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달라진 '게이머'의 위상

칼럼 | 양영석 기자 | 댓글: 12개 |



"넌 대체 언제까지 그놈의 게임만 할거냐?"

아마 학창시절 게임에 심취했던 분들이 부모님께 자주 듣던 말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듣고 자랐습니다. 게임은 그저 애들이나 하고 노는, 인생에 별 도움 안되는 악의 축이었죠. 특히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만한 원수같은 존재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제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게임을 즐기던 세대들은 어느덧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았고 시대가 흐르면서 게임에 대한 인식도 차차 변화되고 있죠. 여전히 고운 시선을 받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지만, 이제 무작정 나쁘다라고 하기는 힘든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핵심을 말하자면 게이머들의 위상이 이제는 예전같지 않다는 겁니다. 이는 여러가지 사회 현상과 흐름을 보고도 알 수 있지만,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정치입니다. 투표와 민심에 매우 민감한 정치권에서도 이제 게임은 하나의 키워드로, '무시하면 안 될 지지 기반'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도 이에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들이 드물었죠. (출처 : JTBC 뉴스)

그동안 게임업계는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게임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은 극소수였고, 이들 또한 게임업계와 게이머들에 대한 해박한 이해력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하기 힘들었죠. 게임산업진흥법도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법적인 한계로 경기를 포기하는 프로게이머가 있던 사례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에서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죠. 그래도 게임을 이용하는 이용자층은 꾸준히 늘어가고, 분포가 넓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8년만 해도 게이머라고 부를 수 있는 인구의 분포는 젊은 세대로 분류할 수 있는 층에 두드러졌죠. 이는 2008년 한일게임이용자 보고서에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2008년 게임이용자 보고서의 게임 이용층



▲ 2020년 조사 결과는 '게이머 층'의 분포와 게임 이용률.

그리고 12년이 지난 2020년의 데이터를 보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조사층의 차이입니다. 만 49세까지만 조사했던 2008년과 달리 2020년에는 60~65세까지 늘어났습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조사를 한 층의 연령이 늘어난 결과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결과가 있습니다.

조사 항목이 바뀐 점을 고려해도 3~40대부터 시작해 5~60대까지 게임 이용률이 점차 늘어나고 분포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젊은 층에 높은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30대 이후 70%이하로 낮은 이용률을 보였던 2008년과 달리 2020년에는 40대 응답자 중에서도 76.6%에 달하는 상당히 높은 이용률을 보입니다. 50대는 절반이 넘는 인구가, 그리고 60대에도 약 35%에 달하는 인구가 게임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통계의 오류를 감안해도 이는 뚜렷하게 세대의 변화를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과거에 게임을 즐겼던 인구층이 성장하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세월이 흘렀다는 셈이죠. 과거 30대에서 게임을 즐겼던 인구는 4~50대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던 10~20대의 인구가 세월이 지나며 30대까지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을 경험하고 즐기던 연령층이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 '게임'이 조금 더 무게감이 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가 활동 분야에서도 게임은 상위 10개 활동에 집계되며, 실질적인 이용률은 음악 감상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러한 통계는 2020년 진행된 국민여가활동조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게임은 현재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국민 여가 활동이자 취미라는 '인식'이 매우 강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게임도 이제 확실히 '주 여가활동'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권의 관심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정치권에서 게이머들의 목소리를 더 신경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게임을 애들이나 하는 놀이 정도로 치부하는 순간 '꼰대'라는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2012년 대선부터는 후보들이 게임에 대한 시선과 논평을 하거나, 관련 정책에 대한 내용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게임은 4차 산업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게임과 관련된 여러가지 대선 후보 및 정치인들의 움직임도 달라졌습니다. 현재까지도 메타버스, NFT 등 IT 산업의 최신 트렌드와 게임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게이머들이 그런 기술을 빠르게 접하고 있죠.

때문에 모바일부터 시작해 VR, 메타버스, e스포츠 등 정치권에서는 게임에 대한 키워드를 들고 이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였습니다. 국회의원들 역시 점차 게임 산업과 관련된 법과 이용자들에게 불리한 점을 찾아 하나 둘 씩 법을 고쳐나가고 있는 행보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에게도 계속해서 좀 더 상세한 '게임'에 대한 정책과 견해를 묻기도 합니다.




게이머는 요구사항이 명확한 소비자입니다. 게이머들은 자신의 하는 게임의 패치 노트를 체크하고, 공략을 찾아보고 즐거움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템과 성장 및 게임 환경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고 토론하죠. 불합리하고 답답하다면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속도도 빠른 편입니다. 소통과 개선을 요구하는 트럭 시위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금 바꿔서 생각해보면, 똑같이 게이머들도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라고 요구할 잠재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공격만 하는 과거의 논리는, 게임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사회 구성층이 늘어나면서 낡은 논리가 되었습니다. 논리가 부실한 논문이 바로 다른 연구에 의해 반박당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좀 더 심층적으로 게임 이용을 연구하고 조사하여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아야 사회적으로도 통용될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게이머들의 위상이 달라진 점은 사회적인 흐름입니다. 정치권의 변화는 이 흐름을 뚜렷하게 나타내는 움직임들이 나타난 결과 중 하나이고요. 향후로도 정치권은 게이머들의 표심을 얻고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지속적인 푸시와 관심을 보여줄 것입니다. 국회에서도 나서서 게임을 주로 다루는 전문적인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생겨날 것이고요.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의 결과 이후 내각이 마련되고, 세계적인 동향의 흐름에 맞춰 NFT나 메타버스 등 여러가지 산업과 게임 업계를 아우르는 키워드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정책과 법안들이 마련되겠죠. 그때야 말로 게이머들이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시기입니다. 단순히 게임 산업에 대한 진흥과 규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의 게임 이용 환경 역시 한층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선도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게이머들과 업계도 이를 그저 기다리기만 해선 안될 것입니다. 게이머들의 목소리가 닿도록 대변할 수 있는 협단체와 소통 창구를 꾸준히 만들고 정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게이머들이 불만 사항을 '트럭'으로 억지로 듣게 한 것처럼,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말이죠.

시대가 지나 게이머들의 위상이 달라진 현 상황만큼 건전한 게임 산업 생태계를 만들 좋은 시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정부와 법안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 업계인들과 게이머들의 목소리가 닿아 좀 더 실효적인 정책과 법안 등 건강한 게임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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