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가 우리 편인가?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13개 |



'게임이용 장애' 국내 등재는 정치 문제다. 결국, 등재될지 말 지로 결론이 난다. 중간은 없다. 결론을 위해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나뉜다. 지금은 편끼리 모여 힘을 키워나가는 단계로 보인다. 당사자인 게임업계는 발언의 힘이 없다. 내세우는 것도 산업 피해 논리에서 몇 개월째 나아진 게 없다. 찬성 측 대표 선수로는 정신의학계가 꼽힌다. 지난 5년 동안 열심히 연구했다. 수백억 원으로 무장한 논문을 내세우는 모양새다.

2일 한국심리학회장 조현섭 교수를 만났다. 조현섭 학회장은 "게임이용 장애 질병화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교수 개인 의견에 그치는 게 아닌, 한국심리학회 의견이다. 조현섭 학회장은 "게임이용에 폐해가 있는 건 사실이다"라 전제하며 "그러나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화해 치료하는 것은 분명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이용에 폐해가 있으나 질병으로까지 규정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심리학회는 우리나라 최대규모 학술단체다. 석사 이상 회원만 7만 5천여 명에 달한다. 행보도 적극적이다. 국회 내에서 정신의학계 방향이 잘못됐다고 짚었다. 앞서 조현섭 학회장은 민관협의체 4차 비공개회의에까지 나서 게임이용 장애 국내 등재 반대 의견을 냈다. 게임업계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분명한 건, 한국심리학회가 우리나라 게임사를 위해 움직이는 건 아니다. WHO가 제시한 게임이용 장애 내용을 학자로서 아니라고 봐서다. 한국심리학회가 게임업계를 걱정하는 단체는 아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건 잘못된 게임이용 장애 적용으로 피해를 보는 아이들이다. 청소년 보호에 있어 한국심리학회는 게임사에 단호하다. 하지만, 한국심리학회는 정신의학계의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편'이 됐다.

일부에서는 결국 정신의학계와 한국심리학회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거라 조소를 보낸다. 현실 정치에서도 양측 의견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일반인, 게이머로서 전문가 영역인 심리학과 정신의학 중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무관심이 답은 아니었다. 게임이용 장애 등재 문제도 같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고 무엇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 들어봐야 한다.

누군가의 잘못된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셧다운제가 있다. 셧다운제 역시 겉으로 드러난 취지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셧다운제를 위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들은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해야지' 식이었다. 이 시스템 구축에 많은 중소게임사가 나가떨어졌다.

한국심리학회가 우리 편이 된 시점에, 우리 쪽에 문제가 없는지 한 번 더 살펴볼 때다. 정신의학계에서 경고하는 게임의 중독성은 원인이 여럿이다. 정신의학계도 게임이 재밌어서 오래 하는 걸 중독이라 말하진 않는다. 현대 게임중독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항상 사행 행위를 만난다. 쉬운 말로 뽑기다. 뽑기 시스템을 뜯으면 카지노를 벤치마킹해 적용한 포인트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포인트들은 꽤 오랫동안 회사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논리에 가려지고 있다.

토론회에서 반복적으로 연출되는 장면이 있다. 찬반 측이 얘기하는 게임이란 단어의 기표와 기의가 다르다. 누군가 게임을 말할 때 '젤다의전설: 야생의 숨결'을 떠올리고, 다른 이는 뽑기를 연상한다. 모두 게임인 건 맞다. 그러나 두 게임을 해 본 유저가 같은 점수를 줄 리 없다. 현재 우리 편이 어떤 게임을 서비스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편에 트롤러가 있는 건 아닐까?

게임이용 장애 등재 반대를 말하는 건 게임사 매출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몇몇 게임사는 걱정을 받기엔 너무 멀리 갔다. 게임이용 장애라는 단어에 지금까지 게임을 하며 즐거웠던 기억들이 부정당하는 우리가 있다. 이 우리라는 단어에 게임사들이 함께한다는 걸 게임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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