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관광객만 있는 여행지엔 매력이 없었다 - '폴아웃76'

칼럼 | 김규만 기자 | 댓글: 30개 |



11월 15일 정식 출시한 폴아웃 시리즈 최신작 '폴아웃76'. 국내에서는 지스타2018 개최와 겹쳐 그 출시가 크게 조명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나, 세간의 평가를 보니 그것뿐만은 아닌 것 같다. 현재 '폴아웃76'의 메타크리틱 평점은 50점, 베데스다가 3편을 개발하기 시작한 이후, 폴아웃 시리즈가 줄곧 80점 이상을 받아왔던 것에 비하면 턱없이 박한 점수라고 할 수 있다.

폴아웃76은 시리즈 최초로 멀티플레이에 중점을 두어, 기존 작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신선한 모습을 선보이고자 했다. 에밀 파글리아룰로(Emil Pagliarulo) 디자인 디렉터는 '한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위한 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했다고 이야기했으며, 이 사고방식의 변화는 곧 게임상에 존재하는 모든 NPC를 유저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시도가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는 것은 메타크리틱 점수가 대변하고 있다. 정착민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여행자들에게는 황무지보다 더 매력적인 여행지가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조명하는 것은 보통 배경이 아니라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는 세상에 종말이 도래한 뒤, 그곳에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존을 위해 매일같이 사투를 벌이는 인간, 문명과 상식이 사라진 곳에 남겨진 인간의 심리를 조명하고, 그 사이에서 문명과 상식의 세계에 사는 우리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는 선택지를 강요받기도 한다. 그리고 '폴아웃' 시리즈는 게이머들에게 그런 고민거리를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였다.

그러나, 폴아웃 76의 무대가 되는 웨스트버지니아에는 이런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NPC는 모두 죽은 지 오래되어 음성 기록만 남겨두었거나, 아니면 아직 남아있는 로봇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람은 없고, 파멸한 세상만이 존재한다면 그 앞에 '포스트'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지 않을까.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폴아웃76'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인간으로서 '플레이어'들을 남겨두었다. 황무지에서 생존하고, 어떤 사건을 마주하며, 또 그 과정에서 각자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 관광객만 존재하는 여행지에 무슨 메리트가 있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웨스트 버지니아에 모인 인간들은 현실에선 따뜻한 방 안에서, 뽀송뽀송한 잠옷을 입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다. 그들이 과연 풀 한 포기 온전하지 않은 황무지에 그대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을까.

그것을 베데스다도 알고 있었는지 '폴아웃76'은 첫 티저 트레일러부터 밝은 분위기를 내세웠다. 황무지는 놀이터가 됐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 원하는 데로 즐길 뿐이다.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짓거나, 힘을 합쳐 돌연변이 괴물을 처치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발사 코드를 얻는 수고로움을 거친 뒤 원하는 곳에 핵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소일거리로 퀘스트가 존재한다 한들, 죽은 시체가 남긴 오디오 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는 플레이어는 언제나 이미 일어난 사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관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플레이어에게 있어 퀘스트는 곧 보상. 사적인 동기로 황무지를 여행하고, 죽어도 부활하면 그만이고, 지루하면 다른 게임을 켜면 되는 인간들만이 남은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과연 세계의 숨결은 누가 불어넣어 줄 것인가.



▲ 정착민이 귀찮다고 했지, 아예 없어도 된다고는 안 했는데...

이런 황무지 콘셉트 놀이터가 과연 어떤 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아직도 선뜻 답하기 힘들다. 스핀오프 작품이 아닌 정식 후속작임에도 코어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새롭게 '폴아웃'을 접한 이들이 이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천 조각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황무지를 탐험하고, 생존하는 게임은 이미 스팀에 널리고 널렸다. 게다가 '놀이터'로서 플레이어들에게 웨스트 버지니아를 선보였다면 적어도 그 안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노는 순간까지는 즐거워야 할 터인데, 현재 메타크리틱 점수를 보면 그런 즐거움을 주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황무지에 존재하는 인구를 모두 실제 플레이어로 구성하기로 결정한 '폴아웃76'. 반대로 말하면 플레이어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황무지가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베데스다가 앞으로 게임을 계속 서비스하고자 한다면, 이 플레이어들이 떠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한데, 살아 숨 쉬는 NPC가 없으니, 스토리나 퀘스트를 어떻게 추가하려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시체와 더 많은 오디오로그만으로는 다른 게임이라는 선택지를 가진 황무지인들의 마음을 잡기 힘들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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