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외 키 리셀러, 떳떳한 '정품 판매자'가 맞는가?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116개 |



5월 말, '토탈워: 삼국'이 출시되었다. 게이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간 난잡하게 널려있던 삼국지 소재 게임의 정통이 바로 서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토탈워 팬들은 음성 더빙까지 된 신작에 환호했고, 삼국지 팬들은 제대로 된 삼국지 소재 게임에 열광했다. 그 중에는, 스팀을 한 번도 쓰지 않은 내 지인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삼국지3을 마지막으로 게임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던 지인이 이번에 새로 나온 삼국지 게임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미처 대답도 해주기 전에 '아 아니다 네이버에 많네'라며 이미 구매했으니 괜찮다고 말을 돌렸다. 뭘 모르고 바가지라도 쓴 건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오히려 정가보다 가격이 싸다. 흔히 말하는 '리셀러'를 통해 구매한 것이다.

이쯤되어, 토탈워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저 사이에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리셀러를 통해 게임을 구매하는게 옳은 것인지 아닌지로 시작된 논쟁은 결국 퍼블리셔인 '세가'의 개입까지 불러왔다. 그리고 세가퍼블리싱코리아는 자사의 SNS를 통해 '리셀러'를 통해 구매하는 것은 스팀 약관 위반으로, 추후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니 지양해달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 세가퍼블리싱코리아 공식 계정 게시글

코어 게이머들이라면 리셀러의 구조와 맹점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단 여러 리셀러 사이트도 자신들이 판매하는 제품이 '해외 키지만 정품'이라고 기재해 두었기 때문에 게이머 입장에선 '복사 파일이 아니라 정품인데 문제될 것이 뭐가 있나? 어차피 이렇게도 사면 개발사 매출이 오르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이렉트게임즈'처럼 정식 라이센스를 가져온 키셀러 사이트(리셀러와는 다르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자주 이용한 게이머가 아니라면 구별이 쉽지 않다. 오죽하면 게임 기자들 중에서도 리셀러 사이트를 잘 모르고 이용하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리셀러 사이트를 그저 '다른 유통망'으로 보기엔 개발자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얼마 전, 몇몇 해외 개발자들은 대표 리셀러 사이트인 'G2A'를 두고 "차라리 우리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G2A가 돈을 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이에 찬동한 개발자나 퍼블리셔는 적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앞서, 인디 게임 '다크우드'의 개발사인 '애시드 위자드 스튜디오'는 "우리 게임이 리셀러에서 팔리는 꼴을 보느니 그냥 무료로 뿌리겠다"라면서 토렌트 시드를 배포해버렸다.



▲ 리셀러의 폐해를 지적하는 해외 개발자들
(만약 당신이 우리 게임을 정가로 구매할 수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면, 키 리셀러에서 사지 마시고 차라리 불법 복제를 하세요. 이 사이트들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개발 시간을 가짜 키 조사, 환불 요청 등의 업무에 쏟아부어야 합니다)

일단, '세가퍼블리싱코리아'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세가 담당자의 입장은 이렇다.

"리셀러를 통해 판매되는 게임 타이틀은 한국 매출로 집계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본사에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셈이다"

설명하자면, '토탈워: 삼국'은 양질의 더빙과 한국어화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현지화의 뒤에는 '세가퍼블리싱코리아'의 노력이 있었는데, 이들은 출시 전 본사 측에 한국 시장에서 '삼국지'라는 소재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인기있는 소재인지를 적극 조사해 보고했고, 음성 더빙이 결정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정작 게임이 출시되고 나니 무시 못할 정도의 수량이 리셀러를 통해 판매되고, 정작 세가퍼블리싱코리아나 정식 유통망인 다이렉트게임즈 측은 기대 이하의 매출을 올리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사 입장에서는 유명 성우진을 기용하고, 번역된 텍스트를 더빙에 맞게 수정하는 등 온갖 공을 들여 간신히 현지화를 해놨더니 열매는 다른 쪽에서 다 따 가는 상황이라 속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해외 키 리셀러들은 자신들의 사업이 '해외직구대행'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가전 제품을 해외에서 싸게 사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하지만 세가 측의 주장에서 가전제품 해외직구와 해외 키 리셀러 간의 차이가 드러난다. 가전 제품은 딱히 현지화를 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전압 규격 정도 신경쓰고 호환 불가능한 제품을 배제하는 정도면 끝이다.



▲ 여러 오픈마켓에는 지금도 리셀러 업자들이 상품을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세가퍼블리싱코리아의 말을 들어 보면, 이를 단순히 해외직구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세가퍼블리싱코리아는 본사에 한국 현지화를 주장할 근거가 사라지고, 본사 입장에서는 현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비단 세가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리셀러로 인한 피해는 결정적이라 볼 수는 없지만, 한국에 진출해 정식 루트로 게임을 공급하려는 많은 퍼블리셔들이 앓고 있는 문제다.

사실, 이와 같은 문제는 게이머들이 알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게임업계 퍼블리셔와 개발사, 중간 판매자 간에 일어나는 일들이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품을 돈 주고 산 것'이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셀러 돌아가는 메커니즘은 생각처럼 그렇게 떳떳하지만은 않다.

먼저, 리셀러에 공급되는 '키'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리셀러들은 환율 차이가 큰 국가(러시아 등)의 사업체에서 대량으로 키를 구매해 이를 재판매하는 형태인데, 그렇게 확보된 키도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도난 카드나 장물 처리 비용 등을 세탁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 키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서구권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 이렇게 구매된 키가 적발 후 회수된 사례도 존재한다. 중소 개발사나 퍼블리셔들이 G2A를 비롯한 리셀러 사이트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인데, 잘못된 키가 유통되어 이를 환불하거나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력 소모가 커 중소 개발사로서는 개발에 쓰일 인력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또한, 리셀러 사이트 대부분은 VPN을 통한 우회 등록을 통해 게임을 판매한다. 스팀 게임 키는 국가에 맞춰 만들어지며, 해당 국가가 아닌 IP로 접속할 경우 등록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리셀러 측에서 여러 방법을 통해 우회 등록을 유도하는데, 스팀 약관 상 우회 등록은 적발 시 게임 회수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지만 실제 적발 사례가 적다는 이유로 리셀러 측은 100%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몇몇 리셀러는 국내 심의를 받지 않은, 혹은 등급 분류가 거부된 게임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 이는 위법 행위로,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범죄다.



▲ '모탈컴뱃11'은 등급분류가 거부된 게임으로, 유통 자체가 불법이지만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리셀러는 꾸준히 등장한다. 이에 대해 게임물관리위원회와 통화해본 결과 "'꾸준히 적발 중이며, 수사기관과 의뢰해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끊임없이 등장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당한 방법을 통해 게임을 판매하는 업자들로서는 골치가 아프다. 허가되지 않은 유통망을 통해 부정 이득을 취하는 그룹이 분명 보이는 상황인데, 신고를 해도 이름만 바꾸거나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등 눈 뜬 채로 당하는 상황이다.

'해외 키 리셀러'에서 게임을 구매하는 게이머 개개인의 잘못을 지적할 수는 없다. 스팀을 오래 이용했거나, 게임업계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가진 계층이 아니라면 모르고 구매할 수도 있고, 알고도 싼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리셀러다.

다만, 이런 리셀러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합법적으로 게임을 유통하는 많은 이들의 이익을 앗아가고, 나아가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좋은 게임들이 국내 게이머에게 맞춰 현지화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지금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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