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폴가이즈', 어떻게 성공했나?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48개 |

일단 그래픽은 단순하다. 언리얼 엔진5가 공개되면서 CG 기술이 한 걸음 더 진보한 지금이지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복잡한 기술이 도입된 흔적은 없다. 시스템도 단순하다. 조작이라고는 이동과 점프, 슬라이딩, 잡기 뿐. 목표 지점까지 닿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승리하는 게임을 다섯 번 연달아 승리하면 우승이다.

하지만 재미마저 단순하진 않다. 올망졸망 꿈틀대는 60개의 젤리빈이 출발 선상에 선 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세상 둘도 없을 난장판이 펼쳐진다. 누구는 함정에 당해 날아가고, 누구는 미끄러져 떨어지고, 또 누구는 본인의 성공은 뒷전에 둔 채 다른 이들을 방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과정에서 재미가 우러난다. 끓는 물에 넣은 멸치다시팩에서 우러나는 육수마냥, 아주 진국이다.

출시 후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수십만의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라선 게임. '폴가이즈'다.



▲ 게임 개발엔 유니티 엔진이 쓰였다.


'폴가이즈' 도대체 어떻게 성공했나?

'폴가이즈'의 성공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최신 기술이 덕지덕지 발린 그래픽도 아니고, 대기업의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야심작도 아니다. 게이머의 뒷통수를 얼얼하게 후려치는 소름돋는 반전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서 단순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긴 했지만, 실제로 플레이 해보면 웬만한 오락실 고전 게임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단순한 건 게임 뿐이다. 분석적 시선을 곁들여 찬찬히 살펴보면, 이 게임, 생각보다 꽤 영리한 게임이다. 그냥 으레 있을 것 같은 게임 요소들을 뭉뚱그려둔 것 같지만 아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UI다. 게임을 켜고, 대전에 들어가기까지 필요한 클릭 수는 두 번이다. 단 두 번이면 게임이 시작된다.



▲ 게임 시작까지 클릭 단 두 번

이전에도 '폴가이즈'와 비슷하게 간단한 조작과 심플한 규칙만으로 승부수를 띄운 인디 게임들은 적지 않았다. '갱비스트', '휴먼 폴 플랫', '아이앰브레드'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게임들 모두 약간의 어설픔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선가 엔진 기본 어셋으로 제작된 UI가 드러난다. 인디 게임이니 이해는 하지만, 게이머로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폴가이즈'는 그런 부분이 없다. UI는 깔끔하고, 조작감도 매우 우수하다. 인디 게임이라는 울타리 않에 놓여 있지만, 게임 완성도만큼은 대기업의 메인 타이틀 못지 않다. 물론, 게임의 틀이 단순한 만큼 완성도의 충족이 AAA급 게임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깔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 정말 좋은 게임이지만 다소 아쉬웠던 갱비스트. 멀티 플레이 하기 참 힘들었다.

콘텐츠 구성도 '폴가이즈'의 완성도를 높이는 부분 중 하나다. 눈으로 보이는 외형을 걷어내고 뼈대만 볼 때 '폴가이즈'는 배틀로얄이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보급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60명이 게임을 시작해 최후의 1인을 가려낸다는 기본 골자가 그렇다. '폴가이즈'는 여기에 변형을 주었다. 최종 승자를 가리는 과정을 다섯 라운드로 나누었고, 그중 몇 라운드는 팀전으로 진행된다.

이 점이, 게이머의 심리를 꿰뚫는 부분이다. 모든 유저의 실력이 동등하다 가정했을 때 승리 확률은 60분의 1이다. 60번을 플레이하면, 59번은 패배해야 되는 셈이다. 하지만 '폴가이즈'는 라운드제를 택함으로서 완전한 승리는 아니어도, 부분적인 승리감은 느낄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속되는 패배에 피로가 누적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팀전'도 마찬가지. 어느 게임이든, 혼자 플레이하고 혼자 패배하는 것보다는 팀으로 싸워 팀으로 패배하는게 피로가 적다. 지면 아군 탓이라도 할 수 있고.



▲ 부담도, 스트레스도 적은 팀 플레이

'폴가이즈'는 특별한 게임이 아니다. 게임 디자인은 흔하다 못해 넘쳐나는 '배틀로얄'을 기본으로 삼았고, 비주얼 또한 어디선가 본 듯한 수준의 캐주얼함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이 특별한 성공을 거둔 이유는, 게임의 모든 부분이 게임이 마땅히 주어야 할 '재미'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디 게임인 만큼, 게임에 덕지덕지 살을 붙이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게임의 핵심 재미는 어디까지나 플레이 과정에서 오는 변수. '폴가이즈'의 모든 조작과 시스템은 이 '핵심 재미'이 집중할 수 있도록 꾸려져 있으며, 그 외에 어떤 것에도 게이머가 신경 쓸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졌다.


이제 어떤 게임이 '좋은 게임'일까?

'폴가이즈'의 성공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시사점을 지닌다. 장르 혼합과 파생이 일상화되면서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에도, '폴가이즈'는 캐주얼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어떤 연출이나 서사, 교조적 담론 없이 게임 플레이 자체에 집중해 그것만을 살려낸 게임. 그러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부담없는 부분까지, '캐주얼 게임'의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캐주얼 게임은 게임 산업의 일각을 이루는 부분 중 하나로만 기능했을 뿐,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임 산업이 발전할수록, 게이머들은 게임에게 '게임 플레이의 재미 외적인 부분'을 요구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돌아가는 그래픽 비주얼부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 거장 감독의 미장센이 느껴지는 연출은 '요즘 대작'이라면 당연히 챙겨 가야 할 필수 요소다.



▲ '대작'의 벽은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캐주얼 인디 게임들은 '올해의 캐주얼 게임'을 제외하곤 수상식에 이름을 내밀기도 어렵다. 누군가 '캐주얼은 좋은 게임이 될 수 없다'라고 못박은 건 아니다. 그냥 게임 산업이 발달하면서 함께 높아진 게이머의 눈높이가 이런 현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폴가이즈' 이전의 캐주얼 인디 게임들은 톡톡 튀는 게임성으로 이슈는 되었을지언정, 유의미한 영향력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그런 게이머들이, 캐주얼 인디 게임을 '주류 게임'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게임 산업 발달에 발맞춰 함께 발전한 '게임 방송' 시장의 영향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게이머의 수가 늘어났고, 그만큼 게이머들의 수용 한도도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과거로만 거슬러가도, '게이머'라는 그룹은 특정할 수 있는 특징들이 있었다. 그 시절 수많은 게임들이 등장했지만, 유독 헐벗은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왔던 이유가, 특정 장르가 대세를 잡으면 다른 장르의 게임들은 한풀 시드는 모습을 보였던 이유가 모두 게이머층이 가진 트렌드의 여파였을 것이다.



▲ 수많은 게임 중 4위

이제는 아니다. 게이머는 너무나 많아졌고, 다양한 장르와 수준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그룹이 되었다. 과거의 게이머층이 무리지어 몰려 다니는 청어 떼와 같았다면, 지금의 게이머는 물 속에 떨어진 잉크처럼, 규칙성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그룹이다. 그저 캐주얼 인디 게임 중 하나로 여겨졌을 게임이 글로벌 단위의 흥행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폴가이즈'의 성공이 방증이다. 지금껏 게임 산업은 꾸준히 발전하는 동시에 변화해왔고, 시대에 따라 '좋은 게임'의 기준 또한 언제나 바뀌었다. 이제는 아니다. '비주류'로 분류되던 장르라 해도 완성도만 갖춘다면 좋은 게임이 될 수 있고, 주목받을 수 있는 시장. 게이머들은 변했다. 게임 시장도 변했다.

'좋은 게임'의 기준도 변했다. 전처럼 게이머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만 우겨넣은 '무조건 통하는 게임'은 답이 아니다. 조금은 다르더라도,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게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게임도 이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게이머들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발사의 차례다. 벌써부터 체질 개선을 해가며 바뀔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한 번쯤 생각해봄직한 주제는 아닐까 싶다. 게이머 그룹의 취향 특정성이 사라진 시대. 무엇이 좋은 게임이며, 성공할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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