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R로 실시간 전략시뮬?... 어, 의외로 괜찮네?"

칼럼 | 박태학 기자 | 댓글: 36개 |
▲ '레드얼럿2' VR 리메이크 게임플레이 영상 (출처 - Ádám Horváth 유튜브)






1.
현재 국내외 게임업계에서 가장 핫한 차세대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포켓몬GO'의 성공과 함께 수면 위로 솟구친 AR이 있고요. 오큘러스와 바이브, 기어 VR 등을 위시로 한 VR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중 VR은 1인칭 게임의 경험적 측면에서 진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실제로 에픽게임즈를 비롯한 많은 대형 게임사들이 VR 기술을 활용한 1인칭 게임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이거다!' 할 만한 레퍼런스급 게임이 안 나왔어요. 누가 선점하느냐에 따라 VR 게임 시장의 흐름도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타 장르 게임 개발사들이 VR 시장을 멀뚱멀뚱 먼 산 보듯 한 건 아닙니다. 신기술과의 교집합을 위한 도전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죠. 다만, VR 특유의 '경험'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장르는 아니다보니, 약간의 리스크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을 하는 이들은 중소 개발사 혹은 인디 게임 개발자가 대다수입니다.



▲ 에픽게임즈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중인 FPS 게임, '로보 리콜'



▲ 스팀의 VR 지원 게임 항목, 대부분 인디게임사의 작품입니다.


오늘 인상 깊은 영상을 하나 봤습니다. 외국의 게임 개발자 'Ádám Horváth'가 만들고 있는 '레드얼럿2' 리메이크 버전이었는데요. 과거 RTS를 열심히 즐겼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게임은 지난 2000년에 출시됐고, 우리나라에도 음성 한국어화까지 장착해 나온 바 있습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국내 게임 시장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라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속도감 있는 게임플레이, 뛰어난 그래픽과 유쾌한 스토리 등을 선보인, 참 괜찮은 게임입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오! 레드얼럿2 리메이크 하나 봐!' 하고 끝날 정도의 소식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만드는 게임이 좀 특이합니다. 일단 언리얼 엔진 4를 이용해 3D로 만들고 있었고(그래픽은 별로 안 좋지만), 무엇보다 HTC 바이브 전용 'VR 게임'이었습니다.




▲ 좌 - 레드얼럿2, 우 - 레드얼럿2 VR 버전


저를 놀라게 한 건 인터페이스였어요. '레드얼럿2'는 당시 웨스트우드 표 RTS 특유의 좌세로형 UI를 채용했는데요. 이걸 통채로 떼어내 플레이어의 왼손에 쥐여줬습니다. 게임 화면은 책상위에 올려둔 것처럼 눈앞에 깔렸죠. 음... 유닛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보드게임'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아직 개발 중인 게임이고 대형 자본으로 만드는 게 아니기에 외형이 좀 어설픈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영상에서 느껴지는 VR 특유의 '경험' 요소가 1인칭 게임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찰나의 컨트롤이 승패를 좌우하는 RTS인 만큼, VR이 주류로 올라서는 데는 많은 장애물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싱글 플레이 전용이라면? 아예 VR 전용 게임으로 출시되어 'VR 적응 능력'까지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포함한다면? 몇 가지 컨트롤에 스크립트를 넣어 편의성을 끌어올린다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지만,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 물론, 키보드 마우스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겠지요.



2.
VR은 '하는' 게임으로서가 아닌, '보는' 게임으로서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크래프트2'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이런 방식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우선, 유저가 직접 VR 헤드셋을 쓰고 해당 전장을 눈 앞에 깔아놓은 후, 보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보도록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아예 방송국이 해당 장비를 도입해 중계하는 방법이 있어요. 경기 옵저버를 VR 시점으로 하는 게 기본, 접전이 벌어질 때 그쪽으로 카메라가 쓱 가서 보고, 다음에 다시 전체를 보는... 보다 극적인 연출이 담긴 e스포츠 중계도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고 봅니다.



▲ 레딧의 한 유저는 LOL을 VR로 볼 수 있는 관전모드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8월 3일, 밸브는 e스포츠에 VR을 어떻게 도입할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습니다. '도타2 인터네셔널 6'를 진행하면서 VR은 물론, AR의 기능 일부까지 채용한 중계 모드를 내놨죠. 밸브와 HTC가 협업해 개발한 '바이브'를 이용하면, 플레이어는 자기가 보고 싶은 장면을 더욱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상 인터페이스까지 구현되어, 마치 나만을 위한 대회가 열린 것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물론, '도타2'의 경우는 예외로 두어야만 합니다. 밸브는 자신만의 VR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을 준비했고, 투자된 금액도 일반적인 게임사나 인디 개발자가 흉내 낼 수준이 아닙니다. 아울러 '도타2'나 '바이브'나 결국 밸브 라인이기에 VR 기술을 적용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즉, 당장은 비전일 뿐입니다. 대중적으로 VR e스포츠 문화를 보급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발사와 방송사 간 협업 문제와 같은 다양한 장애요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e스포츠 시청 문화도 다음 세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유저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공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e스포츠 관련 업체들 역시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 도타2는 e스포츠 리그 중계에 VR과 AR을 동시에 도입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3.
올해, VR 시장을 향한 국내 게임사들의 도전도 부쩍 늘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지난 5월 10일에 개최된 PS 한국 개발자 컨퍼런스인데요. 당시 '화이트데이 스완송', '건쉽배틀', '헬게이트' 등의 게임이 PS VR로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중소 게임사 및 인디 개발자들이 지금도 각자의 방법으로 VR 기술 노하우를 쌓고 있어요.

VR 게임 시장이 아직 대중적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개발하는 업체들은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를 안고 가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를 감수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업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문 부호로 가득한 주변 시선에도 꿋꿋이 나아가는 이들 게임사의 결과물이 당장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재수, 3수를 거치면서 더 성숙해지고... 이후 더 큰 결실을 보는 게임사가 탄생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당장 비난보다는 따뜻한 격려 한마디를 게이머 분들께도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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