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는 왜 다시 위쳐3를 하는가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13개 |



인제 와서 무슨 위쳐나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출시 첫날부터 PS4로 물고 뜯고 맛보고 소화까지. 지독하게도 즐겼다. PS4와 비교하면 거의 양념 간만 본 수준으로 즐긴 PC 버전도 족히 200시간을 넘겼다. 아마 게임이 디지털 판본이 아니라, 하면 할수록 다는 공산품이었다면 내가 즐긴 위쳐는 전당포에서도 안 받아주는 폐급 상품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다시 손에 잡은 이유는 말 그대로 손에 잡고 플레이할 수 있어서다. 그것도 200시간 동안 여정을 함께 했던 나의 게롤트와 함께 말이다. CD 프로젝트가 지난 2월 내놓은 위쳐3 스위치 버전 새 패치는 그렇게 나를 다시 북부 왕국으로 돌아오게 했다.

업데이트된 3.6패치는 gog와 스팀 등 PC 버전과 세이브 파일을 공유하는 크로스 세이브 기능이 추가됐다. 기능 자체가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다. 저장된 파일을 클라우드 공간에 올려두면 기종을 따지지 않고 내려받아 이어 즐길 수 있는 기능이다.

모바일 게임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앱플레이어로 모바일 게임을 즐기다 구글 계정이나 게임 센터를 통해 과정을 저장하고 이동 중 다른 기종의 스마트폰에서 즐기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하니까.



▲ 출시 초기 버전 평가가 주를 이루는 메타크리틱 점수도 준수한 편

그렇게 스위치로 시작한 6.2인치 화면 속 세계는 의외로 견실하다. 설정에서는 직접 가시도, 선명도, 심지어 안티 앨리어싱 유무까지 직접 다듬을 수 있다. 대부분의 콘솔 게임이 그저 밝기 조절이 전부인 것을 생각하면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 원하는 데로 맞춰 즐기라고 다 풀어둔 느낌이다.

스팀에서는 괴물깨나 잡아봤지만 떨어지는 프레임과 입력 지연 탓에 굼뜨던 게롤트도 이제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최적화가 꾸준히 진행되며 캐릭터 움직임은 꽤 빠릿빠릿해졌다. 눈을 낮추고 설정을 좀 건드리면 더 부드럽게 칼춤을 추는 하얀 늑대를 만날 수 있다. 출시 초기 문제가 됐던 검열 문제도 발 빠르게 무삭제 버전으로 변경하는 등 문제점도 착실히 가다듬었다.

크로스 세이브로 PC 버전 유저의 목덜미를 잡아끌어 눈길을 돌렸고 잘 만든 물건으로 구매를 유도한다. 부족한 부분은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바꾼다. 이쯤 되면 CD 프로젝트가 위쳐라는 IP를 그저 돈벌이를 위해 이식하지 않았구나 싶다. 아니, 어쩌면 최고의 돈벌이를 더욱더 잘 팔리도록 하는 법을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새롭게 뜯어 다시 제작하는 리메이크와 달리 리마스터나 이식은 관심도 떨어질뿐더러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이미 완성된 작품 내 요소를 새로운 플랫폼, 다른 기종으로 옮기는 게 뭐 그리 어려우냐는 거다.

하지만 특정 플랫폼에 맞게 제작된 게임을 새로운 환경에 따라 조절하는 것은 그저 포장 이사 불러 짐 나르듯 옮기는 것과는 다르다. 상용 게임 엔진의 대중화와 기종별 개발 프로세스가 많이 유사해졌다고는 하지만 기종별 특징에 따른 이식과 최적화가 필요하다. 이에 포팅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개발 업체들이 이식을 하청받아 진행하기도 한다.

이식의 어려움을 뒤로 밀어 놓아도 그리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잘못된 이식이나 리마스터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타 기종, 그리고 원작의 명성을 좀먹는 원인이 된다.

배트맨의 완벽한 재탄생으로 평가받던 아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 '배트맨: 아캄 나이트'는 PS4 최고의 그래픽을 선보였다. 하지만 PC 버전의 이식을 맡은 아이언 갤럭시는 게임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수준의 버그와 부족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판매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너무 옛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메타크리틱 역대 최악의 유저 평점을 기록 중인 '워크래프트: 리포지드'를 떠올려도 좋다.

이런 이식 논란 뒤에는 개발사와 이식사 간의 소통 부족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아캄나이트의 어이없는 이식으로 혹평을 받은 아이언 갤럭시는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이식을 진행했지만, 이는 작품 퀄리티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다. 여기에 락스테디가 표현한 특유의 표현과 연출 기법에 대한 소통 부재가 논란이 됐고 유통사인 WB의 입김에 출시일 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이언 갤럭시는 원작의 세계를 무리 없이 옮겼다고 평가받는 스카이림 스위치 버전을 이식한 회사다. 또 디아블로3, 오버워치의 스위치 버전, 폴아웃4의 VR 버전 개발을 지원하며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위쳐3의 이식은 세이버 인터랙티브와 CD 프로젝트의 긴밀한 협업으로 탄생했다. 게임을 돌리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성능의 스위치 이식을 위해 세이버 인터랙티브는 그림자, 지형 라이트 등 다양한 부분의 최적화를 고민했다. CD 프로젝트는 이 과정을 함께하며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쳐 엔진을 적극 이용하도록 했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 나선 CD 프로젝트 수석 프로듀서 피오트르 흐샤노프스키는 이들이 게임 이식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고 있는지 알렸다. 그는 개발 중 어려웠던 점을 직접 전하고 최적화 프로세스를 설명했다. 개발 과정을 함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말이다. 나름 게임 이식에 얼마나 공들이고 있는지 팬들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함께 했다.

이식에 능한 개발사에 작품을 던져놓고 돈이 들어오길 기다리느냐. 아니면 원작에 담긴 여러 개발 이력을 이식사와 함께 하느냐. 그렇게 작품의 결과는 달라졌다.




이제는 상품 판매의 기본이 된 품질 경영(Quality Management). 그 태동기를 다진 에드워드 데밍은 제품 품질 향상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언제나 수치와 관련된 목표와 할당량을 제거하라고 주장했다. 목표를 위한 품질 상승이 아니라 상품 품질의 향상 그 자체가 경쟁력을 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품질 경영의 기본 지침은 어디까지나 공산품의 이야기지 비디오 게임 업계에는 맞지 않는다고 인식됐다. 실제로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는 소프트웨어는 상품 가치가 핵심으로 여긴다. 이를 측정하는 것은 판매량이기에 품질 보장 성패는 얼마나 판매되었느냐로 결정된다. 수치가 목적이 되고 제품 자체의 품질은 마치 과정 정도로 취급할 수 있는 발상이다.

CD 프로젝트는 품질 그 자체에 기준을 뒀다. 위쳐3에는 제작 비용 대비 큰 가치를 창출하는 인게임 구매 요소는 없다. 그나마 존재하는 확장팩은 수십 시간 분량이 담겼으니 제작 소요가 절대 가볍다고는 할 수 없고.

그런데도 성과를 냈다. 게임 첫 출시 후 벌써 5년이 지나는 동안 CD 프로젝트의 기업 가치는 15배 이상 상승했다. 유비소프트에 이은 유럽 2번째다. 게임의 완성도와 이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품질에 대한 집착은 플레이어, 즉 고객에게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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