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선릉역 흉기 사건 그 후...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29개 |



13일 오후 2시 15분, 서울고등법원에서 넷마블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항소 건을 지켜본 직후였다. 법정에서 나와 핸드폰 전원을 다시 켜니 취재부 단톡방에 수십 건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뭔가 터졌구나" 데스크에서 곧바로 연락이 왔다. 편집장이었다.

"어디니?"
"법원입니다. 방금 막 선고가 내려졌어요. 항소가 기각됐습니다"

"지금 바로 강남경찰서로 가라. 자세한 건 차에서 듣고"
"네? 강남경찰서요?"

어제 하루종일 이슈가 된 선릉역 흉기 사건이었다. 벌써 포털에 수많은 기사가 올라가 있었다. 13일 새벽에 '배틀그라운드'를 하던 두 여성이 선릉역에서 만났고 곧이어 칼부림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사건보다 눈길이 가는 문장이 하단에 깔려 있었다. '배틀그라운드'는 총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원인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의도한 문장 배치였다.

그래서 단순히 그 기사만 읽었을 때는 '배틀그라운드'의 게임성에 영향을 받은 유저가 일으킨 사건으로 이해됐다. 곧이어 '배틀그라운드'가 아니라 '서든어택'이라는 후속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초기 기사들에서 하나같이 발견된 점은 'FPS, 혹은 총싸움 게임'에 영향을 받았다는 뉘앙스가 문장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선릉역으로 이동 중 1차로 강남경찰서에 연락한 기자로 부터 사전 취재한 내용을 인계받았다.

"어, 경찰서에 전화해보니 사건은 새벽 2시에 발생했고 담당 경찰관은 오전에 인수인계하고 자러갔데. 전화로는 자세한 이야기 할 수 없고 경찰서 가서 형사과장이나 미디어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기 들어봐"

"네 알겠습니다"

먼저, 사건이 일어났던 선릉역에 들렀다. 이미 여러 매체가 와 있었고, 카메라 앞에 선 기자들이 현장에서 방송용 그림을 담고 있었다. 꽤 추운 날씨였는지 영상을 촬영하고 금방 돌아갔다. 일반인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멀리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갔다. 현장에는 많은 정보가 남아있지 않았고, 이후 강남서로 갔다.

게임 전문 매체로서 강남경찰서 취재는 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출입 기자에게 먼저 정보가 가는 구조이다 보니 사건의 현황과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특히 형사 사건의 경우 기자 대응이 형사과장으로 일원화되어 있었고, 먼저 약속을 하지 않는 이상 만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건질까 싶어 경찰서에서 2시간쯤 지키고 있으니 꽤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기자들은 평소 알던 형사들과 만나 전해 들은 '소스'를 받았다. 그리고 팩트체크를 위한 기자들의 첫 질문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래서 '배틀그라운드'에요, 아니면 '서든어택'이에요?"




당시 '선릉역 칼부림'은 조사 중인 사건이었지만, 이미 기자들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미 게임으로 벌어진 사건으로 프레임을 짜 놓고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형사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왜'이다. 왜 사람을 칼로 찔렀는지 파악할 때, 프레임은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제한된 시야는 '선릉역 칼부림' 사건은 이유를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과 같은 총싸움 게임에서 찾기 시작했다. 결국, 총싸움 게임이 사람을 난폭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자는 선배로부터 "프레임에 빠지지 말아라"고 교육은 받는다. 그런데도 대중은 프레임에 갇힌 기사들을 만난다. 그 기자들이 몰라서일까? 아니다. 이유는 때때로 간단하다. 이미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콘텐츠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면 문제 해결이 쉽기 때문이다. 과거 마녀사냥이 유명한 예다.

그리고 이미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뉴스거리는 트래픽과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이다.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총싸움 게임 등 모두 주홍글씨가 새겨진 단어들이라 마음껏 사용하기에도 부담이 없다. 소위 말해 '잘 팔리는 기사'를 쓰기 위해 최근 이슈인 배틀로얄 게임과 엮은 것이다.

잘못된 프레임, 공공의 적 만들기는 후속 보도를 통해 종종 뒤집어지곤 한다. 이번 '선릉역 칼부림'도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경찰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게임을 중심으로 교제를 하던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게임은 이번 사건에서 핵심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경찰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가해자이자 여성인 A 씨는 그동안 남자 행세를 하며 피해자 여성 B 씨를 게임상에서 만나왔다.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A 씨는 자신이 여성임을 공개했고, 이때 두 사람 사이에서 욕설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직후에 칼부림이 일어났다. 경찰은 현재 계획적인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인지를 조사하고 있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자 게임은 단물이 빠진 껌처럼 뱉어졌다. 전날까지만 해도 기사의 키워드로 쓰이던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등도 더는 찾기 힘들어졌다. 게임은 또 이렇게 쉬운 '핑계'로 소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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