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UF: 크루세이더', 국산 고전 IP 부활의 신호탄 될까?

칼럼 | 윤서호 기자 | 댓글: 12개 |



게이머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추억의 게임이 있을 것이다. 컴퓨터실, 사지방에서 몰래몰래 했던 게임이든 친구들과 PC방에서 즐겼던 게임이든, 혹은 어렵사리 성적을 올려서 부모님께 선물받아서 잠깐잠깐 즐겼던 게임이든 말이다.

"어른이 되면 너 좋아하는 거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들으며 게임을 더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왔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추억의 게임은 어느 덧 멀리 떠나버렸다. 돈은 있지만 어렸을 때보다 더 시간은 없고 몸은 쉽게 지친다. 그러다보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음대로 게임을 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인 셈이다.



▲ 기종이 몇 세대 지날 정도로 나이가 들어도, 콘솔 게임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한 번쯤은 추억의 게임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어렸을 적, 혹은 젊었을 적 그리도 실컷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하고 싶다, 그때의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다, 그 게임을 했을 때 있었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등.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옛날에 명작으로 불린 게임들, 그리고 그 시리즈엔 지금도 계속 기억될 만한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작품 중에 하나로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를 꼽는 건 다소 애매해보일지 모른다. 2004년이면 국내 게임 시장의 헤게모니는 이미 온라인으로 넘어간 상태고, 더군다나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XBOX 독점으로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콘솔하면 구매할 돈이 있어도 "허락보다는 용서가 쉽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절로 나오는 마당인데 당시에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알 일이다.

그러나 200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수상하고, 메타크리틱 점수도 81점, 유저 평점 8을 기록하는 등 해본 사람이라면 결코 낮잡아볼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당시로서는 꽤나 신선한 시스템을 선보이면서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만들 만한 저력이 있었다. XBOX 독점작 몇 개 때문에 XBOX를 샀다가 또 다른 퀄리티 높은 독점작이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입장에선 정말 가뭄의 단비였다.



▲ XBOX 독점이라 국내에서 접하긴 어려웠지만, 평가는 나름 괜찮았다

물론 이후 '킹덤언더파이어' 시리즈가 어떻게 됐는지는 게이머라면 다들 알 것이다. 속편인 킹덤언더파이어: 히어로즈와 외전작인 서클 오브 둠 출시 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던 '킹덤언더파이어2'는 오랜 난항 끝에 작년에 겨우 출시됐다. 그리고 개발사의 상황은 썩 좋진 않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의 스팀 출시 소식은 다소 놀라웠다. 아무리 명작이고, 다시 하고 싶은 게임이긴 하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웠다고 할까. 1분기 출시라는 소식이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2월 28일 출시라고 알려온 것도 놀라웠다. 스크린샷을 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 그냥 포팅만 한 것이구나, 라고 말이다.



▲ 스팀페이지에 올라온 스크린샷부터 그 시절 그대로의 그래픽이었다


고전 명작은 포팅만 해도 기본은 한다
그러나 눈쌀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제발 옛날 그대로만 나와라"

가끔 게이머들은 이렇게 한탄하고는 한다. 종종 추억 속에 묻힌 IP가 새로운 그래픽으로, 혹은 새로운 기기에 맞게끔 변화되곤 했지만 기대에 못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산 IP는 그런 경향이 더 짙었다. 때로는 그래픽조차도 만족스럽지 못했거나, 그래픽 개선은 됐어도 어딘가 하나둘씩 기대감을 배신하는 요소들이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지 종종 새롭게 부활한 추억의 게임에 대해서 부정하는 한편, 옛날 그대로가 좋다고 외쳤던 것일지라.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그 가정을 현실화한 사례라고 하겠다. 4K 와이드 스크린까지 대응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풀스크린에 맞게 대응한다는 것이지 해상도에 맞춰 그래픽 퀄리티가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16년 전의 그래픽을 큰 화면으로,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는 셈이 되었다. 실사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현세대 그래픽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니 "어 옛날엔 그래픽 무난했는데?"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 16년이 지난 뒤에 다시 그 그래픽을 마주하자니 접근하기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그래픽의 장벽을 일단 넘고, 추억을 다시 되살리며 플레이하니 느낌은 달랐다. 특유의 묵직한 액션, 병과 상성 및 지형, 스킬을 활용한 전략적인 전투는 여전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휘관 직속 부대는 무쌍류로 플레이하면서, 여타 병과는 각 병과에 맞게 RTS 방식으로 운용해나가는 시스템은 당시로선 정말 획기적이었다. 보병이 기병을 창병이 있는 곳으로 유인해서 궤멸시키거나 궁병이나 보병이 숲에 불을 질러서 적 병력을 줄이는 등, 전략성도 꽤나 뛰어났다.

그런 걸 정통 RTS가 아니라 3D 액션을 섞은, 하이브리드 형태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방식도 단순히 병력 대 병력 싸움이 아니라, 적장을 물리치면 해당 부대가 소멸하는 시스템도 구현했기 때문에 컨트롤로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뒀다. 그럼에도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상성 차이가 큰 병과도 있었던 만큼, 지휘관으로 무쌍을 하면서도 주변 상황에 따라 병력을 왔다갔다 조작하는 묘미도 있었다.



▲ 지휘관을 조작해 무쌍을 하면서



▲ 동시에 기병대를 조작해 적 보병에 추가로 타격을 입히는 전술도 가능하다



▲ 혹은 숲에 불화살을 쏴서



▲ 매복해있는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등, 나름의 전략성을 갖췄다

그뿐만 아니라 RTS에서 빠질 수 없는 특수 기술이나 마법 활용도 준수하게 구현해냈다. 키보드 단축키로 조작하는 것처럼 빠르고 정밀하게 쓰긴 어렵고, 요구하는 SP가 높아서 자주 쓸 수는 없지만 상성 구도를 잘 활용하면 열세를 극복하는 또 다른 조커카드로 쓸만했다. 중장보병이나 기사대 같이 철갑을 장비해서 방어력이 높은 적은 번개저항이 낮기 때문에 낙뢰를 쓴다거나, 언데드 보병은 신성 마법으로 대응하는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되면서 전략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병과의 특성에 맞는 전술을 활용할 때 SP 보너스가 추가되기 때문에, 이를 신경 쓰면서 플레이하는 묘미도 있었다.



▲ 무쌍 액션뿐만 아니라



▲ 적을 함정으로 끌어들인다던가



▲ 마법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적과 맞서 싸우는 묘미도 있다

그 특유의 재미는 16년이 지난 지금 플레이해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자신있게 권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 재미는 그대로 살아있지만, 그래픽까지 그 시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픽 퀄리티는 16년 전 원판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현 세대 게임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그 시절 그대로의 해상도를 현재 해상도 비율에 맞춰서 급히 맞추다보니 폰트 비율이 유난히 튀어보이는 등 불쾌한 골짜기들이 일부 엿보인다.

예전에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를 즐겼던 유저라면 충분히 이를 감내하겠지만, 이번에 처음 해보게 될 유저에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도 있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때부터 시작된 시스템에 MMORPG를 섞으려다가 오랜 시간 표류했던 킹덤언더파이어2의 사례도 있으니,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확실히 처음 보는 입장에선 매력적이진 않다고 하겠다. 오히려 앞서 이야기한 것 자체가 "한 번 해봐 츄라이츄라이"로 읽힐 것 같은 위험부담이 느껴질 정도다. 그 시절의 올드한 그래픽과, 어거지로 해상도를 맞춘 티가 난 UI는 여기에 확신이라는 기름을 한 번 더 붓는 격인 셈이랄까.



▲ 추억이 있다면 감내하겠지만, 없다면 입구컷을 할지도


엄밀히 말하면 '추억 그대로'는 아니다
현 세대 기종에 맞게 다듬고 기능을 '온전히' 맞춰 담아야




그래픽과 게임성 모두 옛날 그대로 돌아온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지만, XBOX에서 PC로 환경이 바뀐 만큼 그에 맞춰서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우선 XBOX 패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패드로 즐겼을 때 느꼈던 플레이 감각을 최대한 유사하게 살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다소 부족했다. 키보드와 마우스 포팅은 나름 잘된 편이지만, 튜토리얼을 키보드나 마우스에 맞춰서 설명하지 않고 예전 것을 고스란히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키를 누르면 각 버튼에 대응하는 키를 알 수 있도록 했지만, 워낙 복잡한 게임인 만큼 익숙해질 때까지 수시로 봐야만 했다.



▲ 포팅은 나름 준수하게 했지만, 일일이 이걸 보면서 암기해나가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전술 모드일 때 우측 아날로그 스틱으로 카메라를 돌릴수 있는데, 원래는 마우스에 할당되어있던 기능이 그때만은 적용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이 지도를 켠 상태에서 카메라를 돌려야 했다. 알트탭도 지원이 안 되서 바탕화면으로 잠깐 나가려고 하면 게임을 일일이 종료하고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나마 키보드와 마우스는 대응이라도 하지만, PS4용 컨트롤러는 아예 대응이 안 되는 등 문제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멀티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XBOX는 출시 당시부터 콘솔로도 통합형 온라인 서비스인 XBOX LIVE를 통해 원활한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을 핵심으로 내세웠던 기기였다. 자연히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를 비롯한 독점작 다수가 이를 활용한 멀티플레이를 지원했다. 심지어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OGN에서 대회를 개최한 적이 정도로 멀티플레이 비중이 있는 작품이다. 이를 제외한 만큼, 추억 그대로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 가끔 이렇게 써있어도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게임이 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추억의 그 작품이 옛날 그대로 돌아온다면? 이라는 가정에 완벽히 들어맞진 않아도,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최근 출시된 작품 중 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아쉬운 모습은 보였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당시에도 좋은 게임플레이, 시스템, 그 게임만의 특성이라고 평가받았던 것은 지금 와서도 변함없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현 세대의 유저의 니즈에 맞춘다는 명목 하에 손을 댔다가 오히려 추억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들었던 여러 사례가 있던 만큼,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아 온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는 반갑기도 하다. 적어도 추억 그대로의 게임을 즐겨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킹덤언더파이어: 크루세이더'의 사례는 이젠 잊혀가는 국산 고전 IP를 복구하는데 또 다른 힌트가 될 것이다. 꼭 리마스터, 리메이크를 거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그 모습 그대로 살린다는 선택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베스트는 성공적으로 리마스터,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다. 최근에도 그런 사례를 몇 건이나 찾아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역량이 안 될 때 무리해서, 혹은 신규 유저의 니즈에 맞춘다는 명목 하에 어줍잖게 리마스터, 리메이크를 진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원판 그대로 내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 케이스라 하겠다.

그러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환경에 맞춰서 어느 정도 보정 및 보완을 거쳐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전에 있던 기능을 온전히 담아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거나 이식하면서 새로 생긴 버그나 튕김 현상 등도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추억을 그대로 포팅한다는 말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을까. 그 추억 속의 게임은 폰트나 UI가 튀고, 예전에는 있던 몇몇 기능이 갑자기 빠져있던 게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오랜 표류를 거쳐서 다시 맥을 이어가고 있는 IP인 만큼, 아직 남아있는 히어로즈나 서클 오브 둠, 혹은 KUF 1편은 더 성공적으로 이식해서 재건해 나가길 바란다.



▲ 이번 KUF: 크루세이더 출시가 KUF IP 부활, 더 나아가 국산 고전 IP 부활의 신호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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