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실된 사과는 왜 어려운가 -'이터널 클래시'를 보며

칼럼 | 이명규 기자 | 댓글: 202개 |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잘못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또 잘못된 판단을 가지고 행동을 하죠. 비록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때로는 자기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남에게는 잘못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때문에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세상에는 잘못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게 있습니다. 바로 이미 저지른 잘못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그런 농담이 있습니다. '사과문을 잘 쓰는 사람은 애초에 사과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고요. 일리는 있습니다만,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잘못도 종종 벌어집니다. 이런 일은 굉장히 흔합니다. 결국 누구던 '제대로 사과를 하는 법'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사실 한 번 잘못을 한 것 자체만으로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것은 다소 잔인하고, 또 섣부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와 잘못에 대한 직시가 있어야 그 다음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이기에, 어떻게 그 '책임'을 질 것인가가 중요하죠.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 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어떻게 '책임'을 져야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죠.






▲논란이 된 로딩 화면과 챕터 명칭

최근 벌키트리가 개발하고 네시삼십삼분(4:33)이 서비스하는 신작 모바일 게임, '이터널 클래시'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일부 챕터명에서 특정 정치적 관점을 담은 챕터명이 사용됐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절묘하고 적재적소에서 사용된 부분들이 많습니다. '낡은 역사서를 교정하는 중'이라는 로딩 바 멘트는 특히 게임과도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죠. 누구나 '일베'를 떠올렸을 겁니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자, 관점이 담긴 말들이었으니까요.

일단 확실히 할 것은, 이 문제에서 개발자가 일베 유저인지 아닌지, 혹은 개발사가 일베라는 커뮤니티와 연관이 있는지 아닌지는 핵심을 벗어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논란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런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는 모바일 게임 하나를 통해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고 있는 가치관이 부적절하게 노출됐고,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 만큼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지요.

결국 이 사건의 당사자가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이미 벌어진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죄의 태도'인 겁니다.



▲벌키트리 김세권 대표의 사과문

하지만 '이터널 클래시'와 관해 벌키트리에서 내놓은 사과문은 그다지 모범적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오해', '우연' 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과문과 이번 사건은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유저들의 반응도 '걱정'과 '우려' 보다는 비판이 맞습니다. 이 사과문은 사과보다는 해명에 가깝기에 개운함 보다는 찜찜함을 남깁니다.

물론, 이 사건도 그렇고 많은 사건에서 사과를 하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과를 하는 사람은 그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책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도 아닌데'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면 지금 사과를 해야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 뿐만 아니라 그런 잘못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현재 개발사인 벌키트리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또 이들 회사에 찍힌 '일베' 라는 낙인은 더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 개발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발생한 해프닝으로 치부되던 일이, 이제는 회사 전체로 의심의 눈초리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죠.

지금의 '사과문'은, 사과를 해야 할 당사자들이 '무엇이 왜,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됐고 어떤 해를 끼쳤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빨리 수습하는가' 에 더 초점을 둔 결과물이라고 짐작 가능합니다. 진실성은 생각보다 쉽게 글과 말에 묻어나고, 드러납니다. 그냥 이런 일 자체가 너무 불쾌해서 언급하기도 싫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기보단 그냥 빨리 덮어버리고 가고 싶겠지만, 그러면 안됩니다.

어물쩡 넘어가기 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곱씹고, 충분한 고뇌와 반성의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물쩡 넘어가는 사과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는 생각보다 쉽게 구별됩니다.




물론 '사과'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받아주는 이가 있어야 되는거죠. 그만큼 비판하는 쪽도 명확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미 잘못한 부분을 가지고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다'는 식의 확대, '무조건 잘못했다 할 것이지' 라는 태도가 아니라, 사실을 토대로 명확한 사죄와 차후의 발전을 보장받는 쪽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운 격언입니다. 이성적인 판단자로서, 우리는 그때그때 벌어지는 문제에 대해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우면 됩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상벌은 '책임'에 의해 돌아갑니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잘못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생합니다. '실수'니까 용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잘못한 만큼 적합한 책임을 지우되 만회할 기회 자체를 없애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정말로 인륜을 저버린 중범죄가 아닌 이상, 많은 일들은 되돌릴 수는 없어도 어느정도는 만회할 수 있고 또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또다른 폭력이 될 수 있고, 더욱 극단적이고 안좋은 사례만을 만들 수도 있겠죠. 사람은 정말 끝이라고 생각할 때 더욱 잘못된 판단을 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잘못과 그로 인한 피해는 없었던 것처럼 씻길 수 없습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힘든 말이겠지요. 이런 종류의 일에서 최선은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과 피해를 잘 치료하고 복구해 나가는 것이죠.




2016년이 이제 막 시작됐고, 4:33이나 벌키트리는 앞으로도 갈 길이 먼 회사입니다. 올해만 해도 4:33은 '로스트 킹덤'이나 '삼국블레이드' 등, 다른 게임사에서 개발하는 기대작이 포진해 있습니다. 만약 이번 사건으로 인한 '일베' 라는 주홍글씨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다면,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 게임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습니다. 가해 당사자도 아니고, 억울할 수 있겠지만, '책임'이 있는 회사로서 그걸 다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도 미래의 이득을 위해서도 옳은 일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입장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정말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직시해야 합니다. '진실성'만 있다면, 누구나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회를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이 먼저 스스로를 너무나 쉽게 용납해버리면, 누구도 용납해주지 않습니다. 이를 항상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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