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왜 우리가 당신들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331개 |




`크리스 로버츠(Chris Roberts)`는 2012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이후, 8년째 `스타 시티즌`을 개발해오고 있다. 스타 시티즌이 어떤 게임인지 말하고자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니 이건 제쳐놓자. 내가 그의 이름을 꺼낸 이유는 얼마 전 그가 한 외신 인터뷰에서 한 답변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Gamers Don’t Quite Understand How Difficult Is to Deliver Everything Flawless

글의 맥락을 요약하면 지난 2월 출시된 바이오웨어의 신작인 `앤섬`이 유저의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열악한 개발 환경 때문이며, 게이머들이 이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크리스 로버츠는 헬로게임즈의 `노맨즈스카이`도 언급하며, 노맨즈스카이 개발팀이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요약문만 보면 과격해 보이지만 크리스 로버츠는 꽤 신사적으로 말했다. 유저에 대한 태도도 비난보다는 이해를 바란다는 어조에 가까웠으며, 감정적으로는 분노보다 안타까움이 바탕에 깔렸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크리스 로버츠 또한 인디 게임인 `스타 시티즌`을 큰 프로젝트로 성장시켜오는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계속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맴돈다.

왜 정당한 대가를 내고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가 왜 개발사의 사정까지 생각해줘야 하나?



■ 어떤 업계도 소비자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그동안 어떤 물건을 사면서도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고생을 했는지, 기업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소비자가 구매를 하면서 고려하는 건 `상품의 품질이 어떤지`, `가격은 합리적인지`, `이 상품을 사서 나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 밖에 없다. 생산자의 상황을 고려하는 경우는 아는 사람에게 의리로 물건을 사는 경우밖에 없다.

게임사는 인정에 호소한다. '개발사의 사정이 이러해서 예정된 업데이트가 미뤄졌다. 이해해달라'나 '해당 콘텐츠는 프로덕션 단계에서 피치 못하게 삭제되었다'와 같은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좀 더 나가면 개발자가 SNS를 통해 게이머의 의식을 비판하거나, 훈계조의 말을 늘어놓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틀필드5'의 개발진이 게이머를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하한 사건이다. 이 경우는 워낙 발언이 공격적이다 보니 더욱 화제가 되었다.



▲ 게이머들을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폄하했던 '배틀필드5'

워낙 이런 일이 흔하다 보니 다들 그냥 `또 저런 일이 있구나`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이지만, 사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재 모든 시장을 구성하는 논리 안에서 가장 높은 가치는 상품의 질과 가격이며, 이것이 곧 경쟁력이 된다. 소비자의 비판을 받는 상품은 곧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며, 이 비판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소비자를 만족하게 하지 못한 생산자, 즉 개발사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아직 게임 씬에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인식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이머는 개발사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개발자는 게이머다. 개발자는 자신 또한 게이머의 일원이기 때문에 같은 계층에 속한 게이머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나아가 자신이 속한 개발사의 사정을 이해해주길 바랄 것이다. 그렇기에 심정적으로 같은 계층에 속한 게이머의 비판이 더 뼈아프다. 차라리 `나와는 아예 다른 그룹의 사람`이 날 욕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넘길 수 있지만, 나와 같은 게이머들이 나를 욕한다고 생각하면 참기 힘든 게 사실일 테다.




■ 소비자는 기대와 결과물이 다를때 비판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상품군에서 적극적인 비판은 드문 일이다. 그냥 다른 상품을 사는 것으로 개별적 의사 표현을 할 뿐이고, 이는 더없이 효과적이다. 게임업계가 다른 시장과 같은 구조를 따라간다면, 게이머들 또한 게임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대다수의 좋지 못한, 즉 `재미없는` 게임들은 비판당하지 않는다. 그저 관심을 못 받고 잊힌다. 하지만 크리스 로버츠가 말한 `앤섬`과 `노맨즈스카이`와 같은 몇몇 게임은 거센 비난을 받는다. 이 게임들만 특별히 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앤섬`도 `노맨즈스카이`도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이 문제였다. 두 게임 다 개발자들이 직접 나와 엄청난 게임이 될 거라고 선전했고 게이머의 기대심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실제 게임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두 게임만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개발사는 출시될 게임의 좋은 면만을 부각하는 광고의 법칙을 충실히 따랐고, 몇몇 게임은 이를 더 과장하거나, 거짓 내용을 덧붙이고는 했다. 당연히 게이머들의 기대는 게임의 가치를 넘어섰고, 이내 게이머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에 실망했다.



▲ 게임 자체는 그냥 그랬다. 다만 스스로 대단한 게임이란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비판을 듣는 데 있어 게임을 잘 만들고 못 만들고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게임이야 못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이미 수천 수만 가지 게임이 나온 지금 못 만든 게임도 매우 많다는 것을 게이머들은 익히 알고 있다. 문제는 못 만든 결과물을 마치 잘 만든 것만큼 포장하는 행태에 있다. 게임은 다른 상품보다 훨씬 가리거나 포장하기 어렵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낱낱이 플레이하고, 콘텐츠 내면을 분석해내기 때문이다.

게임의 목표는 즐거움이고, 게이머는 지불하는 금액만큼의 정당한 재미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과대 광고는 게임의 판매량을 단기적으로 올려줄 수는 있으나,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찾지 못한 '정당한 재미'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출시 후 조금의 시간만 지나도 게이머들은 게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들이 기대한 것과 결과물이 다를 경우 비판의 날을 세우게 된다.



▲ 조금 다르지만, '디아블로 임모탈' 또한 게이머의 기대와 결과물이 달랐던 경우

정리하면, 인위적인 게이머층의 기대심 증폭과 이에 따른 비판은 판촉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다. 그리고 게임은 출시 후 이른 시일 안에 실체가 모두 드러나 버리는 상품군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게이머층은 딱히 기대하지 않은 게임에는 욕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게임이 잘 만들어졌다면 뭘 해도 비판이 적을 테지만, 게임이 문제가 있을 때 개발사의 선택은 두 가지다. 비판당할 각오로 게임을 널리 알려 초기 판매량을 올리느냐. 혹은 그러지 않느냐다.

게이머층의 비판을 듣기 싫다면 게임을 잘 만들면 된다. 하지만 게임이 어디 원한다고 잘 만들어지는 것이던가. 게임이 좋지 못하면 부풀리지 않으면 된다. 마치 대단한 게임인 양. 엄청나게 잘 만든 게임인 양 허풍만 떨지 않으면 비판받을 이유도 없고, 받는다 해도 금세 수그러든다. 아마 `앤섬`만 해도 `실험적 시도가 많이 가해진 작품이며, 이 작품을 시작으로 바이오웨어의 작품관이 재정립될 것` 정도의 내용으로 광고 포인트를 잡았다면 지금처럼 비판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게이머들의 비판은 개발사의 선택에 달려있다. 개발사는 이를 두고 게이머들을 탓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이쯤에서 가능하다면 크리스 로버츠에게 묻고 싶다. 게이머들이 `앤섬`을 비판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돈을 주고 게임을 구매한 게이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뻔히 그럴 걸 알면서도 과대광고를 한 퍼블리셔 EA의 잘못일까? 혹은 주어진 기간 안에 게이머들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지 못한 바이오웨어의 잘못일까?



▲ 굳이 힘들다고 안 해도 게이머들은 다 알 수 있다



■ 게이머가 개발사 사정을 신경 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개발자 개개인이 억울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엄청나게 힘든 환경 속에서 꾸역꾸역 게임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혹은 퍼블리셔의 간섭과 사내 인사 등 외적 문제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게임이 나올 수도 있다. 해당 팀에 속한 개발자 본인에게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게임을 소비하는 소비자층인 게이머들이 이런 사정을 신경 써줄 이유는 전혀 없다.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면, 크리스 로버츠의 말은 완벽하게 틀린 말이다. 게이머에게 중요한 건 개발에 어떤 고급 기술이 들어갔고, 어떤 시스템 변혁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정당한 재미를 주는가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굳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표현할 필요도 없다. 어설프게 표현해도 재미만 있으면 되는 일이고,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제과점도 빵이 맛없다는 고객의 반응에 `저희 가게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밤늦게까지 일하며 열심히 만든 빵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전자제품 회사도 제품 하자에 대한 고객의 불만에 `공장장과 직원들이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만든 물건입니다. 조금만 이해해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크리스 로버츠의 말이, 그리고 게이머들의 의식을 비판하고 훈계를 늘어놓는 개발자들의 발언이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게임`도 결국 디지털 상품이란 차이만 있을 뿐, 정당한 대가를 내고 구매하는 상품이다.



▲ '노맨즈스카이'와 큰 차이는 없었지만, 조용했기에 오히려 반응이 좋았던 '아스트로니어'

오늘날의 시장 구조에서 상품에 대한 변명은 놀림거리가 될 뿐이다. 비판받기 싫으면 `잘 만들면` 그만이다. 잘 못 만들었으면 비판을 감수하고 광고를 해 팔던가, 광고와 판매량을 둘 다 포기하고 비판도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개발사의 책임을 게이머들의 의식, 지식 부족으로 떠넘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수가 아니다. 그런 발언이 반복될수록, 게이머에게 개발사는 더욱 믿지 못할 판매자가 될 뿐이고, 골은 깊어져만 갈 테니 말이다.

비판받는 게임들은 대개 그렇다. 게이머의 니즈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거나, 게이머가 원하는 이상의 무언가를 넣으려다 오히려 기본을 챙기지 못했거나, 게이머가 원하는 이야기가 아닌 개발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주로 담겨 있다.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날 때, 개발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게이머가 잘못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개발사가 게이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그냥 못 만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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