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더랜드, 스타워즈같은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기 바란다"

인터뷰 | 김규만 기자 | 댓글: 2개 |


▲ 랜디 바넬(Randy Varnell) 기어박스 내러티브 디렉터

보더랜드3를 개발한 랜디 바넬 내러티브 디렉터가 IGCxGCON 2019 참가를 부산을 방문했다. 그는 처음으로 내러티브 전담 팀을 구축해 보더랜드3를 개발했던 일화를 토대로, 시리즈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구축하기 위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더랜드3는 7년만에 나온 보더랜드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처음으로 한국어 음성 더빙이 도입되는 등 국내에서도 적잖은 관심을 받은 타이틀이다. 루터 슈터라고 부르는 장르의 팬들이라면 꼭 한 번 플레이해볼만한 게임으로, 1인칭 액션은 물론 무기를 수집하는 재미 또한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보더랜드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기 수집과 액션의 재미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약간은 '약을 빤 것 같은' 스토리도 의외로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게다가 세계관의 확장을 꾀한 보더랜드3는 아예 전담 내러티브 부서를 꾸리기까지 했으니, 개발자들이 스토리 전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어박스 입사 이래 10년만에 처음으로 구성된 내러티브 전담 팀을 맡은 랜디 바넬에게 어떤 어려움은 없었는지, 강연이 끝난 이후 그를 만나 보다 더 자세한 보더랜드3 개발 비화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인터뷰 내용에 '보더랜드3'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Q.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다. 아주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하고 있다(웃음). 댈러스에서 일본에 방문했다가 바로 부산으로 왔는데, 다는 기억할 수 없지만 한국 음식을 먹어본 것만은 정말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부산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다음에도 꼭 방문하고 싶다.


Q. 보더랜드3를 개발하면서 내러티브 부서를 처음 설립했다고 밝혔다. 내러티브 부서에서는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 이제 기어박스에 다닌지 약 10년 정도 됐는데, 내러티브 부서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것은 2018년 2월이다. 보더랜드3의 개발이 절반 정도 진행되는 와중에 생겨난 것이다. 이번 강연을 통해 언급했던 것처럼 라이터들의 팀을 꾸려 개발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나는 그런 팀을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까지 내가 맡은 최고의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더랜드3 속 스토리 분량을 이야기하자면 대본만 888페이지에 달한다. 대략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의 4배 분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녹음된 대사만 61,000줄에 달하고, 단어는 238,000개가 들어간다. 왕좌의 게임 소설책을 예로 들면 첫 권이 285,000자 정도 된다. 조지 RR 마틴의 소설책 한 권을 게임에 담은 것이다.

그중에 메인스토리의 분량은 1/3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우리가 주로 작업한 것은 다양한 전투 대화같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게임 도중 만나는 적이 "무슨 일이야?"라고 내뱉는 그런 대사들만 4,000여 개가 들어갔다. 덕분에 라이터들은 적이 "여기 누가 있어"라는 대사를 캐릭터별로 40~50개씩 따로 써야 했다. 이런 작업들은 절대 혼자서 다 할 수 없는 분량이다. 강연에서도 말했지만 라이터들이 과로로 인해 고통받지 않고, 업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협업할 수 있는 부서를 꾸리게 됐다.


Q. 새로운 부서를 처음 이끌어 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사실, 모든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하면 언제나 도전을 마주하게 된다. 구성원 모두가 바라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꿈을 현실화하는 것이 우리의 일 아닌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모두의 머리에서 나오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난다는 것이었다. 아무 아이디어가 없는 것보다 좋은 게 많을 때가 더 문제다. 아이디어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개발 과정에서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들이 필요했다.


Q. 보더랜드3가 출시된 지 2개월 정도 지났는데, 내부적인 평가 또는 기대는 어떤지 궁금하다.

- 처음 티저 영상을 공개할때부터 우리는 보더랜드3의 반응이 클 것을 생각했다. 내가 배틀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시절에도 팬들은 언제나 '보더랜드3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왔으니까.

2편 이후 7년만에 3편을 출시한 것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3편을) 망치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보더랜드3에서 원하는 것들을 개발 단계에서 미리 리스트화 했다. 물론 트위터, 유튜브도 꾸준히 체크했다.

한가지 사례가 있다면 원래 핸섬 잭은 보더랜드3에서 최종 보스 격으로 다시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에 유튜브에 "우리가 보더랜드3에서 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그 영상에서 말한 보고싶지 않은 것 중 두 번째가 핸섬 잭이더라. 멋지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제 놓아줄 때가 됐다고 느꼈다.


Q. 할로윈 시즌, 10주년 이벤트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중인데, 이러한 이벤트에도 내러티브팀의 역할이 큰 편인가?

- 게임 속에서 누군가의 대사가 등장하는 곳이라면 모두 우리의 손길이 들어간다. 출시 이후에도 지금까지 쉬어보지를 못했다(웃음). 총 네 편의 DLC를 포함하는 시즌패스가 발표됐고, 또 할로윈 시즌같은 이벤트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든 대사를 내러티브 부서에서 작업하고 있다.

첫 번째 DLC의 스토리같은 경우 작년 12월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 어떤 캐릭터가 등장할지 등은 서둘러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업무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앞으로 3명의 라이터를 추가로 채용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라이터들은 숨을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있어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될 수 있도록 지금도 노력중이다.



▲ 보더랜드3는 다양한 라이브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Q. 메인 스토리와 DLC에 있어서 내러티브적 접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 DLC는 좀 더 쉽다고하기는 그렇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짧은 스토리 하나로 완결이 되니까. DLC 스토리는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칠 필요도 없고, 하나의 온전한 작품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의사 결정의 아주 높은 부분까지 거칠 필요도 없고, 따라서 DLC 스토리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법이 각자의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가 된다. 물론 우리의 로어와 프랜차이즈의 품질 기준은 맞추는 선에서.

현재 내러티브 부서에는 4명의 라이터가 있는데, 이들이 네 가지 DLC의 각자 리드 라이터가 되는 셈이다. DLC는 자신의 스토리에 대한 오너십을 발휘하기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Q. 내러티브 부서나 보더랜드3 개발에서 얻은 경험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 질문을 들으니 게임을 개발하던 도중 무언가를 느꼈던 순간이 떠올랐다.

사실, 게임 개발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보더랜드3도 약 5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는데, 그 대부분의 시간동안 이 게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플레이를 할 수도 없고, 그저 부분 부분 파편적인 것들만 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가 시간을 쏟아 작업한 모든 부분이 합쳐지는 그 순간이 있다. 아마도 헐리우드에서 진행되는 보더랜드3 공개 행사에 앞서 시연 버전을 완성하기 위해 마감일에 맞춰 업무를 하던 때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임에 텍스트가 제대로 나오는지, 또 버그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

그 날도 마찬가지로 40개에서 50개 정도 되는 버그 리스트를 고치려고 밤 11시 정도에 게임을 켰는데, 처음 캐릭터를 생성하는것부터 초반 버그를 체크하다가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였다. 거의 세 시간동안 게임을 '플레이'한 것이다. 버그고 없었고, 대사도 제대로 들어갔고, 스토리도 좋았고, 몰입감도 있었다.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개발자로서 안도의 한숨과 게이머로서 즐거움을 같이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할까.

물론, 이후에도 계속 버그를 고쳐야 했지만 당시로서는 정말 최고의 경험이었다.


Q. 소위 '약을 빤 것같은' 서브퀘스트는 보더랜드 시리즈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퀘스트나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방향성이나 기저에 있는 인식이 궁금하다.

- 메인 스토리는 여러 가지 드라마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진중한 부분도 필요하다.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하는 부분부터 해소해야 하는 부분까지 신경 쓸 부분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서브 스토리는 유머로만 가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아주 디자이너 개개인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이다. 이상하고, 색다르고 또 놀랍다. 놀라움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유머에도 언제나 놀라움이 필요하다.


Q. 그렇다면, 내러티브 팀 인원들이 각각 서브 퀘스트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인가?

- 내러티브 팀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개발자들이 아이디어를 낸다. 때로는 아트팀, 때로는 레벨 디자이너 등 모든 구성원들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수백 개씩 던지고는 했다.

보더랜드는 환경을 탐험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영역이 넓은 게임이다. 때로는 나에게는 하나도 재미가 없는 스토리인데도 옆 부서 사람은 폭소를 터뜨리는 서브 퀘스트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부분에서 감동하고, 놀랄 수 있다. 세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이런 다양성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Q. 한국어 번역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국내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지화 또한 내러티브 전달을 위해 많은 협업을 이룬 편인지 궁금하다.

-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고, 너무나도 고생한 2K 현지화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내러티브 부서에 보이스오버 디렉터가 존재하지만, 그는 오직 영어 음성 녹음에 대한 작업을 총괄했고 다른 언어 녹음은 2K 현지화 팀에서 담당했다. 협업을 이룬 부분은 보이스 오버 디렉터가 영문으로 녹음된 음성과 캐스팅 목록을 각 현지화 팀에게 전달하면, 2K 현지화팀이 영문 음성을 듣고 캐릭터와 가장 가깝게 현지 음성 번역을 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우리 게임에 들어있는 유머들이 다른 언어로는 아주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번역이 잘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2K 쪽에서 화상 통화를 통해 농담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봤던 것이 기억난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가까이 협업한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계를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모토인 만큼 현지화 또한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다.

* 다음은 스포일러가 담긴 질문이니, 드래그해서 확인해 주세요
Q. 마야같이 전작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너무 아쉽게 퇴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 주인공들을 오래 보지못해 아쉬웠는데, 전작 주인공들을 퇴장시키는 결정을 내린 데 이유가 있을까.

- 마야는 정말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캐릭터중 한 명이었다. 출시된 지 2개월이 지났으니 스포일러를 하자면, 마야는 시네마틱 영상에서 죽는 것으로 퇴장한다. 마야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테고,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른 피드백을 많이 보내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조만간 선보일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러분이 마야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리고 내게는 계획이 있다(웃음).





Q. 나는 개인적으로 타이니 티나의 팬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성장한 티나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 많은 사람들이 티나의 팬이다(웃음). 2편의 타이니 티나는 성우 애슐리 버치가 목소리를 맡았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오빠인 앤서니 버치가 보더랜드2의 리드 라이터였다는 것이다. 그 둘은 같이 유튜브를 운영하기도 하는 등 정말 유쾌한 사람들이다. 티나는 그 남매가 만들어낸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살이던 티나가 보더랜드3에서 20살이 되어 돌아왔는데, 우리가 개발 초기에 먼저 애슐리 버치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무래도 다른 각본가가 어른이 된 티나의 스토리를 써내려가야 하니 직접 캐릭터를 만든 이의 조언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애슐리가 더 도전적인 변화를 많이 추구했고, 그렇게 어른 티나의 캐릭터를 정립할 수 있었다.

티나는 정말 최고다. 아마 팬들이 최고로 사랑하는 보더랜드 캐릭터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Q. 시리즈의 후속작은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서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반대로 명성을 퇴색시키기도한다. 보더랜드3은 그런 의미에서 보더랜드 프랜차이즈에 어떤 의미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물론 우리는 프랜차이즈에 상승곡선을 그리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엄청난 팬이다. 첫 스타워즈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나는 6살이었고, 그때부터 세계관에 빠져 장난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이 개봉되기까지는 자그마치 16년을 기다렸다. 나의 인생과 함께 스타워즈의 세계관도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보더랜드 프랜차이즈가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중 얼마 안 되는 것만 성공하는 일이지 않나. 우리는 보더랜드 세계관을 더 많이 확장하고 싶고,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실제로 정확한 수치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더랜드3를 즐기고 있고, 평가 또한 아주 고무적이다. 팬들의 이런 반응은 우리가 계속해서 라이브 콘텐츠와 스토리 콘텐츠를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우리는 보더랜드 프랜차이즈를 위한 더욱 먼 미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


11월 14일부터 11월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지스타 2019가 진행됩니다. 현지에 투입된 인벤팀이 작은 정보 하나까지 놓침없이 전해드리겠습니다. ▶ 인벤 지스타 2019 뉴스센터: https://bit.ly/2plxE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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