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버 바스켓'의 최상현 아티스트, 그는 왜 '게임업계'에 도전했는가?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6개 |



게임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꽤 자주 예술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게임이 종합예술이니 개발자도 예술가니 뭐니 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전공한 '예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지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그룹은 아무래도 그림 쪽입니다. 게임 개발의 3대 직군 중 하나가 '아트'인만큼, 게임업계에는 수많은 아티스트분들이 활동하고 있지요.

아티스트라 해도 결국 개발진의 일원이니, 업무는 모두의 톱니바퀴에 맞춰 정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스타 아티스트'가 나오기도 합니다. 김형태, 김범 등 독자적인 아트 영역을 만들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죠. 얼마 전 만난 최상현 AD(SAKIROO: 사키루)는 '스타 아티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만 이는 게임 외적인 산업 분야에서 통용될 뿐, 게임 시장에서 그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에 불과합니다.

처음 인터뷰가 잡혔을 때만 해도 그리 큰 흥미는 없었습니다. 게임에 따라서 기획이나 스토리, 기술력 등 어필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법이고, 아트를 내세우는 게임의 경우 아티스트를 인터뷰에 내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만나기 전 정보를 수집하고, 막상 만나기까지 하니 제 생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최상현 AD는 완전한 베테랑입니다. 업계 경력만 20년에 달하는데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는 캐릭터를 디자인했더군요. 약력만 봐도 각종 저서에 강연 경력에... 그냥 팩트만 나열해도 서너 페이지가 가득 차버렸습니다. 이쯤에서 한가지 짚어볼 점이 생겼습니다. 이 베테랑 아티스트가 게임 시장에서는 '첫 도전'을 하는 도전자의 위치라는 점이었죠.

그래서 컨셉을 조금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단순히 게임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게임업계에 온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었습니다. 게임 시장에서 그가 '스타 아티스트'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될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요.



▲ '노리숲' 최상현(SAKIROO) 부사장 겸 AD


Q. 제가 인터뷰 오기 전 약력을 한번 훑어 봤는데, 경력이 어마어마해요. 그런데 미술 관련 대학을 나오거나 전공 공부를 하시진 않았네요? 어쩌다 그림을 그리게 된 거예요?

원래 어렸을때 시험지 끝이나 교과서나 그림 다들 그리지 않나요? 저도 스스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하진 않고 그냥 그렇게 끄적거리며 그림을 그리곤 했었어요.

그러다 계기가 된게 아마 고등학교 2학년때일거예요. 제가 다니던 학교가 남녀공학이었는데, 남자반 여자반이 분반된 그런 학교였거든요.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게 되면 교실을 이동해서 수업을 받는데, 호기심 때문인지 남학생들은 여자 반에 가서 수업을 들어보고 싶고, 반대로 여학생들은 남자 반에서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그런게 있었어요.

그렇게 제가 있던 반에 여학생들이 와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제가 여학생 반으로 가서 수업을 듣기도 했는데, 어느날 보충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와 보니 책상 속에 넣어둔 제 연습장이 다 흩어져있는거예요. 당황해서 연습장을 펼쳐 봤는데, 제가 끄적거린 그림마다 다 코멘트가 써져 있더라고요. 그림 잘 그린다면서 HOT 그림도 그려달라는 내용도 있고, 약간 팬레터같은 내용도 있었는데 기분이 딱 좋아지더라고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나?'하는 생각도 그때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날 하굣길에 HOT의 강타가 나온 엽서를 샀어요. 젝스키스 멤버들도 연습장에다 그려두었는데, 다음날부터 난리가 났죠. 이후 보충수업이 끝나고 나면 자리에 음료수가 있기도 하고, 새 연습장이 놓여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땐 퍽 신난 기분이었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걸 했는데 관심을 받는 그런 기분? 나중에 학보를 보니 얼굴도 한번 못 본 여학생들이 '최상현 잘되라'하는 식으로 글을 적어 두었더라고요. 당시는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대학도 컴퓨터공학쪽으로 진학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에피소드들이 절 그림을 그리게 한 것 같아요.



▲ 처음엔 본인이 그림을 잘 그리는지도 몰랐다.


Q. 그럼 미술을 생업으로 생각한 건 아니셨던 건데, 디자인을 생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뭔가요?

대학에 진학해서 게임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동아리 인원 대부분이 병역 특례를 받아 게임사에서 산업체 기능요원으로 병역을 수행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게 웃긴게,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특례를 받았는데 저만 못받았어요.

왜 안됐나 하고 생각해보니 저는 3D를 다룰 줄을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3D맥스를 써서 3D 작업을 했는데, 전 당시 갖고 있던 컴퓨터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3D 맥스를 구동시킬 수가 없었어요. 프로그램이라곤 포토샵 정도를 이제 시작하는 상황이었죠. 업체에서 3D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우선적으로 뽑다 보니 제가 짤린 거예요.

그렇게 갑자기 동아리에 덜렁 혼자 남아버렸어요. 이쯤되니 다들 사라졌는데, 저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제가 자주 가던 디자이너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거기서 캐릭터 디자이너를 뽑고 있더군요. 모집글을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자격 요건에 쓰여 있는 모든 글이 절 말하는 것 같았어요.

당시 저는 무료 캐리커쳐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누군가에게 그림으로 칭찬받는건 굉장히 좋아했는데, 사이트에 사람들이 본인 사진을 올리면 저는 그걸 밤을 새워가며 캐리커쳐로 그려서 업로드하곤 했었죠. 당시 저는 타블렛이 없었기 때문에 마우스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들을 포트폴리오로 삼아서 이력서를 보냈어요. 쓸 줄 아는 툴은 포토샵밖에 없었는데, 그냥 죄다 쓸 줄 안다고 뻥을 쳐놨죠. 그리고 1주일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어요.



▲ '캐리커쳐'의 느낌은 그의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


Q. 그럼 첫 이력서는 실패했던 거예요?

답장이 오질 않으니 저도 잊고 있다가 퍼뜩 이력서를 넣은게 생각났는데 이게 화가 나는거예요. 안됐으면 안됐다고 말을 해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또 메일을 보냈으니 다음날 수업중에 바로 문자가 오더군요. 당시 회사가 홍대쪽에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홍대에 가봤어요.

그런데 제가 뭐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프린터도 없고, 대충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대략 이쯤?'이라는 약도를 그려 갔는데, 비가 또 억수로 왔어요. 도저히 길을 못찾아서 헤매다 보니 비를 엄청 맞아서 그려놓은 약도가 다 지워져버렸죠. 완전히 상심한 상태로 '포기해야겠다' 싶은데 딱 쪼그마한 회사 간판이 보이더군요. 그렇게 해서 처음 회사에 들어가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당시 네오위즈가 서비스하던 '세이클럽'의 캐릭터였어요. 결과적으로는 도트 캐릭터이지만 당시는 3D부터 시작해서 엄청나게 많은 시안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궁금해졌어요. 전 교육받은 내역도 없고, 경력도 없는데 절 왜 뽑았나 싶은 거였죠. 그래서 대표님께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마우스로 그렇게 그림 그리는 사람은 처음 봐서'

그때도 현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타블렛을 썼지만, 전 마우스로 그리는게 완전히 익숙해서 별로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어요. 그전에는 마우스도 비싸서 '닥터 할로'라는 프로그램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건 키보드로 좌표 이동해가면서 찍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이 닥터 할로로 처음 그렸던 그림이 일본의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였어요.



▲ 그렇게 처음 디자인한 캐릭터 중 하나


Q. 그럼 예명인 '사키루'는 그때부터 사용하신 건가요? 예명에 어떤 뜻이라도 있나요?

스무살때 처음 온라인 아이디를 만드는데, 당시 친구들은 다 자기 이니셜 뒤에 80을 붙여서 아이디를 만들었어요. 제가 80년생이거든요. 그런데 그때 생각해도 그게 진짜 너무 촌스러운거예요.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아이디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먼저 가장 좋아하는 알파벳인 'S'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구나 쉽게 발음할 수 있는 모음인 'ㅏ'를 넣었죠. 그렇게 '사'가 나왔어요. '키'는 제 그림체에서 나온 음절인데, 제가 당시 그림을 좀 세게 그리는 편이었어요. 당시 넷상은 '엽기'라는 코드로 물들어 있던 시절인데, 그림이 워낙 세다 보니 엽기 디자이너라는 이름도 얻었었죠. 그래서 발음이 센 음절을 생각하다가 '키'를 생각했어요.

그렇게 '사키'까지 완성되었어요. 발음을 쉽게 하고 싶어서 발음은 애초에 고려를 안 한 상황이었는데, 누군가 절 불러줄때 좀 길게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늘어지는 모음인 'ㅜ'를 쓰고, 자연스러운 발음을 위해 '루'로 확정했어요. 그렇게 '사키루'라는 이름이 완성되었죠.

문제는 이렇게 지어놓고 보니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거예요. 어딘가 책자엔 제가 일본인이라는 설명이 실리고, 비즈니스 미팅에 나가는데 일본어 통역을 대동해야 하냐고 묻기도 하시고 그랬죠 뭐. 사실 그때는 일본어로 '사키루'라는 단어가 없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생기긴 했는데 뜻이 뭐더라... '사기치다'였나... 여튼 그랬어요.

제가 특강을 좋아하는 편이라 EBS 특강 같은걸 많이 봤는데, 아이디를 짓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발성학과 성명학에 대한 특강을 보게 되었어요. 내용 중에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발음에 'S'와 'K'발음이 있더군요. 잘 지었다 싶었어요.


Q. 제가 예명을 물어본 적은 많지만 이렇게 디테일한 답변은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지금 아이가 둘 있으신 거로 아는데, 아이들 이름도 이렇게 깊이 생각해서 지으셨나요?

아뇨... 아내가 다 지어서... 저는 딱히...



▲ 닉네임을 이렇게 복잡하게 짓는건 처음 봤다.


Q.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다방면에서 오래 활동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게임 개발을 생각하게 되신 거예요?

제가 첫 회사에서 병역 문제로 퇴사한 후, 다시 디자인을 시작해 2007년 11월까지 회사 생활을 했어요. 당시 SK에서 '싸이월드'의 상품 기획을 하고 있었고, 근속 년수는 4년을 채운 상태였죠. 4년을 근무하니 회사에서 리프레쉬 휴가가 나왔는데, 이 휴가를 이용해서 친구와 함께 유럽 배낭 여행을 갔다 왔어요. 그리고 오자마자 사직서를 냈죠.

유럽에 가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왜 나는 바보처럼 회사와 집만 오고갔을까?' 동시에 제가 살아온 시간들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죠. 동시에 어리기도 했어요. 당시 저는 커리어 하이를 계속 경신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어요. 2000년에 디자인을 시작해 2007년이 될 때까지 두 권의 책을 썼고, 강연도 많이 다녔죠. 캐릭터도, 도트도, 심지어 기획조차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데 하는 것마다 성공했어요. 아주 콧대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죠.

그러다 보니 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지금까지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가 맞물려 퇴사를 결심하고, 사무실을 구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내가 손대면 다 되는구나'하는 생각에 스스로 빠져 있었죠.


Q. 그 후에는요?

그런데 음... 이게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때 생기는 것이더라고요. 막상 나오고 나니 연락도 안오고, 사람들 만나기도 힘들고 완전 개털이었죠. 게다가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어요. 세계 경제가 대위기를 맞은 거죠.

그렇게 1-2년을 손가락을 빨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글로벌로 나가겠다는 의기를 다지고 캐릭터에서 일러스트로 진로를 변경했어요. 그게 2010년에서 2011년정도였을텐데,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목욕재계하고 그림만 그렸어요. 3개월 정도 진짜 미친 사람처럼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성취를 거둔 후 해외 클라이언트들과 비즈니스를 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죠. 그 와중 짬짬히 개인전도 열 수 있었고, '어도비'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15년까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했는데, 이상하게 힘든 시장이 있었어요. 중국 시장이었죠. 전 중국 시장에 대한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중국쪽에서는 연락이 없었어요. 출판쪽에서만 연락이 와서 아트 관련 서적은 출간했는데, 비즈니스 콜은 없었죠. 그래서 중국 시장에 대한 도전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번은 멕시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싱가폴의 일러스트레이터인 'Artgerm(Stanley Lau)'을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 컨퍼런스에서 처음 공개하는 게임 일러스트를 선보이는데 사람들 반응이 진짜 미치는거예요. '아티스트가 셀럽이 된다면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오늘날엔 본인 전시회를 열 정도가 되었다.


Q. 그럼 그 일을 겪으면서 게임 아트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맞아요. 그 일을 겪으면서 '게임'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당시 기준으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대중은 저를 몰랐어요. 제가 만들고 기획한 상품은 알았지만, 그 뒤에 있는 저라는 사람은 몰랐죠. 그런데 Artgerm은 누구나 알고 있었어요. 그것도 글로벌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죠.

하지만 게임은 쉽사리 할 수가 없었어요. 게임은 혼자 뚝딱 만들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모든 개발 구성원이 모여 만드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죠.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게임을 만든 경험은 없으니 그저 고민만 하던 차에 신기하게 연락이 왔어요. 스트릿 농구 게임을 만들던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드는데, 이를 넘어서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죠.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합작 게임인데다 제가 즐겨 그리던 힙합, 스트릿 스타일의 게임이니 안 하면 바보죠.

그렇게 노리숲에 원화가로 합류하게 되었어요. 저와 함께 추천을 받은 다른 베테랑 아티스트님이 AD를 맡았죠. 그 당시엔 야간에 할로겐 조명이 돋보이는 아트 스타일이었는데, 기존 AD를 맡던 분이 퇴사한 이후 제가 AD를 맡으면서 2주만에 기존의 아트를 전부 제가 원하는 컨셉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렇게 제가 생각하던 그림을 하나씩 실제로 만들어나가다 보니 게임 AD라는 역할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걸 알게 되었죠.



▲ 직접 디자인한 '피버 바스켓'의 캐릭터들


Q. 게임업계에 투신하면서 다양한 게임 아트를 보셨을텐데,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게임 아트가 있나요?

'니노쿠니' 시리즈가 꽤 인상깊었어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느낌을 3D로 구현했는데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죠. 그정도로 감성을 살릴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아트 면에서 인상깊게 본 건 '보더랜드' 시리즈도 있네요. 선이 굵은 화풍이나 카툰 렌더링을 잘 살린 게임 디자인, 그리고 정신나간 세계관도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스페인 친구가 개발진에 참여하기도 했었죠.


Q. 사실 이 질문을 드려도 될까 모르겠는데, 과거 유행했던 스트릿 농구 온라인 게임이 있어요. 지금 개발중인 '피버 바스켓'과 꽤 유사하다는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그 게임 저도 많이 좋아해요. 일단 카툰 렌더링이 너무 좋았고, 만레벨 캐릭터를 서너개 굴릴 정도로 플레이했죠. 아트워크도 마음에 들었지만 영향을 받은 건 절대 아니에요. 스트릿 느낌의 자유롭고 힙합 느낌이 나는 캐릭터들은 원래부터 제가 즐겨 그려오던 캐릭터들이에요. 엄밀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앞서 말씀드렸던 '드래곤볼'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죠.

그 게임의 아트를 보면 제 생각으로는 '고릴라즈'를 그린 제이미 휴렛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래도 대중이 보기엔 소재가 비슷하고, 선이 강한 화풍이 비슷하다 보니 유사하다 생각하실수 있지만, 사실 뜯어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라 할 수 있죠.

기존 게임이 일반적인 캐릭터에 오브젝트를 덮는 식으로 구성된다면, 피버 바스켓은 캐릭터 하나하나가 다 독립적인 개성과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아트 또한 그 시나리오에 맞춰 만들어졌죠. 물론 상업적 요소들을 고려하다 보니 제가 처음 기획한 것에 비하면 많이 소프트해졌지만,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 게임 개발 이전에도 스트릿 농구나 힙합풍의 작품을 꽤 그려왔다.


Q.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경력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내왔는데, 개인적으로 견지하고 있는 삶의 철학이나 자세가 따로 있나요? 좌우명이라든지요.

음... 사실 제가 쓴 책에 보면 다 나와있는데, 제가 여기서 그 책과 다른 말을 하면 안되니까 생각을 좀 해볼게요.

'명사보다는 동사'가 적당할 것 같아요. 저는 이 세상에 없는 모든 것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만약 제가 절 소개할때 '저는 AD입니다'라고 하면, 제가 AD라는 직책에 갇혀버리는거죠. '시간'을 예로 들어 볼게요. 아시다시피 같은 시간이라 해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이에요. 하지만 단순히 '시간'이라는 명사로 보면, 그저 '시간'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뿐이죠.

저는 픽셀 작업을 하다가도 재미있고 멋진 건 뭐든 다 그려보려 했고, 그러다 보니 캐릭터를 하게 되었어요. 캐릭터를 하다 보니 일러스트가 멋지고 재미있어 보여 일러스트를 공부했고, 일러스트를 공부하다 보니 이제는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죠. 저는 스스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분야에서 잘 해야 하고, 그게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잘하는 것이 아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함에도 그 분야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잘 해야 하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온게 제가 지금까지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아요. 꿈을 원대하고 멀리 두기보다는, 보다 가깝고 실현 가능하게 생각해 꿈까지 돌진하고, 이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꿈을 갖기를 반복해봤죠. 이제는 게임 아트에서도 인정을 받고 싶어요. 아마 여기서 20년쯤 일하고 게이머들이 절 알게 된다면, 그때는 또 무슨 바람이 불지 모르지만요.(웃음)



▲ 지금까지 해온 도전은 그의 작품 스펙트럼에서 드러난다.


Q. 그럼 스스로 실제로 그 마음가짐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앞서 제가 2007년에 퇴사하고 1-2년 정도 일을 쉬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당시 의류 사업을 하려 했어요. 그런데 모든걸 제가 하려다 보니 제조 공장도 만들고, 판로도 뚫고, 너무 신경쓸게 많아서 망해버렸죠. 결혼하고 얼마 안지났을 때였는데 실직자가 되버렸어요. 아내도 일을 쉬던 참이었는데 말이죠. 그림도 1년 정도 그리지 않았더니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잊어버린 상황이었어요. 알바라도 해야 하나 하는데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당신이 멋지게 일하는걸 보고 싶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길 바라고 결혼한게 아니다'라고요.

그날 이후, 아침마다 샤워를 한 후 일러스트를 연구하기 위해 그림만 그렸어요. 제가 그림을 그릴때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리는데, 라디오 MC가 2시간마다 바뀌잖아요. 그림 그리기 시작할때 라디오를 켰는데, 정신 차려보니 같은 MC가 얘길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24시간을 꼬박 그림만 그린 거죠. 그땐 잠자기도 싫었어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싶었죠.

그렇게 3개월을 미친듯이 그려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과를 냈어요. 당시 꿈이 글로벌 진출이었는데, 진짜 죽도록 그것만 보고 달린거죠. 글로벌 진출을 꿈꾸고 있으니 영어도 써야 했어요. 메일을 쓰다 보니 영어를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고, 만나서 회화도 하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이 늘었죠. 학원도 안가고 책도 안샀는데 그냥 죽자고 하다 보니까 어느새 2천명 앞에서 두 시간짜리 영어 강연을 하고 있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진짜 제가 하고싶은거만 하고 살았어요. 조금 다른거라면, 그 하고싶은걸 이루기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었죠. 그게 가능했던 건 제가 하고싶은게 제 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높고 멀리 있으면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으니 계속 손을 뻗게 된 거죠.



▲ 캐릭터 디자인만으론 부족하다 여기고 도전한 일러스트레이션


Q. 한국에도 수많은 학생들과 미술학도들이 각자 꿈을 꾸고 있어요. 현업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20년 경력의 아티스트로서 팁을 줄 수 있을까요?

자세한 건 제가 쓴 책에 다 있긴 한데(웃음). 깔끔하게 두 가지를 알려드리면 될 것 같아요. 하나는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이에요.

먼저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법'은 마음가짐에 있어요. '돈을 번다'는 행위로 예를 들어 보죠. 돈을 벌려면 꼭 필요한게 있어요. '돈이 없다'는 전제 조건이죠. 돈이 이미 있으면 돈을 버는 의미가 퇴색되요. 돈이 없어야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거죠.

그림 실력도 마찬가지예요. 그림을 잘 그리게 되려면 '나는 그림을 더럽게 못 그린다'라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저 또한 제가 그림을 무지 못그린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그림에 만족하면, 실력 향상은 점차 더뎌지다가 한계에 부딪혀요. 본인이 만족해버리니 계속 그 근처를 멤도는거죠.

조약돌로 탑을 쌓는다고 생각해보면 쉬워요. 어설프게 쌓아올린 탑은 어느 높이 이상으로 절대 쌓지 못해요. 그럴땐 차라리 탑을 아예 무너뜨려버리고, 처음부터 튼튼한 기반을 다져가며 탑을 쌓는게 더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죠. 쉽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해요. 뭔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것들이 아예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죠.

'완성도를 높이는 법'은 각자가 생각하는 '완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고, 그 기준에 맞을 때만 그림에서 손을 떼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저는 제 그림에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들어가야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복잡함과 심플함을 모두 느낄 수 있어야 한다거나, 진지하면서 유머러스해야 하는 거죠. 또는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야 해요. 이 조건에 맞을 때 저는 그림을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건 저의 기준이고, 각자 생각하는 기준은 다를수 있겠지만, 그 기준에 모자랄때 만족해버리고 그림에서 손을 떼지 않는 고집은 가져야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져요.



▲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킬 것


Q. 그럼 마지막으로, 게임 산업에 갓 투신한 베테랑 아티스트가 앞으로 어떻게 일할 것인지 포부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유동적이라고 생각해요. 주근깨도 매력이 될 수 있고, 작은 눈이나 교정중인 치아, 빼빼마른 몸도 다 매력이 될 수 있죠. 저는 매력이 '완벽함'이 아닌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힘들어서 인형탈 아르바이트만 줄창 하다 보니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을 갖게 된 캐릭터, 상습 소매치기범으로 전과까지 있지만, 그만큼 손이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공을 가로채는 캐릭터 등은 결핍이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죠.

하지만 생각보다 게임업계는 보수적인 면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상업적 영역에 널리 걸쳐 있다 보니, 모험을 잘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올곧고 잘생기고 바른 남자 캐릭터, 노출도 적당히 있고 이쁜 캐릭터, 일단 귀여운 캐릭터 등이 계속해서 나오게 되는 거겠죠.

제가 디자인한 세이클럽 캐릭터중 하나는 두건과 선글라스를 쓰고 몸에는 이불을 둘둘 감고 있어요. 이른바 '보자기'라고 하죠. 당시 '매력적인 캐릭터'는 무조건 화려하고 이쁜 캐릭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보자기는 '비공개에 쓰일 캐릭터이니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게 만들어달라'는 요청까지 받아서 만든 캐릭터였죠.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사람들이 세이클럽을 추억하며 가장 많이 떠올리는 캐릭터가 이 보자기 캐릭터에요.

이렇듯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간 게이머분들이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매력의 캐릭터들을 만들고, 선보이는 것이 게임업계에서 제가 걸어갈 길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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