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논리 실종의 100분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135개 |



21일, MBC 100분 토론에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게임 중독' 질병인가, 편견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토론에는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콘텐츠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노성원 한양대 정신의학과 교수, 김윤경 인터넷 스마트폰 과의존예방 시민연대 정책국장까지 네 명의 패널이 참여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게이머들은 토론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가볍게는 취미 생활부터, 무겁게는 밥줄에 영향이 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볼 수 있었던 토론은 꽤 충격적이었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기재된 '토론' 항목에 대한 정의다. 오늘날, 토론은 매우 중요하며 비중 있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각 개인은 어떤 문제를 대함에 있어 나름의 의견과 근거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보지 못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은 보며, 또 그 사람은 모르는 지식을 어떤 이는 알고 있다.

토론은 참여자들의 지성과 논리가 얽히면서 시작되고,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겉으로 보기엔 대결의 구도를 보이지만, 크게 보면 참여자들의 집단 지성이 하나의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에 가깝다.

물론, 토론이 이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상적인 토론은 참여자 모두가 상대의 논리와 의견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인터넷상에서 펼쳐지는 익명 토론에서는 이런 부분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

설령, 신원을 모두 밝힌 채 참여하는 공개 토론도 의견 개진과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데 더 집중하는 등 난장판이 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게 되고, 정당한 근거보다는 이해관계가 더 먼저 고려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런 토론마저도 일정의 격은 있어야 한다. 토론이라는 과정 자체가 감정적으로 변하기 쉽고, 깨지기 쉬운 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토론이 계속해서 열리는 이유가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논리적 판단의 근거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토론 과정을 보며 자기 생각을 정립한다.

아직 어떤 후보자를 지지할지 정하지 못한 참정권자들이 정책 토론회를 보면서 마음을 굳히는 것과 같다. 이는 토론을 바라보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설득이다. 그리고 여기서 '설득력'은 토론 참여자가 가진 현안에 대한 지식, 그리고 논리와 근거에서 생겨난다.

그 말은 곧, 공개 토론에 참여하는 참여자라면 현안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 지식과 논리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국가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정책 토론에 참여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겠는가. 빈약한 논리에 기댄 우기기뿐이며, 그 논리조차 적절한 근거 없이 머릿속에서 구성된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분에서 이번 100분토론은 빈말로도 좋은 토론이라 할 수 없었다. 네 명의 패널 중에는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을 펼치고, 검증이 완료된 논문의 데이터를 근거 삼아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검증된 결과도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빈약한 논리에 의존해 주장을 펼치는 패널도 함께 있었다.

해당 패널은 '게임'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지식수준을 보였고, 게임 중독과 관련된 정부 부처의 태도에 대해 파악도 하지 못했으며,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제시할 근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당연히 주장은 허공에 맴돌았고, 어떠한 설득력도 가지지 못했다. 오죽하면 상대 패널에 대한 예의조차 없어 보일 정도였다.

다음 내용은 이날 토론에서 나온 패널들의 발언 중 일부이다. 내용에 관해 어떤 편집도 없으며, 토론 진행 중 나온 발언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1]

B: 인터넷 중독, 쇼핑 중독, 일 중독. 자 여기서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인터넷이나 쇼핑이나 일 중독이요. 만일 그 폐해를 경험한다 칩시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일까요? 그 범위는 자신입니다. 그리고 가족입니다.

A: 왜 자신이죠?

B: 근데 게임 중독은요. 타인에게 갈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A: 다른 중독들도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나요?

B: 그런데 이런 강력한 사건들이 있었던가요? (다른)중독 때문에?

A: 쇼핑 중독으로 인해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그 돈을 구하기 위해서 범죄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굉장히 많은데요.

B: 그렇게 따지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죠.

A: 그러니까 말씀하신 거처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B: 그 얘기 끝났고요. 다른 거 하나 있습니다.


[2]

B: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중독세는 당연히 내야 하는 겁니다. 이제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우리나라 게임 산업이 많이 성장을 했죠. 근데 지금 이제 부모님들이 하는 말씀이 '애들 다 키워 놨더니 지 혼자 큰줄 안다'라고들 하시는데, 지금 게임 산업이 그런 것 같습니다.

게임 산업이요. 혼자 큰게 아니거든요. 1990년대부터 정통부(정보통신부)가 이제 키우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게 너무나 핫한 아이템이 되다 보니까 문체부가 경쟁적으로 이어 받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정책으로 육성해서 키운 산업이고요. 국가 정책으로 키워서 육성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국가 뭡니까? 국민이잖아요. 지금 말하자면, 그 정책으로서 게임 산업이 크는 동안 국가 세금이 나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게임이 한창 크고 있는 동안 한편 어떻게 되었습니까? 게임으로 인한 폐해는 늘었고요. 그러는 동안 학부모들의 근심도 늘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끔찍한 사건들도 종종 일어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됐으면 게임 산업도 많이 벌었어요. 그럼 이제 좀 사회공헌 차원에서라도 뭔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 사회 공헌이라는 것은 이제 일반 시민에게도 상식이 되어 있거든요? 게임산업이 국가 육성으로 그렇게 성장을 했으면서 아직까지도 돈 때문에 돈 내기 싫다는 소리로밖에 안들리거든요? 당연히 내야 하는 겁니다.


A: 제가 10초만 반박해도 되겠습니까? 아까전에 문체부와 함께 게임 산업이 커왔다고 말씀하셨는데, 좋은 말씀 하셨습니다. 왜냐면 문체부의 지금 입장은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올리지 말자'예요. 아시겠습니까? 문체부는요. 지금 게임 중독을 질병화시키는데 있어서 반대 입장이고요.문체부와 같이 커온 게임 산업도 문체부가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하는)이런 입장이 맞다고 저는 생각되거든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B: 맞습니다. 게임 산업이 문체부와 같이 커왔으니까 만약 중독세를 낸다고 하면 문체부도 살짝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문체부가 세금을 낸다. 뭐 이런건 아니고요. 국가 정책도 책임이 있다 이겁니다.

C: 저 잠깐만 얘기할게요. 잠깐만. 우리나라 게임산업은요. 정부가 육성하지 않은 유일한 산업입니다.

B: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C: 그건 제가 전공자거든요. 우리나라 모든 산업중에서 정부의 손을 타지 않고 육성됐던 최초의 산업이 우리나라 게임 산업입니다. 두 번째가 웹툰이고, 세 번째가 아이돌입니다. 정부가 규제하고 정부가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은 게임 산업이 뻗어나가던 2008년 셧다운부터 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 이전에 게임은 정부가 탄압을 했던 산업이었고, 오락실 가지 말라고 했던 산업이었고, 오락실 가면 정학받았던 게임 산업을 극히 탄압했던 와중에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유일한 산업입니다.


B: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요. 그때는요. 당연히 부모님들이 오락실 가는거 싫어했죠. 그땐 그랬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 PC에서 사용 용도를 순위를 매겨 봤거든요. 그랬더니 게임하는게 제일 많더라는거예요. 그래서 이 게임이 진짜 산업화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됐답니다. 그러면서 게임을 육성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C: 잠깐만... 누구 연구죠?

B: 네?

C: 누구 논문을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누구 연구예요?

B: 저희는 일반인이라 굳이 논문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A: 아니 그거는 말이 안되는 말씀이세요.





토론에 참여해 참패한 패널의 의견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정도야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논리에서 밀리는 정도가 아니라 현안을 대하는 배경지식이 일개 게이머보다 못하고, 잘못된 지식을 진리처럼 읊는 패널이 게임 산업의 갈림길을 논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건 썩 어울리는 광경이 아니었다.

게임과 관련된 토론은 자주 이렇다. 늘 게임과 관련되어 공적 기관이 얽힌 토론에서는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이들과, 게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의 대결이 펼쳐졌다. 서로의 지식과 이해가 같은 층위에 있지 않으니 토론은 항상 산으로 간다. 게임업계의 목소리가 호소와 설득으로 점철되는 이유는 게임업계가 그것 밖에 하질 못해서가 아니다. 논리가 먹히질 않으니 할 수 있는게 그것 뿐인 거다.

이번 100분토론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하냐 마느냐의 문제는 철저한 연구와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결론이 나는 사안이며, 누군가의 의견이나 대중의 기호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정상적인 토론이 진행되려면, 게임을 충분히 겪어 보았으면서 동시에 의학적 지식을 겸비한 패널들이 참여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토론의 내용은 보는 대로다.

양자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자신의 논지를 펼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패널이 아예 없진 않을 거다. 적어도 해당 산업 종사자들을 존중하고, 이 문제를 진짜 진지한 사안으로 여긴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게임업계의 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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