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펍지 '배틀그라운드', 어쩌다 뜬 히트작으로 남을 것인가?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167개 |



시곗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보자. 그해 배틀그라운드는 한국 게임 역사에 기록될만한 '갓 게임'이었다. 척박한 환경이 아니라 아예 기반 자체가 없었던 한국 게임판에서 STEAM에 진출해 1위를 찍어버린 전무후무한 성과. 굳이 비유하자면 빙상연맹의 삽질 속에서 스스로 꽃 핀 김연아의 성과만큼이나 한국 게임판에서는 극적인 드라마였다.

기자들도 더불어 취했다. 평소 남의 나라 잔칫상과 같았던 해외 게임쇼에서 배틀그라운드 광고와 코스프레를 볼 때마다 "저거 우리나라 게임이야"라고 속으로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날이 오긴 오는구나. 실제로 왔고 이런 게임을 만든 김창한 PD와 블루홀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당시 자금난에 허덕이며 지분 매각과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블루홀은 배틀그라운드 출시 6개월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해 블루홀 장병규 의장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으로 김창한 PD는 펍지 주식회사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이에 대한 묘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유령처럼 업계를 떠돌지만 그건 그렇고 성과는 성과다. 실력이든 운이든 펍지의 배틀그라운드는 여전히 대한민국 게임 역사를 다시 쓰는 중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펍지와 배틀그라운드의 현재 상황이다. 경쟁사인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는 머신밴(Machine-Ban)이라는 강력한 제재로 핵 이슈를 일찍 차단했다. 업데이트 역시 이미 5종 이상의 모드와 모바일 연동 버전까지 개발하며 글로벌 시장을 조금씩 장악하고 있다. 당장 사업적인 외연을 넓히기 보다는 컨텐츠와 유저 편의성부터 잡고 가겠다는 의도다.

반면 펍지는 e스포츠화를 시작으로 해외 지사 세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지만 배틀그라운드 상황은 한발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핵 차단은 고사하고 컨텐츠 업데이트 마저 지지부진하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시장만 챙기다가 북미, 유럽권 장악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핵 대응만 하더라도 그렇다. 펍지가 공지한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제재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부터 4월 3일 현재까지 영구블럭한 계정수(유저)는 5,556,315명이다. 그렇다고 동시접속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도 아니니 이렇게 핵 차단된 계정은 다시 패키지를 구입해 복귀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3개월간 핵 차단으로 1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올해 GDC2018 강연에서 스팀 스파이 제작자 세르게이 갈리온킨(Sergey Galyonkin)은 배틀그라운드 핵 이슈가 끊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중국 사람들은 PC방에서 배틀그라운드를 하며 핵을 사용한다. 그러다 운이 없으면 계정이 정지되고, PC방 업자들은 15달러 정도의 금액을 들여 다시 배틀그라운드를 구매한다. (중략) PC방이나 유저 입장에서도 서로 나쁠 것이 없는 환경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근본적인 보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불법 프로그램에 대한 후속 조치는 미봉책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다.

지난달 펍지 중국 지사장이 소스코드를 통째로 유출했다는 루머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을 때 "오히려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뼈있는 말이다. 그만큼 유저들은 펍지의 근본적인 핵 차단 조치에 목마른 상황이다.

총괄 책임자인 김창한 대표는 실무 개발에 아직 참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로벌 지사 세팅과 비즈니스 미팅을 다니느라 한국에서는 얼굴 보기도 힘든 건 사실이다. 애초에 펄어비스처럼 회사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실무에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겠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적인 경영전략가로 꼽히는 짐 콜린스(Jim Collins)는 몰락하는 기업의 신호로 ▲1단계,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2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3단계,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펍지가 어느 단계에 접어들었는지 스스로 판단하리라 믿는다.

나는 지금 펍지와 배틀그라운드의 위기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위기고 각종 하락세의 지표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포트나이트'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이미 북미 유럽권을 흡수하여 배틀그라운드와 쌍벽을 이루고 있고, 배틀로얄 장르의 신작은 온라인과 모바일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올해만 수백종의 게임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배틀그라운드가 롱런하는 게임으로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게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느냐. 아니면 그저 어쩌다 뜬 게임이 되느냐는 지금 이 순간 펍지의 손에 달려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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