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 내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칼럼 | 정필권 기자 | 댓글: 26개 |



지난 3월 초. 스팀의 '레이프 데이(Rape Day)'는 과도한 선정성, 자극적인 소재 때문에 논란이 됐다. 일러스트나 게임 내 비주얼이 야한 수준을 넘어, 범죄에 이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성인 전용 게임이었지만, 이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가 됐다.

게임의 이름처럼 성폭행은 예사요, 아동 착취(child exploitation)까지 게임 내에 표현했으니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해당 내용은 유저들의 피드백이 들어와 수정되었으나, 게임의 중심 내용 수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으로 강간, 살인 등을 저지른다는 내용을 담은 이 비주얼 노블 게임은 순식간에 스팀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게다가 이 게임은 1차적으로 스팀의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기 전에 스팀은 레이프 데이를 스토어에 등록했고, 개발사는 이 게임의 출시를 4월로 확정 지었다. 그리고 스팀이 게임을 스토어에 등록하면서 스팀 기준의 실효성이 도마에 올랐다.

이는 곧 스팀을 이용해 콘텐츠를 배포하는 데에 적용되는 지침이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밸브가 '문제가 될 수 있는 게임'을 사전에 판단하여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 스팀웍스 문서의 등록절차, 규정 및 지침 항목에서는 스팀에 게시할 수 없는 콘텐츠로 10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증오나 폭력을 유발하는 언어 폭력 콘텐츠, 포르노그래피, 적절한 등급 및 연령 심사를 받지 않은 성인 콘텐츠 등 생각보다 까다로운 기준으로 게시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한한다.

문제는 그간 스팀에 성인 콘텐츠 제한을 풀라는 요구가 꾸준히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스팀에 성인 콘텐츠가 제한 없이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 제약이라는 측면은 물론이고 꾸준히 성인용 게임을 제작하는 개발사들로부터 문제가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결정된 사항이다.




이에 따라 게임의 노출 방식이 변경되기에 이른다. 성인 전용 게임들이 검색 시에 회색으로 노출되거나, 개인 설정에서 체크해야만 보이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2018년 6월 7일, 밸브가 블로그를 통해 "불법적이지 않은 모든 게임에 대해서 등록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이후다.

스팀이 거의 모든 게임을 수용하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방면에서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성인 전용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선정적인 일러스트를 전면에 배치한 퍼즐 게임들이 정책 변경 이후 꾸준히 출시되기에 이르렀다. 선정적인 게임은 물론, 가짜 게임, 트레이딩 카드 악용 문제 등 작년 한 해 동안 스팀의 운영 면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정책적으로 변화하게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팀은 '명백한 트롤링'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2018년 9월부터 적용된 '명백한 트롤링 게임들은 출시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지금까지 유지 및 적용되고 있다. 기준으로 삼기에는 모호한 표현이다. 밸브 또한 모호하다는 지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온갖 유형의 트롤링이 존재한다'는 데에서 '명백한 트롤링'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다.

대다수의 사용자가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게 만든 소프트로 사람들을 골탕먹이는 데 열중하는 게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눈속임을 통해서 소액의 이익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찾는 게임, 갈등이나 대립을 조성하려고 시도하는 게임과 개발자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트롤들은 게임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에 사실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임을 개발 및 판매하기 위한 동기가 결여된 개발자는 곧 트롤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 스팀은 이제 '트롤링' 여부라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그렇기에 밸브는 어떤 게임을 트롤이라고 평가할 때, 개발자에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했다. 개발자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게임의 제작 배경과 판매 목적을 알아내기 위한 작업을 거친다.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최종적인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판단 기준은 게임의 완성도가 아니라, 개발자의 의도에 있다는 판단이다.

불법적이지 않은 콘텐츠라는 첫 기준. 그리고 개발자의 의도에 따른 트롤링 게임이라는 규정이 현재 스팀 내에 통용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따라서 레이프 데이는 한국시각으로 7일 새벽, 스팀에서 내려가게 됐다. 의도적으로 이슈를 만들어낸 게임으로 판단하고 게임의 유통을 금지하겠다는 결정인 셈이다.

밸브는 이를 두고, "사실관계 확인과 논의를 거쳐, 레이프 데이가 다른 개발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비용(cost)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스팀에서 게임을 제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 결국 레이프 데이는 스팀에서 내려가게 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화두가 되는 주제는 '표현의 자유' 그리고 '기준 적용의 모호함'이다. 유저들의 찬반도 확실하게 나뉜다. 이번 삭제를 두고 찬성 측은 스팀을 옹호하고 있으며, 반대 측은 유사하게 불법적 콘텐츠를 가진 게임이 있음에도 왜 레이프 아웃만을 삭제했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 심지어 개발사가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적극 수정하는 모습도 보여줬기에, 논란은 거세다.

당장 스팀만 둘러봐도 존재하는 성인 등급 게임 중에 불법적인 콘텐츠를 의심할 수 있는 사례들이 다수 있다. 스팀 버전은 일부 수정이 가해졌다고 하나, 패치로 이를 없앨 수 있는 일루젼의 'VR 카노죠'도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를 내용에 담고 있다. 이외에도 'hentai'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수많은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3월 말에는 남자가 남자를 노리는 일본의 에로 게임, '여장신사'까지 출시된 상태다.

거의 대부분의 게임물을 등록한다는 밸브의 방침.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트롤 게임 삭제 정책은 논란으로 이어졌다. 스팀의 정책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는 동시에, 본질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허용할 것인지. 폭력과 선정성을 두고 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지에 대한 논의 과정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는 곧 다른 나라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 개방 이후, 선정적인 게임이 잔뜩 늘었다.

게임의 폭력적, 선정적인 표현에 대한 법적 해석은 비단 레이프 아웃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과거 '모탈컴뱃', '맨헌트', '포스탈'의 과도한 폭력성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진 바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폭력 게임을 금지한다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고, 미 연방대법원까지 올라 논의가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선정성을 이유로 라스트 오리진이 구글플레이에서 삭제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등급분류 거부 조치를 받은 '뉴 단간론파 V3', 전작과 달리 과도한 폭력 표현으로 국내 등급 거부가 이루어진 '모탈컴뱃11' 사례도 나왔다.

게임의 표현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폭력과 선정성 사이에서 어떠한 부분을 지양해야 하는지는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아직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측면, 법적인 한계에 따른 다툼의 역사이기도 하다.



▲ 척추를 뽑던 모탈컴뱃 최신작은 국내에서 등급 분류 거부 판정을 받았다.

게임이 가진 표현의 자유 측면에선, 미국의 논란을 참조할 수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적인 측면에서 '폭력·선정적인 비디오 게임을 예술로 볼 수 있는가?'란 주제는 격렬한 논의가 오간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미 연방대법원의 캘리포니아주 주법 위헌 결정이다. 캘리포니아주의 주법은 2005년 아동심리학자 릴랜드 이(Leland Yee)에 의해 논란이 시작됐다. 해당 법률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데 목적을 뒀다.

여기서 중점이 되었던 것은 폭력적인 표현을 '음란적 행위'로 판단할 수 있느냐였다. 미국 내에서는 음란물을 청소년들에게 배포하는 행위는 수정헌법 1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주는 폭력적 게임물 또한 음란적 행위로 판단하고 게임을 규제하려 했다. 그래야만 표현의 자유 영역을 벗어나 규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긴 시간 논의가 계속되었던 문제이기에 요점만을 정리하자면, 미국 연방대법원 폭력을 '선정성'의 영역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게임 내에 폭력적인 장면이나 요소가 포함되었더라도 이를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판결은 이후 브라운 사건(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s Association)으로 불리게 되며, 미국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실마리가 됐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게임의 폭력성을 이야기했을 때,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가(IGDA)가 근거로 삼은 것도 이 판결이다.



▲ 그래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이 '헤이트리드' 같은 게임.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논란도.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과정을 겪지 못했다. 그간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했던 것 때문이기도 하며,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전심의제도 또한 존재한다. 국내에서의 등급분류는 아직 관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다른 나라와는 다른 주도권, 기준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기에 기준 또는 인식이 변화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례처럼 논쟁과 판결의 과정에서 업계와 관, 대중의 판단 기준을 조절할 기회가 없었다는 의미다. 법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갈등의 영역에서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시간이 국내에는 전무했다.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박종현 조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브라운 판결의 의미를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었던 인식의 전환이었다"고 해석했다. 새로운 매체나 콘텐츠를 보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규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됐다. 여기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매체와 대중적인 콘텐츠가 제시될 때마다 등장했던 문제를 끊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 논란을 종식시켰던 미국 연방 대법원

지금 시점에서 해당 판결을 돌이켜보면, 국내 게임 시장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대한민국 두 나라가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만 명확한 기준을 고민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 이슈가 되었던 등급분류 건과 관련해서도 지향점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등급분류를 둘러싼 논란과 토의는 꾸준히 제기되었던 심의 기준, 형평성, 객관성 등 거의 체계를 아우르는 논의를 진행할 기회이기도 하다. 시작은 비영리 게임에 맞춰져 있었으나 더 넓은 범위로 논의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꾸준히. 그리고 깊이 있는 논의와 방향성이 필요한 셈이다.

게임을 바라봄에 있어서 어떤 기준에서 폭력성과 선정성을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허용될 수 있는 선정과 폭력의 한계선은 어디까지일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서 등급분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전까지 정상적으로 출시되던 게임이 최신작에서 등급거부를 받는 사례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현실에 가깝게 그래픽이 변화하는 요즘, 폭력과 선정성을 어떤 잣대로 바라보아야만 하는지. 시대상을 반영한.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판단 근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게임이 갖는 표현적 예술적 가치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신중한 고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셧다운제, 모니터링 등 청소년 보호라는 관점에서 콘텐츠의 규제가 과잉적으로 이루어지고 심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시점. 미국의 브라운 판결이 그 단초를 던졌듯, 콘텐츠 보호와 규제한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려는 결과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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