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국에서 물어본 판호

칼럼 | 이두현 기자 | 댓글: 24개 |



"그런데, 왜 우리나라 게임은 판호를 안 내주는 걸까요?"
"요새 우리 게임도 판호를 안 주는데, 한국 게임이라뇨?"


최근 중국에 있는 대형 게임사들을 차례로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서 미디어로 보고 들었던 것보다 훨씬 컸던 중국 게임사의 크기에도 놀랐지만, 역시나 가장 궁금했던 것은 판호 분위기였다. 물론, 중국에 사는 중국 게임사의 중국인 직원이 대한민국 게임 기자에게 판호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내진 않았다. 오랜 시간 붙잡고 있어야 의견 하나를 겨우 듣는 정도였다. 그렇게 들은 복수 인물의 파편화된 의견을 한데 모았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에서는 묵혀졌던 판호 이슈가 국정감사를 통해 최근 다시 드러났다. 불은 조경태 의원(자유한국당)이 지폈다. 지난 국감에서 조경태 의원은 판호 이슈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자존심 문제라 짚는가 한편, 판호를 받지 못해 잃은 기회비용이 4조 원에 달하리라 추정하기도 했다. 이에 상호주의에 따라 중국산 게임의 우리나라 진출을 제재할 것과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주문했다. 이어 조 의원은 명동에 위치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판호 이슈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우리나라의 불만이 티도 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의 의견은 "우리(중국) 게임도 판호를 받지 못해서 안달인데, 한국 게임 판호 발급이 웬 말인가?"라는 것과 "판호는 다른 이슈에 비하면 십분지일(1/10)도 안 되는 사소한 문제다"로 요약됐다.

우선 판호는 텐센트나 넷이즈와 같은 중국 내 거대 게임사도 받지 못해 문제라고 한다. 게임 판호를 받는 일에서는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이하 광전총국)과의 꽌시(關系)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현지인은 토로했다. 만약 꽌시가 통했다면 텐센트나 넷이즈 같은 거대 게임사는 문제가 없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여기에는 현재 중국 정부의 청소년 게임 이용 문제를 관리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더 깊은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한한령으로 인한 불공정 경쟁'이란 인식과 현지인의 인식은 사뭇 달랐다. 대한민국 게임이 외자판호를 받는다면, 중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몇 년째 기다린 대기 줄을 한국 게임사가 '새치기'한다는 지적이 나올 거라고 한다. 종종 외자판호를 받는 게임도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외자판호 발급이 새치기라는 모순과 어긋날 정도는 아니라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사드에 따른 한한령 조치란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그들은 답을 할 수 없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이제는 한국 게임이 중국의 판호 발급 순서를 건너뛸 만큼 메리트가 없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중국의 퍼블리셔도 굳이 무리해서 한국의 게임을 들여와 서비스하려는 시대도 지났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한국의 게임보다 연예산업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더 아쉬워했다. 중국의 게임한류는 지나고 연예인한류가 대세이지만, 연예인과 방송 프로그램 모두 사용하지 못해 큰 손실을 입는다고 한다. "최근 대한민국 국정감사에서는 판호 이슈로 4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추정액이 나왔다"고 기자가 말하자 현지인은 "그렇다면 연예산업은 40조 원을 잃었을 것"이라 되받아칠 정도였다.

현지인에게서 판호에 이어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허리 문제를 꺼냈다. 근 몇 년동안 게임산업을 진단하면, 중소게임사가 있어야 할 허리에 중국 게임사가 차지해간다는 지적을 여럿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여러 이유들이 나왔지만, 주범은 '걸러지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중국 게임사'로 꼽히는 듯 하다.

그러나 중국 게임사 관점에서는 "우리도 판호가 막히니 한국 시장에 뛰어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 내에서 중국 판호 발급이 막혔으니,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자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 게임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유저 성향이 보이는 한국 시장이 활로인 셈. 더군다나 아이지에이웍스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19년 상반기에만 모바일 게임 매출 2조 원을 돌파하는 구매력이 높은 시장이다. 거기다 한국 시장에 게임 유통은 사실상 신고제라 느낄 만큼 쉽게 여긴다. 유연한 행정을 위해 도입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제도가 중국 게임사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국내에서 심각하다고 이야기한 중국 게임사의 진입이 다소 허무했다. 모바일 게임 매출 최상위권에서 양국 간 1군 게임들이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라면, 우리나라 2군 게임부터는 중국의 3~4군 게임에 밀렸던 셈이다. 앞으로 중국의 1, 2군 게임사가 한국 시장에 힘을 준다면, 허리가 아닌 머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 기사가 나올 터였다.

바꿔말해 국내 게임산업의 허리 문제는 중국 게임사의 진입이 원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 중국산 게임을 살피면 광고부터 게임 내 콘텐츠까지 비교적 성의 없는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산 게임에 밀린다면, 국내 게임산업의 상황과 경쟁력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게임의 판호 미발급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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