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이머들 스스로 만드는 '온라인 오락실'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12개 |



얼마 전, 격투게임 커뮤니티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10선'이 성사됐다. 10선이란, 격투 게이머들이 먼저 10승을 하는 것을 '승리'로 정한 일종의 대전 형식이다. 보통 이러한 10선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격투 게이머들이 자주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자 갈등 해소의 수단이었다.

아무튼 이런 10선은 친목 혹은 스파링 파트너로 이뤄지는 게 간혹 분쟁을 10선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어떠한 사실이 있고 이에 대한 반박을 하는 유저들은, 서로 키보드나 말로 싸우지 말고 실력으로 싸워야 한다. 10선은 모든 것을 정해준다. 왜냐면, 이긴 사람이 더 겜잘알(게임을 잘 앎)이니까 그 사람 말이 맞다. 어이없지만 그게 진리다. 왜? 더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한 말이니까. 억울하면 강해져라. 강해져서 자신의 약함을 증명하면 된다. 아무튼 그렇게, 그랑블루판타지 버서스의 10선, 감자(샤를로테)vs페리의 대전이 펼쳐졌다.



그렇게 10선 결과는...(출처 : xyzzyshift 트위치 채널 캡쳐)

아무튼 커뮤니티에서는 꽤 핫한 주제로 10선이 이뤄졌기 때문인지 큰 이목이 쏠렸다. 그랑블루판타지 버서스를 하는 유저들뿐 아니라 철권, 스파5 등 다양한 격투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10선을 알리고 모여들었다. 한 술 더 떠서 이 10선을 중계하기 위해 방송을 하는 고수 플레이어들의 5선 풀리그가 이뤄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본 경기 10선에 앞선 중계권을 따기 위한 풀리그 5선, 그리고 마지막 최종 후보자와 선 인계자 간의 10선까지. 유저들 스스로 만들어낸 이벤트 경기는 점점 풍성해졌다. 스스로 유저들은 대회를 홍보했고, 포스터를 만들고, 상품을 제공하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유저들은 스스로 모이고 만들어나간 축제였다. 이렇게 모인 모든 '격투 게이머'들은 10선으로 만들어진 작은 축제를 즐겼다. 금상첨화로 10선의 내용도 좋았고, 양질의 해설과 함께 드라마틱한 엔딩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격투 게이머들이 직접 만든 '10선'은 즐거운 축제가 됐다.

10선이라는 이벤트가 열리게 된 비하인드도 있긴 했지만, 핵심으로 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유저들 스스로, 팬들이 스스로 이벤트와 대회를 '온라인'에서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게임의 대회, 이벤트전은 축제성이 강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즉, 팬들이 직접 '축제'를 만들어나간 셈이다. 장르가 격투 게임이라서 여러 가지 장점과 유리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아주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렇게 유저들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이벤트는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을 수 있다.



승패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모습(출처 : xyzzyshift 트위치 채널 캡쳐)

아무리 이벤트성, 가벼운 대회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대회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큰일이다. 참가자를 모집해야 하고, 이를 위해 대회를 홍보해야 한다. 해설과 중계진이 재미없으면 대회가 흥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질 낮고 개그성 멘트만 하는 해설은 지속되기 힘들기에 전문적인 해설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회를 운영하는 기기 세팅 등 각종 부문에서 인력이 필요하며, 상금을 비롯한 많은 비용이 드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대회와 같은 행사는 전문적으로 유치하거나 대행하는 업체들이 있는 편이다.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대회는 상당한 부분에서 이러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게임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간단한 기능만으로도 쉽게 대회를 열 수 있고, 참가자들도 교통이나 숙박 등 현실적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대회 진행에 있어서 변수로 작용할 만한 부분은 서버 및 회선의 상태, 그리고 게임 내 버그 정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만 충분하다면, 개인 단위로 소규모 대회를 개최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물론 이 경우는 개최자가 스스로 해설을 맡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대회는 인터넷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경우가 많고, BJ나 스트리머, 유튜버들이 중계와 해설을 맡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격투 게임 대회, EVO도 일종의 오락실 느낌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소규모 대회는 특히나 격투 게임 커뮤니티에서 자주 이뤄졌다. 개인 스스로 대회를 열거나, 유명 격투게임 팀이 주최하는 대회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대회들은 때로는 은둔 고수를 발견하기도 하고, 세계적인 고수 플레이어들이 참여하며 대단한 수준의 경기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주류 격투 게임으로, 혹은 비주류지만 충분히 재미와 매력이 있는 게임들로 대회가 이뤄지면서 이러한 활동은 커뮤니티에 윤활유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격투 게임 특성에도 큰 연관성이 있다. 오락실부터 이러한 소규모 지역대회가 꾸준히 열렸던 격투 게임이기에, 이러한 소규모 대회가 더욱 활성화됐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소규모 대회는 이러한 격투 게임 문화의 연장선이다. 온라인이라는, 지역을 뛰어넘는 작은 '오락실'이자 놀이터가 새로 생긴 셈이다. 보는 연출을 강화시키며 지켜보기만 해도 재미있도록 만든 격투 게임의 변화는 이러한 대회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팬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대회 문화는 긍정적이다. 온라인 속 작은 오락실로 유저들이 모여들고, 고수들이 참여하고, 볼거리가 풍성해진다. 이렇게 작은 대회가 점점 커지고 알려지면서, 더 많은 유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 선순환이 이뤄지는 셈이다. 내부적으로 신규 유입의 배척과 내부 인원의 지나친 친목만 조심한다면, 이상적인 선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격투게임 커뮤니티의 움직임과 모임, 행동을 게임업계가 그냥 흥미롭게 지켜만 보는 게 아니라는 점이 향후로도 더 기대해 볼만한 부분이다. 가장 최근 공격적인 격투 게임 커뮤니티 구축 행보를 보이는 건 아프리카TV다. 물론 이전부터도 꾸준히 격투 게임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나간 아프리카TV지만, 최근에는 유명 선수들 및 격투 게임 방송인들은 영입했고, 관련 콘텐츠도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외에도 사이게임즈는 직접 공식 이벤트 서포트를 통해 온/오프라인 대회 이벤트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초기부터 마련해 제공하고 있으며, 소규모 대회를 중계하기 위한 스튜디오 대관이나 대진표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발전해갔다. 점점 더 이러한 사례와 인프라가 많아지면, 앞으로도 유저 차원의 소규모 대회도 자주 열릴 수 있는 기반이 더욱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잠입선수를 영입한 아프리카는, 바로 온라인 대회 유치에 나섰다.

결국 게임은 즐기는 유저와 개발사가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지금은 격투게임에서 이러한 문화가 상당히 두드러졌지만, 다른 게임들 역시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e스포츠도 어떻게 보면 같은 흐름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MOBA, FPS, 전략 게임과 격투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도 이러한 작은 이벤트성 대회를 충분히 개최하고, 유저들 스스로 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 대회란 별것 아니다. 그저 누구나 모여서 부담 없이 경쟁할 수 있고, 그 과정을 보는 사람도 즐겁고 하는 사람도 재미있으면 곧 '대회'가 될 수 있다. 굳이 잘하는 사람만 대회에 참여하는게 아니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겜' 대회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앞으로도 게이머와 업계 모두가 관심을 쏟는다면, 이런 문화가 계속 지속되고 꾸준한 순환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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