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러운 핵쟁이들 딱 기다려!" 유저 배심원 제도, 어떻게 생각하세요?

칼럼 | 박광석 기자 | 댓글: 25개 |



인터넷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게임을 하다 보면, 이따금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다투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니시를 잘못 걸어서, 뜬금없는 오더를 내려서, 그냥 못해서 등등,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악담의 바리에이션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자체적으로 채팅 제한 시스템을 적용하여 깨끗한 채팅을 유도하곤 하지만, 가끔 '배심원 제도'를 통해 악성 유저를 관리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온라인 FPS 게임 서든어택에는 유저 배심원단 개념의 '길로틴 시스템'이 정식 적용됐다. 유저들은 비정상적인 행위로 의심되는 유저를 신고할 수 있고, 배심원단으로 선발된 이들은 신고가 누적된 특정 이용자의 배틀 로그와 스크린샷을 검토해 직접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사실 게임 속 배심원 시스템은 서든어택 이전에도 몇몇 게임에서 먼저 시도됐다. 가장 대표적이고 잘 알려진 것이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배심원단(Tribunal)' 시스템, 그리고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의 '감시부대(Overwatch)' 시스템이다.

LoL 게임 배심원단의 경우, 악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을 직접 척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고, 그저 다른 이들의 비매너 로그를 흥미 본위로 지켜보고자 참여하는 이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참여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언정, 다른 이들의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인 배심원단 제도는 유저들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악의적인 유저들에게 강도 높은 제재가 가해지길 기대했던 배심원들은 그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보상마저 적다 보니 지속할만한 동기를 잃은 유저들의 참여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결국, 라이엇게임즈는 게임 배심원단 시스템이 게임 내 비매너 행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기간 휴회를 결정하게 된다.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의 '감시부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게임 내 유저들로 구성된 감시부대에게 핵 사용 의심을 받고 있는 유저의 게임 플레이를 관전하도록 하는 이 시스템은 '유저들이 직접 핵 유저들을 단죄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약간의 만족감을 선사할 뿐, 핵 사용자의 근절 면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핵 사용자, 그리고 비매너 유저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배심원단 시스템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빠른 피드백'과 '적합한 보상'이 필요하다. 어디까지나 사람이 참여하고, 사람이 판단하는 방식이기에 참가자인 배심원들의 동기를 유발할 달콤한 매개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일정 수 이상의 참여가 이루어져야지만 비로소 처벌로 이어지는 배심원제의 구조상, 사용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신속한 제재 피드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감정에 치우친 판단으로 허위신고와 부정확한 판결이 반복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문제로 남아있다. 결국, 배심원제는 유저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의 활발한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담 인력까지 요구되는 매우 까다로운 시스템이 되고 말았다.

라이엇 게임즈는 배심원단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해를 거듭하는 장고를 거쳤지만, 결국 배심원단 시스템 대신 부정행위 방지 솔루션인 '데마시아'를 그 해답으로 내놓았다. 배심원단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코스트를 들이기보다, 구조상의 한계를 메꿔주는 고성능의 안티 치트 시스템을 적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데마시아는 근래까지도 오제재 건으로 골치를 썩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욕설과 잦은 탈주 등 그 죄질이 명확하여 빠른 제재가 필요한 건에 대해서는 배심원 제도가 운영되던 이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배심원 제도가 고성능 안티 치트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쓸 도리가 없는, 무용지물에 그치는 제도라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악성 유저들과의 싸움에 전념하기보다 배심원 제도를 활용하여 사후 관리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다. 넥슨의 서든어택 역시 자체적인 불법 프로그램 탐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도, 배심원 제도인 '길로틴 시스템'을 추가 적용하여 불법 프로그램 사용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 '길로틴 시스템' 정식 적용 후, 꾸준한 배심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불법 프로그램, 그리고 악성 유저들과의 싸움은 게임 업계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고질적인 문제다. LoL의 데마시아와 발로란트의 뱅가드와 같은 신규 안티 치트 프로그램이 하나둘 선보여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저들의 자정 작용에 의지하는 배심원 제도가 지금보다 강화되어 더욱 다양한 게임에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누구나 '정의의 대법관'을 자처하고 싶게끔 하는 합당한 보상으로 유저들의 참여를 이끌고, 늦어도 이틀 안에 배심원 판결 결과를 공지하는 신속한 피드백으로 기반을 닦는다면, 모두가 정당한 환경에서 욕설 없이 경쟁하는 '클린한 게임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마냥 꿈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배심원 제도를 응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 제3자의 시선에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는 행위 자체가 생각보다 꽤 흥미롭기 때문이다. LoL에 적용되었던 배심원 제도 역시 초기에는 마치 게임을 즐기듯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많았고,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항상 배심원 제도에 참여한 경험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유저들의 무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배심원 제도는 하나의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만약 게임 속 배심원단 선발 기준을 채우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면, 대법원 산하의 연구기관인 양형위원회가 서비스하는 '국민 양형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6개의 각기 다른 사건의 경위를 보고, 직접 판사가 되어 죄질에 맞는 형량을 결정해볼 수 있다. 국가기관에서 서비스하는 교육용 자료로 치부하기 십상이지만, 이게 예상외로 재밌다. 특별한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가격도 무료니 부담도 없다.

사장된 줄로만 알았던 게임 속 배심원 제도가 서든어택의 길로틴 시스템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긍정적인 부분보다 더 크게 부각된 한계점들 탓에 한때는 유저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졌던 시스템이지만, 전례들을 통해 불거졌던 단점들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하나의 콘텐츠로써 더욱 활발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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