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정현 교수, "게임 장애, '미래와 자유'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7개 |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 겸 한국게임학회장

ICD-11 정식 버전이 논의될 예정인 세계 보건 총회가 다가오면서 국내에서도 여러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게임산업협회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도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에 반대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으며, 지난 4월 28일에는 게임산업 및 문화 관련 협단체는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약 51개 조직이 참여하는 해당 공동대책 위원회는 게임산업 외에도 다양한 문화 단체들이 함께해,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창작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정책토론회와 항의 방문 등 본격적인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공대위 대표로는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가 선출됐다. 한국게임학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위정현 교수는 지난 한국게임학회 신년회에서 5월 WHO 총회에 있을 게임질병코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결과인 게임이 아니라, 원인인 사회병리현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게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 공동대책 위원회, "게임뿐만 아니라 비게임 분야까지"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 위원회’가 결성됐다. 이전보다 확실히 본격적인 느낌인데. 어떤 활동을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현재 51개 조직이 참여 중이다. 보도자료를 배포했을 때까지만 해도 43개였는데, 하루 만에 51개로 늘어났다. 활동으로 준비 중인 것은 대표적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성명서 발표, 항의 방문 등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및 국회 의장을 만나 항의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여 조직 중에는 비게임 분야 단체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임이라는 프레임에 국한되지 않겠다고 해야 하나, 그런 의지가 엿보였다.

우리의 의도가 맞다. 공대위에는 현재 융합콘텐츠, 모바일산업협회, 게임 외 문화, 예술, 콘텐츠, 미디어, 심지어 상담 관련 협회까지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연합 전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투쟁과 비슷하다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민들이 지지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게임과 비게임의 대결구도로 가져가게 되면 이기기 어렵다. 게다가 산업 논리로는 청소년 보호 논리를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4차 산업, 기술 등의 의미를 담은 ‘미래’와 놀이 문화로서, 그리고 창작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담고자 했다. 그렇게 게임 외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문화의 협회들이 참가하게 됐고. 이 정도는 되어야 알아봐 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 많은 분야의 단체를 섭외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탄력이 붙어서 금방 늘어났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다.

여기서 게임은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고, 학회가 전면에 서야 한다. 산업이 나서서 주장하면 외부에서는 ‘돈 벌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하고 볼 수 있으니까.

학회, 협단체 27개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영화학회,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차세대융합콘텐츠산업협회, 한국애니메이션학회청년, 청년문화포럼 청년정책위원회, 한국VRAR산업협회,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 문화연대,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게임문화재단,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문화산업정책협의회,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 한국블록체인콘텐츠협회,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문화포럼 문화예술위원회, 게임인연대, 한국웹툰협회,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 한국캐릭터학회, 한국컴퓨터그래픽산업협의회, 한국문화경제학회, 한국e스포츠협회

대학 16개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계원예술대학교 게임미디어과, 공주대학교 게임디자인학과, 동부산대학교게임컨설팅과, 동서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부,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동의대학교 디지털콘텐츠 게임애니메이션공학부 게임애니메이션전공, 배제대학교 게임공학과, 상명대학교 게임학과, 예원예술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용인송담대학교 컴퓨터게임과, 전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기술학과, 중앙대학교 게임&인터렉티브미디어 융합전공, 한국IT전문학교 게임스쿨, 호서대학교 컴퓨터정보공학부, 홍익대학교 게임학부
▲ 공개된 공대위 참여 단체. 비게임 분야 단체들도 눈에 띈다.


그럼 게임 산업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쉬운 점은 게임 산업계가 게임 질병 코드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체에 물어봐도 관심이 없더라. 이번 공대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질질 끌려다니다 끝났을 거다. 게임업계의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한다. 영화나 다른 문화 콘텐츠 단체들을 보면 결집력이 강하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서일까, 게임 업계는 의견이나 행동결집이 잘 안 된다.

솔직히 말해볼까. 질병 코드가 국내에 도입된다 하더라도 사실 대형 게임사는 타격이 없다. 해외 수익이 주요하거나 성인 유저 위주니까. 결론적으로 중소 개발사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고, 게임사들은 대부분 성인용 게임으로 방향성을 바꿀 거다. 피해 가기 위해서. 유저입장에서는 ‘좋은 게임’이라는 카테고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대형 게임사에 계속해서 행동을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고 했지만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니까.


앞서 국민의 지지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게임에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상당수가 호의적이지 않다. 알고 있다. 단적으로 대한민국 부모들은 모두 자식의 입시와 취업, 더 나아가면 결혼까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는 여기에 호소하고자 한다.

게임 질병 코드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의사들의 성향에 따라서 진단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의사가 게임에 대해서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에 따라서 질병 진단이 0.8%에서 43%까지로 달라진다. 게임에 우호적인 의사는 100명 중 1명만을 진단할 것이고, 적대적인 의사는 100명 중 43명이 게임 장애를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는 것이다.

숫자뿐만이 문제가 아니다.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면? 당연히 기록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평생 남는다. 의사는 좋을 수 있다. 장사가 되니까. 근데 어머님들께 묻고 싶다. 괜찮으시겠느냐고. 아이들이 단지 게임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게임 장애를 앓았던 정신질환자로서 기록이 남고, 대학과 직장생활까지 어쩌면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괜찮을까.

학부모들은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 게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게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 하니까 싫은 거다. 왜 그 심리를 못 읽고 계속 공동 연구만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 게임이 공부에 방해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된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잘 다루지 않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게임과 관련된 연구가 연구자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KBS에서 게임이 뇌를 망가뜨린다는 연구를 방송하지 않았나.

게임 뇌. 일본에서 아주 오래전에 사장된 주장이다. 2000년대 초에 게임 뇌에 대한 주장이 나왔을 때, 일본에서는 다행히 자정작용이 이루어졌다. 뇌 과학자들이 그동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철저히 논리를 무너트린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자정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되는 연구가 발표되면 학계에서 논쟁해야 하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큰 문제다.


게임이 끝이 아니라 그 범위는 계속 넓어져 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요즘 애들만 봐도 게임보다는 방송을 더 보지 않나.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일본 청소년들은 게임보다 유튜브나 틱톡을 더 많이 한다. 진지하게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게임이 출시됐을 때 엔딩까지 보는 애들이 적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부분이다. 요즘 애들은 캐주얼하게 몇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하고, 틱톡은 그에 들어맞는다. 8초, 10초씩 짧게 짧게.

어떻게 보면 유행을 타는 것 같다. 다음은 유튜브 규제가 나올지도 모른다. 최근 청소년들의 유튜브 시청 시간이 게임 플레이 시간보다 길더라. 학자들이 이렇게 유행 타며 가는 게 문제다. 폭력성도 사실 게임보다도 영화가 심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국민 반발이 심하기 때문에.


게임은 특히 그 위치가 애매하다. 한쪽에서는 지원사업, 한쪽에서는 규제하고 있으니까.

차라리 4차 산업을 그만두고, 코딩 교육도 그만두면서 게임 질병화코드를 도입하겠다고 하면 이해하겠다.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 의도로, 동전의 한쪽 면만 절단하려고 한다는 거다. 데미스 허사비스와 AI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다들 그와 같은 AI 연구자가 한국에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그가 게임 개발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크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게임을 차단해버리고 싶어하면서 뛰어난 엔지니어가 없다며 비판한다. 일관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만약 의사들이 게임 중독에 대해서 정말 숭고한 뜻이 있었다면 같이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도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해왔던 부분이니까. 왜 그들은 이제 와서 게임을 질병화 하려는 것일까? 게임 중독에 대해서 숙원사업이라고 표현했을까.

4대중독법에서 의도가 드러나자 이제 WHO의 권위를 빌려 진행하려고 한다. WHO는 동양권 국가에서 압박이 있었다고 밝혔다. 어디일까. 일본은 크게 관련이 없고, 중국은 자체적인 규제가 오히려 더 심하다. 그럼 베트남일까? 스리랑카일까? 생각해보면 답이 딱 나온다. 의도가 참 불순하다.



■ "게임은 결과다" 게임, 어떻게 접근해야하는가




미디어 콘텐츠가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익숙하지만, 게임은 특히 질병과 엮어 다뤄지고 있다. 진부한 질문이지만,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셧다운제, 4대중독법, 폭력성… 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질병코드화는 마지막 종지부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질병이다. 아주 심플하다. 의사들은 물론 말을 흐린다. ‘게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게이머는 건강하다’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심플하게 마지막을 봐야 한다. 게임은 질병이다. 그 한마디는 정말 강력하다. 학부모는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들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게임을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 메시지는 단순하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뤄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산업계가 전면은 아니지만,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싶다.

아이들이 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가를 봐야 한다. 중요한 점은 게임과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점이다. 게임은 사회병리현상의 결과다. 원인이 아니라. 소위 게임에 과몰입하는 아이들을 보면 경제적인 약자가 많다. 부모가 돌보기 어렵고, 방과 후에 할 활동이 없어 게임을 하러 간다. 방과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직접 아동복지센터도 방문해봤다. 서로 다른 학년의 아이들을 20~30명 모아놨더라. 아이들은 그냥 멀뚱멀뚱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에 지나치게 빠지는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결과다. 그런데 WHO는 게임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사회 경제적 구조에 있다. 제대로 된 복지센터와 프로그램, 그리고 아이들의 실외 활동에 투자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안다. 교육은 1~2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든다. 좋은 상담사도 필요하고. 그냥 게임 중독이라며 약을 처방할 것이 아니라, 상담사와 의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런 의미에서 공대위에는 상담 관련 협회도 참여하고 있다.


확실히 최근 규제를 보면 끊고 보자, 잘라내고 보자는 식의 접근이 문제라는 비판이 많다. 셧다운제도 그렇고.

셧다운제, 없애면 된다. 청소년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한다. 그게 어려울 때 국가가 개입해서 아동복지센터와 좋은 선생님, 프로그램에 투자해줘야 한다. 문제는 이런 쪽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건비 정도밖에 안 되더라.

사회가 과거 퇴행적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게임과 관련된 규제 정책을 보면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억압하는 구조라고 밖에 안 보인다. 셧다운제도 그렇다. 부모가 자기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아이가 무슨 게임을 하는지 모르겠고,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몇 시가 되면 그냥 국가 차원에서 끊어주길 바라는 거다.


영국에서는 일반인들도 함께 의견을 게재할 수 있는 장을 열어두기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저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있을까.

좋은 포인트다. 유저들의 권리가 침해되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진행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의 활발한 의견표출이 중요하다. 공대위에도 청년 단체가 두 군데 정도 들어와 있는데, 단체마다 성격이 너무 달라서 모으기가 힘들다더라. 요즘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참 조용하다.

사회가 안정화되면 집단이 개인으로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좋은 사회다. 다만, 집단적인 힘이 필요할 때 결속할 수 있는 모티브가 없다. 권리를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저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대한 시선, 어떻게 변화해나가야 할까.

게임이 있으면 도구로써 어떻게 써볼까, 코딩교육을 어떻게 해볼까, 어떤 문화가 만들어질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그냥 게임을 못하게 해버리려고 한다. 다시 언급하는 것 같지만, 데미스 허사비스를 보면서 다들 왜 우리나라에는 저런 인재가 없지? 하고 아쉬워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막았지 않느냐.

우리나라는 결과물은 좋아하지만,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것에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일 수도 있고, 연예인일 수도 있고.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아침에 일어나서 고분고분 학교에 가고, 스스로 자습하고, 저녁에는 어려운 책을 읽다가 일찍 자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런 사회는 죽은 사회다.

미래를 좀 보라고 하고 싶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이미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질병 코드화로 폭격한 꼴이다. 한국 게임이 소멸하고 중국 게임들이 한국 시장을 지배할 때,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아, 10년 전까지는 그래도 좋았는데”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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