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시 싸야 해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26개 |


▲ 최근 스팀 VR 헤드셋 사용량 1위를 기록한 '오큘러스 리프트S'

최근 밸브가 2020년 8월 기준 '스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설문조사' 자료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서는 스팀 플랫폼을 이용하는 유저들의 각종 하드웨어 관련 데이터는 물론, 스팀 VR 유저들이 평소 어떤 기기로 VR 콘텐츠를 플레이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해당 통계는 오직 스팀에 한정된 통계로, 오큘러스 스토어와 바이브포트 등 공식 스토어 이용자들의 지표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큘러스 리프트 S(이하 리프트S)의 사용량이 상승하여 그간 1위 자리를 고수하던 HTC 바이브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리프트S의 점유율은 23.02%로, 전체 스팀 VR HMD 점유율의 1/4에 육박한다. 21.46% 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가 된 HTC 바이브의 뒤를 '밸브 인덱스'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바짝 추격 중이고, 오큘러스 리프트와 퀘스트가 각각 10%대 점유율로 그 뒤를 이었다.

8월달 지표를 보면 HTC 바이브를 필두로하는 초기 VR HMD 라인업이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인 반면, 오큘러스 퀘스트와 밸브 인덱스 등 신형 VR HMD 라인업은 성장세를 보였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같은 신작 VR 게임 출시에 맞춰 VR 기기에도 전반적인 세대 교체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Steam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설문조사 2020년 8월 'VR 헤드셋' 항목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HTC가 거둔 성적이다. 양질의 VR 콘텐츠가 등장하면 VR 기기의 판매량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법이건만, HTC는 이러한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VR 시장 초기부터 인지도를 모으며 줄곧 1위 자리를 유지하던 HTC 바이브가 오큘러스 리프트S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때, 이후의 시장을 선도해야 할 HTC의 신형 HMD인 '바이브 프로'와 '바이브 코스모스'는 1%대의 점유율을 가져가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리프트와 리프트S, 퀘스트가 전체 스팀 VR HMD 지분의 절반(46%)가량을 차지하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을까? 양사의 기기를 세밀하게 따져보면 사양 면에서 여러 차이를 발견할 수 있으나,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가격에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의 후속기로 등장한 리프트S와 퀘스트가 399달러(한화 약 47만 원)인 반면, 같은 시기에 공개된 HTC 바이브의 후속기 코스모스는 699달러(한화 약 82만 원)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출시됐다.

스팀 유저들의 선택은 냉정했다. '모듈형 페이스 플레이트' 기능을 추가하며 고급화를 추구한 HTC는 외면받았고, 1세대 모델보다 200달러가량 더 저렴한 가격으로 2세대 모델을 출시한 페이스북은 스팀 VR HMD 점유율 1위가 됐다.



▲ (이미지출처: uplordvr)

페이스북은 올해 오큘러스 퀘스트 기기만으로 1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그 기세를 몰아 1억 달러가 넘는 VR 콘텐츠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VR이 차세대 소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저가형 정책을 펼친 페이스북의 예측이 보란 듯이 적중한 셈이다.

VR 기사를 작성하며 매번 "VR은 가격만 해결하면 될 텐데"라고 한탄하는 유저들의 목소리를 계속 들어와서 그런지, 실제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VR 기기의 흥행이 확연히 드러난 이번 설문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가격만 해결한다면' 정말, VR의 대중화도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지금의 기세를 오큘러스 퀘스트2로 이어가려는 페이스북과 PSVR2의 소니, 신흥 강자로 떠오른 밸브, 그리고 코스모스의 저가형 라인업으로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려는 HTC까지, VR 시장 속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유저들이 VR 기기를 선택할 때 가격을 가장 먼저 따진다는 것은 곧, 6DoF를 지원하는 웬만한 수준의 하이엔드 VR에서는 지난 3년간 극적인 혁신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물론, 기능적으로 큰 변화가 없더라도 PC VR급 성능을 가진 하이엔드 VR HMD를 10만 원대에 보급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 역시 큰 혁신일 테지만 말이다.

이후에 공개될 차세대 VR HMD 라인업이 유저들의 마음을 혹하게 할 매력적인 혁신으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도 VR 시장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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