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엘소드 '라비'의 테마곡에 대한 모든 것! 넥슨 사운드 팀을 만나다

인터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10개 |

눈을 뜨니 또 다시 검은 숲, 마치 어제 일조차 까마득
조용해, 완전 적막해
그리움 따위 몰라요, 난 처음부터 0인 걸

지난 6일 엘소드에 2년 만에 추가된 신규 캐릭터 '라비'는 검은 숲에서 고립되어있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캐릭터입니다. 함께 공개된 라비의 전용 테마곡인 '밤의 미궁(Nisha Labyrinth)'은 볼빨간 사춘기의 목소리와 발랄하면서도 씁쓸한 라비의 캐릭터, 그리고 음악이 잘 어우러지면서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요. '밤의 미궁'은 엘소드가 지금까지 공개했던 영상 중에 가장 높은 조회수, 86만 회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팬들에게 '라비'를 소개했습니다.

'밤의 미궁' 음악을 제작한 넥슨 사운드 팀은 전체 17명으로 이루어진 팀입니다. 엘소드 외에도 클로저스,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게임에 음악을 통해 새로운 감성을 전달하고 있는데요. 엘소드 '밤의 미궁'을 제작한 팀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넥슨 사운드 팀의 유종호, 박혜수(은토), 채하나, 김달우 팀장 (왼쪽부터)


별자리를 담은 감성, 음악 팀 'Asteria'
그들이 발견한 '게임 음악'의 매력은?

Q. 먼저 넥슨 사운드 팀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트마다 팀이 나뉘어있나요?

김달우 : 안녕하세요, 저는 사운드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달우라고 합니다. 넥슨 사운드 팀은 전체 17명으로, 효과음 팀 8명과 음악 팀 8명, 그리고 저로 이루어져 있어요. 팀이 나뉘어있기보다는 프로젝트마다 함께 작업하는 식으로 이루어져요. 이번에 작업한 '밤의 미궁' 또한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만든 곡이라고 보시면 돼요. 사실, 게임 음악이라고 해서 프로듀싱 과정이 특별히 다른 건 아닌데, 여러 명이 함께 작업하지 않으면 제작요청을 모두 소화해낼 수가 없어서 그래요(웃음).



▲직접 방문한 넥슨 스튜디오. 이 곳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Q. 아티스트 명에 Asteria라고 나와 있는데요, 음악 팀의 팀 명같은 건가요?

김달우 : 음악파트를 제작하는 팀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사실 따로 활동명을 만들고 싶었다기보다는, 음원을 발매할 때 필수적으로 아티스트 명이 들어가야 해요. 아티스트 명은 실제 사람이나 팀의 이름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게임 이름이 들어갈 수 없죠. 그런 규칙하에 넥슨 사운드 팀이라는 건조한 이름보다 음악적인 혼을 담은 이름으로 넣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Q.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김달우 : 별자리라는 뜻인데. 사운드 팀에 여성분들이 많아서, 취향에 맞춰 짓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웃음).

은토 : 왠지 남사스럽네요(웃음).



Q. 다른 음악과 다르지 않다고 하셨지만, 게임 음악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업과정도 똑같이 이루어지나요?

유종호 : 어떤 악기를 쓴다든가 하는 차이는 없어요. 다만 장르나 스타일의 차이는 있죠. 그리고... 마감일에 차이가 있으려나(웃음)?

은토 : 선호하는 장르는 있는 것 같아요. 차분한 음악보다는 경쾌한 음악을 선호하고요. 다른 데도 비슷할 수는 있지만, 굉장히 많은 유관부서와 일을 해야 한다는 점도 특징인 것 같습니다. 서로 가진 다른 이미지를 함께 맞춰가는 과정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보컬 곡을 작업할 때 일반 대중들이 들었을 때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는 편이에요. 캐릭터 성을 암시하는 표현을 쓰되 게임의 구체적인 단어는 지양합니다. 저도 사실 게임 음악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있었어요. 뭔가 뿅뿅!하는 음악일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작업을 해보니 게임 음악도 정말 다양한 장르가 있더라고요.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 현대의 게임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가 됐습니다.




▲"편견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게임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Q. 게임 음악을 다루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달우 : 저는 전공이 사실 컴퓨터공학이에요(웃음). 제가 대학생일 당시에 선배들 사이에 벤처붐이 일었어요. 넥슨도 신생 회사였고요. 게임 회사를 차린 분들도 많았는데, 제가 취미로 음악을 한다니까 조금씩 작업을 부탁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유종호 : 전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때 넥슨도 지원했었는데, 떨어졌죠(웃음). 그렇게 가요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김달우 팀장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 후 팀장님을 통해서 외주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게임 음악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고 구분을 지어왔는데, 작업하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게임 음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은토 : 저는 실용음악과 보컬을 전공했는데. 사실 저희 과는 취업을 하는 과는 아니에요. 저도 제가 회사에 다니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우연한 계기로 게임 음악 보컬로 참여하게 됐고, 넥슨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제 내가 직접 노래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음악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더욱 많은 양의 작업을 쌓아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저희 음악의 가이드 보컬을 제가 맡고 있고, 네코제의 밤과 같은 행사도 있어서 노래할 기회도 많고요.

채하나 : 전 제 작곡 성향을 고려했던 것 같아요. 가요처럼 곡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캐릭터나 상황에 대해 감정이입해보면서 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찾아보니 게임 음악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면서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라비의 '밤의 미궁' 제작 스토리
'밤의 미궁' 데모 버전에서는 어떤 부분이 달랐을까?




Q. 이번 신규 캐릭터 라비의 테마곡 '밤의 미궁'을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여겼던 포인트가 있었나요?

채하나 : 처음 개발 자료를 받고 구상하는 단계에서 무엇보다도 캐릭터 성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규 캐릭터의 테마곡이니까요. 그래서 라비가 어떤 캐릭터인지 자세히 보니 외롭고, 그럼에도 발랄한 캐릭터더라고요. 그런 라비의 캐릭터 성을 반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일단 라비는 말이 많은 캐릭터에요. 그래서 노래에서도 음절을 많이 쪼개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애고, 예쁘장하다 보니 사운드 면에서도 이런 부분이 들릴 수 있도록 구상했습니다. 평소에도 작업을 할때 캐릭터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 캐릭터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사로도 나타나는 부분이지만, 음악적으로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Q. 수다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음절을 쪼갰다는 부분이 인상 깊은데요. 제작과정에서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채하나 : 긴 음절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씩 바꿨어요. 예를 들어 '나는~'이라는 부분을 '나는 말야~'로. 이런 부분에서 라비의 수다스러움을 담고자 했습니다.

김달우 : 음악 부분으로는, 이걸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웃음). 처음에는 나~아나나나 이런 부분을 잘게 쪼개서 나.나.나.나.나.나. 이런식으로 여러 음으로 구성했다고 보시면 돼요. 이런 작업(음의 구조를 대략적으로 확인해보는 것)을 허밍, 또는 스캣(Scat)이라고도 하는데, 가사 없이 흥얼거리는 식으로 먼저 작곡이 이루어져요. 이걸 들어보고 은토 님이 가사를 붙이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채하나 작곡가 "캐릭터는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Q. 작곡이 먼저 이루어지는군요. 그럼 작사 과정에서는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은토 : 라비라는 캐릭터 자체가 외로움에 대한 정서가 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라비는 수다스럽지만, 전부 혼잣말이에요. 한 번도 누군가와의 관계가 이루어진 적이 없이 숲에 고립되어있었죠. 이런 혼잣말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사가 어순이 안 맞는 느낌도 있고, 조리가 없고. 존댓말을 쓰다가도 반말을 쓰죠.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간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은토 : 네, 의도한 부분이에요.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온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Q. 외로움과 수다스러움. 표면적으로 보이는 인상이 아닌, 자세한 설정을 바탕으로 작업된다는 점이 인상 깊네요.

은토 : 외로움도 사실 여러가지가 있죠.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과 쭉 혼자 살아온 라비가 느끼는 외로움은 다르니까요. 라비는 시끌벅적한 것이 뭔지 아예 몰라요. 그래서 한편으론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아예 배제하고 시작했어요.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혼자였던 사람의 고립감. 어떻게 보면 우울한 느낌은 아니에요. 모르니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고, 발랄하지만 깊은 고독이 느껴지는 라비의 캐릭터 성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혼자였던 사람의 고립감을 담았다"

Q. 특별히 볼빨간 사춘기와 작업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김달우 : 은토 님이 A&R을 담당하고 계신데요. 이 역할이 어떤 가수가 이 노래에 어울릴지를 고민하고 찾는 역할이에요. 은토 님과 하나 님이 함께 작업하면서 선정된 거죠.

은토 : 라비가 외형적으로 봤을 때 성숙한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앳된 느낌이죠. 그만큼 노래도 앳되고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동시에 깊고 성숙한 감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보컬이 필요했어요. 볼빨간 사춘기 분들이 앳된 목소리면서도, 성숙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발음도 정확하고 또박또박하다기보다는 특유의 특이한 감성을 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라비와 어울리기도 했어요.




▲볼빨간 사춘기의 사인까지!

Q. 음악 작업을 할때 게임을 많이 해보고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김달우 :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해볼 수 없을 때가 많거든요. 가사를 쓰려면 사실 후반부의 이야기까지 알고 써야 하는데,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죠. 앞으로 업데이트될 부분도 많고. 아무래도 기획서에 기반해서 작업을 하게 됩니다. 해보고 싶은데 못 해보는 경우가 많아요. 아, 개인적으로 메이플스토리는 오래 했어요.

은토 : 어느 정도는 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어떤 게임인 줄 알아야 상상하면서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



Q. 게임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저의 성향도 고려해야 할 요소일 것 같습니다.

김달우 : 종종 많은 분이 게임과 유저를 애인 사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시던데. 그만큼 그 관계가 서로 달라요. 메이플스토리는 메이플스토리대로, 클로저스는 클로저스대로 분위기가 다르죠. 그래서 저희로서도 유저분들이 어떤 것들을 좋아하실지에 대한 고민이 생각보다 많기는 해요. 전혀 맞지 않는 것을 만들어 유저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음악 만드는 사람으로서 실패한 사례가 되는 거니까요.

은토 : 공략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와 사귀기 전에 그 사람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면 관계의 발전이 쉬운 것처럼. 유저의 취향을 잘 알아보고 작업했을 때 확실히 반응이 좋아요.

채하나 : 유저들이 게임을 하면서 지내온 시간에 대한 서사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작업하면 공감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김달우 팀장 "유저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음악 만드는 사람으로서 실패한 곡이에요"

Q. 음악 작업을 할때 고려하시는 엘소드 유저들의 성향은 어떤가요?

채하나 : 유저분들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그만큼 엘소드의 음악을 작업할 때는 캐릭터의 사연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쉽고 저희로서도 감정이입하기 쉽거든요.

은토 : 엘소드는 궁극적으로 엘 수색대를 만나서 떠나는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그만큼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고 작업해요. 각 캐릭터를 독립적으로 떼어서 생각한다기보다는 합류했을 때 이 캐릭터는 어떤 역할일지 상상하면서 작업하는 편입니다.



Q. 작사와 작곡이 이루어지면 그 이후에는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나요?

김달우 : 작사와 작곡 이후에도 장르적으로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어요. 락버전이 될 수도, 오케스트라 버전이 될 수도 있죠. 작곡과 편곡의 경계를 잘 이해 못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작곡이 어떤 말을 할지를 정하는 작업이라면, 편곡은 말투를 정해주는 작업이에요. 피아노로만 만들어져있는 곡에 어떤 부분에 어떤 악기를 넣을지. 편곡 단계에서 음악의 색깔이 달라져요.

유종호 : 편곡은 어떻게 보면 기계적인 부분을 생각하는 파트에요. 작사/작곡가가 감성과 정서를 담은 곡을 만들어주면, 저는 감성적인 부분은 빼고 기계적인 부분을 판단하게 되죠. 어떤 악기가 들어가야 이 곡의 감정을 담아 완성곡으로 만들 수 있을지. 결국, 음악도 제품이니까요. 완성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죠.

물론, 데모단계에서 이미 어떤 장르로 이루어질지는 대략적으로 정해져요. 확 변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달라지죠.




▲어떤 부분에 어떤 악기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편곡 단계

Q. '밤의 미궁'의 데모버전은 어땠을지 궁금해지는데요!

채하나 : '밤의 미궁'은 데모가 정말 많이 만들어졌어요. 방향성도 좀 바뀌기도 했었고. 라비에게 맞추려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비교해서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종호 : 데모 버전도 엄청 많은데. 은토 님이 부르는 버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정제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순수한 느낌? 곡의 첫 모습을 담고 있는 건 하나 님이 직접 부르신 버전인데요. 개인적으로 하나 님 데모 선호하는 편이에요(웃음).

김달우 : 그런 말씀은 한 번도 안하셨던 것 같은데!

채하나 : 앗! 그건 보여 드릴 수 없어요. 곡의 발전 가능성을 보려고 만드는 버전이라서... 간단하게 흥얼거린걸 공유해 드리면 대충 방향성을 보고 발전시켜도 될지 이야기를 하고 진행하게 되거든요. 음역 문제도 있어요. 제 음역에 맞춰서 흥얼거린 데모기 때문에 진행하면서 음역대를 내려야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볼빨간 사춘기분들이 정말 잘 불러주셔서 음역을 바꾸지는 않았어요.

은토 : 워낙 부끄러워하셔서(웃음). 사실 후렴도 세 번 정도 바뀌었어요. 데모 버전을 들어보시면 디테일한 부분이 많이 다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에요. 가사가 다른 부분도 있고, 리듬이 다른 부분도 있고.


▲은토 님이 부르신 '밤의 미궁' 데모버전, 직접 들어보세요!


Q. 음역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합니다. 보컬에게도 맞춰야 하고, 음악적으로도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일 것 같은데, 어려운 작업인가요?

은토 : 음역대 체크하는 건... 어려운 작업이에요. 보컬 분들도 빨리 음역을 정해달라고 요청하시기도 하고요.

채하나 : '밤의 미궁'이 음역대가 높은 데다가 가사가 많다 보니, 숨 쉴 부분이 없어요. 그만큼 부르기에 힘든 노래거든요. 볼빨간 사춘기 분들이 잘 불러주실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노래 자체가 힘들게 들릴 수도 있는 부분을 고려하는 거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가 부담스럽게 들리면 안 돼요. 반대로 클라이맥스에서는 너무 쉽게 부르는 느낌이 들면 재미가 없죠. 전반적으로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보컬을 빨리 선정하려고 하는 편인데, 의도한 음역대 그대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김달우 : 특정 음역에 맞춰서 악기 녹음을 다 해놨는데 보컬에 따라서 달라지면 전부 다시 녹음해야 하니까요. 그 음역대만의 감성이 있는데, 다시 작업하면 원곡의 느낌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보컬이 빨리 정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그 외에 작업하면서 재미있었던 점이 있었다면?

은토 : 곡을 들어보시면 '언젠가 만나게 되면'이라는 가사에 귀여운 목소리로 '안녕?' 이라는 대사가 들어가있어요. 사실 원래 가사를 쓸 때는 없었던 대사에요. 그런데 라비가 검은 숲에서 정말 누군가 만나게된다면 이렇게 인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데모버전에 넣어보았는데, 반응이 무척 좋더라구요. 보컬을 맡아주신 볼빨간사춘기의 귀여운 목소리로 넣으면 정말 매력적일 것 같아 최종 버전에도 반영했어요.

실제 녹음 현장에서는 단 두 글자의 대사지만 귀여움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안녕?'을 20~30번 정도 반복하면서 녹음했던 것 같아요. 곡이 처음 공개되고 나서는 성우의 목소리인줄 알고 많은 유저분들이 궁금해하셨는데, 엘소드 오프라인 행사 현장에서 볼빨간 사춘기의 안지영 님이 "그 목소리 저였어요!"라고 직접 말씀해주셔서 엘소드 유저분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Q. '밤의 미궁'은 현재 음원이 무료로 공개되어 있는데, 따로 발매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나요?

김달우 : 처음에 라비의 테마곡 '밤의 미궁'은 더 많은 분들이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음원을 무료 배포하기로 했었는데요, 무료 배포 후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듣고 싶다는 목소리가 있고 해외의 엘소드 유저들도 이번 테마곡에 대한 관심이 높아, 글로벌 버전을 추가로 제작하게 됐습니다. 마침 어제 녹음이 완료됐어요(웃음).

글로벌 버전 보컬은 싱어송라이터 배수정 님께서 맡아주셨는데요, 배수정님은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시즌2'의 준우승자로, 영어에도 능숙하시지만 뛰어난 가창실력과 독보적인 보이스를 갖추어 '밤의 미궁'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한국어 버전은 이미 무료배포가 되어서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만나실 수 없지만 글로벌 버전은 또 다른 느낌이니 많이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넥슨 사운드 팀에게 '게임 음악'이란?
음악,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장치




Q. 조금 답변하기 어려울 수 있는 질문인데요. 게임에서 '음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채하나 : '소환하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유저들을 소환하는 장치일 수도, 추억을 소환하는 장치일 수도 있어요. 음악을 들었을때 "아, 나 그 게임 다시 하고 싶다"라고 느낄 수도 있고, "아, 나 이런 게임을 했었고, 즐거웠지"하면서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요.

김달우 : 저는 음악이 게임의 공간을 디자인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게임 속에서 광장에 가면 광장 테마 음악이 나오고, 사막에 가면 사막의 음악이 나오죠. 귀라는 또 하나의 감각기관을 이용해서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른 부분, 디자인 요소를 하나 얹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유종호 : 저는 '아내'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웃음). 있으면 소중한지 잘 모르다가 곁에 없으면 외롭거든요.

은토 : 전 남편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웃음)! 음... 잘 모르겠지만, 게임을 가장 감성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통해 떠올리는 추억은 조금 더 좋게 포장되는 것 같아요. 서비스를 오래 한 게임들이 그런 경우가 많죠. 그때 그랬는데, 좋았지. 음악은 추억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에요. 게임에서 기술은 감탄하게 만들어주지만 음악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면서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감성적인 장치가 되죠.



Q. 가끔은 음악이 게임 자체보다도 인지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게임 속 음악들이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은토 : 음악이 아주 좋기 때문에 기억된다기보다는... 음악과 좋았던 추억이 모여서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악과 구체적인 상황이 함께 맞물리는 거죠. 조금 미화시켜서 기억되기도 하고요. 영상과 추억, 스토리가 있기때문에 음악도 기억되는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 OST가 사랑받는 것은 그 음악과 함께 봤던 장면이 기억에 남기 때문이죠. "참 좋았지"하고, 추억과 음악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기억에 남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Q. 그래서 저도 뮤비 자체가 좋았던 노래들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은토 : 라비 테마 영상도 원래는 짧은 버전만 공개될 예정이었어요. 대부분 그렇게 진행되거든요. 애니메이션 오프닝처럼 1분 30초 정도 분량의 영상이 만들어지고 전체 버전 음악은 따로 공개되고. 이번 영상은 전체 버전으로 제작하기로 변경되었는데, 정말 기뻤어요. 보통 네코드 채널에 음악을 올려보면, 영상과 함께 올라가는 버전의 반응이 좋아요. 커버 이미지만 올라가는 음악보다요. 그 부분이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잘 진행되어서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반응도 좋아서 뿌듯했고요.




Q. 이번 라비 테마곡 영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달우 : 먼저, 마음에 듭니다. 이견이 없어요(웃음). 무엇보다 영상을 제작할 때 노력을 많이 해주셨어요. 싱크로율 맞추는 부분부터 컷 분배까지. 그렇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잘 맞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은토 : 개인적으로 귀엽게 나와서 좋았어요. 그리고 보통은 영상 작업물이 먼저 나오고 음악 작업이 마무리되거든요. 하지만 라비 테마곡을 제작할 때는 가사를 먼저 전달해달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그에 맞게 영상을 만들 예정이라고 하시면서요. 그 제작 순서 자체가 좋았어요. 내가 만든 것이 영상화되는구나 싶어서 기대도 됐고요.



Q. 원래 음악이 먼저 제작되는 줄 알았는데, 보통 어떻게 작업되나요?

김달우 : 보통은 영상과 음악이 따로 진행되어 나중에 합쳐지는데요. 어느 한 쪽이 기다려주는 게 흔치 않죠. 그만큼 더 존중받고 있고, 배려해주신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이 먼저 작업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해요. 렌더링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죠(웃음). 음악을 맞추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 됩니다.

채하나 : 이번에는 데모를 먼저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1분 30초 분량의 곡을 주면 맞춰주신다고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곡에도 템포가 있는데, 영상도 그에 잘 맞게 구성되어있었어요. 라비가 걷는 속도도, 컷 전환도 템포에 맞춰 잘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Q. 게임 음악을 작업할 때 기획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때가 있다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우울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 우울한 음악도 수만 가지가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김달우 : 사실 방법이 딱히 없어요(웃음). 어려운 부분 중 하나죠. 결국, 경험이 해결해줄 문제입니다. 음악을 모르는 디렉터 입장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우울한 음악을 만들어달라" 이 말을 들었을때 어떻게 해석해나갈지는 사운드 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프로젝트가 오면 회의를 열어서 각자 레퍼런스를 모아오고 이야기하거든요. 기획자에게 이런 식의 우울함인가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 갭을 줄여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획자에게 레퍼런스를 요구하기보다는 사운드팀이 제공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은토 : 대화를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해요. 우울함도 다양한데, 그 해석을 잘못한 상태로 작업이 진행될 수 있으니까. 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만드는 것이 데모 버전이죠. 제작비가 투입되기 전까지 반복해서 데모 버전을 만들어보고 방향성이 정해지면 발전시키게 됩니다.





Q. 라비도 미묘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어서 작업할 때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채하나 : 네, 라비 테마곡을 작업할 때도 그 미묘한 톤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우울한데, 너무 우울하지도 않고. 외로운데, 또 너무 외롭지도 않고. 적당하면서도 깊고 너무 성숙하지도 않고. 개발자분들께 계속해서 "라비의 우울함은 이 정도인가요? 이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 건가요?"하면서 계속 여쭤보면서 작업했어요.

은토 : 게임 음악을 작업해보면,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조금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얼굴은 어린데, 나이는 어리지 않다던가. 오랜 시간이 얼마나 오랜 시간인지...



Q. 마지막으로, 작업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이 있다면?

김달우 : 전 엘소드 애니메이션에 들어갔던 주제곡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더운 날 우음도에 가서 땡볕에 촬영을 했는데. 황량하면서도 색감이 아름다운 공터였거든요. 그때 아침부터 밤까지 야외 촬영을 하면서 다들 몸살도 나고 했던 추억이 기억에 남아요. 곡이 좋았던 만큼 잘 만들고 싶었고요.

유종호 : 전 클로저스 소마의 주제곡 'SOMANUS'가 기억에 남아요. 사실 당시에 작업하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웃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기획서를 보고 이런 스타일이면 나는 못하겠다, 빠져야겠다, 하고 몰래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만큼 풀어내기 어려운 캐릭터였고요. 근데 막상 작업을 완료하고 보니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유저들 댓글을 보니 그 힘들었던 게 상쇄되더라고요(웃음).

▲구간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 'SOMANUS'

은토 : 저는 엘소드의 'No One Will Save You'를 꼽고 싶어요. 처음에 기획을 보고 놀랐어요. 제게 엘소드는 뭐랄까, 좀 더 밝은 느낌이었는데, 캐릭터가 너무 어두운 거에요. 그래서 엘소드의 주 연령층을 고려해서 너무 어둡지 않게 작업하려다가 애매해진다는 느낌이 있어서 마음껏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우울한 감성이 있다, 정도가 아니라 아주 바닥으로 내려가는 우울함이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라서 오랜만에 마음껏 작업했던 것 같아요.

부정적인 표현들이 직설적으로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당황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또 하나의 시도를 했다는 측면에서 마음에 들었던 곡이에요. 이 곡이 있었기에 라비 주제곡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요.

김달우 : 팀 안에서도 사실 담당하고 있는 감정선이 있어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제가 희망 담당이고 은토 님이 절망 담당이죠(웃음). 하나 님은 우울해도 희망을 가지고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 우울함이죠.

▲"감춰둔 날개를 꺾어 다신 날지 못하게"와 같은 직설적인 가사의 'No One Will Save You'

채하나 : 저는 '밤의 미궁'을 꼽고 싶어요. 인터뷰라서 꼽은 게 아니에요. 앞서 말씀해주신 대로 제 감정선은 너무 성숙하다기보다는 좀 더 동화같은 우울함이라서, 밝은 느낌이 쓰기 편하고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라비 주제곡에 대해서 회의를 할때 제가 하고 싶었고, 자원했던 것 같아요. 물론 많은 도움을 주셔서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고요. 저는 '밤의 미궁'을 가장 기억에 남는 곡으로 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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