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 오케스트라, 그 낯선 길을 진솔히 걸어온 이야기

인터뷰 | 윤서호 기자 | 댓글: 10개 |


▲ 사진 출처 - 세종문화회관

국내에서 게임 음악 공연, 특히 오케스트라는 다소 낯선 개념이었다.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게이머들도 게임 음악으로 공연한다는 개념에 익숙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도 이제 점차 옛말이 되고 있다.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의 횟수가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공연장에서도 하나의 공연 문화로 인식하고 이를 기획, 유치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번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접 기획, 공연한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가 그 사례였다.

그러나 이는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게임 오케스트라를 알리기 위해서 분주히 노력해왔던 이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진솔 지휘자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해외 게임뿐만 아니라 국내 게임 OST를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아이머게이머 공연까지. 타이틀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게임 음악 공연을 알리기 위해 달려온 진솔 지휘자에게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그간 게임 음악 공연을 알리기 위해 걸어온 길을 물어볼 수 있었다.



▲ 진솔 지휘자


LoL 오케스트라, 기존의 벽을 깬 계기
게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세종문화회관과 KBS 교향악단도 움직였다


Q.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는 세종문화회관이 직접 기획한 공연 아닌가. 그리고 KBS 교향악단까지 참여하고. 이 공연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기획한 뒤 KBS 교향악단이 거기에 협력했고, 이후 KBS 교향악단이 나를 섭외했다. 섭외될 당시에 공연 준비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였고, 그 뒤에 가서 이것저것 조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이번 공연은 완전히 새로운 공연은 아니고 해외에서 했던 리그 오브 레전드 콘서트를 기반으로 레퍼토리가 짜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레퍼토리를 바탕으로 하되, 국악 등 국내 사정에 맞춰 일부 편곡하면서 준비해왔다.


Q. 세종문화회관과 KBS 교향악단하면 아무래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유서 깊은 이미지 아닌가. 그런데 게임 공연에 관심을 보이고, 이렇게 나섰다는 것이 놀랍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다고 보나?

KBS 교향악단은 옛날은 물론이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교향악단 중 하나 아닌가. 클래식을 대변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세종문화회관 역시도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이고. 그런 두 곳에서도 기류를 타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게임에 대해서 아직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고는 해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점차 그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더군다나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는 2021년 세종문화회관 개막 공연이었다. 원래는 다른 공연들이 앞에 있었지만, 그 공연들이 코로나19로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긴 했다. 하지만 개막 공연을 게임 오케스트라가 장식한다는 건 정말 뜻깊은 일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도 이 공연은 꼭 이때 올리겠다, 연기하지 않겠다, 물러서지 않겠다 그렇게 결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번 공연이 단순한 게임 음악 공연을 넘어서, 전통에 빛나는 두 단체가 참여한 것인 만큼 게임 매체뿐만 아니라 공중파나 여러 매체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특히 문화 콘텐츠 기자들이 많이들 놀라더라. 설마 KBS 교향악단과 세종문화회관이 게임 음악 공연을 같이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개막 공연으로까지 올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느낌이었다. SBS, JTBC, YTN 등에서도 취재를 오기도 했고. 이번 공연이 게임 그리고 게임 음악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 사진 출처 - 세종문화회관


Q. 1부에서는 국악과 협주를 선보이기도 하고, 2부에서는 펜타킬 메들리처럼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곡이 많았다. 이를 어떤 식으로 오케스트라와 녹여내도록 지휘했나? 특히 국내에선 락이나 메탈과 오케스트라의 크로스오버 공연이 드물었는데, 이를 완성도 있게 이끌어낸 과정이 궁금하다.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합창단, 보컬, 밴드, 국악단 모두 각자 준비를 미리 잘해오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 곡 프로그램에 맞게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자 여러 모로 분석하고, 준비를 정말 철저히 해오더라.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클래식 오케스트라보다는 락 오케스트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쪽 분야가 사실 좀 국내에선 낯선 분야이긴 하다. 락 쪽을 보자면 보컬과 밴드를 제외한 오케스트라와 국악 그리고 합창단 모두 익숙하지 않았을 거다. 반대로 보컬과 밴드들은 클래식 오케스트라 파트와의 협연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고. 연습에 앞서 서로 다른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것에 먼저 주력했다.

보통 공연 준비를 하면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만 하다가 당일 리허설만 공연장에서 하지 않나. 이번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계속 리허설했다. 그러면서 밴드와의 협주 사운드나 음향효과, 그런 것을 계속 음향감독들과 함께 현장에서 체크하고 또 체크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접 기획한 공연인 만큼, 그 방면에서 적극 협조해주더라. 그래서 이전보다 더욱 완성도 있는 공연이 진행됐던 것 같다.


Q. 2일 공연 마지막에 티모 모자를 쓰고 나온 것이 꽤 호응이 좋았다. 미리 기획한 건가 아니면 즉흥적으로 한 건가?

즉흥적이었다. 사실 공연 당일에는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주변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몰랐다. 그런데 같이 공연을 준비하는 KBS 교향악단 행정 담당자가 티모 모자를 쓰고 왔더라. 정말 귀엽게 잘 만들어져서 절로 손이 갔다(웃음). 그걸 쓰면 좋겠다, 싶어서 잠깐 즉석에서 빌려서 쓰고 나간 거다.

아무래도 클래식의 특성상, 조금 경직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전통을 중시하던 곳들이 아무리 이번에 파격적인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틀을 모두 깨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요즘은 코로나 시국 아닌가. 함성 고함도 못 지르고 마스크도 무조건 써야 하고, 거기다가 게이머들 특성상 내향적인 분도 많고.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 확 끌어올리지는 못하더라도 분위기를 풀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코스프레한 분도 많아서 분위기가 트이고 좋긴 했는데, 클래식 연주자 특히 KBS 교향악단이면, 딱 갖춰진 복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지 않았나.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딛어본 것이라고 봐주시면 되겠다. 주변에서는 2일 마지막에 쓴 게 반응이 좋아서 3일 공연엔 내내 쓰면 안되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3일 공연 마지막 곡에서 풀로 썼는데, 생각보다 더웠다.



▲ 사진 출처 - 세종문화회관



▲ 현장 반응이 좋아서 3일 공연 마지막 곡엔 계속 쓰고 했다고


Q. 3일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공연 외에도 메가박스에서 공연을 상연하지 않았나. 굉장히 큰 프로젝트인데, 이를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 궁금하다

해당 분야는 감독들과 PD가 준비한 영역이라서, 그 준비 과정은 전해들은 것 정도만 안다. 메가박스와 사전협업을 한 뒤에는 메가박스 송출팀과 음향 감독도 따로 오고, 세종문화회관에서도 현장에 다 별도로 배치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공연 준비 과정이 정말 복잡했다. 현장 영상 송출팀, 메가박스 송출팀, 홀 음향팀, 메가박스 음향팀 등, 여러 팀들이 따로따로 배치되어있는데 또 이 팀들이 각자 협업은 해야 하지 않나.

이런 굉장히 큰 프로젝트는 결국 감독 및 현장 사람들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치면서 완성이 된다. 관객과의 소통은 물론이고. 사실 클래식에서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협연만 해도 여러 가지로 조율할 게 많다. 그런데 여기에 밴드, 국악까지 섞이고 메가박스 상영까지 왔으니. 더군다나 합창단에는 곡 분위기상 잘 안 쓰던 창법을 일부 파트에서 요구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조율할 게 많았다.

사실 이런 걸 시도한다는 게 쉽지 않다. 예산은 물론이고 이렇게 각 팀이 조율하고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어지간히 호응이 없으면 시도조차 못한다. 이번 공연이 부족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이번이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이걸 시작으로 더욱 발전해나가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러니 게이머 여러분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호응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리허설을 모두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하면서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Q. 게다가 이번 공연은 한 차례 연기된 것 아니었나. 준비하는 게 더욱 힘들었을 것 같은데

세종문화회관엔 1년에 수백 개의 공연을 진행하지 않나. 일단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는 진행할 의향은 있었으니 연기된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준비는 하긴 했다. 그것이 쭉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사실 코로나19 시국이라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일지, 연기일지, 언제할지.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이건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도 다 그랬던 걸로 안다.

기억하기로는 백신 이런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다시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때도 확신은 없었다. 이렇게 올 수 있던 건 세종문화회관 내에서 기획하신 분들이 내부 회의에서 계속 주장하고, 어필하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해외 게임사나 공연 업체들 사정도 들어봤는데, 해외도 오프라인 행사는 안 하려고 하고 있더라. 그나마 한다면 온라인 송출 형태로 준비하고 있고. 아무래도 코로나19 시국이다보니 자연스러운 흐름일 거다.

그런 와중에 결단을 내린 세종문화회관과 라이엇 게임즈, KBS 교향악단 및 공연자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또 세종문화회관 관련 확진자 소식이 아직 안 들리고 있는데, 이는 현장에서 방역대책을 위해 분주하게 노력한 스태프들과 지침에 잘 따라준 관객 여러분들 덕분인 것 같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Q. 이번 공연의 의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저력을 새롭게 선보인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간 우리 게이머끼리만 게임 음악은 예술이다, 저력 있다 말하던 것이 이젠 다른 계층에게도 공유되는 그런 계기가 아닐까.

이번 공연은 공연계에서도 꽤 반응이 있었다. 게임에 관심이 없던 공연 업계 사람들도,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어려운 시국에 해냈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고 하더라. 아울러서 그런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만한 힘이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고 하고. 아티스트들도 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커다란 무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 힘을 얻었다고 많이들 그러더라.


클래식 지휘자, 그리고 '게이머'
게임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시기를 만나 꽃피다




Q. 원래 클래식 지휘자로 활동하지 않았나. 그런데 게임 음악 공연 지휘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다면?

그간 국내에는 게임 음악 공연 지휘라는 분야가 따로 없었고, 오케스트라나 앙상블도 비전문적으로 이루어져왔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클래식 음악인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시도는 했지만, 그걸 누군가가 나서고 뜻을 한 데 모아서 큰 공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끔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 거창한 걸 내세우기보다는, 사실 나 자신이 옛날부터 게임과 서브컬쳐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게임을 했다. 가장 처음, 게임다운 게임을 했다고 기억하는 게 포가튼 사가였고 그 뒤로 정말 많은 게임을 해왔던 것 같다.

일례를 들자면...오락실에서 게임 잘 못하니까 동전이 금방 다 떨어졌는데, 그땐 괜히 게임오버된 자리에 앉아서 스틱만 움직여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PC방이 나왔을 땐 정말 혁명이었다. 천 원에 한 시간 동안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니! 그러면서도 틈틈이 용돈 모아서 게임잡지 부록 CD도 모으고, 영웅전설하고 이스 한정판을 구하겠다고 돈모으기도 하는 등등. 어린 시절엔 월정액 게임을 하긴 좀 애매한 사정이었으니 무료 베타테스트는 다 신청해보고, 오픈베타 때 죽어라고 하고 그랬다. 포트리스2, 카트라이더, 크레이지아케이드 등은 정말 많이 했다.

최근에도 가끔씩 리그 오브 레전드 와일드 리프트를 한다. PC 버전보다 그래픽도 깔끔하고 잘 만들었더라. 조작감도 좋고. 아무튼 예전부터 게임이나 만화를 좋아하고, 파고드는 걸 좋아했다.

그걸 드러내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고. 클래식과 접목하면 더 신선하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 또래 세대가 게임에 대해 오픈된 세대고, 여러 시도를 받아들이고 해볼 그런 세대니까. 자연스럽게 시도하겠다고 나서게 된 것 같다.


Q. 클래식 지휘자가 갑자기 게임 음악 관련 일, 특히 지휘를 한다고 할 때 주위에 반대하거나 우려가 심하지 않았나 궁금하다.

사실 클래식 음악 지휘자로서 공연을 할 때도 말러 등 남들이 잘 하지 않은 걸 주로 해왔다.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딱히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게임을 모르는 어른들은 너희 세대엔 그런 걸 하겠지, 라는 식으로 무관심했다. 다만 "클래식하는데 왜 굳이" 이런 분위기랄까.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접목시킬 때 그런 분위기에 굉장히 민감해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아마 사회적 인식이 그렇게 잡혀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클래식하면 떠올리는 무언가 근엄하고, 우아하면서 정통파적인 이미지. 그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반대로 게임은 무언가 새롭지 않나. 젊은 문화에 때로는 뭐 나쁜 그런 쪽으로 보지 않았나. 그러니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더 어려운 그런 인식이었을 거다. 사실 게임이 엄연히 문화, 여가의 일부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게임하면 나쁜 것, 이런 인식이 아직도 남아있고.

우리가 즐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감받지 못하는 게 우리 세대가 힘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틀을 깨고, 폭을 좀 더 넓혀보고 싶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같이 즐길 수 있다고 말이다.


Q. 가장 처음에 했던 게임 공연이 어떤 공연이었나?

2017년 1월에 회사를 만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 작고 소박하게, 기껏해야 카페에서 작게나마 하는 그런 게임 음악 콘서트를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웅장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 그냥 언젠가는 하겠지 이런 정도 느낌이었다.

어떤 게임 공연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이런저런 게임 음악을 편곡해서 앙상블 형태로 무료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소수의 인원을 모아두고 패밀리 콘서트처럼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몰라서 고생을 했다. 게임 음악을 공연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마음대로 연주를 해도 될지, 허락을 해주는지 안 해주는지 등. 음악 저작권 외에도 공연 저작권이 또 따로 있다보니 그것도 확인해봐야 하니 말이다. 예산 문제는 당연히 있었고.

더군다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어디까지 오픈하고 준비해야 괄시를 안 받고 또 게이머들에게는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고민도 많았다. 같이 하는 분들도 생각이 다 달라서 의견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렇지만 조금씩 호응을 얻으면서 어떻게든 왔던 것 같다.




▲ 소규모 공연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진행해왔다


Q. 몇 년 사이에 대규모 게임 오케스트라 공연을 여러 차례 진행하지 않았나. 공중파 등 여러 매체에서도 주목하고 있고. 그때와 지금의 게임 음악 공연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점에서 발전했다고 보나?

기술적인 부분이나 경험치 축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공연의 규모도 커지고, 새롭게 시장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이다. 게임, 그리고 게임 음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클래식 분야에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것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러다보니 완고하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았나. 젊은 클래식인들은 다르다고 하지만, 그들만으로 이런 성과를 일구어내긴 어렵다. 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줘야 그런 추진력이 생긴다. 그리고 이번엔 그렇게 됐다. 게임 음악에 대해서 인식이 바뀌고, 그 가능성에 다들 한 발 내딛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또 게이머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지 않나 싶다. 그냥 게임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또다른 문화도 향유하는 것이니까. 여기에 게임만 즐기던 유저들이 게임 공연의 형태로 클래식을 새로이 접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 두 분야 모두에 상생하는 효과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Q. 처음부터 그렇게 게임 오케스트라에 대해 인식이 바뀌리라고는 확신할 순 없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과감히 뛰어든 이유가 있다면?

대박을 노린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좋아서 시작했고, 한 번 했으면 끝까지 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 그게 어떻게 변할지도 미지수고.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퍼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기획하고 지휘하는 콘서트를 통해 또다른 누군가가 게임 음악 공연에 관심을 가지고 그 씨앗이 퍼져가기를 바랐다. 세대가 바뀌고 있으니 점차 그렇게 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과 게임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 모든 것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둘이 대척점이 아니라, 두 문화가 어우러져서 상부상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왔고, 이게 시대적인 기류를 타고 좀 더 잘 흘러가지 않았나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전공 분야를 말씀드리자면, 클래식이다. 게임 음악이 더 좋다 이런 건 아니다. 다만 게임 음악은 게임 음악만의 특성, 매력이 있었고 거기에 관심을 가졌다. 게임 음악은 다른 음악과 다르게 게임을 하면서 무조건 듣게 되지 않나. 지금이야 옵션이 다변화됐다지만 옛날엔 그런 것도 없었고.

그 음악을 나중에 다시 들었을 때, 그때 했던 게임 속 풍경과 캐릭터, 대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험이 있지 않나. 그러면서 추억도 다시 떠올리게 되고. 그것이 게임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했고, 공연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다. 물론 즐겨듣던 게임 음악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쳐보거나 개인적으로 향유해본 경험은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 그치기보다는 그 몰입하는 경험을 더 체계적으로 내 전공에 녹여내서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오케스트라, 모두가 한 발 앞으로 내딛어야
공연도 게임처럼, 관객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Q. 이번 리그 오브 레전드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여러 게임 오케스트라를 공연하지 않았나. 특히 2020년에는 국내 게임 음악을 모은 아이머게이머 공연의 지휘를 맡기도 했고. 그 공연은 어떻게 진행하게 됐나?

아이머게이머는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주도한 캠페인이다. 나뿐만 아니라 게임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을 모아서 일종의 겜밍아웃을 하고,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자 그런 캠페인이었다. 그 마지막 무대가 게임 음악 공연이었다. '게임은 문화다'라는, 그런 테마로 선보인 것이다.

공연 기획은 오케스트라 무대를 진행하기로 결정된 그 순간부터 참여했다. 다만 게임 음악 선정이나 게임사 섭외는 내가 하진 않았다. 그쪽은 게임산업협회에서 진행해줬다. 아무래도 이런 공연은 게임사 담당자들과 만나서 조율하는 과정이 힘든데, 그걸 게임산업협회에서 주도해서 진행했다.

그간 공연을 직접 기획할 땐 자체적으로 편곡을 해왔는데, 이번엔 각 게임사의 음악 담당자들과 편곡 방향을 논의하고 작업을 했다. 보통 게임 음악 작업을 하면서 MIDI만 썼다거나, 연주에는 적합하지 않은 악보들이 나오고는 한다. 그것을 새로 오케스트라에 맞춰서 작업해나가는 과정을 이번에 여러 게임사 관계자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아마 이를 계기로 국내 게임 음악도 점차, 오케스트라 공연을 확장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Q. 게임 음악 작곡과 이를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녹여내는 과정은 다른 영역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르다. 편곡을 거쳐야 한다. 곡 자체가 물론 좋아야 하지만, 이를 오케스트라에 맞춰서 곡을 분석해보고 때에 따라서 편곡을 해야 하니 말이다. 다른 라이브도 비슷할 것이다. 게임 공연에 관심이 있다면, 라이브 공연에 맞춰 편곡을 할 수 있는 편곡자들 양성도 중요하다.

지금 플래직에서 신경쓰고 있는 분야가 그쪽이다. 게임 오케스트라 편곡자는 클래식에도 조예가 있으면서, 또 게임도 좋아해야 한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하고. 클래식 전공자하면 아무래도 좀 고고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있을 텐데, 최근에는 게임을 좋아하는 전공자들도 많다. 그런 분들이 게임 오케스트라 편곡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 국내 게임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선보인 아이머게이머 콘서트


Q. 아무래도 클래식하면 엄격, 근엄, 진지 이런 이미지 아닌가. 그런 이미지가 있다보니 다른 분야에서 손을 내밀기 어려워하고 있지 않나. 또 게임 음악에 발 담갔다가 다시 클래식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이 있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경우를 말하자면, 그냥 이미 이렇게 된 것 갈 때까지 가보자 이런 마음이다(웃음). 지금 와서 갑자기 우아한 클래식 지휘자 이렇게 어필하기도 좀 이상하고. 그렇다고 게임 전문 지휘자, 이것만 어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이제 게임은 사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해보지 않나. 그걸 하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보일 수도 있는 거고. 그걸 숨길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뭐가 됐든 이왕 할 거면, 어떤 분야에서든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좋은 콘텐츠로 갖춰서 보여주자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떤 공연이든 관객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으니 말이다.


Q. 이번에 큰 프로젝트를 마쳤는데, 앞으로 이런 공연을 해보고 싶다고 버킷리스트를 풀어본다면?

연예인들이 종종 팬미팅, 콘서트에서 화려하게 입장 퍼포먼스를 하지 않나. 하늘에서 등장하거나 혹은 지하에서 튀어나오고, 드라이아이스나 이런저런 효과도 사방팔방에서 올라오고. 그런 퍼포먼스가 가미된 콘서트를 해보고 싶다.

게임 관련 공연이니까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도 있으면 좋고. 게임의 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는 여러 콘텐츠까지 곁들여서, 관객들이 완벽히 몰입하는 그런 공연을 꿈꾸고 있다. 아마 포토존이나 그런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효과도 크지 않을까 싶다. 아마 이런 건 먼 미래의 일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 번은 해봤으면 싶다.

공연하고 싶은 음악을 선택해보라면 정말 여러 가지가 있다. 영웅전설, 창세기전,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등, 옛날 추억의 게임 음악을 모은 공연과 국산 게임 음악 공연을 해보고 싶다. 기존에 했던 공연도 좀 더 프로그램을 개선해서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고. 이런 공연을 통해서 국악이나 클래식, 그리고 게임계 모두에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싶고, 여러 가지로 추진해나가고자 한다.






▲ 지난 2017년 '컨덕트 어스' 공연처럼 팬서비스를 가미한 본격적인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고


Q. 일반적으로 게이머하면 인도어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 실제로 라이브 공연을 보기보다는 집에서 게임하는 걸 더 좋아하는 유저도 많고. 그래서 게임사나 유저 모두 이런 방향에 대해서 낯설어하지 않나 싶은데. 그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요즘은 코로나 시국에 공연을 가지 않아도 유튜브만 가더라도 공연 실황을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걸로 한 번 느껴보시고, 조금씩이라도 현장에 찾아와주셨으면 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조금 제한되니, 나중에라도 와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출발 단계다. 유저들이 공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만들고,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는 그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그 발을 우리가 내딛고 있으니, 게이머 여러분도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셨으면 한다. 그러면 조금 더 빨리, 만족스러운 공연을 선보일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라는 게 적극적으로 보고 호응과 반응이 와야, 그 다음 단계로 나설 수 있으니까.

비록 첫 시작이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직접 와서 지켜봐주시는 것이 사실 가장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공연은 관객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게임이 유저 없이 완성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찾아와주실 마음이 들도록, 앞으로도 더욱 더 발전된 공연을 선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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