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게임쇼에는 ‘가족’이 있다

칼럼 | 정필권 기자 | 댓글: 29개 |



그간 많은 게임쇼를 다녔지만, 이렇게 놀라웠던 적은 처음이다. 처음 방문한 게임스컴은 프레스부터 참관객까지 전부 다 흥이 넘친다. 분명 사업관계자와 미디어에만 개방되는 첫날이었음에도 이 양반들, 코스프레를 하고 행사장을 누비고 있다. 명찰에 프레스 또는 트레이드 비지터라고 떡하니 적혀있는데도 말이다. 다른 게임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다른 게임 쇼와는 달리, 유독 가족(또는 커플) 단위의 관람객이 많다. 그것도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게임쇼를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라, 부모들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가족 구성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기도 한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손자 둘의 손을 잡고 행사장을 방문한다. 손자 둘이 시연장에 들어가면, 노인은 옆의 시연대에서 구경을 하거나 간단한 다른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이머로서 참으로 행복하고 흐뭇한 광경이다.

이와 같은 게임스컴의 특징은 시연장 구성에서부터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총 11개의 관에서 열리는 게임스컴은 한 관의 일부를 가족과 친구(Family and Friends)라는 이름으로 구성해 뒀다. 위치도 일반 관광객이 바로 접근하기 좋은 곳에 있고, 부대 시설도 가장 좋게 갖춰뒀다. 간이음식점 등도 다른 관보다 더 많은 수가 들어서 있고, 어린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도 실내에 있다.

해당 전시관에서는 주로 전연령대의 게임과 몸을 움직이는 활동적인 게임들이 자리한다. 비디오 게임 외에도 실내 스포츠, 간단한 아케이드 구기 등 놀이에 가까운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다. 올드 게이머들을 위한 레트로 게임 시연도 꽤 큰 규모로 마련됐다.

모든 연령층이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다양한 가능성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해당 관에서 만난 모습은 독일 전체의 게임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레트로 게임 시연장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손자와 게임을 하는 모습, 아들 둘에게 자신이 어릴 적 하던 게임을 설명하는 모습은 이미 기성세대가 된 게이머들과 새로운 게이머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손자와 게임을 즐기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이전부터 게임을 플레이했었나?”라는 질문에 “젊었을 적 했었고, 지금도 가끔 같이 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정도로 독일의 게임 인구는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구성도 그러했고, 질문을 던졌을 때의 반응도 그러했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족 단위로 오는 것이 여기서는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 것을 보면, 그만큼 독일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게임’은 독일에서는 모든 연령대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으로 생각되고 있다. 2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전시 공간에서 약 1,600 평방미터라는 가족관의 규모는 매우 작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게임스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작은 규모임에도 꾸준히 별도의 관을 마련해 둔 것이리라.

시장조사업체 뉴쥬(Newzoo)는 독일의 게임 시장을 중국, 미국, 일본, 한국에 이어서 5위라고 분석했다. 인구수는 8천2백 만 명, 시장 규모만 46억 8,7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문화가 기저에 깔린 나라로 판단했다. 게이머의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고, 성별과 이용 플랫폼 모두 다양하다. 가정 내에서는 보드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지역에서는 보드게임 축제인 ‘에센 박람회’와 ‘게임스컴’까지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게임스컴의 가족관은 더 큰 의미가 있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을 모두 포함하는 것과 동시에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로서 게임을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국내의 부정적인 시선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독일보다 인구수가 적더라도 시장 규모는 더 큰 우리나라를 말이다. 국내에서는 그간 게임에 쏟아진 부정적인 시선과 인식이 사회 문화 전반에 퍼져있다. 현재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에게 “자녀가 있다면 게임을 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정도일 테니까.

그렇기에 남녀노소가 어울리는 독일의 모습은 한 편으로는 매우 부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게임이 긍정적으로 취급되는 것을 넘어서, 정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게임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이자 즐길 수 있는 거리로 보고 있다.다른 게임쇼와는 다른 연령대와 긍정적인 시선은 다른 행사에서 볼 수 없기도 하다.

더불어, 그저 특이하다고만 생각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이 이미 국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하려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또한 단기간에 이러한 문화를 구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임 산업과 관련한 정부 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게임의 올바른 운용.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포감을 극복할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시도들이 의미가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을, 그리고 게임스컴을 보라. 비슷한 시장 규모에도 독일은 온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았고 많은 사람이 게임스컴 행사장을 방문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 그리고 이유부터 고민하는 과정이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8월 21일 개최되는 게임스컴(GAMESCOM) 최신 소식은 독일 현지에 나가 있는 정필권, 김강욱, 석준규 기자가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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