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용량과 콘텐츠를 한번에 잡는 방법?

칼럼 | 정수형 기자 | 댓글: 22개 |


▲ 프라이스 대위의 가소롭다는 눈빛

곧 시즌4를 시작하는 콜 오브 듀티. 카리스마 대장 프라이스 대위가 등장한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해볼 생각에 설치를 해봤는데... 용량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게임 하나에 용량이 219GB. 250GB SSD 1개를 쓰는 컴퓨터라면 윈도우 용량 때문에 설치도 못 한다. 기자 컴퓨터처럼 말이다.

해도 해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큰 건 아니었다. 워존 모드가 추가되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때마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것이다. 게임의 용량 크기 문제는 비단 콜 오브 듀티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출시되는 풀프라이스 게임이나 오래된 온라인 게임의 용량을 보면 기본적으로 30GB는 우습게 넘어가며, 50GB에서 100GB를 넘는 게임도 심심찮게 보인다.

옛날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발달도 안 되어 있고 게임을 CD라는 한정적인 데이터 저장 매개체에 담아 판매했기 때문에 고도의 압축 기술이 필요했다. 게임을 구성하는 데이터 중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쳐냈고 폴리곤의 속을 텅 비워두거나 음악 파일을 압축하는 등의 꼼수도 아낌없이 사용해 용량 최적화에 엄청난 신경을 쏟아부었다.



▲ 당시 적은 용량에도 넓은 맵, 다양한 콘텐츠, 혁신적인 그래픽을 보여줬던 젤다의 전설 시리즈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장장치의 용량도 엄청나게 커졌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디지털 판매도 손쉽게 이뤄진다. 게임의 용량을 제한하던 리미트가 사라진 것이다. 게임에 담아내는 콘텐츠의 양이 더 많아지고 그래픽의 품질 향상과 음악, 그림 파일 형식의 변화 등도 게임 용량이 커지는데 일조했다.

게임의 용량이 클수록 게임의 퀄리티. 즉, 그래픽의 품질이나 콘텐츠의 양이 높아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용량이 재미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적은 용량으로도 뛰어난 작품성과 재미를 보여주는 게임은 많다. 오리와 도깨비불을 보라. 7GB가 조금 넘은 용량으로 각종 게임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서비스가 계속될수록 한계를 모르고 높아져만 가는 게임 용량. 퀄리티와 콘텐츠를 유지하며 용량을 효과적으로 조율할 방법은 없는 걸까. 9일, 번지는 데스티니2의 신규 확장팩과 함께 DCV(Destiny Content Vault)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 내에 오래된 콘텐츠를 삭제하는 한편, 과거의 콘텐츠를 리메이크해서 새롭게 불러온다는 콘텐츠 순환 방식으로 쉽게 말해 콘텐츠가 일정 기간마다 삭제 및 재생산되는 것을 뜻한다.



▲ 삭제와 보관, 리메이크로 용량을 유지하는 번지의 DCV계획

개발자의 말에 따르면, 데스티니2의 용량은 110GB가 넘어가며, 출시 이후 매년 약 25GB의 콘텐츠가 추가되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용량 때문에 게임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으며, 새로운 패치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시간도 오래 걸리는 데다 의도치 않은 버그가 발생하여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DCV는 상당히 파격적인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개발사가 게임 콘텐츠를 주기적으로 삭제하겠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데스티니2를 즐겨한 게이머로서 처음 이 계획을 봤을 때 어이가 없는 한편,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콘텐츠가 삭제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과거 데스티니1의 콘텐츠가 리메이크되어 돌아온다. 삭제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관과 재탄생이 함께 이뤄지니 번지만의 방식으로 용량과 콘텐츠 두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다. 재탕하는 느낌만 주지 않으면 된다.



▲ 65.40GB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많아진 용량이다

이러한 콘텐츠 순환 방식을 번지보다 먼저 시작한 게임이 있다.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약 16년동안 서비스를 지속하며, 지금까지 7개의 확장팩을 선보였다. 강산이 수십번 바뀔 시간동안 콘텐츠를 추가하고 그래픽 리빌딩까지 마쳤으면서도 현재 게임의 용량은 65GB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이것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커진 거다.

용량을 일정치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확장팩이 추가될때마다 기존 콘텐츠를 삭제하는 한편, 새로운 방식으로 리메이크를 제공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 공격대 낙스라마스가 리치 왕의 분노에서 새롭게 추가되었다거나 대격변 확장팩 때 모든 지역의 리메이크가 이뤄지는 등의 변화는 유저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용량의 확보를 용의하게 만들었다.

번지의 DCV 계획처럼 콘텐츠를 삭제하면서 용량을 확보하는 방식 외에도 게임의 용량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 게임사가 그러했듯 불필요한 데이터를 삭제하고 그래픽의 최적화에 좀 더 신경 쓰면 된다. 혹은 게임 데이터를 다운로드받을 필요가 없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물론, 아직까진 데이터 전송에 따른 프레임 저하라던지 관련 프로그램이 정착하지 못한 점 등이 문제 되고 있지만, 컴퓨터의 용량은 물론 사양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장점이다.

찰흙같던 그래픽보다는 실사에 가까운 고품질의 그래픽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좋고, 단순하게 칼만 휘두르는 것보단 드넓은 대지를 뛰어다니며 칼과 마법을 쓰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더 재미있다. 하지만, 기반 공사를 착실하게 다져야 건물을 높게 쌓을 수 있듯 누구나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이런 부분도 신경 쓰면 어떨까. 다다익선이라고 클수록 좋다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거다. 때론 겸손할 필요도 있다.



▲ 용량과 성능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순간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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