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큘러스의 독주는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13개 |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VR 라인업이 전체 스팀 VR 헤드셋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업계 1위의 자리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한때 스팀 VR 헤드셋 점유율 지표에서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하며 오큘러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강호 HTC는 시간이 갈수록 과거의 위상을 잃고 추락하는 모양새다.

스팀은 지난 4일, 2020년 11월자 '스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이용량 조사'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서는 스팀 플랫폼을 이용하는 유저들의 각종 하드웨어 관련 데이터는 물론, 스팀 VR 유저들이 평소 어떤 기기로 VR 콘텐츠를 플레이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오큘러스 퀘스트의 점유율 변화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큘러스 퀘스트의 점유율 상승에는 지난 10월에 출시된 페이스북의 신형 VR HMD, '오큘러스 퀘스트2'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국내에도 정식으로 출시된 오큘러스 퀘스트2는 최신형 VR HMD임에도 불구하고 40만 원 초반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발매되어 많은 VR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다. 오큘러스 퀘스트의 점유율은 여전히 HTC 바이브의 점유율 아래로 기록되고 있으나, 한번에 5.5%에 달하는 폭력적인 상승률을 보여준 오큘러스 퀘스트가 최근 들어 계속해서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는 HTC 바이브를 넘어서는 일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Steam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설문조사, VR 헤드셋 점유율 (2020. 11)

이번 조사 결과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오큘러스의 VR HMD 라인업이 스팀 전체 VR 점유율의 과반수를 넘긴 53%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9월 조사에서 오큘러스 리프트S가 HTC 바이브를 제치고 '스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VR HMD'가 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오큘러스의 점유율은 절반에 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오큘러스는 스팀 전체 점유율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됐고, 비로소 대다수의 스팀 유저들에게 선택을 받은 최고의 VR 헤드셋 제조사가 됐다.

차세대 소셜 플랫폼으로 VR을 내세우며 저가형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페이스북의 행보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VR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들조차 오큘러스 퀘스트2와 이를 활용해서 즐길 수 있는 수많은 VR 콘텐츠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움직임은 스팀 지표를 통해서도 조금씩,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13년 만에 공개되는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신작' 정도의 화려한 꼬리표라도 달지 않으면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았던 VR 시장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할 정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장을 집어삼킬 기세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페이스북의 행보를 마냥 행복하게 지켜볼 수 없었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는 자연스레 독점 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시장에서는 하나의 기업이 시장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자연스레 독점에 관한 우려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다. 경쟁할 상대가 없어지면 상대 기업보다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기 위해 치열하게 벌여왔던 가격 경쟁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것이고,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신기술들의 도입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과장해서 예를 들어보자. 지금이야 PC용 VR 콘텐츠를 개발할 때 윈도우 MR 라인업부터 바이브, 오큘러스, 인덱스까지 대부분의 VR HMD에 대응하도록 개발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VR 시장을 독점하는 미래에는 처음부터 오직 오큘러스 기기만 지원하는 VR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결국엔 오큘러스 VR HMD가 아니면 VR 콘텐츠를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스팀이 공개한 VR 헤드셋 점유율 지표 하나만으로 벌써 페이스북의 시장 독점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오큘러스 스토어나 바이브포트 등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기타 스토어 지표도 많이 남아있고, 가장 최근에 발매된 HP의 신형 VR HMD 'Reverb G2', 그리고 전세계에서 500만 대 이상 판매됐지만, 스팀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소니의 PS VR은 아예 집계에 포함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시장 상황이 계속 유지된다면 '페이스북의 VR 시장 독점'은 상상 속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벌써 20년 이상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며 경쟁 관계를 이루고 있는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매번 발전된 기술의 게임 콘솔로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처럼, 페이스북에게도 그들의 멈추지 않는 독주를 저지할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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