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사막, 건투를 빈다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55개 |



참 희귀한 경험을 했다. 지난 11일 2020 더 게임 어워드(TGA)에서 발표된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의 반응은 확실히 뜨거웠다. 게임 기자로서도 오랜만에 느끼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국내에서 콘솔 게임에 도전한 개발사는 많았지만, 이 정도 무대에 이 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들고나온 게임사로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해외 시상식에서 자신감 넘치는 한글 로고라니 내 것도 아니지만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TGA가 밝힌 올해 시상식 생중계 시청자 수는 지난해보다 85% 증가한 8,300만 명이었다.

국내외 게이머들은 물론 해외 매체의 반응도 즉각 쏟아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아찔한 정도로 방대한 게임 환경과 효과를 보여주면서 엔진 성능이 매우 인상적임을 알렸다"며 펄어비스의 기술력을 주목했고 북미 최대 게임 미디어 IGN은 "미쳤어, 이건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이야"라고 소개해 붉은사막의 영상미에 감탄했다. 립서비스라고 해도 기분 좋은 말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갓 오브 워(2018년 TGA GOTY 수상)' 디렉터로 유명한 코리 발록의 멘트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기다리기 힘들다. 빨리 플레이해보고 싶다(Can't wait to get some play time with #CrimsonDesert)라고 말해 붉은사막의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설명해줬다.


■ 김대일 스튜디오의 귀환, 목표는 'GOTY'

작년과 올해는 누가 뭐래도 문화 수출의 해였다. BTS가 K팝으로 세계를 휩쓸었으며 기생충은 작년에 외국에서만 각종 영화제에서 200여 개의 상을 수확했다. 국내 게임 역시 수출상 등 여러 상을 받긴 했지만 말 그대로 외화를 많이 벌었다는 뜻이지 BTS, 기생충의 업적에 비견될 바는 아니다. 그래서 문체부가 7월 발표한 ‘신한류 정책 추진 계획’ 추진 배경에서 드라마, 영화와 K팝의 성과 사례는 있지만, 게임의 성과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외국에서 게임 개발사로 인정받으려면 메이저 시상식의 'Game Of The Year(GOTY)'를 목표로 잡아야 한다. 국내에서도 펍지의 배틀그라운드가 압도적인 판매량과 유저풀로 TGA GOTY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다. 물론, 배틀그라운드는 애초에 GOTY를 노리고 만든 게임은 아니어서 그런지 김창한 대표는 인터뷰에서 "젤다의 전설이나 호라이즌 제로 던 같은 트리플 A급 게임들이 많아서 우리는 GOTY에 욕심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붉은사막'은 다르다. 김대일 총괄 PD가 선봉장으로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으며 차세대 엔진 개발을 완료하고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회사의 모든 역량을 투자하고 있다. 김대일 총괄 PD는 18일 붉은사막 코멘터리 영상을 통해 "우리가 그간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콘솔게임 도전에 대한 각오를 전하기도 했다.

202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약 15조 원으로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도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다음으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땅 크기와 인구를 고려하면 꽤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국내 시장에서 콘솔게임의 점유율은 4.5%에 그치고 있다. 국내 게임사가 섣불리 콘솔 게임 개발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작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면 국내에서 다 팔아도 손익계산이 안 맞는다. 이것은 한 번 쯤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니다. 펄어비스가 작심하고 뛰어든 도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펄어비스, 변화가 '기회'를 만든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많았죠. 네가 프랜차이즈를 망쳐놨어!'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밖으로는 '괜찮아 잘 될 거야' 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F**K'을 수없이 외쳤어요. 뭐, 그런 말이 맞았을 수도 있었겠지만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합니다. 뭐든 시도를 해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시도 없이는 변화도 없다" ('갓오브워' 코리발록 디렉터 GDC 강연 中)-

2018년 GOTY의 영광은 '갓오브워' 차지였다. 고점 시점의 액션 어드벤쳐 게임을 솔더뷰 시점의 3인칭 액션게임을 만든다고 선언했을 때 팬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스스로 짊어진 부담감의 무게가 더 컸을 것이다. 쉬운 길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게임 출시 후 리뷰 점수(메타크리틱 종합 94점)를 확인하면서 눈물 흘리는 장면은 팬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전 세계 팬들이 2만 개의 댓글로 그를 응원했다.

앞으로 펄어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개발 과정에서의 고통과 어려움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외부적인 수많은 편견과 우려의 목소리를 견디는 게 더 클 수 있다. 특히 국내 개발사가 한 번도 시도 하지 않았던 트리플 A급 싱글 콘솔 게임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술도 사람도 부족한 국내 콘솔 토양에서는 더욱 그렇다.

김대일 총괄 PD는 '개발자 이야기: 붉은사막에 대해' 코멘터리 영상 말미에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다들 최선을 다 할 것이다"라며 "응원해 주시고,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창업 후 지금까지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했던 펄어비스지만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응원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 개인적으로도 펄어비스가 지치지 않고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완주했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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