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한다 - '아웃 오브 인덱스'가 갖는 의미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1개 |

"뭐야, 방향키도 랜덤이에요?"

아웃 오브 인덱스 2018 공식 선정작, 'Centenntable'에 대해서 개발자 아만다 허진스에게서 개요 설명을 들었을 때 나온 반응이었다. 행사장에서 얼추 들은 것으로는 버튼을 50개 사용하고, 한 버튼에 커맨드가 대응하며 버튼의 기능이 랜덤하게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설마하니 방향키까지 랜덤일 줄이야.

이래서는 격투 게임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인 거리 조절의 심리전조차도 시도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개발자가 의도한 것이라는데. 심지어 버튼을 막 누르다보니까 화면이 마구잡이로 바뀐다. 마치 만화경으로 본 세상처럼 말이다. 때로는 마구 화면이 흔들리고, 화면배색이 바뀐다. 또는 마치 깨진 유리창처럼 이지러진다. 그런 어지러움 때문에 화면과 버튼을 번갈아 응시하는 눈이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전용 컨트롤러도 50개가 넘는 화려한 원색의 버튼들이 어지러이 놓여있어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버튼을 정해진 순서대로 연속해서 누르는 암기력과 순발력, 기술의 효과와 연계에 대한 게임 센스 등은 개인 차가 있어요. 그 차이마저도 최소화하고 '동일한 조건에서' 대전하게 한 장치인 셈이죠."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개발자의 말에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조건'하면 게임에서 기본으로 주어지는 각 캐릭터의 특징, 혹은 유저 각각의 실력 차는 인정한 상태에서 별도의 외부 프로그램, 혹은 특별한 조건이 더해지지 않고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던가. 그렇지만 'Centenntable'은 달랐다. 각각의 실력 차를 유발할 수 있는 암기력, 순발력, 게임 센스 등까지도 플레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서로 '동일한 조건'에서 맞붙을 수 있도록 시도한 것이다.



▲ 컨트롤러부터가 키 배열을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게 구성이 되어있다

'몰록', '18세 이상 입장 가능' 같은 기괴한 작품을 만든 Seemingly Pointless가 이번에 선보인 e치즈 존은 어떤가. 얼핏 봐서는 치즈를 소재로 한 미니 게임 모음집 같아 보이지만, 그런 겉모습 자체가 함정이다. 이미 유저는 메뉴 화면에 들어갔을 때부터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미니 게임이 끝났다고 해서 키를 함부로 누르거나, 혹은 클릭을 한 번만 잘못 누르면 여지없이 로딩 창으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로딩 시간이 무려 1시간이지만, 화면 구석에 쏟아지는 치즈를 클릭하면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고 치즈들을 미친 듯이 클릭하는 자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보게 되지" 본 게임을 보기 위해서 행사 내내 e치즈 존 시연장을 기웃거린 유저들이 허탈하게 웃으면서 한 말이다. e치즈 존은 단순한 미니 게임 모음집과 기본적인 구성 자체는 동일한 데다가, 게임 자체의 퀄리티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플래시 게임, 혹은 그 이하의 수준이다. 다만 기존의 클리셰를 비튼 구성과 '기다림'이라는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미를 부여해냈다.


각각 부모, 아이 역할을 하는 두 플레이어가 서로 다른 시각에서 거실을 보는 '카펫 크롤러 코옵', 퐁과 레이싱의 룰을 결합한 독특한 레이싱 대전 '위치볼' 등도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경험을 주기엔 충분한 작품이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어지러운 배색과 마스코트가 자비없이 죽어나가는 장면으로 유저들에게 '긍정의 배신'이라는 테마를 어필하는 '다 괜찮아질 거야(Everything is going to be OK)' 같은 작품은 플레이할 때는 일순 불쾌했다. 하지만 그 불쾌한 경험 속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았다. 마스코트가 죽어가면서도 "아임 오케이"라고 하고, 다리가 잘린 경험이 영감을 제공했다고 하면서 그에 관련된 PPT와 발표 자료를 만들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믿겠는가.


도전 정신, 실험 정신-

우리가 항상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우리나라에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는 나올 수 없다고. 여기에는 기존의 범주에서 어긋나는 선택을 하면 이상한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결국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남들과 똑같아진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담겨있다.

그런 비판을 적으면서도, 나 역시도 가슴 한 구석에는 "이런 걸 누가 볼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즉 새롭고 낯선 것들을 기존의 것보다 조금 낮게 보는, 그런 뉘앙스가 은연 중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고백하자면, 아웃 오브 인덱스를 가기 전에는 실제로 실험작들에 대해서 대체로 '의도는 좋지만...'이라는, 은연 중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실험작들을 굳이 하러 갈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선민의식 비슷한 오만함과 불안감이 뒤섞인 묘한 심리 상태로 현장에 처음 발을 디뎠다.

부스와 부스의 경계, 시연장과 대담장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진행된 아웃 오브 인덱스에는 예상보다 많은 유저들이 모여있었다. "이건 나도 금방 만들 정도의 그래픽 수준인데"라는 비판부터 "이거 꽤 골때리는데 기발하네?"라는 감탄까지, 유저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혹은 단순히 그곳에 있는 게임으로 내기를 하면서 즐기는 유저들도 있었다.



▲ "이게 뭐라고 이렇게 모이네"
로딩 창만 숱하게 나오는 데도 어느 새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e 치즈 존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가 오픈된 공간에서 진행된 만큼, 개발자들이 다양한 유저들의 반응을 한 눈으로 보면서 때로는 유저들과 자유롭게 자신의 게임의 의도에 대해 말하고, 토론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괴랄한 로딩 시간 때문에 명물이 되어버린 e치즈 존의 로딩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 "이번엔 메인 게임을 볼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에 차 모여들기 일쑤였다. 결국 행사 끝까지 메인 게임을 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유저들끼리 "과연 뭔 게임이 나올까?"라던가 "이렇게 하면 로딩 창으로 넘어가요"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 또한 일부를 제외하면 행사장 곳곳에서 게임을 같이 즐기고, 유저와 함께 게임의 감상을 자연스럽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듯 '실험 게임 페스티벌', 아웃 오브 인덱스가 내건 슬로건은 단순히 선정작, 초청작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오픈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실험 정신을 만끽할 수 있도록 공간과 행사를 설계하고, 운영진이나 개발자, 유저가 구분되지 않고 자연스레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시도를 했던 것이다.









▲ 이 모든 것이 별도의 방이 아닌, 하나의 오픈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이런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과연 플레이를 해줄까? 관심을 보여줄까?"

기존에 없던 것들을 만들다보면 필연적으로 이런 불안감을 안게 된다. 그렇게 만든 사람 역시도 새로운 것을 처음 접하게 되면 일순 경계를 하기 때문이다. 비판, 비난이 무관심보다 낫다고 하던가. 그 새로운 것을 한 발짝 멀어져서 지켜보자고 하다가도 어느 덧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급기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게 된다. 그런 불안감이 계속되면 결국 새로운 시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반면 누군가와 이를 공유하고, "나 말고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은 줄어든다.

아웃 오브 인덱스가 갖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단순히 이런 것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개방적으로 유저들이 실험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까지 조성했다. 그 실험이 완벽하게 성공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앉을 곳이 없고 너무 좁았다는 작년도의 불만 사항을 개선해 유저들과 개발자들이 좀 더 편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점차 그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유저들 중에는 국내 게임이 정형화되었다고, 심지어 인디씬마저도 틀에 갇혔다고 비판하는 유저들도 있다. 이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새로운 실험작을 자유롭게 접하거나 선보이고,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과감하게 시도하고, 그걸 보면서 단순히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이런 것이 있었구나", "다른 사람도 실험적인 것을 만드네"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독창적인 게임을 만들고, 즐기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웃 오브 인덱스의 실험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돌발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들이 더 많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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