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왜 '과금'하는가

칼럼 | 윤홍만 기자 | 댓글: 55개 |



왜 게이머들은 극악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과금하는 걸까. 확률형 아이템, 수집형 게임과 관련된 이슈를 볼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확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그만큼 좋은 아이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성능만을 놓고 얘기하자면 석연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굳이 수집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템이나 성능이 낮은 캐릭터도 완벽한 컬렉팅을 목표로 수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쓸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집하는 그 기저심리는 뭘까.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에게서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러한 수집욕 자체는 생물의 자연스러운 본능이기도 하다. 비단 인간만의 욕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물들도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하면서 먹이나 빛나는 물체를 수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수컷보다 더 많이 수집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야생에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당연히 생존에도 유리하기에 구애에도 유리함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즉, 동물의 수집은 생존과 종족 번식이라는 본능에 귀결한 행동인 셈이다.

물론, 인간과 동물의 수집은 규모가 다르다. 그리고 인간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본능 때문에 수집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뭔가를 사고 모으는 그 근간에는 생존이 아닌, 과시하고 싶다는 기저심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값비싼 보석처럼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게 아님에도 이러한 것들을 산다는 건 그만큼 돈을 낭비해도 된다는 걸 보여준다.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극악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과금하는 건 단순히 좋은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들여도 괜찮다는, 여유를 과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들이 갖기 어려운 것일수록 가치는 높아진다. 성능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희귀한 장비가 더 고가로 취급되는 이유다. 수집하는 사람으로서는 성능이 아닌 희귀하다는 그 가치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률이 낮을수록 좋은 아이템이나 캐릭터인 건 당연하니 게임에서 과시하기엔 이만한 것도 없다.




게임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얼핏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는 건 게임사에게 있어 안 좋아 보이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악한 확률을 자랑하면 유저들이 과금하기 전부터 질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선을 좀 다르게 보면 이는 앞서 언급한 인간의 '과시욕'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슈퍼카를 예로 들어보자. 흔히 부의 척도 중 하나로 슈퍼카를 들곤 한다. 수십에서 수백억을 호가하는 가격. 말 그대로 아무나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슈퍼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그 가치를 노출하곤 한다. 일반 대중들에게 돈을 모아서 사라고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비싸고 가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역시 마찬가지다. 극악한 확률을 통해 대중들에게 그 가치를 각인하는 것이다.

현실 혹은 게임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사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가 한정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집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자만이 가능한 행위였다. 권력자만이 병사를 동원해 맹수를 잡고 그들의 가죽을 입을 수 있었으며, 귀한 보석들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계급으로 위계가 명확히 나누어졌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계급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기에 다른 방식으로 과시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욕망 속에서 탄생한 게 바로 명품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십에서 수백억짜리 슈퍼카라고 해도 일반적인 차량보다 수백에서 수천 배나 빠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슈퍼카를 탄다. 그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자극한 명품들은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주장한 대로 비싼데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비쌀수록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확률형 아이템들이 극악한 확률을 자랑함에도 과금하고 여기에 매달리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대부분은 확률형 아이템의 극악한 확률을 비난하지만, 그조차도 그것을 가진 유저들을 만족시킨다. 비난조차 하나의 관심이고 과시욕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결국, 모바일 게임 시장과 함께 성장한 확률형 아이템은 사라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는 명품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게이머들이 악랄해질 대로 악랄해진 확률형 아이템에 힘들어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규제의 목소리가 커진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 가장 좋은 건 업계 스스로 자정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기존의 확률형 아이템이 과시하고자 하는 유저들을 위한 과금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즐기고자 하는 유저들을 위한 과금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슈퍼카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 질투하면서도 무턱대고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치품으로서의 슈퍼카는 살 수 없지만, 그 역할 자체는 대부분의 차량이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이런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명품으로서의 BM이 아닌, 생필품으로서의 BM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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