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갈사태 VS 사상검증,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칼럼 | 강민우 기자 | 댓글: 295개 |



불과 몇 주 전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모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 성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메밍아웃(메갈리아와 커밍아웃의 합성어)했다는 의견, 개인에 대한 사상검증이라는 의견으로 맞붙었다. 시작은 단순했지만, 이 이슈는 다른 유명 게임으로 불붙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파문을 낳았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기도 하다.

"왜 게임계가 유독 이럴까? 제조공장에서 노동자가 누가 무슨 성향을 가지고 만들던, 상관하는 사람이 있나?"라는, 한 업계 관계자의 푸념도 있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뻔하다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면 다른 업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만들었느냐만큼 누가 만들었느냐도 중요’한 이유는 캐릭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디폴트로 하는 게임의 특수성 때문이다. 어떤 방향이든 개발자의 성향은 캐릭터나 게임 몰입에 중대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게임이 고도화될수록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굳이 게임의 특수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유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비자가 생산품을 직접 선택할 권리와 알 권리, 의견을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뜨거운 감자가 된 메갈 사태 - 혹은 사상 검증 사태 - 는 언뜻 복잡한 듯 보이지만, 일차적으로는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이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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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번 사태의 관점 ]

메갈리아(이하 메갈)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단어'와 '인식'이 관념처럼 남아있다. 지금은 워마드로 대표되는 그룹을 여전히 메갈로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경향과 행동양식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명사로서 ‘메갈’이라는 단어는 자리잡고 있다.

이런 메갈에 대해서 개인의 관점이나 소속 단체의 성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게이머가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각이다.

메갈에 대해서는, 여성의 권익 향상이나 성 평등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온갖 혐오적인 발언을 일삼고, 남성과 여성 사이를 이간질해 분쟁을 유도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게이머 인식 저변에 깔려있다. 설령 그들의 주장 중 일부에 여성의 성 평등권 추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주요한 흐름은 아니라는 것이 게이머들의 생각이다.

쉽게 말하면, 게이머들은 ‘메갈 = 일베의 여성 버전’ 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게이머들이 일베가 보수라서 반발한 게 아니라, 일베의 각종 표현과 행동들에 반발했던 것처럼.

게이머들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서 이 특정 성향의 여성 집단을 배척하는 것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수년 전 게임업계를 휩쓴 '일베' 이슈로 알 수 있다. 게임 안에 특정 집단의 코드를 삽입하는 것에 게이머들은 크게 분노했고, 기대받고 있던 어떤 게임이 일베 이슈로 인해 단 며칠만에 무너진 사례도 있다. e스포츠에서 프로선수로서의 데뷔를 앞두고 있던 어떤 사람은, 일베 이슈와 관련된 과거가 폭로되어 사라져야만 했다.

몇 년간 일베 이슈로 몸살을 앓았던 과거가 있기에, 메갈이라는 단어에 더욱더 민감한 게임의 소비자들이다. 과거에 일베를 거부했듯이, 지금은 또다른 버전인 메갈을 거부한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을 성별, 계층, 사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로 보는 것이 낫다. 여기에 페미니즘이 들어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사태의 시발점을 거슬러가면, 여성시대와 SLR 클럽이 얽혔던 탑시크릿 게시판 사태, 그 이후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일베와 유사한 수준으로 나온 과도한 혐오 표현들에 대한 반발이 중요한 발화점이었기 때문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게이머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바라보면 현재의 논란은 제법 단순해질 수도 있다. 게임사는 우선적으로 고객, 즉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이 사태를 정리하면 된다. 게임사가 어떤 선택을 했다면, 게이머들도 그 선택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소울워커와 클로저스가 그 예다.



[ 2. 이기주의 ]

작금의 사태는, 회사의 보수를 받은 노동자가 자신의 특정 성향을 개방된 커뮤니티에 표출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기업과 동료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성향은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가치관 혹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사건 사고 등 그 무엇이든 해당될 수도 있다.

생산자의 개인 신념이 온라인에 공개되고 절대 다수의 소비자가 이를 원치 않을 때 소비자는 필요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보이콧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개발자(생산자)도 사상의 자유가 있고 그걸 표출할 권리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가치관과 신념이 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거에 표출한 의견을 현재의 잣대로 재단해 단순 평가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당사자도 이를 '개인'의 신념 문제만 생각해 대응해서는 안된다. 게임은 적게는 1~2년 많게는 4~5년 걸리는 개발 기간 속에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함께하는 공동 프로젝트다. 이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무엇이 우선 되어야 하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도 공동의 피땀 어린 결과물을 앞에 두고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울 수 없다. 이것이 개인의 신념과 사상, 가치관의 억압일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업계의 민감한 이슈고 사회적인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면 더더욱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신념이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겠지만 이 프로젝트에 자신의 미래를 건 개발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 무게를 누가 저울질할 수 있을까?

집단이 구성원 각자의 존엄성을 인정하여야 하듯이, 다른 구성원들의 이익과 존엄성도 인정하여야 한다.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의 기본이다. 이 의식이 결핍되면 '이기주의'가 된다.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거대한 대미지를 입히는 행위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3. 사상검증은 또 다른 문제 ]

그렇다고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회사가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을 검증해 직원을 채용할 수는 없다. 회사와 직원은 고용계약의 관계이며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노무를 제공할 것을 약정하고 회사는 이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약속한다. 이 계약 관계 안에서 게임사는 노동자가 어떤 가치관과 사상을 가졌는지 회사가 검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법적인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회사가 자신들의 피해를 이유로 노동자에게 사과문을 강요하거나 핍박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메갈 이슈 해결의 연장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다.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한번 결정되면 전례를 만들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노동자 인권과 법률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일부 게임에서 발생한 사상검증 문제가 게임 업계 울타리 안에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과 여성민우회 등 여러 노동자, 인권 단체들이 나서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채용 과정에서의 특정 사상에 대한 검증은, 과거 역사에서 보듯이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된 사례가 있을 뿐더러,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할 수도 없고, 또 쉽사리 해서도 안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만일 회사와 당사자가 외주 관계라면, 외주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작업물을 사용하지 않는 선택도 가능하다. 문제는 당사자가 재직중인 상황에서 과연 강제로 퇴사를 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자칫하면 부당해고로 간주되어 지리한 소송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회사가 패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안은 법적으로 면밀한 검토와 많은 논쟁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쉽게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소비자들, 게이머들, 유저들은 성의있는, 무언가 만족할만한, 회사가 할 수 있는만큼은 다 했다라는 가시적인 조치를 원한다. 법적인 어려움은 이해할지라도, 꼭 퇴사는 아닐지라도, 소비자들의 이런 불만과 분노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과문이나 무언가의 후속 조치가 이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개발자와 게이머는 '함께 게임을 만드는' 개발 공동체

수많은 산업계 전문가들이 이번 메갈 사태에 대해 각각의 시각에서 논평하고 있지만 놓치는 부분은 하나다. 개발자와 게이머는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개발 공동체라는 점이다.

일방적인 정보나 제품을 제공받는 여타의 업종들과는 달리 게임은 개발 초기부터 출시까지 많은 부분을 게이머가 관여한다. 특히 온라인(모바일)게임은 라이브 서비스가 더 중요해지면서 게이머의 피드백이 곧 앞으로의 개발 방향이 된다.

영화도 일부 유사한 면이 있는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배우의 촬영분을 삭제하고 재촬영하거나 혹은 이미 확정된 캐스팅을 취소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건이 발생한 배우나 엔터테이너가 일단 TV에서 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문화컨텐츠 산업의 필연적인 숙명이기도 하다.

게이머들은 잘못된 기획 방향을 바로 잡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개발사가 자신들의 철학을 내세워 개발 의도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아웅다웅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게임이 잘되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를 단편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갈등이라고 치부해 버린다면, 앞으로 단어만 바꿔서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지나친 '간섭'으로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일부에서는 블랙컨슈머의 집단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분명한 건 어떤 산업이든 블랙컨슈머는 그저 불만만 얘기하고 상대를 괴롭히기만 할 뿐 회사가 자신들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게이머는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를 안다고 생각하는 생산자의 게임으로 옮겨가고, 또 지갑을 연다.

정치적, 사회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이 사태를 보는 시선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도를 넘는 혐오 표현들에 대한 거부감이 게이머들의 인식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메갈을 거부한다고 해서 일베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과도한 혐오표현이 과연 정치적, 사회적 올바름에 해당되느냐는 문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주장들이 일반 소비자들, 즉 게이머들에게 쉽게 먹히지 않는 것이다.

몇 년간이나 일베 이슈가 지속되었던 것처럼, 메갈 이슈 역시 앞으로도 한동안은 지속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게임에서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의 화력은 아니겠지만, 유사한 사태는 앞으로도 꾸준히 생길 것이다. 혹 일베나 메갈이 아니더라도, 게이머들의 인식에 반하는 또다른 제 3의 사안이 발생한다면, 역시 불타오를 것이다.

어찌보면 많은 실타래가 꼬여 있기도 하고,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번 사태로 다시 확인된 사실 하나는 게이머는 게임을 단순 소비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맞는 입장에서는 아픈 채찍질일지 모르겠지만 다 떠나고 나면 그것 또한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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