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VR, 자투리 취급은 끝났다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6개 |



2020년 최다 GOTY 선정 절차도 끝물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게임들이 순위에 올랐는지 둘러보던 중에 생소하면서도 반가운 결과가 눈에 띄었다. 수많은 PC, 콘솔 게임들 사이에 VR 게임인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9개 매체가 뽑은 GOTY로 선정되며 종합 집계 6위에 올라와 있는 모습이었다. 혹자는 밸브가 야심 차게 내놓은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차기작이니 놀랄 것도 없는 결과라고 말하겠지만, 그간 VR 게임이 받아온 취급을 떠올려보면 이는 감개가 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임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명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공적을 치하하는 시상식 자리에서도 VR 게임은 항상 주류 게임들과 따로 나뉘어 분류되는 '자투리' 취급을 면치 못했다. 지난 2018년에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VR 리듬 게임 '비트 세이버' 역시 당해 최다 고티 목록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물론 '올해의 VR 게임상'은 수백 개를 휩쓸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 결과를 기억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VR 게임이 PC, 콘솔 플랫폼으로 출시되는 여타 디지털 게임들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괄목할만한 매출 지표를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닐슨 산하의 시장조사업체 슈퍼데이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디지털 게임 매출인 1,266억 달러(한화 약 139조 원) 중 VR 게임의 매출은 불과 1%도 채 되지 않는 5억 8,900만 달러(한화 약 6,465억 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VR 게임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25% 이상 크게 성장했다고 하지만, 이는 하프라이프: 알릭스라는 대작 게임 하나가 세운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2019년에 발매된 모든 PC VR 게임을 다 더한 것보다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성과가 단순히 게임 한 편의 실적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슈퍼데이터의 조사에는 VR HMD 출하량에 관한 통계도 함께 포함됐는데, 여기에선 오큘러스 퀘스트로 대표되는 스탠드얼론 VR HMD가 2020년 한 해 동안 340만 대 이상 출하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20%가량 성장한 지표이며, VR을 이미 가지고 있던 이들 외에도 킬러 콘텐츠의 출현에 힘입어 VR에 입문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하나의 킬러 타이틀이 견인한 모양새가 되었지만, VR 게임 시장에 청신호가 들어온 상황이란 것은 의심할 바가 없는 사실이다. VR HMD를 보유한 개인 유저 수가 유례없는 규모로 증가하며 인프라가 확대되었고, 잘 만들어진 VR 게임이 유의미한 매출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역시 통계를 통해 증명됐다.

2021년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틔운 물꼬를 통해 GOTY 목록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만한 양질의 VR 게임들이 계속 쏟아져나와 VR 시장이라는 토대가 작년보다 더욱 비옥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 2020년 VR 게임 매출 (이미지출처: 슈퍼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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