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저작권법과 유저 한글패치

인터뷰 | 윤홍만 기자 | 댓글: 11개 |
1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글로벌 게임 업계에서 변방에 불과했다. 당연히 한국어 자막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퍼스트 파티거나 나름대로 인기 있는 시리즈 정도만이 한국어를 지원했고 서드 파티나 인디 게임은 물론이고 대작 게임도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 게이머들이 그 모든 게임을 외국어로 즐긴 건 아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던가. 한국어로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의 노력으로 '유저 한글패치'가 나오면서 아쉬움을 달래주곤 했었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어둠 또한 있는 법. 긍정적인 반응만 있던 건 아니었다. 대작을 한글로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힘을 모아 만든 유저 한글패치였지만, 데이터 위변조에 해당하기에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오래도록 논쟁거리가 되곤 했었다.

그러한 해묵은 논쟁도 최근에는 거의 들려오지 않게 됐다. 어떠한 결론이 나온 건 아니다. 그보다는 현지화 사례가 점차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저 한글패치 역시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최근 다시금 유저 한글패치에 게이머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스타필드', '발더스 게이트3'와 같은 대형 게임들이 연이어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게 되자 유저 한글패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이처럼 게임사가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을 경우 유저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저 한글패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말 유저 한글패치는 불법적인 수단인 걸까. 이 해묵은 논쟁에 대해 이철우 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 이철우 게임·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유저 한글패치, 쟁점의 핵심은 '저작권법'
Q. 유저 한글패치의 경우 게임사(타인)에 피해를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이득을 주는 만큼, 불법이라기보다는 법망을 살짝 비켜난 탈법에 가깝다는 얘기도 들려오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 굳이 분류하자면 게임사에 이득을 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상 게임이 정식 한글화 준비 및 정식 유통을 앞두고 있다면 수입 및 유통배급사에게 잠재적 손해가 되는 점은 물론이고, 현지화 비용 등을 고려하여 가격을 조금 더 높게 책정한 정식 출시를 하려는 경우라면 게임사 자체에도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게임사에게 손해를 가져오지 않거나 심지어 이익이 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문제이다. 어찌 되었거나 타인의 창작물인 게임(혹은 게임 내 스크립트)을 창작자의 허락 없이 변조하였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으므로 여전히 법 위반 여부가 문제 될 수 있다.

다만 저작권법은 친고죄라 저작자가 고소 등을 제기하지 않는 이상 형사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게임산업법 또한 '게임사의 승인을 얻은 경우'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게임사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묵인하면 법적인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 스팀 관계자는 과거 한국어를 지원할 경우 판매량이 기존 대비 약 140% 늘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Q. 명백히 불법의 영역이라는 얘기인가.

= 그렇다. 어떠한 행위가 불법인지의 여부는 항상 금전적으로 손해가 발생하는지와 같은 재산권의 관점으로만 판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나 개인의 명예 등 다른 부분을 보호하는 것이 법의 목적인 경우 게임사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충분히 불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위 와우의 글라이더를 비롯해서 게임의 '애드온'이나 환전상, 연예인에 대한 팬픽 등 게임의 홍보와 판매에는 도움이 되지만 불법으로 볼 수 있는 사례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탈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안타깝게도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법에 해당하는 경우와 불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명확하게 구분 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영리 목적의 한글패치는 이론의 여지 없이 불법의 영역에 해당한다.


Q. 흔히들 유저 한글패치에 대해서 데이터 위변조라면서 결국은 불법이라고 한다. 저작권법과 관련됐을 것 같은데 법적으로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 건가.

= 우선 저작권법의 내용 중, 저작권 침해(주로 동일성 유지권, 2차적저작물 작성권)가 문제 될 수 있을 것이다.

'2차적저작물'이란, 기존의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 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인데,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되지만, 그 작성 권한은 어디까지나 원저작물의 저작권자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된다. 한글 자막이 게임 시나리오 등 스크립트의 번역물로서 2차적 저작물이 되는 것은 분명하며, 게임 프로그램 자체를 변형시키는 경우 그 양태에 따라 패치가 적용된 게임이 게임 자체의 2차적저작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한글 패치 과정에서 게임의 보안 프로그램 등 무단 접근 통제를 위한 기술적 보호조치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더라도 저작권법상 기술적 보호조치 무력화 금지에 따른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사냥을 자동으로 진행해 주는 '글라이더'란 프로그램은 저작권 침해는 아니지만 기술적 보호조치 무력화로 판단된 바 있다.

또한 한글패치가 동시 실행 프로그램 등의 형태로 작동하는 경우에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상 게임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게임사업자가 승인하지 아니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될 소지도 있다.



▲ 그럼에도 게임사와 연락이 닿아 유저 한글패치가 공식이 되는 경우 역시 드물지만 존재한다


유저 한글패치, '저작권의 공정 이용'으로 볼 수도
Q.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게임사가 작정하고 한글패치 팀을 고소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건가.

= 가능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처벌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지, 게임사의 허락이 없더라도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저작권의 공정 이용' 및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지 않는 행위'로 보아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며, 희박한 확률로 입건되더라도 대부분이 불기소, 기소유예, 아주 경미한 처벌을 받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한글패치를 무료 제작 및 배포하였을 때의 경우이고, 한글 패치를 금전적 대가를 받고 판매하였다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법행위가 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게임사가 한글패치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고 묵인하고 있음은, 저나 기자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게이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Q. 대부분 묵인한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법적인 측면에서 한글패치 팀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 PC와 콘솔로 출시됐는데 콘솔 버전만 한글을 지원하는 경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도 PC 버전이 빠져서 유저 한글패치 팀을 모집하거나 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불법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높아 보인다. 우선 콘솔 버전의 퍼블리셔 입장에서 '한국어화 된 유일한 플랫폼'이라는 사실이 향후 타이틀의 구매 요인이 될 수 있으며, 별도로 현지화 비용을 소요한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 대한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니어 오토마타의 경우 콘솔 독점 한국어화 됐음에도
PC 버전 유저 한글패치가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Q. 번역도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국내 출시됐을 때 다른 게임에서는 다들 파이어볼이라고 했던 걸 화염구라고 번역해서 화제가 되지 않았나. 이런 식의 고유한 번역, 명사도 보호를 받을 수 있나.

= 질문을 읽자마자 GTA5나 사이버펑크에서의 찰진 번역이 떠올랐다. 저작권법상 2차적저작물도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받을 수 있으며, 번역물이 이러한 2차적저작물에 해당함은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예컨대 타인이 제작한 한글패치를 유료로 웹하드에 올리는 방식의 행태를 본 기억이 있는데, 이러한 행위 또한 저작권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이는 게임 스크립트 전체에 대한 번역이나 상당 부분의 번역을 의미하는 것이지, 고유한 번역표현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본다면 그 자체가 창작성 있는 독립된 저작물로 인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Q. 듣기로는 모드(한글패치 포함)는 원본 게임의 파생물인 만큼, 법적으로 게임사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내용을 본 것 같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게임사가 유저의 한글패치를 갈취하는 형태로 정식 한국어 지원이라고 해서 무단으로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따로 연락이라든가 하지 않고 써도 아무런 문제 없는 건가.

= 그렇지 않다. 유저의 무단 한글패치가 원저작자의 2차적저작물을 침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와는 별개로 유의미한 번역 결과물은 독자적인 창작물로서 원저작물과 다른 저작권의 객체가 된다.

따라서 게임사가 유저의 번역을 허락 없이 도용하여 게임에 반영하는 경우, 그 또한 번역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최근 리니지M 사건에서 쟁점이 되었던 분쟁 경쟁 방지법상 금지되는 '타인의 성과를 무단 도용하는 부정경쟁행위'로서 불법의 영역에 해당할 소지가 상당하다.


Q. MORT라고 해서 PC 화면의 텍스트를 이미지로 캡처한 뒤 OCR(텍스트 이미지 인식)을 이용해 추출, 번역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단순 기계 번역부터 특정 텍스트 이미지를 읽고 해당하는 번역본 텍스트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사실상 한글패치 수준의 번역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데이터 위변조 없이 외부 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에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나.

= 게임 프로그램에 대한 간섭없이 별도로 구동되어, 이용자가 보는 화면에 한글을 출력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라면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력화'나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프로그램'이 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게임 시나리오나 게임 내 구성요소 등의 스크립트라는 게임 속의 개별 저작물에 대한 2차적저작물 작성권이나 복제권 등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 MORT처럼 데이터 위변조 없이 번역하는 방식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Q. 해외에서도 과거에는 일본어로만 출시된 게임을 자국어 패치하거나 한 사례가 있던 거로 알고 있는데 국내를 비롯해서 이러한 자국어 패치로 인해 법정 공방이 발생한 사례가 있을까. 결과는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 국내에는 물론, 해외에도 법원의 판단에까지 이른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파이널판타지 영식 등, 영문패치와 관련하여 제작사에서 유저 패치 팀에게 중지를 요청하는 사례는 몇몇 있어왔는데 이 단계에서 번역 프로젝트가 정지되면서 마무리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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