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후후후... 그 녀석은 과금 사천왕 중 최약체지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60개 |



미국 게이머들이 꽤 화났나 보다. 포브스를 둘러보고 딱 그 생각이 들더라.

미국의 출판기업 포브스는 이거 올려도 되나 싶을 정도의 제목을 단 기고문을 게임 섹션에 올렸다.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AAA게임의 잠재적인 디스토피아 미래를 보여준다". 나라면 이 정도로까지 게임을 '깔'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센 제목이다. 내용도 그렇다. 글은 게임이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시스템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한다.

- 게임을 플레이해 무료로 상자를 얻을 수 있지만 그걸 여는 데는 적어도 3시간, 혹은 6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줄이려면 돈을 내라.

- 가방의 소지 한도는 제한되어있다. 가방이 가득 찼다면 악마의 선택이 남았다. 힘들게 모은 아이템을 파기하거나 소지 한도를 늘리기 위해 돈을 내라.

- 상자를 얻기 어렵다면 터치 몇 번에 살 수 있다. 원한다면 돈을 내라.

- 진행이 막혔을 때 등장하는 팝업 속 아이템은 강력하다. 사려면 돈을 내라.

- 마을을 복원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줄이려면? 돈을내라

- 일자리 보드에는 그날그날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임무가 있다. 물론 자동으로 클리어하고 보상만 얻을 수 있다. 귀찮다면 돈을 내라.

- 게임을 하다 죽었다면? 그래도 부활한다. 걱정 말고 돈을 내라.


읽다보니 '너무 심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다 쏙 들어가버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과금 문법이다. 랜덤하게 획득하는 상자.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성장할 수 있지만, 돈을 내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그럼에도 운이 없다면 돈을 써도 얻지 못할 가능성까지. 지금 플레이하는 모바일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것들이다.

혹자는 말한다. 이 게임이 세계적인 대작 '엘더스크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나의 엘더스크롤은 이렇지 않다며 울부짖는 거라고. '엘더스크롤'이 어떤 게임인가. 샌드박스식 서양 RPG의 표본으로 불리고 30초 티저 영상 하나에 분석글이 논문 급으로 나오는 풍미가 넘치는 게임 아닌가. 그런 작품의 모바일이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거다.



▲ 이거 한 장으로 지역이며 배경스토리며 예측하는 게 엘더스크롤 마니아들이다.

포브스 선임 기고자 폴 타시와 에릭 카인의 글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그들의 말마따나 '게걸스럽게 수익을 좇는' 결제 방식이 수익을 내고 이런 행태를 AAA 게임들이 뒤따르지 말라고 경고했다. 짧게는 '엘더스크롤: 블레이즈' 이후 출시되는 베데스다의 '레이지2'부터 이어질 AAA 게임의 방향성을 걱정했다.

이런 북미 게이머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럽다. 그들의 걱정은 우려를 남길만한 게임이 아직 남아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어떤가. 그저 획일화된 문법에 벗어나 있거나, 모바일 외의 기종으로만 나와도 마치 독특하고 참신한 시도를 한, 도전적인 작품으로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대작, A급 게임이라 불릴만한 작품들은 이제 후속작 대신 IP를 활용한 외전 만들기에 한창이다. 그리고 어떤 게임이 나올지 대충 감도 잡힌다. 모바일, 부분유료화, 그래픽이나 콤보, 혹은 자동전투를 도와주는 전략 등 게임이 자랑할 요소 몇 개가 더해진 작품.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기고자들이 우려한 과정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어쩌면 필연적이고 앞으로 더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좋든 싫든 부분 유료화가 게임 판매 전략의 키로 떠올랐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제작사는 게임이 아닌 게임 내 콘텐츠를 판매하는 만큼 불법 복제문제를 일부 해결할 수 있다. 게임을 접하는 진입 비용이 없어 유저 풀을 마련하기도 쉽다.

이같은 장점에 서구권에서도 F2P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2011년에는 블리자드에 몸담았다가 개발사를 설립하고 '파이어 폴'을 만든 마크 컨이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모델을 주목하라"며 아이템 기반 수익 모델을 적극 받아들이라 조언했다. 2013년 GDC 현장에서는 아에리아 게임즈의 톰 니콜스가 강단에 올라 아시아의 F2P의 시스템을 설명했다. 그들이 하루아침에 보고 따라 했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 베데스다도 F2P 과금 시스템을 테스트해왔다.

'엘더스크롤' 시리즈는 물론 '폴아웃' 등 AAA 게임만 전문으로 개발할 것 같은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역시 부분유료화 실험을 이미 진행했다. 모바일로 처음 출시된 '폴아웃 셸터'는 게임 플레이와 결제 욕구를 자극하는 아이템의 적절한 줄타기로 평가와 수익 모두 사로잡은 바 있다.

결국은 얼마나 차근차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게 하느냐 차이다. 대표적인 예가 EA다. EA FIFA의 넘버링 시리즈는 선수를 유료 카드팩으로 랜덤 수급하는 게임 내 결제 아이템으로 매년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루트박스의 아이템 획득 비중을 지나치게 높인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는 유저들의 뭇매를 맞았다. EA는 두 게임, 그리고 이미 시도 중인 게임들의 아이템 판매 성과와 과오를 살펴 더 나은 결제 시스템을 내놓을 테다.

'엘더스크롤: 블레이즈'에서 가장 크게 지적된 과금 요소인 상자 오픈 시간 단축과 확정 획득 팝업 판매는 소소한 과금 시스템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지어 시간 단축은 한때 '착한 과금'의 하나로 포장된 것 중 하나니 말 다했지. 베데스다로서는 결과도 좋다. 뭇게이머들의 우려를 산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정식 출시 전 iOS만 이뤄진 얼리액세스 단계에서 이미 5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숫자로 그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날 중)

안됐지만 '엘더스크롤: 블레이즈'에 포함된 결제 시스템은 앞으로 등장할 과금 시스템 중 최약체일 뿐이다. VIP, 컴플리트 가챠, 2중 3중 과금이 남았다. 게임도 피지컬 싸움이다. 외국 용사들이여. 과금 사천왕을 앞둔 그대들의 지갑력을 그 어느 때보다 키울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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