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가서 놀자!’ AR·VR 국제 페스티벌 주는 의미

칼럼 | 이현수 기자 |



나는 자전거를 매우 좋아한다. 많은 동호인이 선호하는 업힐보다 롱 라이딩을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고 나서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트레일러를 달고 텐트와 짐을 싣고 전국 명소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차나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도 즐겁지만, 내 다리로 페달을 굴리면서 변하는 풍광을 바라보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거의 반쯤 미쳐 살 때는 주말에 데이트 대신, 혼자 자전거를 끌고 전국을 유람하며 캠핑하곤 했다. 당연히 여자친구는 섭섭해했고, 도화선이 되어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충안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나가서 노는 즐거움, 내 몸이 동력이 되는 즐거움'이 내 말초를 정확하게 자극했던 것 같다.

길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집요함과 만남을 표현한다. 그 길을 걷고 있자면 온몸의 감각이 열린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느낌이 같은 공간이지만, 다르다. 요즘 젊은 세대가 말하는 '게토(Ghetto)'나 '스트리트(St.)'와는 또 다르다. 땅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고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는 길이다.

이 길은 화자에 따라 '게임 보드'로 변하기도 한다. 길이라는 커다란 보드(board)에 우리는 말(token)이 된다. 타인과 뜻밖의 조우 및 소통 혹은 생경한 환경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풍경의 위대한 아우라에 발길을 멈추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풍경에는 자연 풍광도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소통과 융합의 현장도 포함된다.

이는 어디 멀리 있는 밖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심에서도 일어난다. 권태에 가까운 허무함 속에 걷는 도시인들의 상징, 도심의 길도 게임 보드로 변할 수 있으며 그곳에서 타인과 사물과 그리고 자신과 상호작용을 해나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줬던 게 전 세계 유일 프라이머리로 선정된 서울에서 열린 이번 '인그레스 어노말리(Ingress Anomaly)'다.

자기 방에서 엄청나게 좋은 그래픽과 화끈한 음향효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절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뛰어다니며 같이 게임을 즐긴다. 그것도 잘 보이지도 않는 선과, 조잡하기 이를 때 없는 이펙트로 꾸며진 게임에 열광하면서 말이다.




오퍼레이션 마타하리(Operation Matahari)로 알려진 일화만 봐도 인그레스(Ingress)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만하다. 호주 포털 키를 한국으로 가져오는 등 국가를 넘나드며 아시아 16개국이 필드를 만들었던 이 작전은, 플레이어 간 탐험과 사회적 교류를 극대화한 사례로 꼽힌다.

개발사인 나이언틱(Niantic.inc)은 이런 이벤트를 개최한 적도, 요구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십 원 한 장도 지원해주지 않는다. 인그레스 어노말리 행사 역시 애프터파티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플레이어 스스로 빌드업 해나간다. 그럼에도 나가서 놀아본 이들은, 나가서 소통해 본 이들은, 이를 멈추지 않는다.

흔히 대한민국의 어른들을 보고 놀 줄 아는 어른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놀이를 빼앗겼다고 표현되고는 한다. 놀이의 가치를 모르는 부모, 선생님, 정치인, 공무원 등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잃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가서 놀아본 적이 없으니까 놀이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논다=술'이다.

서울에만 어린이 공원이 1,000개가 넘게 존재한다. 과거에는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특정 가구 이상이 거주하면 어린이 놀이터를 짓는 게 의무 사항이었던 결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어린이 놀이터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안전관리법에 따른 의무 준수 사항이 있으니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공간 자체를 빼앗겨 버렸다.

아이들은 나가서 놀지 못하면서 타인과 접촉, 융합, 소통에 둔해졌다. 게다가 계속 접하는 사람들이 우리 어른처럼 더 둔감한 사람이니, 아이들은 공간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함께 노는 것에 대한 가치를 단순 놀이와 치환 활 수밖에 없게 됐다.

'나아가 노는 것'의 소실은 노령화 사회에도 영향을 끼친다. 함께 즐기는 놀이는 사회적 역할 획득 및 수행을 통해 사회적 지지체계를 구성하여 노인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나이 먹고...'로 접두사 아닌 접두사를 만드는 수준이다. 나가서 논다는 가치를 인정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한 사회의 단면이다. 항상 놀이의 가치가 학술서에만 머무는 이유기도 하다.



▲ 함께 달려서 목표를 완수 해야 한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주창한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주장을 시작으로 놀이는 문화적 학습과 전파에 중요한 배경 또는 매개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화가 놀이를 통해 생겨나지만, 일단 생기면 문화가 놀이에 영향을 미치고 그다음은 놀이가 문화를 창조, 변화시킨다고 했다. 따라서 놀이는 문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문화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VR·AR은 단순 기술이었지만, 놀이 콘텐츠와의 융합으로 문화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 게임은 문화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O2O 플랫폼이다. GPS 기반 AR 게임은 온라인 콘텐츠에 따라 유동 인구를 변화시켜 오프라인 상거래에 영향을 끼치는 O2O 플랫폼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걷는 게임의 특징을 살려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한 운동 동기 강화 및 웨어러블 통합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시도되고 있다. 나가서 노는 것 자체가 산업과 문화에 영향을 끼친 사례다.

존 행크 (John Hanke) 나이언틱 대표는 인그레스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 이상한 자세로 게임만 할 것이 아니라 다들 나와서 서로 만나고, 돌아다니 게 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인그레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IGC2017] 나이언틱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나이언틱은 포털과 필드라는 보상으로 사용자들을 움직이게 했다(Exercise). 이 과정에서 주변의 멋진 랜드마크나 역사적인 장소를 게임 플레이에 포함해 게이머들에게 모험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To see the world with new eyes). 나아가 여러 명이 함께 도전해야만 하는 미션을 주어 게이머들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Breaking the ice).

편한 이동 수단, 즐길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몸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편한 여정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견 후퇴라 보일 수 있으나, 나이언틱은 '인그레스 어노말리'를 통해 걷기와 상호 유대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했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간단한 행위이면서 풍성한 사색의 원천이기도 하다. 고독을 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세상을 구경하며 소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름다움과 낭만과 여유를 찾는 행위이기도 하고 고행과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제오늘, 레지스탕스와 인라이튼드가 모여서 무엇을 하는지 봤다. 그들은 위와 같은 목표의식을 철저히 만족하며 자신들의 즐거움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보행을 포함한 몸을 직접 움직이는 재미와 타인과의 소통, 나아가 통합 욕구를 충족하며 게임 보드를 뛰어다니는 즐거움. 감히 비약하자면 나가서 함께 놀이를 영위하는 것이 문화적 행위로서의 활동과 기술적, 예술적 경험으로서의 활동을 어우러지게 했다.

게다가 인그레스 플레이어의 60%는 체중 감소를 경험했고 30%는 데이트를 경험했다고 하지 않는가. 혼자 자전거에 미쳐서 이성 친구랑 헤어질 걱정도 없고, 어쩌면 이성 친구도 만들 수 있다.

우리, 나가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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