드의 호칭을 이어받는 선수가 등장하게 될 수도 있어요. 대선배로서 이러한 목표를 가진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게임을 잘 하면 프로가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부와 명성을 얻을 수도 있어요. 단, ‘레전드’가 되고 싶다면 팬들을 항상 잊지 마세요.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벤과 인터뷰를 했네요.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독자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 2019년 LCK 스프링 결승전, 후배들을 바라보는 임요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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