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주칼럼] 게임, FDA 승인을 넘어서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3개 |
이장주 박사는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장주 박사

16일 디지털 게임 엔데버알엑스가 어린이 ADHD 치료제로 FDA 승인이 났다는 뉴스를 외신으로 접했다. 흔히 게임중독으로 알려진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코드로 등록되는가 여부로 논란이 되고 있던 때라 우군을 만난듯한 반가움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좀 자세히 찾아봤다. ADHD라는 현상과 게임은 도대체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번 결정에서 확인된 것들과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의 해설을 인벤 독자들과 아주 오랜만에 공유하고자 한다.


게이머들이 ADHD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에 대해서 게이머들은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ADHD은 흔히 말하는 게임중독과 흔히 함께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존장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출현시기가 비슷하다. 60년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서, 90년대 폭발적인 확산을 이루었다. 속성도 너무 비슷하다.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비율이 높으며, 딱히 치료법이 없다는 점.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도 유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ADHD아이들이 몰두하는 대표적인 활동이 게임이라는 점과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까지 거의 일란성 쌍둥이 수준이다.

ADHD는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장애로,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1)산만하고, 2)과다활동, 3)충동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보다 약 4~6배 정도 더 높은 것이 특징이다.

ADHD는 1968년 진단 및 통계편람 2판에서 처음으로 ‘아동기 과잉행동반응’이라는 병명으로 세상에 출현하였으며, 그 후 1980년 주의력결핍(ADD)으로 명칭이 변했다가 1994년 과잉행동이란 특성이 추가되며 현재의 ADHD란 명칭으로 굳어졌다. 특히 이런 증상은 학교 교육현장에서 부적응이 두드러졌다. 교실에서 하루종일 가만히 있질 못하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등의 증상이 딱 이것이다.

그런데 이런 병이 등재되고 다양한 치료법이 나왔다고들 하는데 ADHD 진단을 받는 아이들은 늘어만 간다. 한국의 경우 ADHD 관련 정신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 6,266건에서 2011년 5만 6,951건으로, 불과 10년 사이 350%의 폭발적인 증가가 나타났다고 콘래드라는 학자가 소개한 사례도 있다. 참고로 미국은 6~11세 아동 400만 명이 이런 증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ADHD 아동은 대조군(정상) 아이들보다 전전두엽, 기저핵과 소뇌 등이 3~4% 작다고 한다. 추적한 연구에 의하면, 이런 아이들은 정상적인 뇌 성장 단계를 거치지만, 보통 아이들보다 평균 3년 정도 발달이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ADHD은 장애가 아니라 '느리게 성숙하는 아이들'이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어떤 연령 그룹이든 5년이 지날 때마다 ADHD 비율이 50%씩 감소했다.

진단명에서 오해를 사는 것은 ‘주의력결핍’이란 용어인데, 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곳에 집중을 하지 않을 뿐이다.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는 과집중(hyperfocus)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에 과몰입하는 현상과 판박이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기법이 많이 사용되지만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FDA 승인으로 확인된 것들

▲ 출처: TheVerge 유튜브

이번 승인의 근거는 8~12세 어린이 600명 이상이 참여한 다양한 연구들의 리뷰를 통해서였다. 참여 어린이들은 EndeavorRx를 매일 25분 동안 매주 5일씩 4주를 플레이하였다. 그 결과 30%의 참여자가 주의력검사, 학업수행측정 등 다양한 검사 중 하나 이상에서 개선을 보였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후검사에서 효과의 지속기간도 최대 1개월가량 지속되었다. 개발사와 연구자들은 EndeavorRx가 심리치료 및 약물치료와 같은 기존의 치료법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며, 다른 치료들과 병행할 것을 권장하였다.

물론 이번 결정이 ‘게임은 더 이상 중독과 관련이 없다’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마약류도 진통제로 치료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최초의 디지털치료제로 승인이 되었다는 의미는 8~12세 초등학생 ADHD 처방에 게임처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약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적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게임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순기능을 여럿 이야기하였지만 적어도 ‘주의력 향상’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인을 받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7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를 기반으로 승인이 일어났기 때문에 추후 유사한 게임 치료제 FDA 진입이 훨씬 수월하게 된다. 후발주자들은 시판 전 사전신고(premarket notification) 또는 510(k)라는 신고절차를 통해 이미 출시된 기기와 사용목적, 기술적 특성, 성능검사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신고서를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처방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게임구매에서 의료보험적용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게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기술과 서비스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한 중견업체의 경우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숨겨진 한계도 분명하다. 30% 아이들에게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은 70% 아이들에게서 뚜렷한 효과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미와 같다. 또한 8~12세까지 아동들에게 유효하다는 의미는 13세 중학생 이상의 연령에는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게임과 게이머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동영상을 통해 본 게임은 사실 카트라이더나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모동숲’에 비하면 다소 단조로운 구성으로 보인다.

이 정도 수준의 게임에 빠질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보다 더 쎈 게임들을 즐기는 혹은 즐겼던 나이가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주의를 끌 만한 게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펭수에 열광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뽀로로에 관심이 없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면 굳이 ADHD 치료용 게임이라고 할 것 없이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다양한 게임들을 ADHD 치료용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생긴다. 연령별로 보자면,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적합한 치료용 게임, 초등학교 고학년들, 중학교, 고등학생에게 적합한 게임, 특성별로 보자면, 경도 ADHD에게 적합한 게임, 중등도 ADHD에게 적합한 게임 등으로 말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증상에 대한 치료인가, 원인에 대한 치료인가가 불분명하다. 나온 자료들을 볼 때, 나의 짐작으로는 증상에 대한 치료로 보인다. 게임이 ADHD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기제를 바로 잡는가, 아니면 원인과 상관없지만 ADHD 증상을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하는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줄 수 있다면 노벨상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정도라면 이건 치료제라기보다는 진통제에 가깝지 않나 싶다. 못내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무언가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고 빙빙 도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신장애에 투영된 시대적 가치관



거의 모든 정신장애는 ‘일상생활의 지장 초래’라는 진단항목이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에 정신장애도 시대와 문화적 가치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글씨가 없다면 ‘난독증’이 생길 수 없다. 참고로 난독증은 지능과 시력, 이해능력 등 다른 기능은 다 이상이 없는데 글씨를 읽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이들에게 글씨가 아닌 동영상이나 음성으로 지식을 전달한다면 ‘난독증’은 더 이상 일상의 지장을 초래하지도 못한다. 이미 오디오북과 음성지원 웹사이트는 난독증이 정신장애일 필요가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 난독증이 있는 사람에게 글을 읽도록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음성지식을 제공해서 그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접근이 된다. 그렇다면 ADHD나 게임이용장애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

하트만(Hartmann)은 ADHD에 대한 혁신적인 관점과 접근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 자신도 ADHD로 진단이 되었던 이력을 가진 학자인데, 그는 ‘농부들의 세상에 있는 사냥꾼(A Hunter in a Farmer's World)'이란 말로 ADHD 특성을 요약했다. 사냥꾼에게 약을 먹이고, 인지행동치료를 한다고 해서 우수한 농부가 될 수 없다. 차라리 사냥꾼에게 맞는 환경과 역할을 찾아주는 것이 아이와 부모 그리고 사회 모두에게 이롭다는 주장을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1998년도 사냥꾼 학교(The Hunter School)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ADHD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한다.

사냥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본능적으로 안전한 은신처와 맹수들을 경계한다. 반면 농부는 씨앗을 심고 몇 달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최고의 덕목이다. 농부는 현재의 필요가 아니라 미래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농부가 보기에 사냥꾼은 번잡하고 부산하여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지만, 세상은 한 종류의 사람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는 멍하니 딴생각을 하다가 의자에 앉은 채 끊임없이 몸을 들썩거리기를 반복했다. 주의가 산만하고 제멋대로 구는 앨바를 발견한 선생님은 지팡이를 휘둘렀다. 두렵고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낀 그는 몇 주 버티다가 학교에서 도망쳤다"

에디슨의 전기에 나오는 성장기 시절의 에피소드다.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아이들이나 생각할 법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심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그가 ADHD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 외에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 세익스피어 등 비범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ADHD 증상과 같은 기록이 관찰된다.

즉 ADHD는 적응에 방해되는 정신장애가 아니라 누군가를 혁신적으로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일 수 있음이 시사되는 대목이다. 자신의 역량을 키울만한 실험실과 피아노, 서재를 갖지 못한 우리 시대 모차르트, 세익스피어, 에디슨들이 그 공간을 찾아 게임으로 몰려들고 있지 않는지 겸허하게 돌아볼 일이다. 재능을 가진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장애 환자로 만들어 약을 먹이며 진정 ’너희들을 위한 헌신이다‘라고 말하지는 않는지도 말이다.


게임, FDA 승인을 넘어서


▲ 출처: SK하이닉스 유튜브

전 세계 게이머는 20억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된다. 불과 20년 사이에 일어난 폭발적 성장이다. 게임은 일상문화에도 영향을 주지만 다양한 콘텐츠와 기술과 융합하면서 4차산업혁명시대의 인싸 중 인싸가 되어가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4월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2위 회사인 SK하이닉스는 ‘테너시티신드롬(집념증후군)’이란 주제의 광고에서 게임에 몰입하는 것과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 비슷하다며 이런 사람을 뽑겠다는 구인광고를 유튜브를 통해 내보낸 바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스트리머 닌자가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하였다. 게임은 이미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게임은 소통의 도구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스펙이 되었다.

게임을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다면 적당히 할 것이 아니라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들이 게임에서 무슨 경험을 하였는지를 귀담이 들어주고, 이들이 그 속에서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구현하게 해주는 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야 ADHD를 가진 천재들과 게이머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말이다.

모쪼록 이번 FDA의 치료제 게임 승인은 게임을 하찮게 바라보던 구시대의 세계관이 막을 내리고, 게임이 세상을 바꾸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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